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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 가리봉1동에 위치한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의료전문가들도 "무료병원은 절대 불가능하다"며 만류했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1동에 위치한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의료전문가들도 "무료병원은 절대 불가능하다"며 만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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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역자들과 의료전문가들도 '무료 병원은 절대 불가능하다'며 반대했는데 개원한 지 5년이 되도록 문을 닫지 않았으니 이것은 아무래도 기적입니다. 수많은 외국인노동자와 다문화가족의 생명을 구한 이 기적의 주인공은 사랑과 정성을 보태준 수많은 후원자와 자원봉사자들입니다."

의료 사각지대에 방치된 외국인노동자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국내 최초로 설립된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이하 외노의원)이 오는 22일 개원 5주년을 맞는다. 외노의원 이사장 김해성(48·사단법인 지구촌사랑나눔 대표) 목사는 매년 빚더미에 허덕이면서도 5년 동안 문 닫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후원자와 자원봉사자들의 성원 때문이었다고 강조했다.

일반 의료기관도 부도나는 세상이다. 그런데 입원실 30병상과 의사와 간호사 등 유급직원 20여 명을 둔 무료 의료기관이 망하지 않았으니 '기적'이란 말 말고는 설명이 불가능해 보인다. 불법체류자와 치료비 없는 환자 등 오갈 데 없는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생명을 살린 외노의원을 인권단체 및 의료관계자들은 '기적의 현장'이라고 입을 모으는 게 사실이다.

"돈 한 푼 없는 나를 내쫓지 않은 유일한 병원"

일요일이 되면 진료전쟁이 벌어지는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이 병원이 없었다면 불법체류자와 가난한 이주노동자들은 어떻게 됐을까?
 일요일이 되면 진료전쟁이 벌어지는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이 병원이 없었다면 불법체류자와 가난한 이주노동자들은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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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환자'였던 남편 홍천학(65)씨를 간병하고 있는 아내 김명옥(61)씨.
 '터미널환자'였던 남편 홍천학(65)씨를 간병하고 있는 아내 김명옥(61)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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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 가리봉1동 137-22에 세워진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은 돈 많은 외국인 환자나 한국인 환자는 '사절'이다. 국내 최초이자 세계 최초로 세워진 외국인노동자들을 위한 전용 의료기관이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외노의원을 찾아온 환자는 중국, 몽골, 스리랑카, 베트남, 나이지리아 등 13개국 17만5000명이다. 이들 환자들은 구급차에 실려서도 왔고, 휠체어를 타고도 왔으며, 목발을 짚고도 왔다. 어떤 병원은 치료비가 떨어지자 환자를 이곳에 부려놓았고, 경찰과 구청 등의 기관은 외국인 행려병자들을 이곳에 데려왔다.

이곳은 특히 불법체류 환자들에겐 마지막 피난처다. 돈도 없고 의료보험 혜택도 없이 절망과 고통 속에 신음하다 이곳에 오게 된 이들 가운데 재활과 회복의 기쁨을 얻으면서 '코리안드림'의 희망을 다시 품게 된 경우가 적지 않다.

교통사고 당한 뒤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다 이곳에 온 파키스탄 출신 핫산은 완치의 기쁨과 일터를 함께 얻었다. 산재를 당하고도 사장에게 내쫓김 당한 방글라데시 출신 슈트라는 "외노의원은 외국인노동자들의 마지막 피난처"라고 말했고, 우즈베키스탄 출신인 미샤는 "돈 한 푼 없는 나를 내쫓지 않은 유일한 병원"이라며 고마워했다.

5년간 외노의원에선 슬픔과 기쁨이 교차했다. 외노의원에 유기됐던 중풍환자 재중동포 한재준씨는 1년 6개월의 정성스런 간호에도 끝내 사망했지만, 병원을 전전하다 돈이 떨어지면서 마지막으로 찾아온 '터미널 환자'(임종을 앞둔 환자) 재중동포 홍천학씨는 죽음의 그늘에서 벗어나 재활훈련을 받고 있다. 담석과 허리디스크 치료 혜택을 누린 재중동포 김현봉(58)-곽점순(56)씨 부부는 "이 병원이 없었다면 우리 부부는 병에 쓰러져 중국으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눈물을 글썽였다.

