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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입법: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

정부를 통한 정상적인 법 개정 과정은 본래 해당 부처가 관련법의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뒤 국민과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수렴을 거쳐 1차 수정작업 후, 국무회의를 거쳐 정부입법안을 확정하고, 국회에 제출해 입안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작년 10월 13일 금산분리 완화법안의 대표급인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준비하며 매우 비정상적인 방법을 선택합니다.

무슨 연유에선지 해당부처인 금융위원회의 입법예고 후 이후 행정입법절차를 포기하고, 한나라당 의원 두 명(한나라당 박종희 의원과 공성진 의원)을 통해 의원입법 형태로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입니다. 정부 정책 차원의 입법안을 의원 발의라는 쉬운 길을 통하는 행태를 소위 "청부입법"이라 합니다.

통상적으로 정부입법의 경우, 의원발의보다 훨씬 긴 시간과 과정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 시간과 과정을 단축하기 의도가 한 가지 이유이고, 이 경우 경제시스템에서 매우 중요한 원칙인 금산분리를 완화하려는 시도에 대한 사회 각계의 논란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방편이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개의 법안 중 박종희 의원의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은 지난 3월 3일 국회 정무위원장인 한나라당 김영선 의원에 의해 날치기 통과됩니다. 공성진 의원의 금융지주회사법 또한 지난 4월 24일 삼성에 대한 특혜시비 불식을 위한 안전장치 확보나 거대 금산복합체에 대한 금융규제 강화 방도에 대한 어떠한 논의와 고려 없이 졸속으로 정무위를 통과합니다. 4월 초 G20회담에서 체제적 위기를 야기할 수 있는 거대 금융기관에 대해 금융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각국 규제당국이 결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날치기와 졸속심사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두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이었습니다.

정무위를 통과한 박종희 의원의 금융지주회사법은 은행법 개정안과 함께 4월 임시국회 본회의에 여야 원내대표 수정안으로 상정됩니다. 하지만 은행법만 통과되고 금융지주회사법은 부결되어 폐기됩니다. 한나라당 정무위원장인 김영선 의원이 정무위에서 통과된 원안을 가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여야 원내대표 합의안까지 모두 부결되는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박종희 의원이 발의한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의 최후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기존 박종희 의원의 금융지주회사법을 되살려 또 다시 정부입법을 추진하게 됩니다. 그것도 행정절차법 제 43조(예고기간)상에 명시되어 있는 입법예고기간 절차를 생략한 채 말입니다. 행정절차법 제43조(예고기간)는 정부가 제출하는 법안과 관련하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입법예고기간을 20일 이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행정절차법이 입법예고기간의 하한을 규정한 것은 최소한의 기간을 보장함으로써 국민들의 당해 입법에 대한 의견개진 기회를 충분하게 보장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정부안을 만든 금융위원회는 작년 10월 정부입법으로 금융지주회사법을 입법예고한 바 있기 때문에 또 다시 입법예고절차를 밟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국무회의에 제출한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은 법안의 핵심적인 부분인 보유 및 의결권지분 상한이 작년 10월 13일의 입법예고안과 다르기 때문에 별도의 개정안으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스스로 국가의 '법치'를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이 기본적으로 알권리를 무시한 것입니다. 그렇게 죽은 줄만 알았던 금융지주회사법이 결과적으로 맹목적이고 불법적으로 부활했습니다.

행정절차법 제43조(예고기간)는 정부가 제출하는 법안과 관련하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입법예고기간을 20일 이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림: 오진영 참여연대 자원활동가)
 행정절차법 제43조(예고기간)는 정부가 제출하는 법안과 관련하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입법예고기간을 20일 이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림: 오진영 참여연대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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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제(22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이 박종희 의원의 안과 공성진 의원 안을 합친 수정안으로 날치기 통과되었습니다. 여야 모두 미디어법에 집중해 있던 날, 김형오 국회의장으로부터 사회권을 넘겨 받은 한나라당 이윤성 국회 부의장이 미디어법을 직권상정하면서 공성진 의원의 금융지주회사법에 불과 두 달 전 부결됐던 박종희 의원 안까지 끼워 함께 날치기 처리한 것입니다. 앞으로 정부나 한나라당이 원하는 법안은 정당한 비판이나 합법적인 논의 절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어떤 식으로든 통과시키겠다는 선전포고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잘못된 탄생부터 맹목적인 부활까지, 좀비입법으로 지칭해도 무방할 지경입니다.

금융지주회사법에 대한 여론의 관심은 미디어법에 비하면 참으로 무심한 듯합니다. 민주주의사회에서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어처구니없는 입법전쟁이 1년 넘게 이어져 왔지만 언론이나 여론의 관심은 오로지 미디어법에 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금산분리관련 법안은 이제 공정거래법 하나만 남았습니다. 그마저도 일반지주회사에 보험, 증권 등 금융자회사를 허용함으로써 지주회사가 금융자회사 및 비금융자회사를 동시에 보유할 수 있게 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된 정부안이 이미 국회에 제출돼 있는 상황입니다. 이제 금산분리원칙이 허물어지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 따름인 듯 합니다. 여러분들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참여하는 작은 시민의 힘이 있다면 아직은 비관적이지만 누더기만 남은 금산분리 최후의 보루만이라도 지켜낼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5일간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제조세팀 간사 민병희

[친절한 기획연재] 속지말고 잘 보자: 금산분리완화 논란 연속기획
7/20(월)

『친절한 기획연재- 속지말고 잘 보자: 금산분리완화 논란①』
세계는 금융규제, 유독 우리나라만 금산분리완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79209

7/21(화)

『친절한 기획연재- 속지말고 잘 보자: 금산분리완화 논란②』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일까? 삼성왕국일까? 삼성특혜법 의혹의 진실은?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80863

7/22(수)

『친절한 기획연재- 속지말고 잘 보자: 금산분리완화 논란③』
은행법 통과됐으니 이제 금융지주회사도 내 놓으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81450

7/23(목)

『친절한 기획연재- 속지말고 잘 보자: 금산분리완화 논란④』
금융지주회사법 날치기 통과를 바라보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83182

7/24(금)

『친절한 기획연재- 속지말고 잘 보자: 금산분리완화 논란⑤』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 좀비 입법: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83851

덧붙이는 글 | * 이글은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홈페이지에도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태그:#참여연대, #금산분리, #금융지주회사법, #날치기,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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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는 정부, 특정 정치세력, 기업에 정치적 재정적으로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합니다. 2004년부터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 특별협의지위를 부여받아 유엔의 공식적인 시민사회 파트너로 활동하는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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