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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하는 조선학교 학생들
 환영하는 조선학교 학생들
ⓒ 김대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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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학교>

'우리학교'라는 영화가 있다. 지난 2006년에 개봉된 독립다큐멘터리 영화다. 김명준이라는 젊은 영화 일꾼이 3년 5개월 동안 홋카이도 조선학교의 교사들과 학생들의 일상사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진솔하게 만든 영화다.

이 영화는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 운파상을 수상했으며, 2006년 인디다큐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선정된 작품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이 영화를 평가한다면 감동적이다. 그리고 마지막 졸업식 장면에서 가볍게, 혹은 무겁게 눈물 흘리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해방 직후, 한국으로 귀향 기회를 놓친 재일조선인 1세들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아끼고 아껴 책상과 의자를 마련해서 공장의 빈 터에 세운 민족학교. 일본에서 자라나는 2세들에게 조선의 말과 글을 가르쳐야 한다는 민족적 자각으로 세운 조선학교. 그 누구의 지원도 받지 않고 오로지 동포들 자체의 힘만으로 세운 조선학교는 아마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학교일 것이다.

후쿠오카 조선학원

여고생들의 생기발랄함
 여고생들의 생기발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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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넷 방문단은 방문 2일 째, 오다야마 묘지의 위령제를 지낸 후에 키타규슈시의 후쿠오카 조선학원을 방문하였다. 영화에 나오는 조선학교의 실체를 일본에서 직접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일본을 방문하기 전, 필수적으로 우리학교를 보았던 방문단들은 영화에 나오는 여러 장면들을 기억하며 조선학교를 방문하였다.

방문단 일행이 학교에 도착하니, 뜻밖에도 중고생들과 교사들이 학교 정문에서부터 현관까지 두 줄로 늘어서서 박수로 방문단을 맞이하였다.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동포3세의 어린 학생들이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방문단에게 보내는 박수 속엔 우리는 같은 언어, 같은 문화를 지닌 동포라는 동질감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우리학교에 나오는 그 순진한 아이들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우리의 동포 아이들이었다.   

학교는 무척 깨끗했다. 반듯한 직사각형의 4층 건물은 밝은 아이보리 타일로 소박하게 치장되어 있었다. 1,2,3층은 학생들의 교실이었고, 4층은 강당이었다. 본관 건물에는 중등과 고등부가 있었고, 초급반은 본관과 연결된 별관에 있었다. 운동장은 넓고도 반듯했다.

함께 온 민돌이 축구단은 벌써부터 초급반 학생들과 축구 시합을 하겠다는 기대감으로 운동장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날씨는 여전히 는지렁이처럼 모두의 몸에 습기를 가득 안겨주었지만 일본 속에서 나고 자란 같은 피의 동포 학생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몸과 마음은 쾌적했다.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학교 수업 풍경

귀여운 초등학생들
 귀여운 초등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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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현관홀에 모인 방문단은 교장 선생님과 교무부장님, 기타 주임 선생님들의 간다한 인사말을 경청하는 것으로 견학 일정을 시작했다. 교무부장님은 3층 고등학생들이 시험 중이라 특별히 주의를 당부하셨고, 방문단은 음전한 태도로 동포 학생들의 수업 모습을 눈으로 훔쳐보았다.

한국의 여느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봄 직한 수업시간. 아이들은 우리네 수업과 마찬가지로 꽉 짜인 시간표대로 수업을 듣고 있었다. 선생님들의 강의는 열정적이었으며, 아이들은 저마다 손에 펜과 자를 들고 칠판의 내용과 선생님의 강의를 노트하고 있었다.

물론 다른 풍경이 있다면 그건 조선학교 특유의 향기가 난다는 것이었다. 여기가 일본이 맞는가 할 정도로 수업 내용은 철저히 민족교육 중심이었다. 고등반 학생들은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을 공부했으며, 조선역사와 기술, 문화를 공부하고 있었다. 수업시간에는 한국어를 사용하였지만 어쩔 수 없이 일본어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아이들의 발음은 무척 어눌했다.

그러나 우리학교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가급적이면 한국어를 쓰고자 애쓰는 모습이 눈에 시리도록 아프게 다가왔다. 아니, 아프다기보다는 가슴이 뭉클했다. 일본 속의 조선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이것이 진정한 일본 속의 조선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들은 조선의 문화와 역사를 배우고 있었다.

명절놀이 춤과 봉산 탈춤의 만남

봉산탈춤 공엱
 봉산탈춤 공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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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연주
 해금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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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놀이 공연
 명절놀이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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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점심시간. 강당으로 모인 방문단들은 조선학교에서 마련한 도시락으로 조금 늦은 점심을 먹었다. 쾌적하면서도 넓은 강당.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 만난 강당의 시원한 냉기는 조선 아이들을 만난 기분 만큼 상쾌했다. 방문단을 만나기 위해 어려운 발걸음을 하신 80대의 동포 1세대들. 희끗희끗한 머리칼 너머 세월의 잔상이 엿보였고, 일본 땅에서 조선의 말과 역사를 간직하기 위해 애쓴 노고가 깊은 주름살 사이로 무지개마냥 걸려 있었다.

강당에선 본격적인 문화공연이 열렸다. 먼저 방문단의 문화 공연이 시작되었다. 자갈치 단원들의 황해도 봉산 탈춤과 2인무, 그리고 해금 연주. 조선학교 아이들은 호기심어린 눈망울을 통통 굴리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지금, 저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저 공연들을 보면서 그 어떤 감흥을 느꼈을까? 아마 처음 본 문화공연에 더러는 신기할 것이고, 더러는 무척 낯설 것이다.

