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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를 넘어 50%에 육박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중도실용 정책과 대통령의 서민행보가 효과를 보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지율 급등과 대조적으로, 서민생활은 여전히 팍팍하고 나아진 것이 없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물가는 치솟고 집값을 올라가는데 살림살이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사는 진짜 서민들이 과연 어떤 얼굴, 무슨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이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편집자말]
'과외 선생님 모십니다'라는 전단지. 서울의 한 대학 캠퍼스 내에 붙어 있다. 수많은 대학생, 미취업 대졸자들이 과외 시장에 뛰어 든다.
 '과외 선생님 모십니다'라는 전단지. 서울의 한 대학 캠퍼스 내에 붙어 있다. 수많은 대학생, 미취업 대졸자들이 과외 시장에 뛰어 든다.
ⓒ 조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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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8, 여)는 몇 년 전 대학을 졸업했지만 아직 취업 준비생이다. 그는 요즘 논술 과외를 통해 돈을 벌고 있다. 물론 그는 과외를 원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일자리가 없고 취직이 안되는 상황에서 고학력자가 기댈 수 있는 곳은 사교육 시장밖에 없기 때문이다.

요즘 그는 새로 뜨는 취업 공고를 챙기랴, 과외 준비하랴 정신이 없다. 덕분에 오후 3시 30분에 기자를 만난 패스트푸드점에서 그날의 첫 식사를 햄버거로 때웠다. 그는 여타 대학생들이 그러하듯 4학년 2학기부터 취업 준비를 했다. 대학의 마지막 학기, 취업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빨리 취업을 해야겠다는 초조함에 힘들었다"고 답했다. 그는 언론사 입사를 희망하고 있지만, 경기침체 때문에 신입을 뽑는 곳이 많지 않아서 취업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졸업 후 경제적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지 묻자 A는 "아르바이트로 한 달에 30~40만원을 벌고, 지방에 계신 부모님의 지원도 약간 받는다"고 답했다. 그러나 "부모님께선 말없이 지지해 주시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버지의 퇴직도 임박했고, 동생 역시 올해 대학에 입학해 들어갈 돈이 많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직업의 안정성 때문에 그가 공기업 쪽을 알아봤으면 하는 눈치시지만, 별다른 말씀은 하지 않으신다고. 주변에서 '엄친딸'이 취직 후 부모님 여행도 보내드린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면 부모님께 잘 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송함이 더욱 커진다.

"행정인턴, 직장인도 아니고 취업 준비도 할 수 없어"

A는 정부가 제공하는 단기 일자리인 '행정인턴' 등에 참여하는 친구들을 많이 알고 있다. 왜 이런 제도를 활용하지 않는지 묻자 그는 "애초에 인턴을 한다고 해도 계속 그 직장에서 일할 수 없고, 경력에 도움이 안 된다"라며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시간만 많이 투자해야 하고 자기 계발에 도움이 안 된다"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어 "현 정권 분위기라면 아주 잘해야 계약직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A는 실제로 오는 12월 '행정인턴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는 친구 얘기를 들려줬다. 처음에는 직장인이 된 기분을 맛보며 즐거워했던 그의 친구는 계약 만료라는 현실 앞에 고민이 많다고. A는 "친구가 직장인도 아니고, 취업 준비를 충실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회의를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A에게 "비정규직이라도 일자리를 구하라는 압력도 있을 것 같다"고 묻자 "그건 무책임한 말"이라는 속내를 드러냈다. 그에게 비정규직은 쉽게 발을 담그고 싶지 않다고 있다. 

그는취업 공고를 볼 때 '계약직인가 아닌가?'를 가장 먼저 본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점점 신입 사원이 되기가 어려워지는 현실에서 '계약직'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또 다른 직장을 어떻게 구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는 "내 인생이 100년 가까이 갈지도 모르는데, 몇 년 돈을 벌고 말고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정부가 '청년들의 눈높이 낮추기'를 실업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보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A는 "사람들은 취업을 못하는 건데 안하는 걸로 몰아간다"며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를 너무 방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 입장에서는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정부가 손을 놓고 있기 때문에 구조적인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어 그는 "현 정부가 비정규직법 개정을 시도했을 때 분노했다. 노무현 정권 때는 부족하지만 보호 법안이라도 만들었는데, 현 정부는 최소한의 바람막이조차 없애려 하고, 청년 실업을 해소하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며 정부 정책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는 학생도 아니고 완전한 사회인도 아닌 자신의 위치 때문에 "소속감이 없어서 불안한 건 항상 있다. 계속 사회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어 그는 "그런 박탈감을 느끼기 싫어서라도 원하는 곳에 가겠다는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다"는 말을 남기고, 논술 예상문제들을 다시 갈무리해 가방에 넣은 뒤 자리를 떴다.

