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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하기 좋은 날씨
▲ 제주의 아침 등산하기 좋은 날씨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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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창밖의 날씨부터 내다본다. 계획대로 한라산에 오를 수 있을까? 비록 햇살 쨍한 맑은 날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구름이 조금 껴서 흐린, 오히려 등산하기에는 최적의 날씨였다. 제발 일기예보대로 저녁 늦게 비가 오기를.

물론 임신한 아내와 함께 한라산을 오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미 몇 년 전 백록담을 다녀왔던 아내는 내가 혼자서라도 한라산을 다녀올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고 그 동안 자신은 제주시 민속5일장을 구경하고 있겠다고 했다. 제주도까지 와서 이번에도 한라산을 못 오르는 것인가 혼자 속앓이를 하던 나는 그런 아내에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짐을 챙긴 뒤 한라산 성판악으로 차를 몰았다. 백록담까지 가는 가장 편한 코스라는 성판악. 나는 성판악으로 올라 백록담을 찍고 가장 빠른 어리목으로 내려오고자 했다.

5·16 도로에서

한라산 성판악까지 가기 위해서는 제주도를 관통하여 제주시와 서귀포를 잇는 5·16도로를 이용해야만 했다. 5·16 쿠데타 이후 그 정당성을 갖추기 위해 박정희가 정치깡패들을 잡아들여 만들게 했다는 바로 그 유명한 5·16도로. 지금은 비록 11번 국도라는 이름으로도 혼용되고 있지만 여전히 도로는 그 시절을 떠올리게끔 하고 있었다.

말이 정치깡패지 조금 불량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잡아들여 강제노역을 시켰을 그곳. 공사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갔으면 이 도로에는 한 많은 귀신들이 출몰한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을까.

가을이면 아름답다는 도로
▲ 5·16 도로 가을이면 아름답다는 도로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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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자신의 의견에 반하는 사람들을 잡아들여 길 닦는데 쓰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과거 중세 왕조에는 이와 같은 노역이 기본이었을 것이며, 박정희는 국토건설단을 만들었고 전두환은 삼청교육대를 만들어 강제 노동을 시키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지금은 그런 경우가 없을까? 물론 민주주의가 발전한 탓에 형식적으로야 그런 일이 없어진 것이 사실이나 또 다른 의미의 강제노동은 지금도 그 형태를 달리한 채 진행되고 있다. 바로 현 정부의 4대강 개발.

아직도 이름에 대한 논쟁은 계속된다
▲ 많은 이들의 원한이 서려있는 5·16도로 아직도 이름에 대한 논쟁은 계속된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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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위 사업을 이전 군사정권의 강제노역과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쨌든 현 정부는 70%가 넘는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를 관철시켜 공사를 벌이려 하고 있고, 몇몇 사람들은 아무리 그 공사가 싫어도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정부의 삽질을 이행해야만 한다. 이것이 21세기 판 강제노동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생존권을 볼모로 삽질을 시키는 그들.

게다가 정부는 현재 그 공사판으로 20대 88만 원 세대들을 밀어 넣고 있다. 20대들이 취업하고자 하는 IT산업 쪽으로는 투자의 투 자도 괘념치 않은 채, 삽질만 하면 먹고 살 수 있고 그것이 실업률을 낮추는 길이라며 젊은이들에게 삽질을 강권하고 있다.

어쩌면 이는 20대 백수가 현 정부에게 가장 큰 위험세력이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얼리버드의 입장에서 그들은 불평불만만 많은 게으르고 한심한 세력인 동시에, 젊음을 바탕으로 언제 어떻게 사고를 칠지 모르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을 순치하기 위해서 삽질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으랴. '되나마나 굴리다 보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라는 군대에서의 진리를 그들은 현재 거대한 스케일로 사회에서 직접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5·16도로를 얼마나 갔을까? 주위에 말 농장 등이 보이더니 곧이어 성판악 휴게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저곳을 시작으로 한라산에 오를 것이다.

한라산 등반

성판악 휴게소에서 김밥 등을 산 뒤 아내와 헤어져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임신한 아내를 두고 산을 오른다는 것 자체가 찜찜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백록담을 봐야지 않겠냐는 욕심에 기어이 발걸음을 옮기고 만다.

그 명성대로 한라산 등산로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하늘도 보기 힘들만큼 울창하게 우거진 숲과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등산로. 워낙에 산이 높아 해발에 따라 주위 풍경이 바뀌는 듯 했지만 나무 생김새에 관심 없는 난 그냥 지나쳤다. 그보다는 차라리 검은 색에 구멍이 뻥뻥 뚫린 등산로의 현무암이 낯설고 신기할 뿐.

조금 편하겠다고 숲의 평화를 깨는 인간의 문명
▲ 문명의 야만 조금 편하겠다고 숲의 평화를 깨는 인간의 문명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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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겨웠던 그 길
▲ 성판악 등산로 지겨웠던 그 길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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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올랐을까. 갑자기 주변이 요란해지기 시작했다. 앞을 보니 조그마한 레일 위로 모노레일 비슷한 물체가 정상 쪽으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한라산 중턱에 있는 진달래휴게소로 물이나 음식물을 나르는 기계인 듯 했다. 이렇게 고요한 산에서 저리도 큰 소음을 내고 있다니, 얼마나 많은 동식물에게 피해를 주고 있을까. 결국 조금 편하기 위한 인간의 욕심 때문일 텐데 부끄러울 뿐이었다.

