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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와 기자가 나눈 대화록을 정리한 것이다. 기자는 지난 11일 '노무현과 지역주의'라는 주제로 정식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에 박 대표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이 대화록은 박 대표의 저서 <만들어진 현실>이 제기하고 있는 한국지역주의의 해석문제를 적절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국지역주의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독자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대화록을 싣는다.

 

- '만들어진 현실'은 무슨 의미인가?

"많은 사람들이 지역주의 때문에 한국 정치가 망하고 나라가 망한다며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정의하는 우리의 현실이란 실제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것이 아닌 특정의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위해 '창조'되고 '동원'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런 제목을 붙였다. 한마디로 말해 지역주의에 관한 우리 사회의 지배적 해석이 왜 잘못인가를 밝혀보려 했다."

 

- 이 책의 부제인 '한국의 지역주의,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가 아닌가'라는 제목이 특이한 것 같은데.

"오래 전 쓴 글의 제목을 다시 불러들인 것이다."

 

- 언제 쓴 글인가?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망국적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제안했을 때,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제안으로 청와대 측과 번갈아 지상 논쟁을 했다. 최인호 청와대 부대변인이 먼저 지역주의 망국론을 말하면서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말라'(2005년 9월 10일자)는 글을 썼고, 필자가 뒤이어 '한국의 지역주의,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가 아닌가'(2005년 9월 12일자)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 노무현 전 대통령과 지역주의를 주제로 직접 대화해본 적은 없나?

"있다. 2004년 봄, 필자는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대통령은 지역주의의 심각성을 강변했다. 특별한 방법이 없을까를 물었다. 필자는 지역주의 문제를 그렇게 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설명하고자 했다. 호남의 동질적 정치 성향을 지역주의로 단순화하기보다는 차별에 대한 항의 내지 지역 차별을 만든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 의식으로 보면 문제를 합리적이고 점진적으로 풀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내 이야기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지역주의, 그냥 심하다 하면 안 됩니까'라는 말과 함께 논의를 종결시켰는데, 그때 필자는 노무현 대통령과는 지역주의 때문에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는 전제 위에서만 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노 전 대통령 말대로 지역주의 심하다고 하면 안 되나?

"우선 사실이 그렇지 않다. 한국은 경제, 문화, 역사, 인종, 언어, 종교 등 무엇을 기준으로 보아도 지역 간 차이가 크지 않은 매우 동질적인 나라이다. 다른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그렇다. 따라서 한국의 지역주의가 심하다고 하고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닌, 한국 정치가 잘 안 돌아가는 것에 대해 '책임을 전가시킬 만인의 공적(公敵)을 불러들이려는 조바심의 결과이자, 사회를 근원적 악(망국적 지역주의)과 그에 맞서는 선(반지역주의)으로 양분시키고 사람들로 하여금 정의로운 전쟁에 나서도록 흥분시키지만, 그러는 사이 우리가 대면해야 할 진짜 현실을 사라지게 만드는 이데올로기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태를 그렇게 정의해 놓고 나면 그 다음은 지역주의 없는 세상을 위해 뭔가 획기적인 방법을 찾고자 하는 초현실적 정치를 꿈꾸게 될 뿐이다. 그 결과 2004년 총선에서 민주화 이후 최초로 집권당 단독으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함으로써 역대 어느 정권도 갖지 못한 좋은 정치적 조건을 갖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허비했고,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고 비판하자 한 해(2005년)는 지역주의 때문에 아무것도 안 된다며 대연정 논란으로 보냈고, 다음해(2006년)는 원 포인트 개헌론으로, 그 다음해(2007년)는 예기치 않게 한미 FTA를 한국 경제의 대안으로 밀어붙이는 등 끊임없이 대전환의 정치를 추구하게 된 것이다."

 

지역주의 집착이 '초현실적 정치에 대한 꿈'으로 이어졌다

 

- 망국적 지역주의를 극복하자는 것이 정치적으로 유해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망국적 지역주의는 그 자체로 '나쁜 어떤 것'이니 '나쁜 것을 극복하자'고 하면 이에 반대할 방법은 없다. 합리적인 논의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더 문제는 그것이 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닌 특정의 이데올로기적 권력 효과를 갖는다는 데 있다. 대개의 경우 그런 담론은 선거에서 표가 특정 후보나 정당에 집중되어 나타난다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지역주의 망국성을 말하는데, 그것의 보이지 않는 효과 가운데 하나는 지역주의 문제의 핵심을 호남의 문제로 부각시킨다는 데 있다.

 

한국의 지역주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호남의 지역주의가 형성되기 이전에 호남 차별의 지역주의가 먼저 만들어졌다'는 사실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냉전 반공주의라고 하는 지극히 배제적인 이데올로기적 환경과, 그 위에서 전개된 권위주의 산업화가 필연적으로 수반할 수밖에 없었던 정치경제적 긴장을 누군가에게 전가해야 할 필요 때문에 작위적으로 만들어지고 동원된 것이다. 성장의 혜택을 분배하는 문제를 둘러싼 갈등에서 좀 더 유리한 위치를 갖고 싶어 했던 비호남 출신의 자연스러운 욕구가 반호남 지역감정의 확산을 도왔다.

