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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끝자락에서 만난 바닷가 마을 벌구
 여수의 끝자락에서 만난 바닷가 마을 벌구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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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구 마을에서 버스를 내리다

벌가 가는 26번 시내버스를 탄다. 시골 가는 버스는 시내 나들이 나왔다가 볼일을 보고 돌아가는 아주머니들의 이야기 소리로 정겨움이 넘쳐난다. 여수 시내를 벗어난 버스는 시골길을 따라 거칠게 달려간다. 기사아저씨 앉은 의자는 연신 출렁거린다. 구불거리는 길을 능숙하게 타고 가지만 맨 뒤에 앉아 있는 나는 심한 멀미를 느낀다.

한 시간 여를 달려온 버스는 도로가 좁아진 고갯길을 올라서더니 시원한 바다를 보여준다. 버스가 선다. 마을 이름도 특이한 벌구(伐九)다. 차에서 내린다. 같이 내린 할아버지와 아주머니는 낮선 이방인이 마을을 찾은 이유가 궁금한가 보다.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마을로 내려선다.

벌구 마을은 바닷가에서 시작해 산비탈까지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마을 앞 바다 위에 떠있는 둥그런 섬이 마을을 넉넉하게 한다. 벌구 마을 본래 이름은 뻘기미다. 뻘(갯벌)이 있는 바닷가라는 뜻이란다. 이것을 한자로 벌구미(伐九尾)라고 했단다. 행정구역은 벌가리(伐佳里)에 속하는데 벌구(伐九)의 벌(伐)자와 옆 마을인 가정(佳停) 의 가(佳)를 합해 벌가가 되었다.

여수의 끝자락 해안길.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벌구 마을에서 부터 백야도 포구까지 14km를 걸어간다. 걸은 시간은 대략 4시간 정도 소요.
 여수의 끝자락 해안길.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벌구 마을에서 부터 백야도 포구까지 14km를 걸어간다. 걸은 시간은 대략 4시간 정도 소요.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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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내려다보면서 한적한 길을 걷는다

길을 걷는다. 바다를 따라가는 길. 구불거리며 가는 길에는 사람도 없고 차도 없다. 방금 우리를 내려준 버스는 벌써 종점인 가정동을 찍고서 다시 되돌아 나간다. 길 옆으로 누워 있는 소가 멀뚱멀뚱 우리를 구경한다. 길 위 아래로 개간 된 밭에는 옥수수가 나름 꽃이라고 가득 피우고 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걸어가는 기분이 너무나 좋다, 돌아가는 모퉁이로 집이 보인다. 모퉁이로 돌아서니 커다란 미루나무 아래 아주머니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맞은편에 작은 가게도 있다. 가게는 이 한적한 작은 마을에 유일한 상권이다. 가게 안은 물건을 팔기보다는 선술을 파는 곳으로 봐야겠다.

바다를 보면서 구불구불 걷는 길. 길은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다.
 바다를 보면서 구불구불 걷는 길. 길은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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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동이다. 마을 한가운데 전망 좋은 곳에 정자가 있다. 가정(佳停). 아름다운 정자라는 이름을 달았다. 정자에는 여름이 쉬고 있다. 행여 인기척을 느낄까봐 조용조용 돌아 나온다.

벌써 빨간 고추가 말라간다

산비탈을 층층이 만들어 놓은 논에는 벼들이 훌쩍 자랐다. 밭에는 수건을 두른 아주머니가 연신 허리를 굽히며 일을 하고 있다. 바다 건너 고흥 팔영산이 울퉁불퉁한 능선을 보여준다. 그 사이로 흐르는 바다에는 섬들이 징검다리처럼 건너가고 있다.

가정동을 뒤로 하면 길은 더욱 한적하다. 내가 이 길을 좋아하는 이유는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다. 시내버스는 가정동까지 왔다가 되돌아 나간다. 그렇다고 길이 끝나지 않는다. 길은 바다를 따라 이어진다. 마음대로 도로를 걷는다. 차를 위해 만들어 놓은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사람이 길 가운데로 걷는다. 가끔가다 소라도 만나면 눈인사도 하고….

