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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아트홀의 '재즈 앤더 시티'
 KT아트홀의 '재즈 앤더 시티'
ⓒ 정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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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레모를 눌러쓴 채 청바지에 남방 차림을 한 남자가 색소폰을 연주한다. 두어 곡이 끝나면 관객에게 인사를 할 법도 한데, 그는 말없이 악보 피스를 넘기기만 할 뿐이다. 검정색 원피스를 입은 피아니스트를 제외하면, 격식있는 옷차림을 한 연주자는 아무도 없다. 가사 한마디 없어도 색소폰, 피아노, 드럼, 베이스 4중주만으로 장내는 터질듯 역동적이다.

30분 정도 흘렀을까, 피아노 앞에 앉은 여자의 몽환적인 목소리가 관객에 말을 건다. "음악을 찾아오신 여러분… 즐기시길 바랍니다." 이게 다인가? 너무도 쿨한 그녀의 한마디가 끝나고 이들은 공연 끝까지 오로지 '재즈'만으로 관객과 소통했다. 얼마 전 타계한 마이클 잭슨이 가장 좋아하는 곡이었다는 찰리 채플린의 '스마일(smile)'이 이어질 때는 연주 중간에도 박수가 쏟아진다. 지난 11일 오후 5시, KT아트홀에서 열린 '재즈 앤더 시티(Jazz and the City)' 노성은 쿼텟의 공연 현장 모습이다.

요조, 한희정 등 주목받는 신예 뮤지션들을 배출해낸 홍대 앞이 인디밴드의 모태라면, 요즘 주목해야 할 '재즈계 인디뮤지션'들의 장(場)은 KT아트홀이다. 아직 대중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디'라고 해서 공연의 수준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날의 주말공연을 꿰찬 '노성은 쿼텟' 구성원들의 면면만 보아도 절로 수긍이 간다. 색소폰을 연주한 '베레모남' 김지석(33)씨는 미국 뉴올리언즈 대학과 뉴욕 맨해튼 음대를 졸업하고, 브라질, 뉴욕 순회공연을 마친 뒤, 압구정에 위치한 원스인어블루문, 천년동안도, 올댓 재즈 등 국내의 내로라 하는 재즈클럽에서 외국인 뮤지션들과 함께 연주해온 6~7년 경력의 젊은 실력파 뮤지션이다. 2007년 EBS SPACE <재즈, 클래식을 품다> 등 방송 경력도 다수다. 피아니스트 노성은씨, 베이시스트 이원술씨, 드러머 이도헌씨의 프로필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혼신의 드럼 연주를 선보인 이도헌씨는 서울대 음대를 졸업했으며 1992년부터 18년째 드럼 한 길만을 파온 베테랑 뮤지션이자, 모 대학 실용음악과에 강사로 출강하는 '교수님'이기도 하다.

"전문재즈클럽이 아니라고 해서 아무나 섭외하지는 않아요. 늘 국내 유명 재즈클럽을 돌아다니며 최근 트렌드를 파악하고, 뮤지션의 경력을 고려해 섭외하기 때문에 공연의 질은 이들 클럽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매일 비슷하게 유지되고요." '재즈 앤더 시티(Jazz and the City)' 공연을 2007년부터 3년째 지속적으로 관람해 왔다는 '재즈 마니아' 김대중(30)씨는 이렇게 말하며 "공연 레퍼토리에 대중적인 곡이 항상 포함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관람하기에도 부담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무리 양질의 공연이라 해도 '누구나 즐기기'엔 티켓값이 부담스럽진 않을까. 그러나 KT아트홀의 공연이 대중성을 확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중, 주말이나 좌석 위치에 관계없이 '재즈 앤 더 시티(Jazz and the City)'의 모든 공연 관람료는 '천 원'이다. 이 곳은 KT가 '누구나 편하고 즐겁게 문화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든 복합 문화예술 공간이다. 기업 이미지를 높이고 사회에 공헌하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티켓 값으로 영리를 챙기지는 않는다. KT측은 티켓 수익 전액이 청각장애아동을 위해 쓰인다고 밝힌 바 있다.

7월 11일 노성은 쿼텟 공연 현장
 7월 11일 노성은 쿼텟 공연 현장
ⓒ 정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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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의 반응은 상당하다. 재즈 앤더 시티 예매를 전담하는 사이트인 티켓링크에 따르면, 2007년 4월부터 2009년 7월 현재까지 84주간 티켓예매율 1위를 고수하고 있으니 말이다. 워터콕이나 에반스처럼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재즈클럽에 가면 음료값이 포함된 가격이긴 하지만 적어도 15000원은 지불해야 공연을 볼 수 있다. 똑같은 연주자를 데려오는데 공연료는 천 원이라면? 아트홀 로비에 있는 카페의 음료를 사마신다 해도 4000원이 채 되지 않는다. 세계적인 재즈 뮤지션이 무대에 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인디음악을 즐기려 홍대 앞에 모이는 젊은 층이 '재즈'라는 장르를 소화하기 위해 찾는 장소 혹은 데이트 코스로는 손색없지 않을까.

KT아트홀은 지하철 광화문역 2번 출구로 나가면 바로 눈에 들어온다. 신촌이나 강남 문화권에 더 익숙한 요즘 젊은이들에게 광화문이 다소 낯선 것은 아닐까. 지난 달에 이어 여자친구와 재즈 앤더 시티 공연을 두 번째 관람한다는 김정훈(29)씨는 "길 건너 세종문화회관 뒤편으로 가면 의외로 숨어있는 맛집이 많아서 데이트 하는데 문제가 되진 않아요. 피맛골 쪽으로 가면 파전 맛있게 하는 집도 많구요. 오늘 같은 날(비오는 날)에는 딱이죠.(웃음)"라며 광화문 예찬론을 펼쳤다.

재즈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뭘까. "글쎄요. 감히 제가 말할 수 없는걸요. 사람들 머릿 속에 고정관념이 들어갈 수도 있잖아요." 인터뷰 말미, 다소 뜬금없었던 기자의 질문에 색소폰 연주자 김지석씨는 매우 조심스러운 답변을 내놓았다. "카카오 드셔보셨나요? 처음엔 그렇게 쓴 초콜릿을 누가 먹냐고들 했잖아요.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99% 다크 초콜릿도 즐겨먹지요. 재즈도 그런거라 생각해요. 처음엔 밀크 초콜릿이 익숙해도 나중엔 다크 초콜릿이 더 좋아질 수 있는 것처럼, 계속 접하다 보면 재즈가 무엇인지는, 느낌으로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아직 재즈가 생소한 사람들이 많다는 말에 김씨는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흑인음악의 리듬과 백인음악의 화성이 결합된 장르라 다른 음악과 어울리기 쉽다는 재즈. '착한'가격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광화문의 다크 초콜릿을 맛보고 싶다면, KT아트홀로 가보는 것이 좋겠다.

현장예매는 1시간 전부터. www.ktarthall.com
(공연시작 시간: 주중 오후 7시 30분/주말 오후 5시)
문의전화 1577-5599.

재즈 앤더 시티(Jazz and the city) 7월 공연 포스터
 재즈 앤더 시티(Jazz and the city) 7월 공연 포스터
ⓒ 정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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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재즈, #여름휴가, #KT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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