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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청산도 가는 길

일찍 일어나 완도행 버스에 올라탔다. 강진을 거쳐 돌아가는 완행버스로 이동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다.

카메라와 렌즈, 노트북과 책들을 바리바리 싼 덕에 가방이 무게를 견디지 못해 어깨끝이 떨어지려고 한다. 완도 터미널 근처 세탁소로 들어가 가방을 수선했다. 세탁소 주인아저씨가 '웬 짐을 그리 많이 짊어지고 다니냐'며 초보 여행객의 짐싸기에 핀잔을 주신다. 가방을 수선하고, 그래도 못 미더워 우체국에 들러 짐 일부를 택배로 집에 보낸다. 욕심 때문에 쓰지도 않을 짐을 잔뜩 챙긴 덕분에 1시간 정도를 뒤처리하느라 보낸다.

시간이 조금 남아서 완도 여객선터미널 근처에서 아침겸 점심을 해결한다. 5천원자리 백반을 시켰는데 갈치조림과 조개가 한 주먹도 더 들어가 있는 된장찌개가 나온다. 배 시간이 빠듯해 급히 먹기에는 너무 먹음직스런 상차림이다. 역시 전라도다.

완도항의 옆에 위치한 주도
▲ 완도항 주도 완도항의 옆에 위치한 주도
ⓒ 문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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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20분 배에 올랐다. 완도에서 청산도까지는 45분 남짓 걸린다. 평일 오전이라 사람이 많지 않다. 여행객은 더 적다. 3층 3등칸에는 아저씨 한 분과 나뿐이다. 다도해의 여러 섬들을 사진으로 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청산도에 사시는 아저씨가 가이드를 자청하신다. 가는 길 여러 섬들 이름을 알려주시더니, 구름속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섬을 가리키시며 '저 섬이 제주도다. 날씨가 아주 좋아야 보이는데 한달에 한번 보기가 힘들다'고 하신다. 날씨 덕에 선상에서 제주를 보는 호사를 누렸다.

13. 코스모스에 묻힌 서편제 돌담길

방파제 끝에 서있는 인상적인 빨간색 등대와 흰색 등대 사이로 배가 진입한다. 청산항에 도착했다. 우선 저 유명한 서편제 돌담길을 찾아가기로 한다. 항구 여객 터미널에 비치된 관광안내도를 보고 코스를 확인하니 그리 멀지 않은 길이다. 기왕 슬로우시티 청산도에 왔으니 느림을 테마로 삼아보기로 하고 걷기 시작한다. 언덕길이라 올라가기 좀 힘들긴 하지만 40분 정도를 해안도로를 따라 펼쳐진 다도해의 푸른 바다를 보며 걷다 보면 서편제 촬영지인 당리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돌담으로 쌓여진 밭과 논 사이로 난 길이 바다까지 이어진다.
▲ 서편재 고개에서 본 청산도 돌담으로 쌓여진 밭과 논 사이로 난 길이 바다까지 이어진다.
ⓒ 문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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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편제>에서 주인공들이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내려오는 장면으로 유명한 이 길은 곡식이 부족하고 흙이 부족한 섬 농사를 위해 주변을 돌담으로 쌓아놓은 논밭 사이로 난 길이다. 붉은 황토흙의 밭, 푸른 농작물들과 오래된 돌담길이 어우러져 장관인 길이다.

하지만 늦여름의 돌담길은 아쉽게도 여름내 웃자란 넝쿨과 잡풀들로 돌담이 많이 가려져 있다. 영화에서 보던 선명한 돌담길은 쉬 보이지 않는다. 바닥에는 콘크리트가 깔려 있다. 후에 들른 가게 아주머니의 정보에 의하면 흙길을 농기계의 이동을 위해 콘크리트로 덮고, 풍경과 정취를 위해 콘크리트를 뜯어내고 황토로 깔고, 다시 주민들의 불편이 심해 콘크리트로 덮은 몇 단계의 과정이 있었다고 한다. 농군의 아들인지라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이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콘크리트로 덮인 돌담길이 좀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코스모스로 뒤덮인 서편제 돌담길과 봄의왈츠 촬영장
▲ 서편재 돌담길과 봄의세트 촬영장 코스모스로 뒤덮인 서편제 돌담길과 봄의왈츠 촬영장
ⓒ 문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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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끝에는 드라마 <봄의 왈츠> 세트장이 있다. 서양식 예쁜 건물이 얹어져 있다. 사실 콘크리트보다 더 눈에 거슬렸던 것이 이 세트다. 전통적인 돌담길의 끝에 서있는 이 세트 때문에 조화가 엉망이 된 느낌이다. 서편제 영화에서 나오는 앵글을 포기하고 바다로 매끄럽게 내려가는 길을 중심으로 사진을 몇 장 찍는다. 아직 돌담이 많이 남아있는 당리마을을 걷는 것도 돌담길만큼이나 좋은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마을 안에는 서편제 세트장도 있으나... 뭐랄까 초가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밀랍인형은 좀 공포스런 느낌이었다.

