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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법이 통과됐으므로 종합적인 후속대책을 마련해 미디어 환경 선진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선진국에 비해 늦게 출발한 만큼 국제경쟁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빨리 따라잡을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말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문제의 미디어법을 기정사실화 하고 나섰다. 민주당이 헌법재판소에 청구한 '미디어법 권한쟁의심판 및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에 대한 첫 번째 심리도 열리지 않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헌법재판소의 자유로운 판단을 어렵게 한다는 비판적 문제제기가 잇따르고 있다.

 

최영묵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MB 문제의 핵심은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점"이라며 "행정부 수반으로서 당연히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에 자신의 견해를 밝혀야 하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마치 한 정파의 수장인 것처럼 행동하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최 교수는 "대통령이 한나라당과 조중동 같은 특정 정파와 매체를 뒷받침하고 대표하는 발언과 조치, 요구로 일관하는 것은 그 자체로 대통령답지 못한 행동"이라며 "대통령의 미디어법 기정사실화는 결국 헌법재판소의 자유로운 판단을 방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언론의 기본 기능은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인데, 친권력적인 매체들로 언론을 장악하고 정치적 색깔이 분명한 신문과 대기업에 방송 권력까지 허용하는 것은 파시즘적 행태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행정부의 수반인가 특정 정파의 대표인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황희석 변호사는 "미디어 관련법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것은 이미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사안"이라며 "무엇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마당에 대통령이 나서 문제의 법안을 기정사실화 하고 밀어붙이는 것은 국민적 반발을 무시한 일방통행"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결국 조중동을 언론재벌로 만들려는 이해관계에 충실한 노력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박석운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는 "국민을 무시하는 아주 오만불손한 태도"라며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는 도중에 대통령이 잘못된 미디어법의 굳히기에 나서는 것은 국민적 소통은 아예 안 하겠다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지상파 방송에 대한 여러 공공적 규제가 있음에도, 종합편성채널들에게는 그조차도 빼놓으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굴 텐데, 아무런 공공적 규제 없이 풀어놓겠다는 것은 결국 방송의 시장화를 촉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지난달 27일 KSOI의 여론조사에서는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날치기 강행 처리에 대해 '잘못된 일'이라고 답한 응답자의 비율이 64.5%로 나타났다. 또한 '미디어법 통과는 무효'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64.2%에 달했다.

 

이 같은 조사결과 등을 토대로 미디어 관련 전문가들은 국민의 과반 이상이 절차상, 법률상 하자가 있다고 판단하는 미디어법을 이명박 대통령이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세부계획을 추진하도록 주문하는 것은 그 자체로 국민과 '불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질타했다.

 

방통위, 시행령으로 보수언론과 대기업에 더 큰 혜택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도 지난 6일 문제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만들고 '미디어법 굳히기'에 나서 빈축을 사고 있다. 국회에서 강행 처리된 방송법보다 시행령으로 보수언론과 대기업에 더 큰 혜택을 주려고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에는 ▲지상파방송과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상호진입 지분비율 33% ▲신문·방송 겸영 시 여론집중도 문제를 조사하는 7인~9인 사이의 미디어다양성위원회 구성 등이 담겼다.

 

<한겨레>는 지난 10일자 보도에서 "지상파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가 33%까지 상호 지분소유가 가능하도록 한 건 지상파 진출을 노리는 신문과 대기업에 또 하나의 길을 열어준 셈"이라고 비판했다.

 

신문사나 대기업이 친인척이 아닌 사람을 내세워 종합유선방송을 인수한 뒤, 다시 지상파 지분 33%를 획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1997년 세계적인 미디어 재벌인 루퍼트 머독이 일본의 소프트뱅크와 합작해 자회사의 자회사를 세우는 방식으로 <아사히TV> 지분 21%를 사들여 경영권 인수를 시도했다가, 아사히TV의 반발에 밀려 다음해 지분을 다시 매각한 적이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상호진입이 허용된다면 거대 종합유선방송사업자들이 돈은 없지만 콘텐츠 생산능력을 갖고 있는 지역지상파에 욕심을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경환 상지대 교수도 "법적으로 특수관계자 규정이 있다고 하지만 시장에서는 그런 게 지켜지기 힘들다"며 "가령 거대 신문사는 자신의 매체 파워 등을 이용해 5% 지분만으로도 종합유선방송을 장악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지상파를 거머쥘 수 있게 된다"고 진단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 같은 문제를 담고 있는 방송법 시행령을 12일 입법예고했다. 이에 따라 이 개정안은 다음달 1일까지 의견을 수렴하고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사, 방송통신위원회의 의결,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 국무회의를 거쳐 시행하게 된다.

