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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매정마을의 공동한옥. 여느 숙박시설처럼 번잡스럽지 않아 좋다. 넓은 마당과 돌담, 황토집도 정겹다.
 해남 매정마을의 공동한옥. 여느 숙박시설처럼 번잡스럽지 않아 좋다. 넓은 마당과 돌담, 황토집도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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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부터 발끝까지 핫이슈 내 모든 것 하나하나 핫이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여성 5명으로 이뤄진 포미닛의 '핫이슈'다. 청소년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이 노래는 생각 없이 내가 신은 슈즈, 내 맘대로 자꾸 하는 포즈, 아무렇게나 살짝 바른 루즈까지도 언제나 핫이슈가 된다는 노랫말을 담고 있다. 리듬이 경쾌하다.

때마침 빗줄기가 쏟아져 한낮의 더위를 씻어준다. 도로도 4차선으로 뚫려 시원하다. 오가는 차량도 많지 않다. 몸도, 마음도 가뿐하다. 동행한 아이들도 음악에 맞춰 신이 났다. 가요계를 뜨겁게 달군 이 노래만큼이나 올해 여행문화에서도 핫이슈가 하나 생겼다. 그건 누가 뭐래도 한옥민박이다.

한옥 풍경은 안팎이 모두 정겹다. 방 안도 깔끔하다. 시설도 원룸 형식으로 돼 있어 편하다.
 한옥 풍경은 안팎이 모두 정겹다. 방 안도 깔끔하다. 시설도 원룸 형식으로 돼 있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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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마루에 앉아 두런두런 얘기 나누며 식사하고 과일을 먹는 재미는 시멘트로 지어진 리조트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한옥 마루에 앉아 두런두런 얘기 나누며 식사하고 과일을 먹는 재미는 시멘트로 지어진 리조트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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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민박을 위해 '땅끝' 해남 매정마을로 가는 길이다. 해남읍에서 대흥사 방면으로 5㎞정도 들어가니 줄지어 선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반긴다. 도로 양쪽으로 펼쳐진 매정마을은 100가구, 250명이 넘는 주민들이 살고 있다. 농촌마을치고 제법 큰 편이다. 십수 년 전부터 한옥민박을 해온 무선동 민박단지도 이 마을에 속한다.

하룻밤 묵을 곳은 마을의 공동한옥. 한옥 모양의 버스승강장 옆으로 난 무지개형 돌다리를 건너니 왼편으로 미려하게 솟은 한옥의 처마가 한눈에 들어온다. 잔디 깔린 마당도 넉넉하다. 그 앞으로 두륜산에서 내려온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깨끗하다.

아이들은 "(오늘 잘 곳이) 여기가 맞냐?"며 몇 번을 되묻는다. 문고리를 당겨서 본 방안이 넓다. 예닐곱 명이 나뒹굴어도 넉넉할 공간이다. 한옥 특유의 나무냄새와 황토 기운이 코끝을 간질인다. 방안엔 싱크대와 평면형 텔레비전, 에어컨이 설치돼 있다. 선풍기도 한대 있다. 이부자리도 가지런하다. 샤워기를 갖춘 욕실 겸 화장실도 깔끔하다.

챙겨간 짐을 풀어놓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비 개인 틈에 두륜산 케이블카를 타보기 위해서다. 연이틀 많은 비가 내린다는 예보도 있어서 다음날 케이블카가 정상 운행되는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해남 두륜산 케이블카. 해남유스호스텔 앞에서 고계봉까지 1600m를 오간다.
 해남 두륜산 케이블카. 해남유스호스텔 앞에서 고계봉까지 1600m를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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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에서 내려 고계봉으로 가는 길. 천연목재를 이용한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고계봉으로 가는 길. 천연목재를 이용한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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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는 해남유스호스텔 앞에서 두륜산 고계봉 앞까지 1600m를 오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것이다. 승선표를 사려는데 매표소 직원이 "현재 산에 안개가 많이 끼어 있어서 전망이 그리 좋지 않다"고 말해준다. 가족끼리 케이블카를 같이 타보는 걸로 만족한다고 하자 그제야 표를 내어준다.

날씨 탓일까. 케이블카 승객은 많지 않다. 창밖 풍경도 예상대로 안개 자욱하다. 한라산은커녕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렵다. 안개가 조금 덜한 곳은 한 폭의 진경산수화가 펼쳐진다. 장관이다. 내려다보이는 풍경도 아찔하지 않다. 편안하다. 학창시절 수학여행이라도 온 것처럼 지인에게 엽서라도 한 장 쓰고 싶은 충동이 인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케이블카가 해발 586m의 상부역사에 닿는다. 고계봉 정상까지 천연목재를 이용한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그 옆으로 펼쳐진 백소사나무 군락이 눈을 황홀하게 한다. 싸목싸목 걸으며 도란도란 얘기 나누다 보니 금세 고계봉(638m)이고, 한 시간이 훌쩍 지난다.

