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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보수동에서 열리는 책잔치를 알리는 포스터
 부산 보수동에서 열리는 책잔치를 알리는 포스터
ⓒ 보수동책방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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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에서 여섯 번째 '책잔치'가 열립니다. 가을을 맞이한 이즈음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 여러 곳에서 크고작은 책잔치가 열렸거나 열리는데,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은 지난 2004년부터 해마다 9월 마지막주 주말을 낀 금ㆍ토ㆍ일 사흘에 걸쳐 책잔치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은 한국전쟁 때에 비롯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나라안 숱한 헌책방골목은 '전쟁이 일어나는 가운데' 생겨났습니다. 전쟁이 터진 무렵에는 목숨 하나 건사하기 힘들고 굶어죽을 수 있는 판인데, 외려 이런 어수선한 틈바구니에서 '헌책방 문화'가 크게 꽃피웠다고 하니 뜻밖이라거나 놀라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어느 한편으로 보면, 전쟁이라는 끔찍한 일이 터졌기 때문에 '몸뚱이를 건사하느라 책을 버릴'밖에 없고, 이렇게 버려지는 책을 '먹고살려고 그러모아서 값싸게 파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며, 또 책이 있는 사람들은 그 책이라도 팔아서 끼니를 이으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전쟁통에 누가 책을 살까요? 돈 많은 사람? 글쎄, 모르기는 몰라도, 전쟁통에 책을 내놓고 또 책을 사는 사람은 으레 '돈이 많지 않으나 책을 좋아하거나 책과 어깨동무하는 학문길을 걷는' 사람이 아니랴 싶습니다. 이들은 끼니를 잇는 일이 만만하지 않아도 가벼운 밥그릇을 그나마 반으로 나누어 먹는다는 마음이거나 한두 끼니는 그냥 굶자는 마음으로 책을 사모으고 읽고 갖추면서 '이 전쟁이 끝나면 다시 학문길로 돌아가서 더 힘껏 갈고닦자'는 꿈을 꾸었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보면, 어려운 가운데 뿌리를 내린 헌책방이 많아 번듯한 건물을 세우지 못하거나 '대물림할 만한 일'로 여기지 못하기도 합니다. 흔히들 '추억이니 낭만이니' 하는 이름으로 엉뚱한 옷을 입히는데, 이러거나 말거나 속알맹이를 슬기롭게 받아먹는 분들은 헌책방 마실을 꾸준히 이어나가면서 당신들 밥벌이뿐 아니라 사람들 마음벌이(책을 읽어 마음밥을 채우도록 이끄는 마음벌이)를 일구어 오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헌책방은 '헌 물건'이 된 책을 값싸게 파는 곳만이 아니라, 버려지는 종이뭉치에 깃든 빛줄기가 우리 마음을 어떻게 어루만질 수 있느냐를 넌지시 보여주는 곳이거든요.

책방골목 잔치에 나들이를 와서 사진찍기 놀이를 하는 분들.
 책방골목 잔치에 나들이를 와서 사진찍기 놀이를 하는 분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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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골목 한쪽은 높은 울타리인데, 이 울타리에서 아이들이 '7행시' 쓰기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2008년 잔치 때 모습.
 헌책방골목 한쪽은 높은 울타리인데, 이 울타리에서 아이들이 '7행시' 쓰기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2008년 잔치 때 모습.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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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은 "1950년 6ㆍ25사변 이후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었을 때 이북에서 피난 온 손정린 씨 부부(구 보문서점)가 보수동사거리 입구(현재 글방쉼터) 골목 안 목조건물 처마 밑에서 박스를 깔고 미군부대에서 나온 헌 잡지, 만화, 고물상으로부터 수집한 각종 헌책 등으로 노점을 시작한 것이 지금의 보수동 책방골목이 되었다.(2009년 안내책자에 실린 줄거리)"고 합니다. 인천에 있는 헌책방거리도 한국전쟁 무렵에 '길바닥 장사'에서 비롯했다고 하고, 처음에는 축현국민학교(이제는 청소년문화센터 건물이 들어선) 담벼락을 따라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다가 창영초등학교 쪽으로 옮겨 갔고, 여기에서 배다리 철길다리 둘레로 다시 옮겨서 가게를 차렸다고 합니다. 지난날 길바닥 책장수로 일하던 할아버지들은 나이를 많이 잡수시어 거의 모두 그만두었지만, 인천 배다리에는 아직 할아버지 한 분이 꿋꿋하게 헌책방 살림을 잇고 있으며(2009년 올해 여든 살), 당신이 헌책을 만진 지는 쉰 해가 넘습니다. 그러나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는 긴 역사가 있다고 하나, 인천시에서 이 동네를 '공영 재개발'로 토지수용을 해서 싹 밀어내 버리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헌책방거리나 헌책방골목으로서 힘을 많이 잃은 대구와 광주와 대전과 마찬가지로 크게 줄어들밖에 없습니다. 서울 청계천 헌책방거리 또한 청계천을 되살린다고 할 때에 많이 쫓겨났고 크게 기운을 잃었습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 나라에서는 헌책방이 오롯이 뿌리내리기 힘들 뿐 아니라 새책방 또한 튼튼하게 뿌리내리기 힘듭니다. 돈과 힘이 있는 큼직한 책방이 아니고서는 동네나 마을마다 골골샅샅 깃들며 책 문화를 나누기란 그지없이 어렵거든요. 큰 책방과 큰 도서관이라고 꼭 나쁘다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동네나 마을 크기에 알맞춤하게 작은 책방과 작은 도서관이 된다면 한결 살갑고 푸근할 수 있는데, 우리 사회 흐름은 자꾸자꾸 겉모습 부풀리는 데로만 뻗을 뿐입니다.

