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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무너졌다, 님이 가셨다'
'민주·평화 꽃 피우고 인동초 지다'
'4.3 한 풀어준 분인데... 영면하소서'

지역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깊은 슬픔과 충격에 빠졌다. 끝내 역사의 뒤안길로 떠난 고인의 애도물결이 전국을 가득 메우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호남은 물론 영남, 강원, 제주에서도 비통함이 컸다.

19일자 전국 대부분 지역의 조간과 석간 신문들은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1면, 2면, 3면, 4면 등에 연이어 특집으로 다루면서 '통단 제목'을 사용했다.

지역신문들은 김 전 대통령의 삶과 정치 역정을 조명하는 특집기사를 대대적으로 내보냈다. '버팀목', '거목', '인동초' 등으로 고인의 정신과 뜻을 비유하는 보도형태가 너무도 닮은꼴을 이뤘다.

그러나 각계 반응과 김 전 대통령과의 각별했던 인연을 지역적 시각에서 회고한 점이 서울 일간지들과 대별됐다. 이 땅의 민주화와 평화에 대한 열정 못지않게 지역에도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보여 왔음이 지면 곳곳에서 묻어난다. 제목과 레이아웃에서 나타난 애도는 영·호남 지역간, 보수와 진보간 구분이 따로 없었다.

[호남] "아! 김대중... 민주·인권·남북화해 정신 이어져야"

<광주일보> 19일자 1면.
▲ 아! 김대중... <광주일보> 19일자 1면.
ⓒ 광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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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정치적 고향인 호남지역민들의 충격과 슬픔은 누구보다 컸다. 이 지역 언론들은 김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을 전하면서 "하늘이 무너졌다", "통곡의 바다", "임이 가셨다"는 슬프디 슬픈 표현들을 제목으로 뽑았다. <광주일보>, <전남일보>, <무등일보> 등 대부분 일간지들은 1면서부터 거의 모든 지면을 통단 제목으로 갈랐다.    
  
이날 <광주일보>의 검은색 바탕에 '아! 김대중'이란 흰색 글자의 1면 통단 제목과 긴 여백은 매우 숙연해 보였다. 이 지역 신문들은 보통 20여 건의 관련기사를 모아 특집으로 내보냈다. 김 전 대통령의 파란만장한 정치역정과 지역 곳곳에서 뗄 수 없는 고인의 흔적들을 조명했다.

김 전 대통령의 생가 마을 분위기도 생생하게 전했다. "정말 가셨단 말입니까?"라며 아직도 믿기지 않다는 마을 사람들의 표정을 담은 지면에선 금세 통곡소리가 흘러나올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고인의 숭고한 정신을 잘 이어나가자'는 반성과 성찰의 주문도 쏟아졌다. <광주일보>는 사설 '민주·인권·남북화해 정신 이어져야'란 제목의 사설에서 "우리가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것은 단지 호남 출신이어서가 아니다"고 전제한 뒤 "민주와 인권 그리고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고인의 노력을 소중히 기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전남일보>도 '전라도의 한· 희망…그가 있어 행복했다'는 특집기사에서 "님이 가셨다, 하늘이 무너졌다", "일어나실 줄 알았는데...", "진실로 존경하고 사랑합니다"란 표현으로 슬픈 지역민들의 심정을 대신했다.

신문은 또한 "김 전 대통령의 숨결이 살아 있는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 1층 '김대중홀'에는 고인을 애도하는 인파들이 몰려들고 있다"며 "시민들은 이곳을 찾아 민주화와 남북협력, 세계평화와 인권 증진을 위해 한평생을 바친 고인의 정신을 느끼며 애도를 표했다"고 전했다. "시민과 기업 등의 자발적인 추모 분위기 조성도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도 덧붙였다.

<무등일보>도 ''인동초 삶' 큰 별지다'란 1면 통단 제목을 달았다. 이 신문은 슬픔과 충격에 휩싸인 하의도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기사는 "서거 소식에 지역민들은 가슴 찢어질 듯 아프고 애통해했다"며 "지난 4월, 14년 만에 이희호 여사와 함께 고향을 방문한 김 전 대통령을 만났던 주민들은 '고령과 오랜 병환으로 다소 초췌한 모습이었지만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고 전했다.

이어 기사는 "특히 생가에는 김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 소식을 듣고 가던 뱃길을 돌려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조문행렬이 이어지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하의도 선착장에 마련된 국기대에 마을주민들이 게양한 태극기가 조기로 내걸렸으며 내외신 취재진들이 속속 도착하면서 생가 주변에는 중계차가 설치되고 면사무소 옆 자치센터에 프레스센터가 마련됐다"며 현지 표정을 세세하게 소개했다.

