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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부터 16일까지 남양주시 별내면에 있는 57사단 교육장에서 동원훈련을 받고 왔다. 기사를 써야겠다 결심한 것은 이곳 예비군훈련장에서였다. 다들 관성에 젖어 훈련관은 훈련시키는 척하고 예비군들은 훈련받는 척 하는 예비군 훈련장에서 무슨 희망의 근거를 보았기에 기사를 쓰기로 결심했는지 궁금해 하실 것이다.

 

다들 예비군 훈련을 우습게 안다. 예비군 훈련 마친 사람은 이미 받아보았기에 우습게 여길 것이다. 예비군들이 현역병사들 우습게 아는 것처럼 말이다. 필자는 이제 4년차 예비군이다. 4년차 동원훈련을 마쳤으니 내년부터 동원훈련은 없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요즘 예비군 훈련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 사람은 동대장 아저씨와 옛날 이야기 따먹고, 나머지는 고개 숙이고 자거나 담배 피러 밖에 나가던 시절의 예비군 훈련이 이제는 아니다. 그것이 왜 희망의 근거이냐고? 지금부터 그 얘기를 하겠다.

 

세 부류의 사람

 

군대이야기를 예로 들면 편하지만, 여성 분들도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조금 더 보편적인 경험에 대한 얘기를 해보겠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우리는 여러 명의 담임선생님을 만난다. 담임선생님에는 세 부류의 선생님이 있다. 엄격한 선생님, 인자한 선생님, 만사가 귀찮은 선생님. 이 중에서 엄격한 선생님이 가장 무섭다. 인자한 선생님은 평소에는 편한데 우리가 잘못했을 때는 화내시면 무섭다. 그리고 만사가 귀찮은 선생님은 선생님이 언제 기분 나쁠까 마음 졸이며 눈치 봐야 하기 때문에 무섭다. 만사가 귀찮은 선생님에게 학급운영 원칙은 없다. 있다면 자기를 귀찮게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행동을 해도 귀찮으면 때리고 안귀찮으면 내버려둔다.

 

학생의 입장에서는 세 선생님이 모두 무섭다. 하지만 만사가 귀찮은 선생님이 제일 무섭다. 이런 선생님들이 촌지받고 학생들 비인간적으로 때려서 사고치고 학교 망신 다 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선생님의 존재 자체가 무섭고 이런 선생님과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상이 무섭다.

 

엄격한 호랑이 선생님은 살갑게 다가가기 어려워서 그렇지 알고 보면 모두 좋으신 분들이다. 엄격하신 것도 학생들을 위해 엄격하신 것이다. 인자하신 선생님도 엄격한 선생님과 방법이 달라서 그렇지 학생들을 사랑하는 것은 엄격한 선생님과 같다. 잘못했을 때 갑자기 태도가 변하시는 것은 그만큼 우리에게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이고 화내신 만큼 본인 스스로의 삶도 우리에게 부끄럽지 않으려고 노력하신다. 이런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두려워하는 선생님들이다. 학생들의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잠재력이 두려워 학생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으신다. 지금은 학생들 앞에 선생님이지만 이 학생들이 자라면 자신의 선생님이 될 것이라고 믿음을 가지고 학생들을 대하시는 것이다.

 

만사가 귀찮은 선생님은 선생님이라는 자리의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선생님이다. 이런 선생님은 학생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자신을 두려워해서 자신의 수업시간에 알아서 조용히 해주기를 바란다. 이들에게 학생은 통제의 대상이고 먼저 기선제압을 해서 잠잠히 시켜야 할 대상이다. 힘들게 임용고시 합격해서 선생님이 된 것이기 때문에 이들은 그런 권력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학생들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먼저 교사가 되셨던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을 더욱 두려워하고 존경한다. 그리고 그분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만사가 귀찮기 때문에 교직으로 안정된 삶을 누리고 싶은데 그런 자신의 삶을 그분들이 좌지우지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도 학생들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율참여형 예비군 동원훈련

 

이번 예비군 훈련 첫날에 비가 하루 종일 왔다. 필자도 오늘 예비군 훈련은 모두 실내교육으로 대체될 것이라 생각했고 비디오만 보고 모두들 잘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미리 읽을 책을 준비해 들어갔다. 함께 동원훈련에 입소한 다른 예비군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입소식을 마친 대대장의 얼굴이 너무 인자해 보였다. 대대장은 2박 3일간 짧다면 짧을(결코 짧지 않다) 동원훈련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심상치 않았던 예감대로 우리는 첫날 판초우의를 걸치고 공용화기 교육을 받으러 나가야 했다. 실내에서 구급법 교육을 받는 예비군들도 있었는데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우리는 만만치 않은 대대장을 만난 것이다.