곧 이어 시작된 중등부 학생들의 명절놀이 군무. 푸른 색 도령복을 입은 아이들과 연두색 파스텔 톤의 치마에 아이보리 저고리를 걸친 아이들이 흥겨우면서도 즐거운 명절을 춤으로 표현했다. 빙빙 돌기도 하고, 훌쩍 뛰어 넘기도 하고, 그러다가 짝을 이루어 서로를 희롱하는 듯한 그 모습에선 생명이 넘쳐흘렀고, 반짝이는 눈동자에선 심심계곡의 맑은 옥수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반듯하면서도 깔끔한 무용. 순수한 영혼의 외침들이 곱게 자리 잡은 모습. 앞서 연주한 장중한 해금 소리가 민족의 신산함을 이야기했다면, 저 아이들의 무용은 조선 민족의 밝은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이겠지.

고등부 학생들의 합창을 끝으로 모든 문화공연은 막을 내렸다. 문화공연을 마친 방문단과 출연자들의 합동 사진. 플래카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활짝 웃는 그 모습엔 우리 팔천만 동포의 희망찬 미래가 놓여 있었다. 남북한에서, 일본에서, 저 멀리 미주와 유럽에서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미소가 녹아 있는 모습. 같은 언어,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감만은 그 어느 민족보다 떨어지지 않는 조선민족. 벅찬 감동이 밀려 온 순간이었다.

동포 1세대와의 간담회와 학교 마당의 뒤풀이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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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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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단은 조선학교를 세우고 지켜온 동포 1세대와의 간담회를 가지기도 했다. 열 분 정도의 동포 1세대들이 앞에 나와 조선학교 건립 과정과 어려움을 말할 때는 숙연한 분위기가 절로 나왔다. 쌀 한줌씩 모아 책을 마련했고, 날품을 팔아 책상과 의자를 샀다고 했다. 그 지난한 과정의 어려움을 어찌 말로 표현하겠는가. 다만 그들은 이야기하고 싶을 것이다. 이곳 일본에서, 일본의 방해를 견디며 우리가 조선학교를 지켜온 까닭이 무엇인지, 왜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에게 조선의 말과 글을 가르치겠다고 결심했는지, 그 이유만은 알아달라고.  

 조선학교에서의 일정을 1차로 소화한 방문단은 그 다음날 일본 NGO들과의 간담회를 끝으로 모든 공식 일정을 소화하였다. 그리고 이어진 조선학교 뒷마당에서의 뒤풀이. 동포 분들이 마련한 돼지고기와 식사로 마련된 흥겨운 자리였다. 몇 순배 술이 들어간 동포들과 방문단은 자연스레 마이크를 잡으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민돌이 축구단 어머니들의 구성진 트로트가 울려 퍼지고, 동포들의 민요와 옛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급기야는 모두들 손에 손을 맞잡고 아리랑을 부르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고, 고향의 봄을 부르게 되었다.

맞잡은 손에서 자연스레 흐르기 시작한 동포라는 유대.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있지만, 우리는 같은 동포라는 의식. 더군다나 일본에 강제로 끌려온 분들이 세운 조선학교에서 맘껏 노래를 부르며 떠드는 즐거움. 그 뉘라서 이런 자리를 마다할 것인가. 그 뉘라서 이런 자리에 감동하지 않을 이가 있으랴. 슬며시 돌아 앉아 눈물을 훔치는 동포 1세대의 머리 위로 울려 퍼지는 우리 민족의 노래는 모두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다시 영화, '우리학교'를 떠올리며

우리학교의 졸업식 장면
 우리학교의 졸업식 장면
ⓒ 김명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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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학교의 마지막 장면은 고3생들의 졸업식이었다. 검은 치마와 저고리를 입은 여학생들과 정장 차림의 남학생들은 서로의 어깨를 부여잡고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우리가 갈 길은 어렵고 험하지만 우리의 하나된 힘과 조선사람으로서의 긍지를 안고 넘쳐나는 자부심으로 밝은 미래를 펼쳐나가겠습니다. 홋카이도 초중고여, 여기는 우리의 영원한 모교입니다.'

아이들은 이 말을 끝으로 서로의 어깨를 부여잡고 약속이란 노래를 불렀다.

지나온 길 되짚어 가면 힘겨운 눈물도 흐르지만~
잊지 말자 너와 내가 맺은 약속을 통일되는 날까지
승리의 노래 함께 부를 사랑의 길에 우리 다시 만나리!

 나와 방문단은 부산으로 돌아가는 쾌속선에 다시 몸을 실었다. 불과 3시간이면 그리운 가정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쾌속선 안에서 눈을 감았다. 휴가묘지, 석탄박물관, 조선인 위령비, 오다야마 묘지의 위령제, 그리고 조선학교 학생들. 일본에서 태어난 우리의 형제자매들. 조선인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같은 동포끼리 결혼하고, 2세, 3세까지 조선의 글과 문화를 가르치고자 애쓰는 그들의 모습. 그리고 일본 곳곳에 산재한 우리 동포들의 아픈 흔적들.

작은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반성도 들었다. 또한 일본인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일본이 진정으로 반성하고 사죄한다면 재일조선인에 대한 모든 차별조항과 조선학교에 대한 탄압을 중지해야 한다고.

과연 지금 우리에게 민족이란 무엇이며, 조선이란 나라는 무엇인가를 가르쳐준 일본 유적 답사. 내년, 내후년에는 이런 방문단이 수 백, 수 천 개가 생기는 꿈을 꾸며 나는 우리 동포들이 가라앉았던 현해탄의 푸른 물결을 바라보았다. 하늘에 걸린 조각구름 사이로 아련히 번지는 임들의 향훈이 가까이 다가옴을 느끼며.     

덧붙이는 글 | 유포터, 국제신문에도 송고함



태그:#조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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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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