<전북일보> 19일자 1면.
▲ 민주화의 산 역사 떠나다... <전북일보> 19일자 1면.
ⓒ 전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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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전북언론들도 비통함에 젖은 도민들의 표정과 함께 김 전 대통령과 뗄 수 없었던 인연들을 조명했다. 이날 <새전북신문>은 특집기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 궤적에는 전북지역의 끝없는 성원과 기대가 함께 했다"며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전북의 민심과 여론은 든든한 버팀목으로써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주곤 했다"고 회고했다.

"부정 선거와 유신정권이 조장한 지역감정 등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 94만표 차이로 패배했지만 전북은 DJ에게 유효 득표수의 61.5%인 53만5591표를, 박 전 대통령에게는 35.5%인 30만 8850표를 던졌다"는 기사는 "김 전 대통령이 87년12월 제13대 대선에서 김영삼과 대선 후보 단일화가 실패하면서 평민당을 창당, 독자 출마의 길을 걸을 때도 전북 유권자 가운데 90%에 가까운 94만8955명이 DJ를 지지했다"고 밝혔다.

<전북일보>도 김 전 대통령 재임시절, 전북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재임 때 4차례 찾아 직접 현안 챙겨'란 제목의 기사는 "김 전 대통령의 방문으로 새만금 사업과 전주 월드컵경기장 건설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세계소리축제가 성공적으로 개최됐다"며  "특히 김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2차례나 새만금 지역을 방문할 정도로 새만금 사업에 대해서는 각별한 애정을 표했다"고 전했다.

기사는 전북지역 대학과의 인연도 특별했음을 강조한다. "지난 1991년 대선 패배 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김 전 대통령은 1994년 3월 원광대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퇴임 후인 2007년 4월에는 전북대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학위수여식 때 전북대에 '실사구시(實事求是)'라고 쓴 휘호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충청] "장외 투쟁의 시작은 늘 대전...충청과 인연 각별했는데"

<대전일보>가 내보낸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관련 기사들.
▲ 충청과 각별한 인연... <대전일보>가 내보낸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관련 기사들.
ⓒ 대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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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대통령의 서거에 충청권도 비탄에 잠겼다. 특히 지난 1997년 이른바 'DJP 연합'으로 충청도의 표심을 가져가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5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여야 간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했기에, 그의 서거는 더욱 충청인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이날 <대전일보>는 '충청과의 깊은 인연'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김 전 대통령과 충청권의 인연은 멀리 6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회고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3선을 목표로 6차 개헌을 추진했던 당시, 40대였던 김 전 대통령은 이를 격렬하게 반대하며 저지 투쟁에 나선다"는 기사는 "장외 투쟁의 시작이자, 전국 순회강연의 첫 기착지로 대전을 선택하게 된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이어 "측근들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정치 입문 이후 고향인 호남과 충청 지역은 백제권이란 의식을 갖고 있었으며, 3선 개헌 투쟁을 기점으로 대부분의 전국 순회를 대전에서 시작했다"며 "결국 김 전 대통령과 충청권은 97년 'DJP 연합'을 통해 대선 승리를 이루며, 뜨거운 공조를 만끽한다"며 충청과의 인연이 각별했음을 시사했다. 

신문은 또 '김 전 대통령, 대전일보와 특별한 인연'의 기사에선 김 전 대통령의 정계복귀 특종보도를 떠올렸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994년 5월 이뤄진 본보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정치 복귀를 시사, 199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계기가 됐다"며 "지난 1988년 대전일보사(옛 문화동 사옥)를 방문, 지역 현안을 논의하는 등 본보와 특별한 연을 맺고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7년 뒤 본보와 단독 인터뷰를 갖는다"고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김 전 대통령은 92년 대선 패배 이후 정계 은퇴를 선언, 일체의 정치적인 행보를 자제하는 등 은둔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무게감은 언론의 주목을 피할 수 없었고, 연일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그러나 가능한 언론 노출을 바라지 않았던 김 전 대통령은 번번이 이를 외면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충청권에서의 강연을 대신해 대전일보와 단독 대담을 갖게 됐다."

<충청투데이>는 이날 'DJ 대전현충원에 모시나'란 제목의 기사에서 "현재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에는 각각 국가원수묘역이 조성됐고, 서울현충원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안치돼 있다"며 "그러나 서울현충원에는 추가 공간이 없어 김 전 대통령의 유족들이 국립묘지 안장을 원할 경우 대전현충원으로 모셔야 한다"고 예측 보도했다.

