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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에서는 어머니의 젖살 냄새가 난다. 그래서 갯벌의 이 비릿한 냄새가 이유 없이 마냥 좋기만 하다.

 

아산시 인주면 걸매리 갯벌에서 만난 어부 박재룡씨(58). 그의 갯벌에 대한 추억은 어릴적 어머니에 대한 향수에서부터 시작된다. 간조를 기다렸다가 하루 종일 갯벌에서 맛조개를 캐던 어머니. 그의 기억에 어머니의 고단한 하루는 쉽게 끝날 줄 몰랐다.

 

중간 수집상들에게 그날 잡은 조개를 다 넘기고 나서도 어머니는 갯벌을 떠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동네 아낙들이 다 돌아간 후에도 갯벌에 남아 행여나물(칠면초)을 소쿠리에 골라 담으며 저녁거리를 챙겼다.

 

제철이 지난 행여나물은 거칠고 뻣뻣했지만 어머니는 그 사이에서도 연하고 부드러운 잎과 줄기를 용케도 잘 찾아내셨다. 한 소쿠리 가득 딴 행여나물을 머리에 이고 돌아온 어머니에게서는 늘 비릿한 갯내음이 났다.

 

갯벌에서 일을 마친 어머니의 땀냄새, 젖냄새, 살냄새가 갯벌냄새와 한데 어우러져 표현할 수 없는 달콤한 향기가 났다. 내일 모레 환갑인 나이에도 어머니의 그 포근하고 따뜻한 냄새는 잊을 수 없다.

 

그때 어머니는 행여나물을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아끼던 참기름을 넣고 나물무침을 만드셨다. 또 밀가루 반죽과 함께 버무려 푸짐한 지짐을 만들어 저녁상에 올리셨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갯벌은 어린 시절에 느끼던 어머니 품속처럼 포근하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애틋하고, 아련하고, 가슴 시리다. 아산호와 삽교호가 건설되며 망가질 대로 망가졌던 갯벌이 간신히 생명력을 되찾자 또다시 산업단지 건설계획을 발표해 마지막 남은 갯벌을 송두리째 생매장 시킬 뻔했기 때문이다.

 

지역주민, 시민단체, 언론 등의 강한 반발에 부딪힌 아산시는 걸매리 갯벌매립계획을 전면 중단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유보일 뿐 사업계획의 철회나 백지화가 아니다.

 

그래서 박재룡씨는 어머니가 조개캐고 나물 뜯던 그 갯벌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바다로 나섰다. 지금도 갯벌에서는 여전히 어릴 때 맡았던 어머니의 그 젖살 냄새가 난다.

 

덧붙이는 글 | <충남시사>와 <교차로>에도 송고했습니다.


태그:#박재룡, #걸매리, #갯벌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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