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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8월 방상석(필승체육관) 선수에게 2라운드 KO승을 거두고 환호하는 조영섭(88체육관) 선수.
 1984년 8월 방상석(필승체육관) 선수에게 2라운드 KO승을 거두고 환호하는 조영섭(88체육관) 선수.
ⓒ 조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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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체육관 조영섭 7전 전승(4KO) 무패. 그이 왼쪽 훅에 걸리면 상대선수는 매번 눕는다. 조영섭은 플라이급 선수지만 주먹의 파괴력이 대단하다. 무엇보다 손이 많이 나가고 승부근성이 뛰어나다.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오나 할 정도로 패기와 저력이 있다. 주무기는 왼쪽 훅, 그리고 몸통가격에도 나름대로 도가 트였다." <스포츠동아> 84년 보도

돈도 빽도 없는 그는 주먹에 인생을 걸었다. 1983년 로마월드컵 2차 선발전에서 우승하면서 금메달을 겨냥하던 그는 최종 선발전에서 그 유명한 허영모 선수에게 패하면서 쓴잔을 마신다. 32전 27승 5패(19KO) 전적의 아마추어 선수생활을 접고 프로로 전향한 그는 분노의 주먹을 휘두르면서 세계챔피언 기대주로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상대선수가 아닌 불운이 먼저 그를 쓰러뜨렸다. 1986년 치명적인 다리 골수염으로 링을 떠나야 했던 그는 프로 14전 12승 2패(7KO)의 전적을 남기고 현역 선수를 마감했다. 오직 주먹을 믿으며 달려온 그는 좌절의 파도에 떼밀려 고향 군산으로 낙향했다.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 같은 청춘, 그때 나이 스물 셋이었다.

불운의 복서에서 억대 연봉의 복싱 프렌차이즈 대표로 변신

세계챔피언 기대주로 주목 받던 시절의 조영섭 선수.
 세계챔피언 기대주로 주목 받던 시절의 조영섭 선수.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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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동구 둔촌역 인근 성내시장 입구 푸줏간을 끼고돌면 허름한 건물 2층엔 30평 남짓한 '문성길 복싱 다이어트클럽'이 있다. 가난한 청년들이 주먹 하나로 인생 승부를 걸던 시절엔 '권투도장' 혹은 '체육관'이었는데 헝그리 정신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날렵한 몸매가 더 잘 통하는 지금엔 '복싱 다이어트클럽'이다.

장대비가 억수로 퍼붓던 지난달 16일 불운의 복서 조영섭(48) 관장을 만났다. 조 관장은 이날 재수가 없었다. 복싱클럽 회원모집 광고를 붙이다가 경범죄 딱지를 떼인 것이다. 그는 먹고 살려고 광고물을 부착했고, 경찰 역시 먹고 살려고 딱지를 뗀 것이다. 피차 먹고 살기 위해 사는 건데 좀 봐줄 수는 없었을까? 혹시 그의 인상이 한몫 한 건 아닐까? 여하튼 재수 없는 하루였다.

조영섭 관장은 선수였다. 불운의 복서였던 그는 눈물을 머금고 사각의 링을 떠났지만 더 이상 밀리면 인생 끝장인 생존경쟁의 링에서는 눈매 날카로운 현역 선수이다. 주무기는 '생존근성'과 '부지런함'이다. 그의 주무기는 경범죄 딱지를 떼이게 한 원인이기도 했지만 둔촌점, 명일점, 송파점 등 4곳의 복싱 프랜차이즈로서 성공을 불러온 동력이기도 했다.

조 관장은 돌주먹 '문성길' 선수의 현역 시절 트레이너이자 절친한 후배이다. 그와의 인연을 통해 2000년 '문성길 복싱 다이어트클럽'을 연 뒤에 '주먹구구'식이 아닌 '고객감동'을 주는 체육관 운영을 통해 관원들을 크게 불려나갔다. 프랜차이즈를 통해 억대 연봉 수입을 올리는 체육관 경영자가 됐지만 자신이 이룬 꿈은 20%에 불과하다며 오늘도 내일도 광고 전단지를 끼고 거리를 누빈다.

가난은 '죄'가 아니라 '죄악'이었다!

