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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 표지 <100℃>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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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동료 여섯이 모여 술을 마셨다. 40대 세 사람과 30대 세 사람이 만난 술자리였다. 안주가 들어오고 술잔이 돌아가니 얘기가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 꺼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만화 <100℃>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누었다.

만화라서 가볍게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보니 몇 번이나 눈물이 났다는 얘기. 6월 항쟁을 경험도 못한 작가가 어쩌면 그렇게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그렸는지 놀랍다는 얘기. 6월 항쟁을 설명한 다른 책도 읽어보았지만 <100℃>처럼 소름 돋도록 생생하게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책은 없었다는 얘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몇 도나 될까 궁금하다는 얘기….

<100℃> 얘기가 어느 정도 끝나자 대화 주제는 6월 항쟁에 대한 각자의 경험담으로 이어졌다.

40대 한 사람은 1987년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못한 채 떠돌다 6월 항쟁 현장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생활했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해 가을 무렵 시골로 자신을 찾아온 후배를 통해 항쟁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또 한 사람은 뜨거운 6월을 강의실이 아닌 거리에서 보냈다며 시위하다 경찰에 쫓겨 골목길로 흩어져 도망가던 중 집창촌 여성들이 학생들을 숨겨준 일도 있었다고 한다. 40대 중의 막내는 시내 곳곳에서 전개되던 시위를 보면서 고등학교를 다녔다고 얘기했다. 직접 시위에 가담한 적은 없지만 수많은 시민들이 대학생과 함께 시위를 하는 모습이 가는 곳마다 눈에 띄었다고 했다. 30대 셋은 당시 나이가 어려 기억나는 일이 별로 없단다.

<100℃> 속으로

사람들도 물처럼 끓는 온도가 있다. 만화가 최규석은 6월 항쟁을 통해 그것을 증명해 보여준다. 1987년 당시 어린 초등학생이어서 6월 항쟁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음에도 6월 항쟁을 경험한 세대들이 "그래, 그땐 정말 그랬어"라며 눈시울 붉히고 읽을 만한 감동적 작품을 탄생시켰다.

사람들도 물처럼 끓어오른다. 99도씨가 될 때까지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듯 보이지만 100도씨가 되면 끓어오른다. 잘나고 똑똑하고 담력 있는 장부들만 끓는 게 아니다. 잘나지도 똑똑하지도 못하고, 허약하고 겁조차 많은 사람들도 때가 되면 끓어오른다. 6월 항쟁에서처럼.

온 집안의 선망의 대상이 되어 대학에 입학한 영호, 운동권 학생은 빨갱이라고 절대 사귀지 말라던 부모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던 그가 함께 농활을 가자던 선배의 권유를 뿌리치고 고향집에 내려왔다가 데모하는 놈들이랑 어울리지 말라는 아버지 말에 동조하며 "미친 놈들"이라고 욕을 한다.

데모하는 대학생들을 미친놈들이라 욕하는 동생 영호에게 눈물로 항변하는 누나
▲ 영호와 누나 데모하는 대학생들을 미친놈들이라 욕하는 동생 영호에게 눈물로 항변하는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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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말에 대해 누나는 영호에게 눈물로 항변한다. 자기 인생 희생해서 남 위해 살겠다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고. 왜 그런 사람들이 너한테 미친놈 소리를 들어야 되느냐고. 영호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진학을 포기하고 공순이가 된 누나였다. 노동자도 사람임을 외치던 언니들이 어떤 수모와 고통을 당하는지 경험한 누나였다.

결국 영호의 삶은 바뀐다. 구속된 아들 면회 다니던 어머니도 바뀐다. 구속된 아들과 면회 다니다 민가협 활동까지 하게 된 아내를 인정하지 못한 채 울분에 쌓여 생활하던 아버지도 결국은 바뀐다. 사람들은 이렇게 끓어오른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6월 항쟁이 되었다.

대학생들과 기성세대
▲ 기성세대와 갈등 대학생들과 기성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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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넥타이 부대들. 학생들이 피 터지게 싸우다 최루탄 맞고 쓰러져 죽을 때 당신들은 무얼 했느냐고 욕을 먹던 사람들. 그들도 끓어올랐다.

다시 술자리에서

6월 항쟁이 끝난 지 22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건 무엇이고 변하지 않은 건 무엇일까. 많은 얘기가 오고 갔다. 허망하다는 얘기, 역사는 원래 그렇다는 얘기, 아래로부터 타오른 뜨거운 열기는 언제나 정치꾼들에 의해 이용만 당할 뿐이라는 얘기 등등. 취기가 오를수록 오고가는 대화에도 취기가 뚝뚝 묻어났다.

<100℃>에서는 6월 항쟁으로 얻은 걸 어떻게 설명했을까. 마지막으로 그 대목을 살펴보며 마무리를 하자.

소중한 백지 한 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고통 받던 이는 고통이 사라지기를 바랐고 누울 곳 없던 이는 보금자리를 바랐고 차별받던 이는 고른 대접을 …(중략)… 우리가 얻어낸 것은 단지 백지 한 장이었습니다. 조금만 함부로 대하면 구겨져 쓰레기가 될 수도 있고 잠시만 한눈을 팔면 누군가 낙서를 해버릴 수도 있지만 그것 없이 꿈꿀 수 없는 약하고도 소중한 그런 백지 말입니다.(책 속에서)

덧붙이는 글 | 최규석 만화/창비/2009.6/12,000원



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개정판

최규석 지음, 창비(2017)


태그:#6월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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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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