 

예비군 훈련 와서도 판초우의 걸쳐야 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예비군들은 습성상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고 그냥 내버려두는 것을 좋아한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교관과 조교는 열심히 교육하고 교육받는 우리는 슬그머니 빠져서 숨어 있기를 좋아한다. 예비군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마냥 게을러서가 아니다. 우리는 현역시절 경험으로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서도 우리는 할 거는 다 한다. 상급부대장이 오면 누워 있다가도 일어나고 입소식, 퇴소식때는 경례구호도 확실히 붙여준다. 개인화기 사격때는 복명복창은 안하지만 사고도 안낸다. 탄피 갯수 절대 놓치는 법 없다. 우리 스스로 내기를 걸어 동기부여까지 해가면서 영점조절과 탄착군 형성도 모두 해놓는다. 우리가 교육을 마치고 총기 닦고 모포와 매트리스 말려야 할 현역조교들의 수고도 알기 때문에 PX데리고 가서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우리가 받은 교통비 그들에게 내어주기도 한다.

 

그런 우리 보고 판초우의를 걸치고 비오는 날 교육을 받으라니 대대장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다. 내 마음 속 격렬한 저항이 불일 듯 일어났다. 하지만 우리는 나간다. 나가라면 나가는 시늉이라도 하는 게 우리 예비군의 역할이다. 저항하면 문제가 더 커지고 더욱 귀찮아진다. 그것은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예비군의 임무는 아무 사고없이 동원훈련이 무사히 끝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날 16시에 퇴소하는 것이다.

 

원칙 있는 부대장을 만나면 예비군들은 피곤해진다. 하지만 원칙 있는 부대장을 만나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을 찾아서 착착 할 수 있다. 그렇게 부대장과 예비군이 함께 동원훈련을 주체적인 분위기로 만들어가고 안전하게 무사히 마칠 수 있다(57사단 예비군 훈련장 입구에 큰 현수막이 있다. "자율참여형 동원훈련 캠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러니까 예비군 복만 입으면 어떻게 사람들이 그렇게 한결같이 후즐그레해져가지고 빠져보이냐고 비난하면 안된다. 그것이 우리가 세상에 나와서도 몸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 깊은 내공이다. 겉으론 우습게 보이면서도 할 건 다 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예비군으로부터 나온다

 

이런 우리의 내공을 해치는 세력은 원칙 없는 부대장이다. 앞서 말했던 만사가 귀찮은 담임선생님처럼 원칙 없는 부대장은 처음에는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는 척한다. 비오니까 비디오나 보라고 아무 비디오나 틀어주는 식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 은총 감사히 받아먹고 잠을 푹 잔다. 그런데 잠도 많이 자면 힘들어진다. 그때부터 우리는 시간이 안 가는 것이 견딜 수 없어진다. 훈련이 힘들면 시간이라도 잘 가는데 '남은 2박 3일간 뭐해야 하는지, 왜 우리는 이런 한심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와 같은 고민으로 견딜 수가 없다. 그렇다고 훈련받자고 말할 수는 없고 우리는 그저 부대장 입만 바라보고 있다. 그가 다음 시간에는 무엇을 우리에게 시킬지만 기다리고 있다. 이럴 때 비는 꼭 어설프게 온다. 훈련 받기도 애매하고 안받기도 애매하게 온다. 원칙 없는 부대장으로 인해 예비군들은 게으르고 통제당해야 하는 대상이 되어버리고 현역조교들은 우리 선배들로 인해 피곤해진다(귀찮은 주문이 많아진다. 다음에 뭐하는지 알아보고 오라는 둥). 원칙 없는 부대장은 그때 당장은 편할 지 모르나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제 한번 상급부대에게 호되게 혼난다. 그리고 그 화풀이는 부하들과 예비군들에게 해버린다. 우리 예비군은 그런 부대장의 봉이 아니다.

 

원칙 있는 중대장은 원칙 갖고 밀어붙일 때 외롭고 힘들 것이다. 그런 그의 결정을 대놓고 응원하는 예비군은 없다. 하지만 외롭고 힘들더라도 결코 굴하면 안된다. 그 길밖에 방법이 없다. 그렇게 원칙 있는 부대장을 만나서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나면 예비군들은 뿌듯하고 감동받는다. 물론 겉으로는 욕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진심으로 그에게 협조해줄 수 있다. 그런데 퇴소식은 4시 10분전까지 마쳐야 한다. 그것 하나만 해주면 예비군들은 뭐든지 할 수 있다.

 

믿음직스런 지도자 그리고 예비군

 

예비군 훈련 시스템이 점점 개혁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부대장의 인품도 있겠지만 대대장의 그런 원칙에 대해 중대장들도 아무 흉보지 않고 같은 원칙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서 그런 믿음이 생겼다. 그것이 필자가 이번 예비군 훈련에서 발견한 대한민국 희망의 근거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연약한 집단은 예비군이다. 아무도 가고 싶어하지 않는 곳이다. 모두가 바라보며 혀를 쯧쯧 차는 곳이다. 그런 예비군 훈련이 이렇게 점차 발전하고 있다면 대한민국은 점점 발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되지 않겠는가. 이번 예비군 훈련에서 수고한 부대장과 훈련조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 보내고 싶다. 그리고 올해도 내년에도 동원훈련 받아야 할 예비군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대한민국 예비군은 대한민국의 희망이다.


태그:#예비군, #희망의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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