"방세와 생활비 벌기 위해 안 해본 '알바' 없어"

서울의 한 대학교의 도서관 풍경. 늦은 시각인 밤 10시에 찾아갔음에도 많은 학생들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최근 아르바이트 사이트 알바천국의 조사에 따르면 취업을 위해 자격증을 준비한다는 대답이 3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서울의 한 대학교의 도서관 풍경. 늦은 시각인 밤 10시에 찾아갔음에도 많은 학생들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최근 아르바이트 사이트 알바천국의 조사에 따르면 취업을 위해 자격증을 준비한다는 대답이 3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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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살의 B는 내년 2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다. 지방 출신의 그는 서울 외곽에 있는 4년제 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다니고 있다.  학교 내 카페테리아에서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그는 자신의 생활과 정부의 친서민 정책에 대한 의견을 들려주었다.

B는 하숙, 고시원, 월세 등을 전전하며 살았다.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느라 힘들었을 것 같다고 물자 그는 "고시원에 살 때 소원은 방에서 누워 TV보다 세 바퀴만 굴러보는 것이었다"고 답했다. 또한 반지하에서 월세로 친구와 함께 살던 시기를 "가수 장기하의 노래 '싸구려 커피' 같았다"고 회상한다. 눅눅한 장판에 몸이 쩍쩍 붙고, 문을 열고 나가면 옆 건물에 막혀 하늘이 한 토막 보일 정도 였다고.

그는 방세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온갖 '알바'를 다 경험했다. 1학년 때에는 대형 음식점의 환기구를 밤 12시부터 새벽 5시까지 청소하는 일을 했다. 2006년 여름엔 에어컨 설치 일을 했다. 그 해 겨울엔 친구들과 구제 청바지를 팔기도 했다. 이후 학교를 휴학하고,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술집 주방에서 일했다.

요리가 좋아서 주방에 들어갔지만 그는 그곳을 "미래가 없다"는 이유로 그만 두었다. 그가 처음 들어갔을 땐 주방에 일손이 4명이었지만, 마지막엔 2명만 남게 되었다. 저녁 6시부터 새벽 4시까지 일하고, 한 달에 3일 쉬면서 110여 만원의 월급을 받았다. B는 "내 노동의 가치가 이 정도인가, 내가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가"라는 생각에 괴로웠다고 했다.

그는 정부의 친서민 정책이 도움이 되느냐고 묻자 "나랑은 상관이 없는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아버지의 직장에서 등록금을 지원해 주지 않았다면 학교에 다닐 생각을 못했을 수도 있다"고 말한 그는 "오히려 나라보단 회사에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잠시 함께 살았던 그의 친구는 학자금 대출로 학교를 다녔는데, 형편이 어려워 그에게 방세도 제대로 주지 못했다고 했다.

"26살 넘으면 아르바이트 구하기도 쉽지 않은데..."  

B는 본인뿐 아니라 많은 평범한 대학생들이 학비와 생활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말했다.

"서빙, 편의점 등 거의 모든 아르바이트가 최저임금이나마 받으면 다행이다. 심지어 버젓이 최저임금 이하의 시급을 제시하며 사람을 구하는 곳도 많다. 이런 상황인데 최저임금을 내리자는 말을 하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그런 현실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친서민 정책을 이야기하는 것이 우습다." 

그는 이어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무슨 환급금이라며 돈 조금 돌려주고 하는 건 '포퓰리즘'이다"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현 정부의 친서민 행보의 진정성과 그 방식 모두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졸업과 동시에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기로 결심한 그는 "26살 넘으면 아르바이트 구하기도 쉽지 않은데, 요새 걱정에 머리가 다 빠진다"며, 차갑게 식은 싸구려 커피를 입에 털어 넣고 돌아섰다.


태그:#취업준비생, #대학생, #친서민정책, #등록금, #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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