인생의 링에서 투혼을 발휘하고 있는 조영섭 관장은 "지팡이에게라도 기대선 안 된다'고 말한다.
 인생의 링에서 투혼을 발휘하고 있는 조영섭 관장은 "지팡이에게라도 기대선 안 된다'고 말한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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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는 한때 권투의 도장이었다. 유제두 선수를 필두로 해서 김광선, 오광수, 허영모, 문성길, 박형옥, 김동길, 전칠성, 이남의, 신준섭 선수…. 83~84년엔 전라도 출신들로만 대표선수를 구성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전라도 출신 권투선수를 묻자 기다렸다듯이 줄줄 외우는 조 관장의 고향은 전북 군산이다. 챔프 김광선 선수와는 초등학교 동창으로 옆집에 살던 친구였다. 그는 군산남교와 군산남중 재학 당시 야구선수로 뛰었으며 해태 출신 조계현과 백인호가 초등학교 야구선수 동기이다. 그는 군산고로 진학하면서 야구를 버리고 권투선수로 전환했는데 그 배경은 돈 없는 설움이다.

운동화를 주워 신고 운동하던 초등학교 야구선수 시절에 그는 회비 5000원을 내지 못해 여러 친구들 앞에서 수모를 당했다. 감독은 합숙훈련에서도 그를 제외시켰다. 그 수모는 뼛속 깊은 한이 됐다. 공사판을 전전하던 가난뱅이 아버지는 '가난은 죄가 아니다'며 아들을 위로했지만 인생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전고투하던 그에게 '가난은 죄가 아니라 죄악'이었다.

그는 후배 양성을 통해 깨진 챔피언의 꿈을 실현하고 싶었다. 1989년 용산공고 복싱부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3년 만인 1992년 제42회 전국중고선수권대회에서 종합우승을 일궜다. 그의 손에 의해 당시 17세이던 고(故) 최요삼 선수가 발굴됐다. 학교의 지원이 크지 않았던 용산공고를 복싱의 신흥명문으로 만든 것은 오로지 그의 집념 때문이었다.

용산공고엔 복싱부를 위한 합숙소가 없었다. 그는 아내를 처갓집으로 보낸 뒤 자신의 집에서 15명의 선수들과 합숙생활을 했다. 그 결과 금메달 2, 은메달 2, 동메달 4개를 따냈다. 1999년 서울체고 코치 시절엔 MBC 권투신인왕전에서 최우수선수상을 받은 국나남 선수를 발굴하는 등을 통해 최우수 지도자상을 받았다. 가난 때문에 한을 품어야 했던 그는 가난 때문에 좌절하는 선수들이 없도록 배려했지만 있는 척, 잘난 척하는 선수들에겐 혹독했다.

'저게 누구 새끼야!'

권투계에선 선수를 이렇게 표현한단다. 선수를 키우는 코치나 감독은 애비다. 무명 지도자 시절에 그의 새끼들은 게임에서 이기고도 판정에선 졌단다. 승부는 주먹으로만 판정되는 게 아니란 걸 깨닫고 1년에 100통이 넘는 편지를 심판들에게 보내고 애경사를 찾아다니면서 무명 지도자 조영섭을 알렸단다. 그는 선수들을 '스파르타' 식으로 혹독하게 훈련시키는 동시에 링 밖 세상의 틈새를 뚫으면서 설움을 극복했다. 냉정한 승부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운 것이다.

체육관 실패와 이혼... 수돗물로 허기 달랬다

사범 역할까지 하면서 체육관을 관리하고 있는 조영섭 관장이 관원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사범 역할까지 하면서 체육관을 관리하고 있는 조영섭 관장이 관원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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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천안으로 내려가 자신의 체육관을 처음으로 차린 그는 피눈물을 흘렸다. 용산공고의 성공을 바탕으로 천안소년원생들과 인근 학생들에게 권투를 지도하는 등 관장으로서 첫발을 내디뎠지만 처절한 실패를 맛봤다. 아내는 권투밖에 모르는 그의 곁을 떠났고, 하나밖에 없는 딸은 고향 어머니에게 맡겨졌다.

불운의 헝그리 복서에서 처참한 인생 낙오자로 추락한 서른넷, 빈털터리로 피눈물을 흘리면서 토한 그의 인생관을 들어보자.