 

언론재벌 탄생을 위한 준비된 시나리오... 반대파는?

 

종합편성채널 사업에 참여할 뜻을 갖고 있는 보수언론들은 이 같은 움직임을 선도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발언에 무게를 싣고 방송통신위원회의 움직임을 비중 있게 보도하는 데서 나타난다. 무엇보다 종합편성채널권자들이 시장에 잘 안착할 수 있도록 세제지원 등 여러 지원책을 서둘러야 한다는 권고까지 하고 나서 실익을 위한 행동에 나선 게 아니냐는 지적도 받고 있다.

 

<조선일보>는 11일치 미디어(A8)면을 통해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의 말을 따 "정부는 미디어법 통과로 탄생하는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 사업자들에 대한 구체적 지원방안을 본격적으로 모색하고 있다"며 "이들이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 광고관련 규제 완화, 사업자에 대한 세제지원 등을 포함한 여러 지원책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그동안 엄격하게 광고제한 품목으로 묶여 있던 조제분유나 생수 등 '방송광고 금지 품목'에 대한 규제 완화가 추진되고 종합편성채널 전용 드라마펀드 활성화 등 다양한 방안이 마련될 전망이라고 썼다.

 

김성조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이 방송산업을 지식기반 산업의 범주에 포함시켜 세제 혜택을 주자는 아이디어를 낸 뒤로 정부와 여당에서는 방송장비업체나 콘텐츠 업체 등까지 포함시킨 규제완화 방안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조망했다. 심지어 안민호 숙명여대 정보방송학과 교수의 발언을 인용해 "직접 지원도 좋지만 종합편성채널과 경쟁하게 될 지상파 방송사들에 의해 불공정한 경쟁환경이 조성되지 않도록 감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실었다.

 

<동아일보>는 12일치 종합(A5)면을 통해 "일본도 미디어매체 간 칸막이를 없앤다"며 "일본정부가 방송과 통신 융합추세에 따라 방송 관련법과 통신법을 단일 법안으로 묶는 법안마련에 착수한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그야말로 '신문방송의 겸영은 대세'라는 보수언론의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뜻이 엿보인다.

 

<중앙일보> 또한 12일치 종합(3)면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연내로 예정된 종합편성채널 사업자 선정 등의 작업을 신속하고 차질 없이 추진하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한국의 경우 방송산업 규제완화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크게 늦었다"며 "이제라도 매체간 장벽이 낮아지고 문호가 열린 성과를 실질적으로 낼 수 있게 법령개정 작업 등 후속조치에 속도를 내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중앙일보>는 "이명박 대통령의 '미디어 환경 선진화' 작업에는 ▲종합편성 및 보도채널 사업자 선정 ▲디지털 전환 ▲민영 미디어렙 도입 ▲방송법 시행령 개정 등이 총체적으로 녹아 있다"며 "디지털 전환을 빼고는 대부분 올해 안에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사안들"이라고 보도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한 미디어평론가는 "이명박 대통령과 방송통신위원회, 그리고 종합편성채널 사업자가 되려는 조중동은 마치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언론재벌 탄생을 위해 뛰고 있다"며 "문제는 반대진영의 문제제기가 무시해도 좋을 만큼 너무 미약하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민주당이 국회에서 날치기 처리된 미디어법의 원천무효를 제기하며 21일간 전국 민생투어를 하고 있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한국사회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현실을 알아야 한다"고 쓴웃음 지었다.


태그:#미디어 악법, #조중동, #이명박 정부, #방송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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