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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벽 위에 마치 다리를 놓은 것처럼 보인다. 무서워 올라가지 못했다.
▲ 와디럼 움프로우스 암벽 위에 마치 다리를 놓은 것처럼 보인다. 무서워 올라가지 못했다.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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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광란(?)의 밤을 보낸 탓에 한나절내내 정신이 몽롱했다. 차를 타고 페트라에서 와디럼에 도착한 다음에도 영 기운을 못 차리고 병든 닭모양 고개를 바로 세우지 못했다. 내속이 속이 아니었다.

헤매고(속 다스리느라 고전함) 있는 사이 버스는 와디럼 사막에 도착했다. 걸어서는 다닐 수는 없고 낙타를 타든가 지프차를 타고 돌아야 하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었다. 햇빛을 가리는 천막 밑에 누워 컨디션 조절하고 있는 사이에 지프투어가 성사되었다. 5명에 60디나르(1인당 12디나르) 꽃미남 독일청년(청년이라기엔 앳되어 보인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갓졸업한 정도의 나이로 보였다) 둘이 일행이 되었다.

이 청년 둘은 비싼 돈 내고 투어를 할 뻔하다가 절약이 되니 신난 모양이다. 절약한 돈으로 낙타 투어까지 갔다 왔다. 난 온 몸을 가리고도 뜨거워서 햇볕에 나갈 수가 없는데, 반팔에 반바지 차림으로 낙타를 두어 시간은 타고 온 것 같다. 피부가 빨갛게 익었는데도 싱글벙글이다. 건강해 보였다. 아들녀석도 수험생 신분에서 벗어나면 이렇게 배낭여행을 다녔으면 하고 바래본다.

드디어 지프투어가 시작되었다. 5시간. 그렇게 넓은가? 뜨거운데 힘들지 않을까? 오늘 몸 상태도 안 좋은데 해낼수 있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오늘밤을 보낼 텐트 안은 한증막인데 누워서 땀 뻘뻘 흘려가며 고문(?)할 수도 없었다. 일단 나섰다.

차를 탔는데 생각보다 시원했다. 차라고 해봐야 고물지프차 짐칸에 지붕은 천막이 쳐져 있고 사방은 트여 있어 시원했다. 낡은 의자에 3명씩 마주 보고 6명이 탈 수 있다. 운전기사가 군데군데 내려주고 두세 군데는 설명하더니 나중엔 내려 놓고 설명이 없어도 알아서 즐기고 사진 찍고 아주 잘 보냈다.

처음엔 케잘릭 캐년에 내려 주었다. 내려서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으란다. 내가 본 거라곤 건 우리나라 산에 있는 작은 나무들도 있고 흙도 덮여 있는 그런 바위들이었는데 여기에 있는 바위들은 아무런 생물체도 없이 오로지 넓은 사막에 바위들이 군데 군데 자리잡고 있었다.

사막에 나바테아인들이 남긴 흔적으로 문자와 그림 등이 있다
▲ 나바테아인들이 남긴 암각문자 사막에 나바테아인들이 남긴 흔적으로 문자와 그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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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나바테아인들이 남겨 놓은 암각화와 글자들을 보았다. 더 매력적인 것은 처음 보는 사막지형이었다.

붉은 모래에 붉은 암벽이 다른 나라에 와 있음을 실감나게 해준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처럼 바위 두 개가 서로 맞닿은 모습은 사람이 조각해 놓은 듯이 보인다. '움프로우스'라고 하는 바위는 네모난 창처럼 보인다. 마치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처럼. 창으로 구름 한 점 없이 보이는 파란 하늘이 신기했다. 한국에서 보기 힘든 모습들이었다.

중간중간에 사막에 뿌리박고 사는 작은 나무들의 생명력도 놀랍다. 도대체 뿌리가 어디까지 닿아 있기에 1년내내 비 한 줄기 시원하게 내리지 않는 사막에서도 살아가는 것일까?  지평선만 보이는 넓디 넓은 평지에, 모래만 있는 사막이 아니었다. 군데군데 바위산들이 보인다. 한국의 산들이 푸른 빛을 띠는 것과는 달리 붉은색의 바위들만 있는 산들이다.

사막의 모래가 온통 붉은 색이다. 붉은 모래와 파란 하늘빛이 어우러져 멋진 조화를 보인다
▲ 와디 럼 사막 사막의 모래가 온통 붉은 색이다. 붉은 모래와 파란 하늘빛이 어우러져 멋진 조화를 보인다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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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로 이곳저곳 다니며 내려주고 달리기를 반복. 낯선 풍경은 때로는 마음을 설레게 하기도 한다. 붉은 모래언덕 앞에 내려 주었다. 와! 그림으로 봐왔던 누런색의 모래언덕이 아니다. 대뜸 신발을 벗고 양말까지 벗어던졌다. 부드러운 모래를 느껴보고 싶었다. 중년이 되어서도 마음 속엔 동심이 남아 있나 보다. 멀리뛰기 할 때 도움닫기하듯이 설레는 마음으로 뛰어올랐는데...

