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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 음식은 땅에서 자랐으나 하늘에서 온 생명의 음식입니다. 오늘 내가 이 음식을 감사한 마음으로 내안에 모시겠습니다. 여기 이 음식에 온 생명이 깃들어 있습니다. 온 생명을 모시듯 이 음식을 감사한 마음으로 내 안에 모시겠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내 안에 모시겠습니다."

 

깊이가 있는 기도문이다. 음식의 고마움을 모르고 해치우듯 식사를 해결하는 현대 문명에 대한 성찰과 생명의 시대를 열어갈 철학이 담겼다. 놀라지 마라. 어린이집 아이들의 식사 전 기도문이다. 글도 아직 깨치지 않은 녀석들이 이렇게 긴 기도문을 어찌나 또박또박 큰소리로 외우는지, 귀청이 떨어져 나갈 정도다. 학교 길 옆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기도 한다.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할까? 매일 외는 이 기도문을 어떤 깊이로 받아들이고 있을까?

 

 

선생님이 다시 혼을 낸다. "목소리가 너무 컸지요! 자 다시 할게요. 너무 크지 않게, 거룩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 이번엔 뭔가 제대로 한다. 제법 거룩해 보인다. 눈을 찡그리고 손을 모으고 외는 녀석, 다른 친구들 입 모양을 보면서 따라하는 녀석, 코를 후비거나 발가락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녀석 등 다양한 모습을 연출한다.

 

이제 식사를 한다. 여기저기서 "선생님" 부르는 소리가 요란하다. 자기를 봐달라는 거다. "응 그래 별이" 하며 봐주면 기다렸다는 듯이 숟가락에 밥을 한 가득 넣고, 입을 크게 벌려 우겨 넣는다. 자기가 이렇게 잘 먹는다는 거다! 그럼 "우와 잘 먹네! 이야 멋지다!"라고 맞장구를 쳐준다. "선준이, 하늘이도 대단한데!" 이번엔 색다른 것을 보여주겠다며 자연이가 나선다. "선생님" 하면 "응 그래 자연이" 하고 보면, "저는 매운 김치도 잘 먹어요" 하며 밥에 김치를 얹어 놓고는 한 입에 꿀꺽한다. 그럼 난 또 "우와!" 이렇게 감탄사만 연발한다. 이렇게 해 줘야 밥을 잘 먹기 때문이다.

 

언제나 맨 먼저 밥을 다 먹는 민우는 "선생님, 다 먹었어요!" 하며 오늘도 자기가 일등이란다. 그러면 밥상선생님은 "또 일찍 먹었냐? 민우는 너무 급하게 먹어요!" 라며 잔소리를 하신다. 그럼 바로 "피"하며 토라진다. "민우는 다음에 이등으로 먹자~!" 마을학교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된장국이나 나물, 김치를 먹기 힘들어 하던 솔찬이도 이젠 보란 듯이 한 그릇 '뚝딱!' 이다.

 

이렇게 형님들(5세 이상)이 하나둘 씩 그릇을 비워가는 동안 그래도 밥을 안 먹고 딴죽을 거는 아우(4세) 녀석들이 있다. "선생님~! 이거 뭐예요?" 민제가 오늘 나온 반찬이 궁금한 거다. "응, 참나물이야. 맛있게 생겼지." 하지만 처음 보고 듣는 반찬이라 "찬나물이요?" 라고 반문한다. 다시 "아니 참나물이야" 라고 말해주면 너무나 순수한 표정으로 "찬나물 맛있겠다"란다. 나도 이제는 포기하고 "찬나물 맛있겠지?"라며 거든다. 한참 밥을 먹고 있는데, 고개를 앞뒤로 휘저으며 눈을 반쯤 감고 있는 새울이를 발견했다. "새울아! 밥 다 먹고 자야지요" 라고 한 숟가락 크게 떠주지만 밥을 입에 넣고 잔다. 아놔!

 

 

어찌어찌해서 오늘도 용케 그릇을 다 비운 녀석들. 자랑스럽다. 세상을 품는 큰 사람으로 자라리라 믿는다. 자 우리 식후기도 외워볼까?

 

"거룩한 당신의 음식을 쓰레기로 버리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습니다. 그릇을 비우듯 내 마음도 비우고 사랑으로 채우겠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나가 이웃과 자연의 좋은 친구가 되는 거룩한 삶을 살겠습니다. 좋은 친구가 되는 거룩한 삶을 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수동 아름다운마을신문(www.welife.org)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어린이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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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에 살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작고 소소한 일들, '밝은누리'가 움틀 수 있도록 생명평화를 묵묵히 이루는 이들의 값진 삶을 기사로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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