한옥민박에서의 하룻밤. 한옥마루에 걸터앉아 도란도란 얘기 나누다 보면 행복이란 이런 것인가보다 싶다.
 한옥민박에서의 하룻밤. 한옥마루에 걸터앉아 도란도란 얘기 나누다 보면 행복이란 이런 것인가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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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개별한옥은 취사를 방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 마을에서 난 남새와 버섯 등을 버무린 시골밥상을 받고 싶다면 따로 해주기도 한다. 밥상의 김치가 맛있으면 김치를, 된장국이 맛있으면 된장을 얻거나 사가기도 한다. 마을사람이 사는 한옥에서 하룻밤을 묵은 여행객들은 대개 처음에 꺼리다가 금세 친해져 외갓집에 온 것처럼 편해진다는 게 최상용(61) 마을이장의 귀띔이다.

공동한옥은 한켠에 있는 공동취사장을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취사장 안에서 식사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모처럼 가족과 함께 한 나들이인데…. 한옥마루에 돗자리를 폈다. 취사장에서 씻은 쌀을 냄비에 담아 휴대용 가스렌지에 올려놓고, 아이들과 함께 야채를 씻는다. 한쪽에선 삼겹살이 지글지글, 컵에는 소주와 음료수도 한잔씩 채워졌다.

모기도 그다지 없다. 아이들이 상추에 깻잎을 포개고 삼겹살 한 점, 고추와 마늘 한 조각에 된장까지 얹어 "엄마! 아∼, 아빠! 아∼"하며 입안에 넣어준다. 점심을 건너 뛴 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금세 밥 한 그릇을 비우고 한 숟가락씩 더 먹는다. 궂은 날씨 탓에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없었지만 계곡물소리 들으며 한옥마루에서 밥 먹는 게 운치 있다. 시멘트로 지은 리조트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색다른 기분이다.

설거지를 하는 사이, 샤워를 끝낸 아이들은 MP3에 스피커를 연결시켜 음악에 심취한다. 텔레비전의 역사드라마도 한 편 본다. 아이들의 관심은 남장을 한 덕만(훗날 선덕여왕)의 앞날에 모아진다. 드라마가 끝나는가 싶더니 채널을 돌려 다른 오락프로그램에 시선이 멈춘다. 모기향 하나 들고 나와 아이들 엄마와 정자에 앉아 두런두런 얘기 나누는데, 구름에 가려졌던 달이 살짝 얼굴을 내민다. 밤이 깊어간다. 이런 게 사는 재미인가 싶다.

해남 대흥사 가는 길. 숲길이 운치 있다.
 해남 대흥사 가는 길. 숲길이 운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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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나무의 뿌리가 만나 하나된 연리근. 아래엔 뭇사람들의 소원을 담은 촛불이 타고 있다.
 두 나무의 뿌리가 만나 하나된 연리근. 아래엔 뭇사람들의 소원을 담은 촛불이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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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드라이브까지 하고 잠자리에 든 탓인지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잤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가뿐하다. 밖에는 밤새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고 있다. 게으른 아침을 먹고 잠깐 놀이에 빠져든다.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싹싹싹! 묵묵빠! 찌찌묵! 날씨 탓에 물놀이, 물고기잡기, 천연염색, 도자기 빚기, 모닥불 지피기, 농산물 수확 등 갖가지 체험을 해볼 수 없는 아쉬움을 놀이로 달래는 중이다.

빗줄기가 조금 약해진다. 짐을 챙겨 차에 싣고 대흥사로 간다. 매표소에서 주차장까지는 차를 타고, 주차장에서부턴 우산을 쓰고 걸어야 한다. 대흥사로 가는 길이 울창한 숲길이어서 운치 만점이다. 계곡물도 맑디맑다. 은은하게 풍겨오는 흙내음도 코를 간질인다. 빗물이 튄다며 탐탁치 않아하던 아이들도 어느새 숲의 매력에 흠뻑 젖어든다.

그만큼 속세에 찌든 탓일까. 피안교를 건너니 정말 피안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안겨준다. 그렇게 숲길을 따라 일주문을 지나니 부도전이 나온다. 대흥사를 중흥시킨 서산대사 등 스님들의 집단 묘소다.

계곡물은 절 앞마당을 가로지르고 있다. 그 계곡물을 사이에 두고 놓인 심진교를 건너니 침계루와 대웅보전이 자리하고 있다. 옥돌부처를 만나러 천불전으로 가는 길엔 두 나무의 뿌리가 만나 하나 된 연리근이 눈길을 끈다. 그 아래엔 수많은 중생들의 간절함이 촛불로 타오르고 있다. 마음이 숙연해진다.

해남 녹우당. 유서 깊은 고택이다. 매정마을에서 가깝다.
 해남 녹우당. 유서 깊은 고택이다. 매정마을에서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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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해남 매정마을에는 개별한옥 13동(방17), 공동한옥 1동(방5)에서 민박손님을 받고 있다. 올여름 1000여명이 다녀갔다는 게 황주영(35) 행복마을 사무장의 얘기다. 쌀과 황토고구마, 배추, 버섯, 무화과, 약초 등을 많이 재배하고 있다. 마을에선 대흥사 답사와 케이블카 탑승 외에도 계곡 물놀이, 천연염색, 도자기 빚기, 농산물 수확 등 여러 가지 체험을 해볼 수 있다. 유서 깊은 고택 녹우당과 시인 고정희 생가, 김남주 문학공원 등이 가까이 있다.



태그:#한옥민박, #매정마을, #해남, #행복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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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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