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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일 "비정규직 대량해고가 현실로 나타났다"고 보도하며 비정규직법 개정을 강조한 <조선일보>는 9월 5일 사설에서 "정책방향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입장을 180도 바꿨다.
 지난 7월 2일 "비정규직 대량해고가 현실로 나타났다"고 보도하며 비정규직법 개정을 강조한 <조선일보>는 9월 5일 사설에서 "정책방향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입장을 180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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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할 줄 모르는 MBC… 미·영 방송 오보 땐 경영진까지 사퇴' (<조선일보> 6월 20일치 기사 제목)
'외국 언론의 경우 사소한 오보에 대해서도 언론사 스스로 엄격한 책임을 묻는 것이 일반적이다.' (<동아일보> 6월 20일치 사설 중에서)

지난 6월 18일 검찰이 "MBC <PD수첩>이 '광우병 왜곡' 보도를 했다"고 발표한 직후, <조선일보>·<동아일보> 등 보수언론의 지면에 실린 사설 내용과 기사 제목이다. 이들 언론은 MBC가 국민 앞에 사과하고 경영진 사퇴 등의 책임을 져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로부터 4개월여가 지난 9월 4일, 조중동 스스로 '사소한 오보'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상황이 됐다. "7월 1일 이후 비정규직의 대량해고가 발생할 것"이라고 강조한 노동부와 조중동의 거짓말이 들통난 것이다.

하지만 이들 신문은 스스로 <PD수첩>을 비판한 내용과 달리, 노동부가 잘못 예측했다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특히 <동아>는 "비정규직법은 여전히 문제 있다"는 노동부를 옹호하고 있다. 이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비정규직 해고대란' 강조했던 조중동, 그러나...

<동아일보>는 지난 5월 26일 사설에서 "계약 만기를 맞는 비정규직들은 아무런 보호막 없이 길거리로 내몰릴 소지가 크다, 해고의 시한폭탄이 째깍거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지난 5월 26일 사설에서 "계약 만기를 맞는 비정규직들은 아무런 보호막 없이 길거리로 내몰릴 소지가 크다, 해고의 시한폭탄이 째깍거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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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대량 해고설은 당초 2년인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3~4년으로 연장하는 방향으로 비정규직법을 개정하자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노동부가 내놓은 것이다. 이는 그동안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비용을 회피하기 위한 재계의 일관된 주장이기도 하다.

이영희 노동부장관이 지난 7월 1일 국회에서 열린 비정규직 당정회의에 참석,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고 있다.
 이영희 노동부장관이 지난 7월 1일 국회에서 열린 비정규직 당정회의에 참석,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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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프렌들리' 노동부는 2008년 하반기 금융위기가 심화되면서 비정규직 100만 명이 해고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2일 노동부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2009년 7월이면 2년으로 제한된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으로 전환되느냐 아니면 해고되느냐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대충 잡아도 100만 명이 넘는 근로자가 불안한 상태로 들어간다, 내년 초에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힌트가 없다면 사실상 해고되는 것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노동부가 (대량해고를) 그대로 보고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사설·칼럼 등을 통해 노동부의 주장에 적극 호응했다. 특히, 이들 신문은 비정규직법 시행 2년이 되는 2009년 7월 1일 전후로, 사설과 기획기사를 동원해 비정규직 대량해고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동아>는 지난 5월 26일 사설에서 '시한폭탄'이라는 자극적인 표현을 써가며 "계약 만기를 맞는 비정규직들은 아무런 보호막 없이 길거리로 내몰릴 소지가 크다, 해고의 시한폭탄이 째깍거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중앙> 역시 자극적인 용어를 쓰기는 마찬가지였다. 7월 3일치 사설에서 "대한민국은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을 수술대에 올려놓고 야만적인 생체실험을 하고 있다"며 "가난하고 불쌍한 비정규직을 보호한답시고 만든 법률이 흉기로 둔갑해 목을 베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중동은 "노동부의 대량해고설은 과장된 것"이라는 야당과 노동계의 주장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은 7월 2일 "해고대란이 현실화됐다"며 "야당과 한국노총·민주노총은 고용 대란이 없을 거라는 태평한 소리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고대란 거짓 들통에 <조선>은 노동부 비판, <동아>는 노동부 옹호

<중앙일보>는 5일 "중앙일보를 포함해 상당수 언론이 노동부가 주장한 고용제한 기간 적용 대상 근로자를 면밀히 따지지 않음으로써 해고 규모를 과장하는 데 일조했다"며 잘못된 보도태도를 인정했다.
 <중앙일보>는 5일 "중앙일보를 포함해 상당수 언론이 노동부가 주장한 고용제한 기간 적용 대상 근로자를 면밀히 따지지 않음으로써 해고 규모를 과장하는 데 일조했다"며 잘못된 보도태도를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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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4일 '비정규직법 시행에 따른 실태조사 결과' 발표로 비정규직이 대량으로 해고될 것이라는 노동부와 조중동의 주장은 거짓인 것으로 드러났다. 법 시행 이후 7월 16일부터 8월 12일까지 전국 1만1426개 표본 사업체의 계약기간 만료 비정규직 노동자 1만9760명 중 7320명(37%)만 계약기간이 만료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율은 36.8%,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고 계속 고용된 경우는 26.1%였다.

이에 대해 지금껏 대량해고설을 사설과 각종 기획기사를 통해 강조한 조중동은 입장을 180도 바꿔 노동부를 비판했다. 지난 6월 <PD수첩>이 왜곡보도를 했다며 MBC는 국민 앞에 사과하고 경영진 사퇴 등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외쳤던 조중동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조선>은 5일 사설에서 "정부는 기한 연장에 집착하지 말고 2년을 넘겨 계속 고용돼 있는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신분을 전환할 수 있도록 해 해고자를 보호하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정규직 대량해고설을 강조한 지금까지의 주장을 아무 설명 없이 180도 뒤집은 것이다.

<중앙>은 지금까지 보도 태도의 잘못을 인정했다. <중앙>은 5일 "중앙일보를 포함해 상당수 언론이 노동부가 주장한 고용제한 기간 적용 대상 근로자를 면밀히 따지지 않음으로써 해고 규모를 과장하는 데 일조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도 이 신문은 노동부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시장상황을 반영해서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했다.

가장 큰 비판을 불러일으키는 곳은 <동아>다. <동아>는 노동부 때리기에 동참하면서도 여전히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는 노동부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는 5일 1면 머리기사를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고 계속 고용된) 26.1%는 고용계약 변경 없이 해고만 피한 것으로 집계됐다, 4명 중 1명이 무늬만 정규직이라는 얘기"라면서 "이런 계약 연장은 잠재적 '시한폭탄'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동아>의 주장은 비정규직 근로자를 2년 넘게 고용하면 그 근로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본다는 비정규직법 조항을 애써 무시한 것이다. <조선>조차도 "26.1%는 정규직으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조중동의 입장 변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김유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무비판적인 자신들의 보도 태도에 대해서 자성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며 "특히, <동아>는 노동부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데, 이는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 전환 의지가 전혀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태그:#비정규직 대량해고, #미디어비평, #조중동, #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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