길은 바다로 내려가듯 이어지더니 지내를 닮았다는 공정마을과 만난다. 한쪽은 마을, 한쪽은 해안. 마을은 해안을 따라 이어간다. 도로 틈으로 채송화가 빨간 꽃을 피우고서 바다를 바라본다. 어릴 적 생각이 난다. 척박한 땅 어디서나 잘 자라는 채송화는 여름 내내 눈을 즐겁게 했다. 꽃이 지고 나면 고깔 같은 열매를 맺고 그 안에는 아주 작은 검은 씨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채송화가 피어있는 공정마을 앞 해안길
 채송화가 피어있는 공정마을 앞 해안길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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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고추가 익어가는 해안. 바다 건너 백야도 백호산이 보인다. 저곳 까지  걸어간다.
 빨간 고추가 익어가는 해안. 바다 건너 백야도 백호산이 보인다. 저곳 까지 걸어간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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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선과 나란히 이어진 도로를 따라간다. 길가에 빨간 고추를 말리고 있다. 아! 가을분위기 난다. 계절이 너무 앞서간 느낌이다.

바닷가 경치 좋은 정자에 앉아

해안가에 일반국도 77호선이라는 표지판이 당당하게 서 있다. 차가 뜸한 한적한 길이지만 이래봬도 국도라고 뻐기고 있는 듯하다. 바다는 물이 빠졌다. 멀리까지 해변이 넓어졌다. 물색이 좋다. 맑은 하늘을 가득 담았다.

자매마을이 나오고 마을을 감싸고 있는 방풍림 속으로 걸어간다. 숲이 시원하다. 자매마을은 좋겠다. 이렇게 포근한 숲을 가지고 있어서…. 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진 마을을 따라가다 커다란 느티나무가 몇 그루 모여 있는 공터를 만난다. 정자 두 개가 바다를 보고 있고 뒤로 당집이 금줄을 치고 있다.

자매 마을 앞 넓은 해안.
 자매 마을 앞 넓은 해안.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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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 마을에 있는 정자. 이곳에 앉아서 바라본 바다가 너무나 아름답다.
 자매 마을에 있는 정자. 이곳에 앉아서 바라본 바다가 너무나 아름답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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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자. 정자에 앉아 바다를 보니 너무나 시원하다. 한참을 앉아 있어도 떠나기가 싫다. 차가 한 대 앞으로 머뭇거리더니 지나간다. 조금 있으니 되돌아온다. 자리를 비워줘야 하나보다. 여기에 앉아 바다를 보려고 마음먹고 온 것 같다.

이어지는 길, 이어지는 마을

바다를 활처럼 안고 있는 이곳은 장수리(長水里)로 부른다. 원래는 공정, 자매, 수문, 장척, 장등 마을로 구성되어 장척과 수문의 앞 글자를 따서 장수라 했다. 하지만 장척과 장등, 수문 마을이 분리되고 지금은 자매, 공정 두 마을을 장수리라고 한다.

다시 길을 걷는다. 장수리는 굴구이가 유명하다. 지금은 제철이 아니어서 텅 빈 비닐 천막이 휑한 느낌이다. 자매마을을 지나 삼거리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걸어간다. 여전히 길은 한가하다. 가끔 드라이브하는 차들이 한두 대 정도 지나간다.

돌담이 아름다운 수문동을 지나고 장척마을을 지난다. 도로는 구불거리며 원만하게 오르내리는 편안한 길이다. 적당히 구불거리는 도로는 눈이 즐겁다. 아름다운 선을 마음껏 즐긴다. 그 선을 따라 걷는다. 걷는 내내 바다와 함께 한다.

장등 마을을 가로지르는 도로. 마치 환각상태인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장등 마을을 가로지르는 도로. 마치 환각상태인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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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꽃이 향기가 은은하게 풍겨온다. 해수욕장이 있는 장등마을로 들어선다. 마을을 지나는 도로는 심하게 출렁거린다. 마음이 흔들흔들. 마치 그림 속에 나오는 몽롱한 길을 걷는 기분이다. 해수욕장에는 벌써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즐겁다.

바람이 바람일 뿐인데...