기사는 이어 "국립대전현충원 내 국가원수묘역은 현충탑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현충원을 에워싼 산 정상 쪽으로 가까운 상단에 위치해 왼쪽으로는 애국지사 1묘역과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이 있으며, 오른쪽으로는 장군1·2묘역이 각각 들어서 있는 '천하의 명당'으로 손꼽히는 지역"이라고 내세우기도 했다.

[영남] "YS와 '특수관계' 막 내려...지역주의 청산 이루는 계기 돼야"

<매일신문>은 인터넷신문 제호에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문구와 이미지를 표시했다.
▲ 서거를 애도합니다.... <매일신문>은 인터넷신문 제호에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문구와 이미지를 표시했다.
ⓒ 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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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지역 언론들도 고인과의 오랜 정치적 애증의 관계들을 정리하고 조명해 보도했다. 끝내 극복하지 못한 부문도 있었지만 민주화 투쟁에서 손을 잡았던 '두 동지', 즉 김영삼 전 대통령과 고인의 정치역정과 너무 비슷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관계에 초점을 두었다.

<매일신문>은 인터넷신문 제호 이미지와 문구를 애도 분위기로 가득 채워 눈길을 끌었다. 또한 <부산일보>는 '한국정치 큰 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란 1면 통단 제목을 사용해 역시 주목을 끌었다.

이 신문은 기사와 사설에서 "나라의 거목, 지도자를 잃었다"고 슬퍼했다. 부산과의 각별한 인연도 회고했다. '해운사업·이 여사 만남 부산 영도와 '깊은 인연''이란 제목의 기사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부산 영도 사이에는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기사는 "김 전 대통령은 피난시절 영도에서 해운사업을 했고 당시 이희호 여사를 처음 만났다"며 당시 사진과 함께 공개했다. 많은 부산 시민들이 애석해 하는 이유를 신문은 이렇게 적시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었던 지난 1951년. 김 전 대통령은 영도에 '흥국해운'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이후 3년 간 운영했다. 사업은 빠르게 성장하면서 인천 목포 등에 지사를 세울 만큼 확장해 나갔다. 김 전 대통령이 아내이자 동지인 이희호 여사를 만난 것도 영도에서 사업을 했을 때다. 책 읽기를 좋아했던 김 전 대통령은 독서 클럽인 '면학동지회'에 가입했다."

<경남신문>은 '평생라이벌 YS-DJ, 애증의 '특수관계' 막내려'란 제목의 기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했던 오랜 애증의 세월도 종언을 고했다"며 "두 사람은 민주화 투쟁에서는 손을 잡았던 '동지'였지만 권력 앞에선 한 치도 물러섬이 없었던 '맞수'였다"고 아쉬워했다.

"역대 맞대결 전적은 2승1무1패로 YS가 우위였지만 DJ는 97년 대통령에 당선해 호각세를 이뤘다"는 기사는 "그러나 YS는 지난 10일 DJ를 전격 문병, 화해를 선언함으로써 애증으로 점철됐던 두 사람의 관계는 극적으로 반전됐다"고 전했다.

<국제신문> 19일자 1면.
▲ 인동초 지다... <국제신문> 19일자 1면.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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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비교해 보도한 기사도 눈에 띈다. <국제신문>은 '정치스타일 달라도 성격 닮은 꼴 DJ-노'란 제목의 기사에서 "두 사람의 만남은 영남 이상주의자와 호남 현실주의자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집념과 불굴의 의지만큼은 닮은 꼴이었다"며 고인들의 뜻을 함께 기렸다. 그러면서 김 전 대통령의 서거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도 무관하지 않음을 지적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을 접하고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는 남편을 잃은 슬픔에 잠긴 권양숙 여사의 손을 부둥켜 잡고 오열했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충격과 슬픔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정치권의 일부 시각이 나오는 이유이다."

이날 <영남일보>는 '지역주의 청산을 이루는 계기를 만들자'며 뼈 아픈 대목을 주문했다. ' DJ 서거, 지역주의 청산 계기 되길'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강하게 묻어 난다.

"그의 서거는 지난 반세기 가까이 대한민국 정치를 움직여 온 이른바 '3김(金) 시대'의 막이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김영삼·김대중·김종필로 대변되는 3김은 격동의 한국 정치사에서 근대화와 민주화를 이루는데 상당부분 기여했다.

하지만 한국정치의 한계인 지역주의와 보스정치, 금권정치라는 폐단(弊端)을 불러왔다. 특히 우리 정치는 3김이 만든 지역주의의 정치 틀에서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은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한국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 정치를 청산하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강원] "DJ, 민의원 보궐선거에서 처음으로 당선한 곳...제2의 고향"

<강원도민일보>가 내보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관련 기사들.
▲ 강원도는 DJ 제2의 고향... <강원도민일보>가 내보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관련 기사들.
ⓒ 강원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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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지역도 슬픔이 크긴 마찬가지. 김 전 대통령이 1961년 5월14일 민의원 보궐선거에서 처음으로 민의원에 당선한 곳이다. 김 전 대통령은 1956년 자유당 독재정권에 맞서기 위해 본적지를 인제지역으로 옮긴 이후 민의원 선거에서 세 차례 고배를 마신 뒤 4번째 보궐선거에서 민주당후보로 당선했다.

