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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이다 보니 산행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시간이 나면 날씨가 받쳐 주지 않고, 모처럼 햇빛이 쨍하고 맑게 갠 날에는 시간을 내기가 또 어렵다. 나는 지난달 18일에 산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장복산(582.2m, 경남 진해시 여좌동), 안민고개를 거쳐 시루봉(653m) 산행을 나서게 되었는데 안개 낀 날씨와 부족한 시간 탓으로 11일, 17일에 이어 세 번째로 시도한 산행이었다.

 

 

오전 9시 40분께 마산을 출발한 우리 일행이 장복산공원 인근에 있는 진흥사 입구에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 시간은 10시 15분께였다. 직장 일로 오후에 출발한 11일 산행 때에는 또 다른 절집인 삼밀사로 바로 올라가서 장복산 정상에 오른 뒤 안민고개까지만 갔었다.

 

삼밀사로 가는 길은 가파르지만 꽤 운치가 있다. 게다가 진해 시가지가 시원스레 내려다보이는 그 절집에는 얼굴 표정과 몸짓이 저마다 다른 오백나한(五百羅漢)과 한글로 쓰여 있는 현판을 볼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

 

 
진흥사 옆으로 나 있는 등산로에는 차나무들이 심어져 있어 특유의 향내가 났다. 진해시는 곳곳에 차나무 등산로를 잘 조성해 놓았는데, 예전에 시루봉으로 첫 산행을 나섰을 때 녹차밭이 있는 등산로를 걸으면서 괜스레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축축한 숲길을 한참 걸어가다 큰 거미줄을 발견했다. 사람 사는 세상으로 치면 대궐 같은 집이다. 그런 대형 거미줄을 쳐 놓고 주인장 거미는 어디에 가 있을까, 괜스레 궁금해진다. 비가 계속 내려서 그런지 물소리가 끊이지 않은데다 어이없게도 숲길에서 개구리와 마주치기도 했다.

 

 

그렇게 40분 남짓 올라갔을까, 장복산 정상과 덕주봉으로 가는 갈림길에 이르렀다. 거기서 왼쪽으로 800m 정도 더 가면 장복산 정상이 나온다. 장복산(長福山)이란 이름은 삼한 시대에 장복이란 장군이 말타기와 무예를 익힌 곳이라 해서 붙여졌다 한다.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오늘날까지 산 이름 하나 멋지게 남겨 놓고 죽었으니 그는 분명 행운아이리라.

 

갈림길에서 안민고개까지는 바위길이 계속 이어져 마치 공룡능선을 연상하게 한다. 그래서 위험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도리어 아기자기한 재미가 쏠쏠한 길이다. 게다가 산등성이를 타고 가면서 오른쪽으로 자리 잡은 곳은 진해, 왼쪽은 창원이라는 사실도 재미있다. 자욱이 깔린 안개만 아니라면 정말이지,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조망이 멋진 길이다.

 

 

그래도 바람결 따라 서서히 이동하는 희뿌연 안개의 모습은 또 다른 볼거리였다. 이리저리 드러눕는 풀잎들에게서 바람의 흔적을 느끼며 계속 걸어가다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이른 점심을 먹었다. 늘 그렇듯이 점심은 시원한 맥주와 김밥 도시락이다.

 

덕주봉(602m)을 거쳐 낮 12시 40분께 안민고개에 도착했다. 진해시 태백동과 창원시 안민동을 잇는 안민고개에는 동물들의 이동 통로를 위해 세운 안민생태교를 볼 수 있다. 안민생태교를 사이에 두고 진해와 창원이 붙어 있는 셈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뒤 다시 시루봉을 향해 길을 떠났다.

 

 

안민고개에서 시루봉으로 가는 길 초입에서는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이 쉽게 눈에 띈다. 이따금 긴 의자들도 놓여 있어 산행만 아니라면 진해 시가지를 바라다보면서 친구들과 그저 이야기 나누며 쉬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산행 길에 가끔 긴 의자를 보면서 이상스레 그리움과 기다림 같은 감정이 울컥 복받쳐 오르는 것은 잃어 버린 낭만에 대한 안타까움일까.

 

사랑은

 

내 가진 잉크로는 그릴 수 없네

그대가 떠나고 난 뒤

시커멓게 탄 내 가슴의 숯검정으로

비로소 그릴 수 있는 것

 

- 이정하의 '사랑은'

 

 
안개가 점점 더 짙어져 갔다. 기다란 나무 계단에 이른 시간이 오후 2시 35분께. 안개가 끼지 않았더라면 참으로 운치 있는 계단인데 조망이 전혀 없어 안개가 야속하기만 했다. 20분 남짓 더 걸어가자 웅산가교가 나왔다. 마치 멀어져 있던 마음과 마음이 하나로 이어지는 기분이라고 할까, 이쪽과 저쪽을 이어 주는 다리는 늘 내게 감동을 준다. 짙은 안개로 출렁대는 느낌만 몸으로 전해질 뿐 주변 경관은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웅산가교를 건너 우리는 안개에 갇힌 갑갑한 길을 계속 걸어갔다. 25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우람한 곰메바위가 바로 눈앞에 보여 모두들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시루봉 정상에 도착했다는 이야기이다. 곰메, 웅산(熊山)이라고 불리는 시루봉 정상에는 신비스럽게도 높이 10m, 둘레 50m의 곰메바위가 우뚝 솟아 있기 때문이다.

 

시루봉이란 이름은 그 거대한 바위가 시루를 얹어 놓은 모양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멀리서 시루봉을 바라보면 오히려 여인의 젖꼭지를 닮은 형상이다. 시루봉은 오랜 옛날부터 진해의 진산으로 신라 시대에는 이곳에서 산신제를 지내 나라가 태평하기를 빌었다고 한다.

 

또한 조선 명성황후가 세자로 책봉된 순종의 무병장수를 비는 백일 산제를 드렸던 산 가운데 하나로도 알려져 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이곳에서 멀리 대마도가 보이는데, 통역관을 사랑했던 기생 아천자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일본으로 기약 없이 떠난 임 생각에 대마도가 바라보이는 이곳에 올라 그녀가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는 애달픈 사연이다.

 

 

곰메바위 아래로는 지루함을 느낄 정도로 기다란 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아쉽게도 자욱한 안개 때문에 사진에 담을 수는 없었지만, 계단과 어우러진 시루봉 정상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면 기막히다. 우리는 곰메바위를 한 바퀴 돌고 시루샘터를 거쳐 자은초등학교 쪽으로 하산을 서둘렀다.

 

산행은 삶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날만 있을 수 없는 게 우리들 삶이듯이 산행 또한 내 마음과 달리 궂은 날도 더러더러 있다. 불투명한 미래이지만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야 하는 것처럼 짙은 안개에 갇힌 산길이라도 어쨌든 발을 내디뎌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삶이든 산행이든 힘든 길을 그나마 즐거운 마음으로 걸어갈 수 있는 것은 좋은 친구들의 동행이 있기 때문이리라.


태그:#안민고개, #시루봉곰메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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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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