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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시대 일본인들이 한국의 정기를 끊기 위해 쇠말뚝을 전국 각지에 박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많은 산에서 쇠말뚝이 발견되고 있으며 이를 철거하는 일이, 민족정기를 회복하는 국가적 사업이 된 시절도 있었다. 일제가 민족정기를 끊어 한국에 인재가 나오지 않도록 쇠말뚝을 박았는지는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측량이나 방위 조사를 위해 말뚝을 박았다고 주장한다.

아직까지 일제가 풍수 모략에 의해 이런 일을 했다는 확정적인 증거는 없지만 개연성은 있어 보인다. 우리 몸에 경혈과 경락이 있듯이, 명산에서 흘러나오는 지맥은 민족의 정기를 품고 있으므로 일본 제국주의가 한민족의 정기를 말살하려고 명산의 꼭대기에 쇠말뚝을 박아 넣었을 수도 있겠다.

약간 다른 관점에서 원시인은 대지도 사람의 몸과 같이 생각하여 쇠말뚝을 찔러 다스릴 수 있다고 여겼다. 중국의 반고 신화에 따르면, 천지를 창조한 반고가 죽어 그의 숨결은 바람과 구름, 목소리는 우레, 왼쪽 눈은 해, 오른쪽 눈은 달이 되었다고 한다. 손과 발은 산, 피는 강물, 힘줄은 길, 살은 논밭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던 사람들은 자연을 우리 몸과 같은 존재로 여겨 몸을 침으로 다스리듯이, 대지도 침을 찔러 다스릴 수 있다고 여겼다.

余(여) 余(여) 舍(사) 徐(서) 行(행)
 余(여) 余(여) 舍(사) 徐(서) 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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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여)의 갑골,  余(여)의 금문

余(여)는 '나'라는 의미로 쓰이지만 我(나 아), 予(나 여)와 마찬가지로 소리를 빌린 가차 용법이고 갑골에서 보는 것처럼 윗부분이 손잡이, 아랫부분이 찌르는 날 부분이다. 양쪽의 점은 소전에서 첨가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리가 달린 침 혹은 쇠말뚝의 형상이 余(여)이다. 이러한 형태의 침으로 고름을 제거하는 수술용 바늘로 쓰거나 도로 등에 있을 악령을 제거하는 쇠말뚝으로 사용한 것이다. 余等(여등)

舍(사)의 금문

舍(집 사)는 余와 기도문이 쓰인 신주단지(ㅂ)의 조합이다. 신주단지를 손잡이가 달린 침(余)으로 찔러 기도를 무효화하는 것으로 '버리다'는 뜻이 본래 의미로 이는 捨(버릴 사)로 쓴다. 신주단지의 기도 효과를 멈추게 하는 데서 '쉬다', 그리고 쉬고 머무르는 의미에서 '집'이라는 뜻이 도출되었다. 不舍晝夜(불사주야), 校舍(교사), 取捨(취사)

徐(서)의 소전, 行(행)의 갑골

彳(척)은 사거리를 나타낸 行(다닐 행)의 왼쪽 부분으로 역시 길을 나타낸다. 손잡이가 달린 침으로 도로의 악령을 제거하여 여유롭게 길을 지날 수 있게 된 것을 徐(천천할 서)라 한다. 徐行(서행)

途(길 도)는 辶(착)과 余(여)의 조합이다. 辶(착)은 彳(척)과 발바닥 모습인 止(지)가 합쳐진 자로 往來(왕래)를 의미한다. 침으로 악령이 제거된 길을 途(도)라 한다. 前途(전도)

除(제) 塗(도) 斜(사) 斗(두) 餘(여)
 除(제) 塗(도) 斜(사) 斗(두) 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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除(제)의 소전

阝(부)는 신이 하늘과 땅을 오르고 내릴 때 쓰는 하늘 사다리이다. 신이 강림하는 곳은 거룩한 땅이므로 침(余)으로 악령들을 제거했다. 그래서 除(제)는 '없애다, 버리다'는 뜻이 된다. 除去(제거)

塗(도)의 소전

涂(도랑 도)는 途(도)의 구성 원리가 유사하다. 途(도)가 다닐 수 있게 정화된 길을 의미하듯이 涂(도)는 정화된 물길인 도랑을 의미한다. 도랑에 흙(土)을 덧붙인 자는 塗(진흙 도)이이다. 또  棺(관)에 사악한 영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진흙 따위를 발랐으므로 '바르다'는 의미도 있다. 途(도)와 통하여 '길'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塗炭(도탄), 糊塗(호도), 道聽塗說(도청도설)

茶(다)는 艹(초)와 余(여)가 변한 형태의 조합이다. 원래 茶의 본 글자는 荼(씀바귀 도)였다. 나중에 인도의 차인 '짜이'를 나타내기 위해 씀바귀 도와 구별되는 茶를 만들었다. 발음 '차'는 '짜이'에서 왔다. 차는 탁한 황하의 물을 정수하는 기능이 있다. 茶에서 余(악령이나 고름을 제거하는 도구)가 淨化의 의미가 있으므로 淨水(余)를 위한 풀(艸)로 이해해도 좋겠다. 茶菓會(다과회)

斜(사)의 소전, 斗(두)의 금문

斗(말 두)는 큰 국자를 나타낸 자로 곡식을 세는 단위이다. 北斗七星(북두칠성)에서 斗는 이 별이 국자 모양임을 나타낸다. 余는 큰 침으로 기울기 쉽고 斗도 곡식을 푸기 위해서 기울어야 하므로 斜(사)는 '기울다'는 의미이다. 傾斜(경사)

餘(여)의 소전

큰 침(余)으로 땅의 악령을 제거하여 정화된 땅에서 풍부한 먹을거리(食. 밥 식)를 거둘 수 있었으므로 餘(남을 여)는 식량이 '남다'는 뜻이다. 餘裕(여유)

땅에 악령을 제거하기 위해 찌른 쇠말뚝은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만약 일제가 조선의 맥을 끊기 위한 쇠말뚝을 박았다면 이는 악의적인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친일 잔재가 청산되지 않았다. 얼마 전 김두한의 딸로 알려진 김을동 의원이 친일파의 후손들이 주요 관직을 점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비단 官界(관계)뿐 아니라 학계 문화계 경제계 등 곳곳에 친일파 후손들이 주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실제 쇠말뚝뿐 아니라 전반적인 한국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쇠말뚝처럼 친일 후손들이 자리 잡고 우리 사회의 진보의 맥을 끊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김점식 기자는 새사연 운영위원이자, 현재 白川(시라카와) 한자교육원 대표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자 해석은 일본의 독보적 한자학자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의 문자학에 의지한 바 큽니다.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쇠말뚝, #일제시대, #한국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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