모래알 곱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 모래 언덕 모래알 곱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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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같지 않았다. 푹푹 빠지는 모래가 쉽게 올라가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몇 발짝 떼었는데 헉헉거린다. 모래속에 발이 파묻힌다. 직선이 아닌 지그재그로 올라갔다. 모래언덕의 경사면은 바람에 다져진 탓인지 좀 단단해서 오르기가 한결 쉬웠다.

바람이 불면서 만든 모래 물결 발가락으로 모래를 차서 모래바람을 만들어봤다
▲ 모래언덕 바람이 불면서 만든 모래 물결 발가락으로 모래를 차서 모래바람을 만들어봤다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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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언덕에 누워도 보고 모래를 발로 차서 바람에 날려보기도 하였다. 색다른 체험이었다. 역시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였다. 노란 모래사막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붉은 모래사막도 있다는 것이다. 바람이 만들어 놓은 물결 무늬도 신기하기만 했다. 모래가 곱기는 얼마나 고운지 아기 피부같다. 만지고 있으면 세상 근심이 다 없어질 듯하다. 장난감 가게에서 다양한 장난감을 구경하느라 정신없는 아이처럼 모든 게 신기했다. 햇빛에 따라 사막의 색깔도 붉게 변했다. 점점 환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와디럼에 있는 바위산
▲ 바위산 와디럼에 있는 바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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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에 붉은 색이 감돈다. 손으로 만지면 붉은 색이 묻어날 것만 같다
▲ 와디럼의 석양을 받은 바위산 석양에 붉은 색이 감돈다. 손으로 만지면 붉은 색이 묻어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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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차를 타고 5시간 투어에 나섰다. 차를 타고 움직인 시간은 3시간여 남짓 나머진 내려서 구경한 시간이다.
▲ 사막투어에 쓰이는 짚차 이런 차를 타고 5시간 투어에 나섰다. 차를 타고 움직인 시간은 3시간여 남짓 나머진 내려서 구경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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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일몰 장소에 내렸다. 해지기를 기다려 해넘어가는 과정을 본다. 사막에서의 석양은 평생 잊을 수 없다는 글들을 보았다. 도대체 어떻기에? 드디어 해가 넘어간다. 해넘어가는 과정을 열심히 사진으로 찍었다. 그러나 바위산 밑으로 떨어지는 거라 그다지 멋진 광경은 아니었다.

지평선이나 수평선으로 지는 석양이 더 멋있다. 그러나 햇빛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사막의 변화는 환상적이었다. 태양이 붉은 색으로 물들어갈수록 사막의 색깔도 붉게 물들어간다. 붉은 장밋빛?

텐트로 돌아왔다. 캄캄한 하늘에 총총한 별빛뿐이다. 은하수도 길게 드리워져 있고. 북두칠성이 두 개였다. 큰 것과 작은 것 큰 곰자리와 작은 곰자리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은 아마도 처음 같다. 한국에서 본 것은 큰 곰자리인 북두칠성이고 작은 곰자리의 별은 희미해서 안 보였던 것이다. 아는 것과 보는 것의 차이는 대단하다.

열심히 바라봤는데 카시오페아 자리와 북두칠성 외에는 아는 별자리가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옆에서 탄성을 질렀다. 별똥별을 봤단다. 열심히 눈에 힘을 주고 바라봤다. 갑자기 꼬리를 끌며 순식간에 흐르는 게 있었다. 드디어 나도 하나를 봤다. 열 개를 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나? 하나밖에 못봐서 소원을 이루기는 힘들겠다.

한국에서 본 별보다 더 선명했고 별이 커보였다. 사진기가 좋으면 좀 찍어보련만 아쉬운 마음만 가득하다. 고개를 젖히고 오랫동안 바라봐도 지루한 줄 몰랐다. 내가 저 별들을 바라보듯이 우주에서도 누군가 지구를 바라보고 있을까?

예전에 생각했던 여행은 유적지를 돌아보고 뭔가를 배우고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연경관보다는 유적지에 좀더 많은 비중을 두었다. 배워야 한다는 강박감이 강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여행의 정의도 달라졌다. 시간이 사람을 변하게 하기도 한다.

'진정한 여행'이란 유명한 박물관을 가본다거나 유명한 작품을 보는 것도 될 수 있겠지만 일상을 떠나서 나를 돌아볼 기회를 갖는 것도 진정한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사람들 속에서 부딪치고 뭔가를 해줘야 하는 현실에서 짐을 벗어던지고 홀가분해보고 싶었다.

작정하고 떠난 여행, 다른 이들 챙겨주지 않아도 되고, 부담도 없고, 오로지 나 자신에만 신경쓰면 된다. 전혀 구애받을 것이 없는 이 홀가분함. 마음 가는 대로 생활할 수 있는 이 자유로움. 게다가 한국이 아니라는 것도 마음을 들뜨게 하는 이유였다. 앞으로 얼마나 이렇게 자유롭게 긴 여행을 할 날이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이 시간만큼은 온전히 즐기고 싶었다. 저 별들에 비하면 인간의 수명은 찰나인 것을.

이번 여행은 나를 찾는 여행으로  컨셉을 잡았다. 20여 일의 여행에서 얼마나 나를 찾고 혹은 버릴 수 있을는지. 사막의 풍경과 사막에서의 별밤이 준 감동은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생각난다.


태그:#와디럼, #사막,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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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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