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송두환 재판관 "한나라당 배은희 의원이 나경원 의원석에서 대리투표를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당일 나 의원은 본회의장에 없었고, 누군가에 의해 투표가 이뤄졌는데 동영상을 보니 배 의원이 나 의원석에서 투표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뭐 이쯤인가."

 

여당측 "나 의원이 그날 본회의장에 들어오지 못한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배 의원이 당일 국회 전광판을 보니까 나 의원이 (언론법에) 반대한 것으로 나타나, 이것은 성명불상의 의원이 대리투표한 것이라고 보고 배 의원이 취소버튼을 누른 거다."

 

야당측 "아니다. 배 의원이 직접 나경원 의원석에 앉아 대리투표를 하려고 스크린에 터치하는 행위를 담은 영상물이다. 자 봐라, 나경원 의원석에 접근한 배은희 의원이 직접 손을 뻗는 장면까지 나온다."

 

송두환 재판관 "배 의원이 나 의원석으로 접근해 모니터로 향하고 있다, 이 정도까지만 인정하겠다."

 

지난 7월 22일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강행 처리한 언론 관련법 권한쟁의 청구사건의 첫 번째 검증기일인 22일 여야간 '동영상 검증공방'은 치열하게 전개됐다. 헌법재판소 유래상 처음 있는 일로 기록되는 동영상 검증은 마치 세밀화를 보는 듯 미시적으로 진행됐다. 

 

송두환 헌법재판관은 이날 오후 2시 서울 안국동 헌법재판소 2층 회의실에서 여야 양측이 검증해달라고 신청한 동영상 자료 10건을 모두 검증했다. 이날 재판은 무려 4시간 40분이 넘도록 진행됐다. 그러나 누구 하나 자리를 뜨지 않고 재판에 열중했다. 그만큼 국민적 관심이 크다는 얘기다.

 

주요 쟁점은 국회 본회의 법률안 심의과정에서 직권상정된 법률안에 대한 질의·토론절차를 생략한 점이 헌법과 국회법에 위배됐는지, 표결과정에서 대리투표·재투표, 투표방해가 실제로 진행됐는지, 투표종료선언 뒤 표결불성립을 선언하고 즉석에서 재투표를 실시한 것이 일사부재의 원칙에 위배돼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는지 등을 따져보는 것이었다.

 

일단 청구인측 변호인단은 ▲한나라당 의원들의 무권 투표행위 ▲이윤성 국회 부의장의 법안 제안 설명과 토론의 일방적 생략 ▲표결 불성립 뒤의 68명 재투표 등을 문제로 삼았다.

 

피청구인측 변호인단은 ▲민주당 의원들의 투표방해 행위 ▲비정상적인 의장석 접근 ▲언론노조 불법 난입 등 불법행위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피청구인측은 당일 민주당 의원들이 당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어떻게 한나라당 의원들의 투표방해를 했는지 화면을 모두 찾아내 낱낱이 공개했다.

 

'단상점거'-'단상보호', '대리투표'-'투표방해' 등 양측의 상이한 인식

 

송두환 헌법재판관은 이날 양측이 신청한 국회방송 동영상과 제보동영상, 각 방송사가 보낸 동영상 등 모두 10건의 동영상 자료를 시청하며 양측의 주장을 경청했다.

 

청구인측과 피청구인측은 시시각각 불거지는 쟁점별로 날을 세우며 서로 유리한 방향으로 재판에 기록될 수 있도록 안간힘을 썼다. 일부의 검증자료에 대해서는 검증자료의 출처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검증을 중단해 달라고 서로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송 재판관은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설 때는 양측의 입장을 병렬적으로 기록해두겠다며 넘기기도 했다.

 

이날 벌어진 재판 가운데 재밌는 포인트 가운데 하나는 '국회 단상점거'를 바라보는 상이한 인식이었다. 피청구인측 변호인은 당일 단상점거를 단상보호라 불렀다. 그는 "민주당의 투표방해 때문에 단상을 '보호'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를 세웠다.

 

통상 의장석 점거는 의장이 의장 노릇을 못하게 하는 것인데, 이날 한나라당 의원들은 의장이 의장 노릇을 못하게 될까봐 보호하려고 한 것이기 때문에 점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이 같은 주장에 방청석에서는 헛웃음이 새어나오기도 했다.  