책방골목 한켠에서는 노래 연주가 끊이지 않습니다. 책을 보다가 노래를 들으면서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잔치마당입니다.
 책방골목 한켠에서는 노래 연주가 끊이지 않습니다. 책을 보다가 노래를 들으면서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잔치마당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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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몇 해 앞서까지 '헌책방 = 청계천'이었다 한다면, 이제는 '헌책방 = 보수동'이고, 부산 보수동 헌책방 일꾼들은 스스로 뜻과 힘과 슬기와 돈을 모두어서 책잔치를 꾸려 냅니다. 책이 책답게 버티어 내거나 책이 책다움을 고이 간직하기 힘든 가운데, 보수동 헌책방 일꾼들은 더 땀을 흘리고 마음을 쏟아 '책이 살아야 사람이 살고, 사람이 살아야 삶이 산다'고 하는 넋을 곱다시 나누고 있습니다.

올 2009년 책잔치에서는 다음과 같은 행사를 마련했습니다. 이런 행사와 아울러, 저는 지난 2008년 다섯 번째 보수동 헌책방골목 잔치 때 찍은 사진을 '우리글방 북까페'에 내걸면서 '책과 헌책방과 사람이 있는 이야기를 오붓하게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 잔치 : 책은 살아야 한다
- 때 : 2009년 9월 25일(금)∼27일(일)
- 곳 :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 둘레

(ㄱ) 500원으로 책을 사자, 500원 day
: 물건값이 아무리 올라도 500원 day는 이어집니다.
(ㄴ) 보수동책방골목에서 미술을 만나다
: 이아람, 조은희, 황정희 작가들이 마련한 설치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ㄷ) 책방골목 책방에서 스탬프를 받아 보자
: 책방에서 2000원 넘게 책을 사면 도장을 찍어 주고, 5개를 모으면 '보수동책방골목 문화상품권' 1장을 선물로.
(ㄹ) 캐리커쳐를 그려 보자
: 행사기간 동안 여러 그림쟁이들이 캐리커쳐를 싼값으로 그려 준다.
(ㅁ) 책을 바꿔 읽자
: 상설 교환매장을 마련해 서로 바꿔 읽을 수 있다.
(ㅂ) 내 인생 책 한 권
: 내 삶에서 소중했던 책 이름과 글쓴이 이름을 적고 짧은 느낌글 적기.
(ㅅ) 책방골목에서 음악을 만나다
: '포클라베이스'가 들려주는 클래식, '뉴멜'이 들려주는 퓨전 국악, '달'이 들려줄 포크음악.
(ㅇ) 책방골목에서 광대를 만나다
: 드럼 키다리 아저씨들이 드럼댄스와 매직풍선크레이션 쇼를 벌인다.
(ㅈ) 책방골목에서 낭독회를 만나다
: 부산에 자리한 '인디고서원'에서 낭동회를 펼친다.
(ㅊ) 어린이 사생대회
: 책방골목에서 그림을 그리는 잔치마당.


'500원 day'를 하기도 하지만, 모든 책이 500원이 아니라, 값있고 소중한 책들은 제값을 받습니다 ^^
 '500원 day'를 하기도 하지만, 모든 책이 500원이 아니라, 값있고 소중한 책들은 제값을 받습니다 ^^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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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에도 책손은 제법 많아, 골목가며 책방 골마루이며 주저앉아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느 때에도 책손은 제법 많아, 골목가며 책방 골마루이며 주저앉아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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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나들이 오는 부모님들이 퍽 많습니다.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를 오면서 아이들한테 책과 얽힌 여러 가지 새 이야기와 새 생각을 나눌 수 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아이와 함께 나들이 오는 부모님들이 퍽 많습니다.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를 오면서 아이들한테 책과 얽힌 여러 가지 새 이야기와 새 생각을 나눌 수 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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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태그:#헌책방, #헌책방골목, #보수동, #부산헌책방, #보수동책방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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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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