레일 위의 기계는 생각보다 빨랐다. 처음에는 그 소음이 뒤로 많이 쳐진다 싶더니 산 중턱에 이르니 어느새 그 소음이 바로 등 뒤에서 나를 쫒고 있었다. 결국 내가 지쳤다는 이야기일 터. 나이 때문일까? 아니다. 아마도 결혼 뒤에 7~8kg 찐 나의 게으름 탓일 것이다. 이제는 산을 조금만 올라도 이렇게 숨이 가쁜 나. 부끄러움이 앞섰다.

뒤따라오는 기계를 떨치기 위해 부지런히 걷고 있는데 저만치 앞에 계단 위에 앉아 골똘하게 무언가 쓰는 아이를 발견했다. 고등학교 1학년쯤 되었을라나? 그 녀석은 누가 오거나말거나 열심히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순간 떠오르는 나의 20대 초반. 등산하면서 떠오르는 영감이 좋아 미친 듯이 오르고 쓰던 그때. 아마도 그 학생 역시 한라산의 이 맑은 정기를 받아 떠오르는 그 생각의 조각들을 놓치기가 아쉬워 열심히 기록하고 있는 것이리라. 묘한 동질감. 이와 같이 산은 생각지 못한 동지들을 만들기도 한다.

그 아해는 군자리라
▲ 군자요산 그 아해는 군자리라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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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날씨가 좋다
▲ 저 멀리 보이는 한라산 정상 다행히 날씨가 좋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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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쯤 걸었을까? 진달래휴게소가 나왔다. 그러나 아내가 기다리는지라 오래 머물 수는 없는 터. 서둘러 사발면 하나로 허기를 채운 뒤 곧바로 정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루했던 지금까지의 등산로와 달리 시야가 탁 트이는가 싶더니 저 멀리 한라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해발이 높아짐에 따라 나무가 낮아진 탓이리라.

정상을 바로 눈앞에 두고 끝없이 이어진 계단. 걷다가 쉬다가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한라산 백록담 정상이었다. 비록 백두산 천지처럼 장엄한 풍경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높은 산  꼭대기 분화구에서 저와 같은 물을 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경이로울 뿐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선명하게 백록담을 보는 것도 행운이라 하지 않는가. 아마 제주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풍경을 가슴 한편에 묻고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제주도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할 테지.

제주도의 정수
▲ 한라산 백록담 제주도의 정수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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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밑의 아내 생각에 부랴부랴 한라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백록담에서 어리목까지는 자연휴식년제로 묶여 있어서 할 수 없이 관음사 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소문을 듣자하니 평평하고 심심했던 성판악과 달리 그 풍광은 훌륭하지만 대신 급경사에 꽤나 힘들다는 바로 그 구간이었다. 어쨌든 올라왔던 성판악으로 돌아가기에는 그 시간이 아쉬운 터, 울며 겨자 먹기로 관음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관음사에는 4·3항쟁의 유적도 남아있다지 않은가.

밋밋했던 성판악 등산로와 달리 관음사 방향의 풍광은 기암괴석으로 말미암아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그곳에는 많은 고사목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고, 백록담 바로 밑으로 등산로가 나아 있는지라 마음만 먹으면 백록담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이런 길도 보지 않고 성판악으로 왕복했다면 한라산이 지겨운 산이라며 내내 툴툴거렸을 것이다.

고사목이 펼쳐진 관음사 등산로
▲ 하산길 고사목이 펼쳐진 관음사 등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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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쉽지 않은 길이지만 관음사 등산로를 강추
▲ 한라산의 기암괴석 비록 쉽지 않은 길이지만 관음사 등산로를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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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시간쯤 지났을까? 바위가 보이던 화려한 풍경은 사라지고, 이내 수풀이 모든 길을 뒤덮고 있는 지겨운 등산로가 계속 됐다. 고갈된 체력도 체력이었지만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산에 물이 부족한 터라 하산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걸어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원래 목표는 한라산을 내려와 제주도 서쪽 해변에서 해수욕을 하고자 했지만 벌써 시간은 정오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하긴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인데, 그 산을 얕잡아 본 내가 잘못이려니.

백록담에서 하산하기 시작한 지 3시간. 그제야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 왔다는 생각에 긴장의 끈을 놓았기 때문인지, 아님 때마침 반대로 거슬러 올라오던 아내를 만난 기쁨 때문인지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했고 만사가 귀찮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바닷가에서의 수영은 무리일 듯 한데, 그럼 어디를 가지?

결국 우리의 발걸음은 그 옆 관음사로 향하고 있었다. 어쨌든 제주에 와서 보고 싶었던 것이 4·3 항쟁의 자취 아니었던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제주도, #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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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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