 

이날 청구인측 변호인단은 지난 7월 무리하게 언론관계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한나라당 의원들이 서로 다른 의석에 앉아 대리투표를 벌였다며 자료화면을 대거 제출했다.

 

김갑배 청구인측 변호인 단장은 제출한 동영상자료를 통해 "한나라당 배은희 의원이 나경원 의원석에서, 이화수 의원이 조해진 의원석에서, 정옥임 의원이 김형우 의원석에서, 성윤환 의원이 주성영 의원석에서, 여상규 의원이 이범래 의원석에서, 신성범 의원이 안영환 의원석에서 무권투표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치중 피청구인측 변호인은 "화면이 흐리기 때문에 화면에 나타나는 개인이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며 "한나라당 의원의 의사와 관련 없는 민주당 의원들의 투표방해 및 조작행위가 여러 군데에서 나오기 때문에 제3자에 의한 행위라고 주장하고 싶다"고 반박했다.

 

청구인측이 이날 한나라당 이화수 의원이 조해진 의원석에서 대리투표를 벌였다는 주장에 대해 피청구인측 변호인은 "이화수 의원이 팔을 뻗은 각도를 보면 컴퓨터 스크린보다 훨씬 높게 돼 있다"며 "이화수 의원의 팔이 맞다하더라도 각도가 너무 높아 조해진 의원석의 컴퓨터 스크린을 터치하려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반론했다.

 

양측의 공방이 팽팽한 평행선을 긋자 송두환 재판관은 "모니터가 있는 방향으로 팔을 뻗은 것은 맞으나 팔을 뻗는 각도로 볼 때 상단을 향하고 있어 스크린 터치하는 동작으로는 볼 수 없다는 정도로 정리하겠다"고 밝히고 넘어갔다.

 

피청구인측 변호인단은 이날 민주당의 투표방해 행위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조직적으로 한나라당 의원석에 앉아 투표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미경 의원이 강길부 의원석에 앉아, 조배숙 의원은 강명순 의원석에서, 최규성 의원은 유일호 의원석에, 박병석 의원은 전여옥 의원석, 노영민 의원은 신영수 의원석에 앉아 투표방해를 했다는 것이다.

 

피청구인측은 "민주당 의원들이 자기 자리 떠나 한나라당 의원석에 앉은 것 자체가 투표방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청구인측 변호인단은 "민주당 의원들이 한나라당 의석에 앉았다 해도 당시 광범위한 무권 투표행위가 이뤄졌기 때문에 이를 저지하거나 항의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양측은 이날 서로에게 불리한 진술은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송두환 재판관은 심지어 청구인측 변호인단에게 "지금 답변할 것을 나중으로 미뤄서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해 답변 안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에둘러 묻기도 했다.

 

특히 송 재판관은 청구인측 변호인단에게 투표방해 행위 의혹을 받고 있는 의원들 가운데 ▲인물이 가려졌거나 ▲누구의 좌석인지 등에 대해서는 추후 확인 되는대로 밝히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헌재 사상 유래 없는 동영상 검증... 다음 공개변론은 29일

 

한편, 헌법재판소는 이번 동영상 사상 유래 없는 초유의 동영상 검증을 하는 통에 준비하는데도 애를 먹은 것으로 전해진다.

 

송두환 재판관은 이날 재판에 앞서 "헌법재판소는 영상자료 검증이라는 걸 해본 일이 없다"며 "영상자료 검증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영상검증을 위한 법정구조를 갖추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한 송 재판관은 "이 사건의 총체적 결론을 빨리 내달라는 게 많은 사람들의 뜻"이라며 "정식 변론기일이 예고돼 있는데 남은 것들을 잘 정리해서 헌재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양측이 도와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헌법재판소는 개정된 언론 관계법의 효력이 발생하는 11월 1일 이전까지는 이 재판을 마무리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음 공개변론은 29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다.

 

민주당, 민노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등 야당 의원 93명은 지난 7월 22일 한나라당이 날치기 통과한 언론관계법에 대해 그 이튿날인 23일 방송법 등 4개 법안의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내고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태그:#언론법 권한쟁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