14. 고운모래를 둘러싼 노송들, 지리 해수욕장

일몰을 어디서 찍어야 할지 결정하기 위해 한참 관광 안내도를 살펴본다. 위치상으로는 섬의 서쪽에 위치한 지리해수욕장이나 청산항이 좋을 것 같다. 음료수를 사러 들어간 슈퍼 아주머니의 조언을 받아들여 식사 등을 해결할 수 있는 청산항 근처에서 숙박하면서 일몰을 찍고 아침 일찍 일출을 보기 위해 진산해수욕장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한다.

일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서 지리 해수욕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청산항에서 지리해수욕장은 걸어가기는 좀 먼거리라서 버스를 이용하기로 한다. 청산항에서 배 시간에 맞춰서 버스가 출발한다. 권덕리 방면으로 가는 버스는 흔히 보는 버스인데, 지리를 경유해 진산리로 가는 버스는 봉고를 버스로 이용한다.

지리해수욕장은 모래가 곱고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 지리해수욕장 지리해수욕장은 모래가 곱고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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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해수욕장은 얇고 가는 모래가 넓게 펼쳐져 있고 오래된 소나무가 주변을 감싸고 있는 해수욕장이다. 휴가철이 지난 평일 지리해수욕장에는 아무도 없다. 잠시 거닐며 아무도 없는 한적한 해수욕장의 사진을 몇 장 찍어보지만 한낮이라 별로 신통치 않다. 경사가 제법 있는 서편제 길을 헤매고 다닌 덕에 다리도 아프고 해서 그냥 카메라는 집어넣고 소나무 고목 사이에 해변을 바라보며 놓여있는 호사스런 풍경의 벤치에 앉는다. 휴가철을 피한 여행이라 곳곳의 절경을 독차지하는 호사를 누리며 여행 중이다.

방파제에서 바라본 지리해수욕장
▲ 지리해수욕장 방파제에서 바라본 지리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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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두 등대 사이로 본 청산항 일몰

청산항으로 돌아와 여관을 잡았다. 여관창문으로 그림 같은 청산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2만원짜리 여관방에서 보는 풍경이 수십억짜리 빌딩의 스카이라운지보다 좋다. 우선 배를 채우기 위해 식당을 찾는다. 이번 여행의 음식테마는 백반이다. 여행지 곳곳의 산지음식을 맛보기에 최고의 메뉴다. 청산도의 백반은 생선구이와 함께 무려 16가지의 반찬이 나와서 눈과 입을 즐겁게 한다. 혼자 먹기 아까운 저녁을 즐기고 카메라를 챙겨 청산항으로 향한다.

청산항 인근 여관의 창문으로보이는 청산항의 풍경
▲ 여관방 액자 청산항 인근 여관의 창문으로보이는 청산항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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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끼어 있다. 섬 날씨야 원래 예측이 불가능하지만, 여행 내내 비와 구름에 시달렸던지라 실망이 크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등대쪽으로 걸어가 본다. 해가 떨어지는 붉은 바다를 배경으로 솟아있는 등대에 기대 아주머니 두 분이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다. 두분에게는 일상이겠지만, 외지인에게는 부럽기 그지없는 여유를 깨고 싶지 않아 조용히 등대 뒤편으로 돌아가 사진을 몇 장 찍는다. 아쉽게도 해는 끝내 구름 사이에서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일정을 좀 당겨 내일 서울로 돌아갈 생각이라, 결국 5일간 한번도 제대로된 일몰을 보지 못한 셈이 되니 아쉽다.

청산항 등대 사이로 해가 지다
▲ 청산항 일몰 청산항 등대 사이로 해가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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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청산도, #여행기, #서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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