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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이후 최초로 광역단체장을 주민소환 투표라는 심판대에 세운 제주도민들이 25일 저녁 제주시청 앞에서 마지막 유세를 가졌다. 제주시청 앞에는 약 300여명의 도민들이 모여 김태환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의 마지막 유세를 지켜봤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이용한 광고는 그 분 정신 욕 보이는 것"

 

"내일 모레 나이가 80세가 되는 농사짓는 촌부에 불과하다"고 자신을 소개한 양용해씨는 "김태환 소환대상자가 '국책사업은 소환대상이 아니다'고 하는데 국책사업을 오만과 독선으로 결정해서 소환된 김태환씨가 소환대상이 아니면 왜 우리가 이 투표를 하고 있나"고 되물었다.

 

특히 양씨는 "엊그제 김태환 소환대상자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초상과 어록을 광고에 실었다"고 환기시켰다. 그는 "고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 상징이며 4·3특별법을 만들어 한맺힌 제주의 가슴을 풀어주신 분"이라며 "그런데 어떻게 소환대상자인 김태환씨가 국장 기간에 그걸 이용해서 김대중 대통령을 모독하고 4·3정신을 욕되게 하나"고 비판했다.

 

양씨는 "공무원 동향이 미묘하게 돌아간다"는 말로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공무원들의 조직적 투표방해행위를 지적하고 "충성심에 젖은 일부 공무원들이 투표장을 서성거리며 눈짓과 몸짓으로 여러분의 투표를 막을지도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고유기 주민소환운동본 집행위원장은 "헌법에 보장된 참정권을 눈치와 불안 때문에 행사하지 못하는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며 "눈치보며 투표장에 안 가는 것은 불의와 타협하는 것이고 양심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을 인용했다.

 

그는 "4·3 이후 30년 넘게 연좌제로 시달려온 제주도민에게 김태환 소환대상자 측은 읍면동별로, 마을별로 투표율을 봐서 조치하겠다는 말로 주민을 갈라놓고 줄세우고 있다"며 "이것이 정치적 연좌제가 아닌가"고 따졌다.

 

특히 고 집행위원장은 "김 소환대상자가 7만6천명이 서명한 주민소환을 일부 시민단체가 제안해서 이뤄진 일이라고 했다는데, 7만6천명이 일부 시민단체로밖에 보이지 않나"고 힐난했다.

 

고 위원장은 "오만하고 무능한 권력자를 끌어내릴 시기는 1년 후가 아니라 바로 지금"이라고 강조하면서 "권력은 도지사가 아닌 도민에게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자"며 투표참여를 호소했다.

 

25일 밤 10시를 기해 모든 투표운동은 정지됐다. 이제 남은 건 제주도민의 선택뿐이다.

 

주민소환운동본부 "우리 도민은 이미 승리했다"

 

하지만 김태환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는 "우리 도민은  이미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소환운동본부의 한 관계자는 "우리 도민들은 주민소환 청구요건의 두 배에 가까운 7만6천 명의 주민이 소환투표청구인에 서명함으로써 오만한 김태환 당선자에 대한 심판을 이미 끝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명색이 도지사라는 사람이 투표불참을 호소하는 해괴망측한 꼴을 자행하는 것은 그가 이미 도민에 의해 정치적으로 탄핵됐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민소환운동본부의 이같은 '승리선언'은 "내용적으로, 정치적으로, 도덕적으로 이미 승리했다"는 자체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즉 당초 계획하고 예상했던 것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주민이 김태환 지사 주민소환투표 청구에 서명함으로써 이미 투표율과 찬반율을 따지기에 앞서 정치적 승리를 거뒀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한 관계자가 "우리는 우리의 문제의식을 도민들에게 솔직하게 말씀드렸고, 애초 목표했던 그 심판의 장까지 마련했다"며 "이제 남은 투표율과 찬성반대 비율은 도민들께서 판단하실 문제"라고 여유있게 얘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환운동본부의 또다른 관계자도 "영리병원 문제와 해군기지 문제 등 제주도의 현안문제에 대한 관심과 해결노력을 지금보다 더 높은 수위에서 펼쳐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소환운동본부 측이 이미 승리를 선언한 가운데 김태환 소환대상자는 운동 마지막날까지 성명을 내 "주민투표 불참도 법으로 보장된 유권자의 당당한 권리이며 투표율이 3분의 1에 미달하면 개표를 하지 않는다"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투표불참운동을 인정하고 있다"고 참정권 포기를 선동했다.

 

하지만 그 역시 "26일 이후에는 오랫동안 끌어온 해군기지 논쟁이 종식되기를 바란다"는 말로 자신이 주민소환 투표대에 오른 가장 큰 현안 중 하나가 해군기지 문제였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해법은 달랐다. 김 소환대상자는 "대다수 도민의 힘을 투표불참으로 꼭 보여주시기 바란다"며 투표율 미달에 따른 주민소환 무산, 해군기지 건설 강행 시나리오를 스스럼없이 드러냈다.

 

위법 여부를 떠나서 선출직 단체장이 투표불참이라는 참정권 포기선동을 공공연히 하고 있는 가운데 26일 주민소환 투표일이 다가왔다. 주민소환 투표 성립자체만으로 이미 승리했다고 선언한 소환운동본부와 투표율 미달로 추락한 도민의 신임을 얻고자 하는 김 소환대상자. 양측 모두에게 중요한 날이 밝았다.


태그:#제주도, #김태환, #주민투표, #주민소환, #해군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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