 

노사 관계든 정당체제든 기능적 대표의 체계가 발달했다면 그러한 비이성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작용을 제어할 수 있었겠지만, 오랜 권위주의 체제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민주화 이후에도 이런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못했다. 이런 사실에 대한 이해 없이 지역 간 표가 불균등하게 나타난 현상을 망국적 지역주의 때문이라고 흥분하는 것은 문제를 전도시키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낳는다."

 

- 노무현 대통령이나 친노파들의 지역주의관과는 매우 다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필자는 정치인 노무현에게서든 대통령 노무현에게서든 호남 차별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아마도 호남의 과도한 집단성을 문제로 보거나 최소한 호남 역시 지역주의 아니냐고 생각하는 듯했다. '동교동계'로 불렸던 김대중의 직계 세력과 오랜 갈등을 거치면서, 호남과 호남에 기반을 둔 세력이 민주파 안에서 기득권이 되는 것을 더 문제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그들이 먼저 지역 독점을 포기해야 한다고 보았을 수도 있다.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도 노 대통령은 '호남 사람들이 나를 위해서 찍었나요. 이회창이 보기 싫어 이회창 안 찍으려고 나를 찍은 거지'라는 말을 했는데(2003년 9월 17일), 그 말이야말로 호남에 대한 노 대통령의 무의식 세계를 잘 드러내는 것 같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기간 동안 정치 운영에 있어서 많은 문제가 발생한 데에는 지역주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큰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정치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지역구라고 하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반을 가꿔 본 적이 없는 정치가 노무현이 늘 매진했던 것은 전국적 정치인이 되는 길이었다. 그는 늘 한국 정치 전체와 맞서고자 했다. 반지역주의는 그가 한국 정치 전체와 자신을 맞서게 해주는 연결 고리였고, 그는 망국적 지역주의를 해결한 지도자가 되고 싶어 했다. 그러니 우리 사회에서 지역주의라는 것이 상당 부분 전도된 이데올로기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지역주의 없는 사회를 말하는 것 자체가 이데올로기적 허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려 하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대통령으로 있으면서도 노 대통령은 끊임없이 열린우리당에게 호남을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놀라운 일은 그 기간 동안 지지 기반이 확대되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 '정통 야당'의 양대 지지 기반인 수도권과 호남 가운데 수도권이 사실상 궤멸되는 역설적 경험을 했다. 그 결과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역대 최저 지지율로 한나라당에게 대통령 권력과 의회 권력을 내줘야 했다. 문제를 다르게 접근했더라면, 결과는 훨씬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지역주의 문제를 이해하는 방법은 중요하다."

 

- 재임 중 노 전 대통령과는 더 만나지 않았나?

"2004년 겨울에 다시 만났다. 참여정부의 정치적 비전을 작은 책자로 만들었으면 한다며 청와대로 불러서 갔다. 책의 구상을 들으면서 나는, 모든 이에게서 존경받고 역사에서 평가받을 수 있는 정치가가 되고 싶어 하는 노 대통령의 열망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현실에서 민주주의는 다수 시민의 의사를 대신해 일정 기간 동안 특정의 정당 내지 정치 지도자가 국가를 운영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는데, 노 대통령은 제한된 시간뿐 아니라 제한된 지지자들로부터도 자유로워지고 싶어 했다.

 

그러다 보니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를 변화시키고, 노동시장의 불안정성과 사회 하층의 삶을 개선하는 의제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국가보안법 같은 우리 안의 냉전적 규율의 틀을 변화시키는 의제 역시 갑자기 낡은 것이 되어 버렸다. 돈과 인맥 없는 사람들에게 법이 오히려 위협으로 작용하는 사법 현실을 개선하는 의제도 너무 사소한 것이 되어 버렸다. 한마디로 말해, 불가피하게 갈등을 동반하는 개혁의 길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사라진 느낌이었다.

 

대신에 선진 한국, 능동적 세계화, 동북아 경제 중심 등 다소 낭만적 비전을 어떻게 하면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큰 열의를 나타냈다. 하지만 사회의 갈등적 현실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이해 집단 내지 정치 세력 간 이견과 다툼을 조정하는 섬세함과, 때로는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단호한 결정을 내리는 과감함을 균형감 있게 조합해 냄으로써 다수 보통 사람의 생활 조건을 개선해 가는 민주정치의 가치를 중시하는 나로서는 대통령의 초현실적 생각에 부응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날 두 시간 가까이 대통령의 구상을 주의 깊게 듣는 것을 끝으로 더 이상 만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지역주의 문제를 이해하는 방법의 차이에서 시작된 노 대통령과의 거리감은 이처럼 다른 계기에서도 쉽게 재현되었다."