길은 거친 해안을 따라 구불거리며 올라서다가 세포(細浦) 마을로 내려선다. 삼거리를 만드는 마을은 상당히 큰 마을이다. 커다란 교회가 두 개나 있다. 길 옆으로 담장에는 포도가 터질 듯 커져가고 능소화가 품위 있게 피어 있다.

삼거리에서 백야도로 향한다. 걷는 방향이 바뀌니 바다 쪽에서 세찬 바람이 불어온다. 모자를 눌러쓴다. 바람을 맞으며 걸어가다 보니 나를 밀어붙이는 바람이 다른 감정으로 다가온다. 요즘 시절이 하수상하니 불어오는 바람에도 감정이 복받쳐 오른다. 그냥 스쳐가는 바람이 아니길 기원해 본다.

오랫동안 걸었더니 다리가 뻐근해진다. 길 옆에 앉아서 쉰다. 포장도로를 걷는 것은 산을 걷는 것보다 힘들다. 걸어가는 거리가 길고 발바닥이 받는 피로가 더 크다. 바다에서 거칠게 불어오는 바람에 한기를 느낀다.

돌산개 마을 길 옆에서 부추와 옥수수를 파는 할머니. 무척 싸다. 부추를 샀다. 옥수수도 사고 싶은데 들고 걸어가기가...
 돌산개 마을 길 옆에서 부추와 옥수수를 파는 할머니. 무척 싸다. 부추를 샀다. 옥수수도 사고 싶은데 들고 걸어가기가...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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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두 마을을 지나고 이름이 특이한 돌산개 마을도 지난다. 멀리 구불거리는 길 끝으로 백야대교가 보인다. 길가에 앉아서 옥수수와 부추를 다듬고 있는 할머니를 만난다. "부추 살 수 있어요?" "천원" "이렇게 많은데요?" "상인들이 가져가면 이천 원도 더해. 하나 사. 오늘 칠천 원 어치 팔았어." 싸게 사는데도 오히려 마음이 허전하다.

나루터 사공은 간데없고

시원하게 바다를 달리는 길 끝으로 백야대교가 있다. 공룡 뱃속 같은 다리 위에 섰다. 예전 생각이 난다. 백야도에 다리가 놓이기 전 백호산을 간다고 나릇배로 건넜던 기억이 난다. 당시 왕복 500원 정도 했던가. 지금은 나루터 흔적만 있고 나룻배는 없다. 늙은 사공의 웃는 얼굴이 떠오른다.

백야마을을 가로지르는 길. 섬 사람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길
 백야마을을 가로지르는 길. 섬 사람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길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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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도로 들어서서 포구로 향한다. 등대로 가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겠다. 다리도 힘들고 배도 고프다. 큰 도로를 벗어나 점감이 넘치는 마을길을 걷는다. 가끔 보이는 빈집이 허전하다. 무너져 내린 지붕과 뜯겨진 문풍지. 가족들의 도란거리는 소리가 환청처럼 흘러간다.

백야도에서 유명한 손두부 집을 찾았다. 옥상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따끈따끈한 두부에 매운 고추와 새콤한 양파를 곁들여 먹는다. 허기가 가신다. 의자에 누워 마을도 둘러보고 바다도 바라본다.

백야도에 가면 콩의 감칠맛이 느껴지는 따끈따끈한 손두부를 맛볼 수 있다. 큰 거 한모 8천원, 막걸리 2천원. 두부를 사가면 5천원.
 백야도에 가면 콩의 감칠맛이 느껴지는 따끈따끈한 손두부를 맛볼 수 있다. 큰 거 한모 8천원, 막걸리 2천원. 두부를 사가면 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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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한 모를 사서 나온다. 포구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가 오고 출발시간이 되지 않았는데도 버스는 도시를 향해 출발한다.

덧붙이는 글 | 벌가 가는 버스 26번, 26-1번 두 대가 다니며 대략 1시간 간격으로 운행. 백야도 가는 버스 28번은 50분에서 1시간 간격으로 운행. 이동거리는 한 시간 이상 타고가야 하며, 버스를 타고 시골길을 달려가는 기분도 좋다. 자세한 정보는 여수시청 홈페이지(분야별 정보→교통)에서 확인



태그:#여수 해안길, #장등 머을, #백야도, #장수 마을, #벌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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