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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가족들과 친척들이 고향으로 향했다. 성묘 겸한 고향 방문인 셈이다.  해마다 추석 즈음이면 꼭 들리는 고향. 그러나 어쩌다 보면 몇년씩 고향에 들리지 못하는 것이다. '성묘'는 그래서 고향을 찾는 좋은 기회이자 구실이 되는 것도 같다.
 
팔불출 같지만, 내 고향 청도면은 정말 산수경관이 뛰어난 고장이다. 특히 저수지가 있어 물이 좋고 수령 깊은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 어느 관광명소 못지 않게 좋은 자연산수화를 선물하고 있다. 
고향 마을에는 550년이나 된 모과나무 한그루가 있다. 수령이 인간의 나이에 비한다면 정말 비교될 수가 없는 것이다. 고향의 품과 같은 모과나무 그늘에 앉으니, 돌아가신 어머니의 생각이 많이 난다. 살아 생전, 어머니는 나무 중에 모과나무를 좋아하셨고, 열매 중에는 모과를 좋아하셨다. 모과처럼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셨지만, 어머니는 여느 어머니들처럼 앉으나 서나 자식 생각으로 여념이 없으셨던 분이다.
 
나는 어릴 적 몸이 무척 약해 항상 어머니의 걱정을 끼쳤다. 환절기만 되면 감기가 떨어지지 않아, 어머니는 나를 위해, 가을철이 돌아오면 모과를 썰어 말리는 일에 열중하셨다. 모과는 정말 딱딱해서 썰기가 워낙 힘든 열매다. 그 모과를 썰다가 어머니는 숱하게 손을 다치기도 하셨다. 힘들게 썰어서 말린 모과를, 겨울철이면 달여서 나에게 먹이곤 하셨다. 그러나 시큼한 모과 탕액은 마시기 어려워 나는 어머니 모르게 대충 마시는 척 하곤 하수구에 버리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모과만큼  겨울 철 감기 예방이나 치료에 요긴한 민간제도 없는 모양이다. 

어릴 적 어머니가 계신 안방은 그래서일까. 항상 향기로운 모과 향으로 가득했다. 어머니 의 모과에 대한 지론은 "생긴 것은 정말 못 생겼지만, 마음씨가 착한 나무가 모과나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늘 나에게 사람을 만나면 겉모양 보고 사람의 인품을 단정치 말고, 그 마음씨를 보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 그 어머니와 같은 풍성한 모과 나무 그늘 아래 있으니, 어릴 적 고향에서 뛰어 놀던 죽마고우며, 추석 명절이면 가족들이 다 함께 송편을 빚던 그리운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정말 그 시절은 병원이 멀어 민간요법으로 거의 어린아이들의 병을 다스렸다. 생각하면 어머니는 나의 주치의셨다. 어머니가 계셨기에 지금의 나는 이렇게 건강한 몸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이제야 이런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알게 되는 것일까. 조금 더 빨리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진부한 소리 같지만, 자식을 키워보니 이제야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 이해하는 것 같다. 나도 이제 추석 명절 즈음이면, 외지에서 생활하는 아이들  만날 생각으로 밤에 잠을 설치니 말이다.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속에서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중략)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또 다른 고향>-'윤동주'

청도면 근기 마을에 있는 이 모과나무는, 동쪽나무와 한그루로 오래전부터 마을 수호목 당산나무로 모셔 당제를 지내왔으나, 마을 주민들의 소원과 잎이 돋아나는 상태와 과실의 착과에 따라 농사의 풍흉을 점쳐온 나무이다.  지금은 03. 9. 12. 태풍 매미로 도복되어 근기마을 주민들의 기증으로 2003년 9. 21 청도면 청사로 옮겨진 것이다.

 


태그:#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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