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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고향마을(강진군 대구면 계치)에는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벌써부터 들녘과 마을에는 가을 냄새가 가득합니다. 길가에 말려놓은 참깨와 콩, 토란대, 붉은 고추에서 풍요로움이 느껴집니다. 담장에 수세미넝쿨은 아직 군데군데 노란 꽃을 매달고 있지만 제법 튼실한 열매가 많이도 열렸습니다. 알곡이 익어가는 마을 들녘은 노란빛이 감돕니다.

 

기분 좋은 달콤함, '아~ 이게 바로 자연의 꿀맛'

 

고향집으로 가는 고샅길입니다. 오후의 햇살에 지친 나팔꽃은 꽃잎을 오므리고 있습니다. 농원 울에는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호박 이파리가 무성하기만 합니다. 온갖 과일나무가 가득한 농원에는 과실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다투어 몸을 불려가고 있습니다. 자연의 신비로움에 취해 빠져들 무렵 동생은 포도송이를 건네주며 먹어보라고 합니다. 그 맛이 진짜 꿀맛이라며.

 

"꿀맛이에요, 진짜 꿀맛! 무농약이라 그냥 먹어도 돼요."

 

 

포도송이에서 한 알을 따먹었습니다. 기분 좋은 달콤함입니다. 아~ 이게 바로 자연의 꿀맛인가 봅니다. 포도넝쿨 사이로 벌들이 윙윙대며 날아다닙니다.

 

여름 꽃들의 자태도 아름답습니다. 무궁화를 닮은 부용화의 커다란 꽃은 함박웃음을 짓습니다. 손톱에 예쁜 물을 들이는 봉선화도 보입니다. 꽃보다 예쁜 자태를 뽐내는 열매들도 있습니다. 노랗게 익은 여주와 붉게 익어가는 석류열매입니다.

 

고향집 농원의 풀벌레소리...귀뚜라미와 매미의  멋진 하모니

 

 

유자는 자신의 가지를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열렸습니다. 동생은 전정가위로 유자나무의 도장지를 잘라주면서 유자가 많이 열려 오지다며 즐거운 표정입니다. 유자 열매를 솎아내기도 합니다. 다 자란 유자 열매가 아깝다고 하자 눈 딱 감고 따내야 다른 열매들이 튼실해진다고 말합니다.

 

"올해는 유자가 오져 분당께, 정말 많이 열렸어."

 

유자가 정말 오지게도 많이도 열렸습니다. 단감도 대추도 주렁주렁 매달려 익어갑니다. 단감은 일주일여 있으면 따먹어도 되겠습니다. 일손이 많이 간다는 배와 가시 옷을 입은 밤송이도 보입니다.

 

고향집 농원에는 풀벌레소리도 정겹습니다. 가을을 노래하는 귀뚜라미와 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는 매미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뒤섞여 멋진 하모니를 이룹니다. 염소와 닭들도 이따금씩 목청을 가다듬습니다.

 

찬거리로 심어놓은 가지와 고추도 가을빛을 머금었습니다. 가지 한 개를 뚝 따 한입 베어물자 어린 시절 고향의 진한 향기가 내 몸에 싸하니 퍼집니다. 동생은 앞으로 먹을거리는 걱정 안 해도 되겠다며 다 자급자족할 예정이랍니다. 요즘 세상은 믿고 먹을 만한 농산물이 없으니 그도 그럴 것입니다.

 

"지난번에 보니까 복숭아가 꽤나 열렸던데, 복숭아는 어디 있어?"

"다 따먹었어요. 두 세 바구니 정도 땄을 걸요."

 

언제나 오롯한 추억과 그리움이 있는 곳이 고향입니다

 

 

팔 이곳저곳이 갑자기 가렵습니다. 농원을 돌아보다 모기떼의 무차별 습격을 받은 것입니다. 팔이 봉긋하니 빨갛게 부어오릅니다.

 

모과는 생뚱맞게 줄기가 아닌 원 가지에 열매를 매달고 있습니다. 동생은 그걸 보며 신기하다고 합니다. '그 녀석 참 신기할 것도 없는 모양이구나?'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 다시 보니 '고것 참, 아무튼 재밌게 생겼습니다.' 특이한 곳에 매달린 못난 모과가 눈길을 끄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요.

 

 

둠벙(웅덩이)에도 가보았습니다. 둠벙 앞에 멈춰선 동생은 한참 자랑을 했습니다. 민물장어와 가물치, 붕어, 잉어 등이 많이 살고 있으며 낚시하기에도 그만이라고 합니다.

 

"이래 뵈도 이곳에 민물장어가 많이 들어 있어요."

 

고향집 농원에는 수많은 과일나무와 생물들이 살고 있습니다. 탐스러운 열매도, 아련한 고향의 추억들도 함께 자라고 있었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언제나 그렇게 오롯한 추억과 그리움이 있는 곳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라도뉴스.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고향, #강진 대구,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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