 

"정당체제의 사회적 기반 넓혀야 지역구도도 완화된다"

 

- 유시민 전 의원 역시 지역주의에 대해서는 노 전 대통령과 같은 생각이고 그래서 자신의 최근 책에서 최장집 교수와 그 제자인 당신을 비판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물론 동의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가 자신의 정치이념으로 반지역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옳은 일도 아니고 좋은 일도 아니라고 본다. 사실 필자가 유시민 전 의원과 지역주의 문제로 대립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0년 지방선거를 앞둔 어느 날, <중앙일보>에서 정치 평론가들을 초청해 선거 보도를 남다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해 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열 명 남짓 참석한 그 자리에 유시민 씨가 있었는데, 그는 한국의 선거라는 게 DJ 지팡이 하나면 끝나는데 뭘 더 말할 게 있냐는 자신의 입장을 줄곧 강조했다.

 

필자는 지역별로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표가 집중되는 것에도 합리적 이유가 있고, 사람들이 무조건 DJ가 싫고 좋아서 투표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선거구별로 어떤 후보들이 어떤 내용으로 경합하느냐에 따라 출신 지역이라는 요인이 약화되기도 하고 강화되기도 하는 사례를 말했다. 나아가 이러한 사실을 주목해 정당들이 정책적 차이를 두고 경쟁하는 정치 환경이 만들어질수록 지역을 기준으로 한 정치 갈등 구조는 완화될 수 있다는 결론을 강조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화는 서로 평행선을 달릴 뿐이었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대연정을 제안했을 때도 유시민 씨는 이를 지지한 몇 안 되는 정치인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지역주의 구체제의 자식'인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대연정을 통해서만이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엄연히 존재하는 망국적 지역주의의 문제를 회피한다면서 '자기만족의 지적 오만', '논리적 도착', '분열증' 등의 용어를 동원해 공격했다. 지역주의가 있는 한 진보든 개혁이든 가당치도 않다는 게 그 요지였다. 나는 그의 논리가 왜 잘못된 것인지, 그 당시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분명히 말했다."

 

- 지역구도 극복을 위해 선거제도를 중대 선거구제로 바꾸자는 주장에 애해서는 어떻게 보나.

"현행 단순다수제를 '지역주의 선거제도'라고 매도하는 것을 가끔 본다. 그러면서 중대선거구제를 채택하면 한 정당이 특정 광역지역을 독점하는 일은 없다는 말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 민주적 원칙을 기준으로 볼 때, 중대선거구제는 최악의 선거제도이다. 중대선거구제의 전형은 1990년대 중반까지 시행되다 여러 부작용 때문에 폐지된 일본의 예가 있지만, 우리에게도 경험이 없는 것이 아니다.

 

유신체제와 5공화국에서 지역구마다 2명의 후보를 뽑는 중선거구제를 채택한 바 있으며 이때 권위주의 집권당은 호남을 포함한 전국의 거의 모든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있었다. 반면 야당은 몇 개로 나뉘어 나머지 절반의 지역구 의원을 두고 다퉈야 했다. 그 때문에 권위주의 집권당은 어떻게 선거를 치루더라도 과반의석을 쉽게 획득할 수 있었다. 1988년 선거제도를 둘러싼 다툼에서 결국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YS와 JP가 주장했던 것도 중대선거구제이다.

 

중대선거구제는 표의 비례성을 왜곡하는 효과를 갖는다. 비례대표제하에서는 선거구 크기가 늘수록 비례성이 증가하지만, 다수대표제하에서 선거구 크기를 늘리게 되면 비례성은 오히려 위협받는다. 강한 정당이 존재할 경우 이들에 의해 제2당 이하를 분열시키기 용이하며 그렇지 않더라도 기존의 유력 정당들이 군소정당을 희생시켜 그 혜택을 나눠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제도권 안에 들어온 정당들의 기득권은 소선구제보다 용이하게 유지된다. 게다가 정당진입의 문턱이 낮아짐으로써 지역기반을 갖는 군소정당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실제로 다수대표제가 중대선거구제와 짝을 이루는 선거제도를 채택하는 사례는 거의 찾을 수 없다.  지역주의 극복이 정치개혁의 알파와 오메가가 되면 잘못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지역구도 극복이 구실이 되고 맹목이 되면 민주적 원칙과 부합하지 않는 제도가 용인될 수 있다. 선거제도를 개혁하고자 한다면 참여의 증대와 대표성의 확대, 책임정치의 강화와 같이 더 민주적인 가치의 실현이 선거제도 개혁의 문제의식이자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럴 때만이 한국정당체제를 더 넓은 사회적 기반 위에 올려놓으면서 결과적으로 지역구도의 완화에도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태그:#박상훈, #만들어진 현실, #지역주의,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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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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