"권투나 인생은 똑같다. 연습에서 땀을 적게 흘리면 실전에서 피를 많이 흘린다. 권투에서는 쓰러지면 말려줄 레퍼리가 있지만 인생에서 쓰러지면 패가망신이다. 철저히 혼자라는 독립군 정신으로 전투태세를 갖추자. 인생의 많은 장애물을 넘다가 쓰러지고 엎어져도 다시 일어나 핏빛 눈빛으로 앞을 주시하는 도전정신, 이것이 필요한 과제가 아닐까."

13년 전의 일이다. 서울시권투선수연맹 간부를 만난 그는 '배가 고프니 밥 좀 사 달라!'고 호소했지만 거절당했단다. 신설동에서 둔촌동까지 7시간을 걸어서 돌아온 그는 수돗물로 허기를 채웠단다. 얼마 뒤엔 너무 배고파서 비디오기기를 팔아서 고기를 사먹을 정도로 비참한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좌절하진 않았다. 그의 둔촌동 체육관 탈의실엔 '포기하지 말라, 절대!'라는 표어가 붙어 있다. 그는 '지팡이에게라도 의지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2000년 문성길 선수의 도움으로 둔촌동에 체육관을 차린 그는 다른 체육관보다 2시간 먼저 문을 열고 2시간 늦게 문을 닫았다. 한때는 사범을 썼지만 지금은 조 관장이 사범 역할을 하고 4년 전에 재혼한 중국인 아내는 청소를 맡는다. 인생 밑바닥을 경험한 그가 가장 거부하는 단어는 '실패'다. 이혼과 가난 등을 뼈저리게 겪었지만 "'실패'한 게 아니라 잠깐 '휘청'거렸을 뿐"이라며 "꿈이 있는 자에게 장애물은 단지 연습코스일 뿐"이라고 역설한다.

웃음 짓는 진정한 승자는?

권투와 인생에서 진정한 승자는 누구일까?
 권투와 인생에서 진정한 승자는 누구일까?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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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꿈과 목표는 무엇일까? 체육관 운영 30년이 되는 10년 후인 2018년까지 15억 원을 모으는 것이다. 지금은 목표의 20% 정도 달성했단다. 그는 세계챔피언은커녕 동양챔피언 벨트도 획득하지 못했지만 인생에선 챔피언이 되고 싶은 것이다. 무엇보다 복싱선수 선후배들에게 '인생의 링에서 투혼을 발휘하면 장밋빛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고 싶단다.

"스타급 선수들은 어디서 어떻게 지낼까. 맨주먹으로 부와 명예를 거머쥐기 위해 몸뚱어리를 자본금으로 정상에 올랐으나 문제는 정상에서 내려온 이후 사회적응 실패와 과거에 내가 누구였는데 라는 추억에 발목 잡혀 어려운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선후배들도 간혹 있다.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과거는 흘러갔다는 노랫말도 있다. 권투는 상대 한 명과 싸워 이기면 장땡이지만 사회는 온갖 권모술수, 트릭 등 잔재주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승부는 링 위에서 끝나지 않는다. 링 위에서 강펀치를 날리며 상대를 제압했던 선수가 링 밖에선 비참한 패배자가 되기도 한다. 인생 승부는 사각 링처럼 단순하지 않은 것이다. 세계의 수많은 헝그리들이 챔피언이 되기 위해 핏방울이 튀고 살점이 찢어지는 사각 링에서 투혼을 발휘하며 승부수를 띄웠지만 승자와 패자의 갈림길은 냉혹했다.

<록키>의 '발보아'(실베스터 스탤론)가 그러했고, <주먹이 운다>에서 '상환'(류승범)과 '태식'(최민식)이 그러했고, <분노의 주먹>에서 '제이크 라모타'(로버트 드 니로)가 그러했으며, <신데렐라 맨>에서 '제임스 브래독'(러셀 크로우) 또한 그러했다. 권투 혹은 인생에서 진정한 승자는 누구일까?

"너, 나, 어느 누구에게든 인생이란 결국 난타전과 같은 거야. 하지만 중요한 건 얼마나 센 펀치를 날리는가가 아니야. 계속 맞더라도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며 하나씩 얻어나가는 게 중요한 거야. 계속 전진하면서 말이야. 그게 바로 진정한 승리야."

<록키>의 '발보아'가 진정한 승리자의 인생 길을 안내한다.


태그:#권투, #복서, #챔피언, #가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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