이 지역 언론들이 '고인의 정치적 고향'이란 표현을 쓰는 이유다. <강원일보>는 "후배들 찾아가면 차비 걱정해주던 사람"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인제는 김 전 대통령이 1961년 5월14일 민의원 보궐선거에서 처음으로 민의원에 당선한 곳인데다 부인 차용애(1959년 작고) 여사를 저세상으로 떠내 보낸 '기쁨과 슬픔'을 간직한 제2의 고향"이라며 "때문에 이 지역민들의 슬픔 크다"고 전했다.

<강원도민일보>도 '청년시절 맺은 인연 평생 갔다'란 제목의 기사에서 고인과 강원도의 관계를 조면했다. "61년 5월 31일 치러진 보궐선거에 나선 김 전 대통령은 4번의 도전 끝에 마침내 금배지를 달았다"며 "이 같은 인연으로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강원도가 자신의 '정치적 고향'이라며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고 밝혔다.

"역대 대통령들에 비해 강원도를 찾는 발걸음이 잦았던 김 전 대통령은 그때마다 강원도의 낙후성을 지적하면서 지역간 균형발전을 위해 강원도에 대한 배려를 강조했다"는 기사는 "김 전 대통령의 강원도에 대한 애정은 재임시절 중앙고속도로 건설, 양양국제공항 건설, 영동고속도로 4차선 확장사업 등 각종 SOC사업이 마무리되는 성과를 낳았다"고 보도했다.

또한 이 지역 언론들은 "김 전 대통령이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북한에 대한 햇볕정책은 유일한 분단 도이자 대북전초기지인 강원도에는 기회로 다가왔다"고 보도해 지금과는 상황이 대조적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주었다.  

[제주] "'4.3'의 한 풀어준 분인데...안타까움 금치 못해"

<제주일보>의 김 전 대통령 서거관련 기사들.
▲ 지역의 4.3 한 풀어주셨는데... <제주일보>의 김 전 대통령 서거관련 기사들.
ⓒ 제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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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역도 충격에 빠진 채 슬픔과 함께 깊은 애도를 표하는 도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 지역 언론들은 "역사의 그늘에 파묻혀 망각을 강요당했던 4.3에 대한 진상규명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4.3특별법)'을 제정한 업적에 제주도민들은 위대한 정치인의 서거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제주일보>는 '제주도민들 "4.3의 한 풀어준 분인데...안타까움 금치 못해"'란 제목의 기사에서 "김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도내 각계 단체와 인사들은 큰 충격에 빠진 채 슬픔과 함께 깊은 애도를 표했다"며  4.3유족회 분향소 표정에 초점을 맞췄다.

"김 전 대통령의 결단으로 1999년 12월 26일 4.3특별법 제정을 이뤄냈으며, 이듬해 국민화합 차원에서 진상규명과 보상을 위해 '4.3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를 설치하면서 희생자와 유족들은 명예를 회복하게 됐다"고 한 기사는 "4.3유족회는 김 전 대통령의 장례에 맞춰 제주에 분향소 설치와 함께 조문단을 파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제민일보>도 '제주 역사·발전 새로운 이정표 마련'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김 전 대통령과 제주도와의 인연을 부각시켰다. 기사는 "18일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민의 정부 5년간 '4·3특별법' 과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을 제정하는 등 각별한 애정을 보이면서 제주 역사와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이어 기사는 "김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중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4·3특별법)을 제정, 반세기 이상 왜곡된 채 도민들에게 한으로 남아있던 제주4·3역사 진상규명의 단초를 마련하는 한편 38년간 말로만 그쳤던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을 제정하는 등 새로운 제주 백년대계의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했다"고 의미를 추가했다.

신문은 또한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기간 중 제주순방 5회, 퇴임후 1회 등 제주를 여섯번 방문했다"며 "지난 2000년 12월 제주순방은 노벨상 수상 이후 첫 방문지로 선택했고, 지난 1998년 제82회 및 2002년 2차례 제주에서 열린 전국체전에 참석, 치사를 했으며 지난 2001년 제1회 제주평화포럼에 직접 참석, 기조연설을 실시하는 등 '세계 평화의 섬 제주' 지정을 견인했다"고 덧붙였다.




태그:#김대중대통령 서거, #지역신문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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