그리고 방글라데시 불법체류자 부모를 둔 사내아이 '오심'(Oxim)이 2005년 8월 13일 이곳 수술실에서 태어났다. 방글라데시 말로 '더 많이'라는 뜻을 가진 '오심'이가 태어난 것은 병들어 신음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을 '더 많이' 살리라는 하늘의 뜻은 아닐까? 먹고 잘 데도, 오갈 데도 없는 나그네들을 '더 많이' 보살피라는 뜻은 아닐까?

'가리봉의 기적'과 이름 없는 천사들... 3년간 1억3천 후원

19일(일) 병원 문을 열자마자 밀어닥친 환자들이 접수를 받으려고 앞다툼을 벌이고 있다. '평화사랑나눔의료봉사단'은 일요일의 진료전쟁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하는 의료봉사 드림팀이다.
 19일(일) 병원 문을 열자마자 밀어닥친 환자들이 접수를 받으려고 앞다툼을 벌이고 있다. '평화사랑나눔의료봉사단'은 일요일의 진료전쟁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하는 의료봉사 드림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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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밑거름이 된 이름 없는 천사들이 있다.

2007년 '여호와이레'라는 이름으로 3000만 원을 후원했던 익명의 기부자는 2008년엔 7000만 원, 2009년엔 3000만 원 등 3년 연속해서 모두 1억3000만 원을 남몰래 후원했다.

외노의원 김선태(39) 관리실장은 "거액을 기부하면서도 신원을 전혀 밝히지 않아 감사인사조차 드리지 못하고 있다"면서 "소중한 후원금을 생명을 살리는 데 쓰도록 관리를 철저히 하겠다"고 말했다. '여호와이레'는 '하나님이 준비하셨다'라는 뜻이다.

2007년 5만 원 후원으로 시작한 '샬롬'은 10배로 늘어난 50만 원씩 후원하고 있으며, '오병이어'란 익명의 후원자는 2만 원씩 꾸준히 보내오고 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외국인노동자의 생명을 살린 이름 없는 천사들. 이들의 도움이 죽음으로 향하던 '터미널 환자'의 생명을 구했고, 병원비가 없어 쫓겨난 환자들을 생명의 피난처로 옮기게 했다.

기적의 중심은 기관 및 단체다. 국민은행(은행장 강정원)은 금융위기의 어려움 속에서도 2008년 1억 원, 2009년 2억 원 등 모두 3억 원을 후원했고, 외환은행(은행장 래리 클레인)은 2007년부터 5차례에 걸쳐 모두 2억5000만 원을 후원했고, 대한산업보건협회(회장 최병수)는 2005년부터 올해까지 5년 동안 매년 5000만 원씩 모두 2억5000만 원을 지속적으로 후원했다.

생명 살린 자원봉사자들... 자비 털어 봉사하는 의료봉사 드림팀

자원봉사자인 정형외과 전문의 배준우가 방글라데시 노동자를 진찰한 결과 관절 수술이 필요한 것으로 판명났다. 이 병원에서 수술이 불가능한 환자는 협력병원인 고대구로병원 등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도록 하고 있다.
 자원봉사자인 정형외과 전문의 배준우가 방글라데시 노동자를 진찰한 결과 관절 수술이 필요한 것으로 판명났다. 이 병원에서 수술이 불가능한 환자는 협력병원인 고대구로병원 등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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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노의원 상근의사 3명은 공중보건의사로 주간 진료만 담당한다. 하지만 환자들은 밤에도 찾아온다. 특히, 휴일에는 평일보다 2~3배나 많은 200~300명의 환자들이 밀어닥친다. 이들 환자들을 누가 돌보나?

서울의료원 신장내과 윤수진, 이비인후과 의사 오재국, 내과전문의 김윤배씨 등은 자신이 근무하거나 운영하는 의료기관에서 주간 진료를 마친 뒤 외노의원으로 달려와 야간진료 봉사를 한다. 또한 고대구로병원, 열린치과의사회, 청년한의사회, 전공의협의회 등은 자원봉사 의사를 파견하거나 외노의원에서 불가능한 수술 환자들을 대신 맡아주는 방식으로 협력한다.

200~300명의 환자들이 몰려오는 휴일이면 외노의원은 야전병원을 방불케 한다. 5년째 일요일 진료를 전담하고 있는 '평화사랑나눔의료봉사단'(단장 공창배)은 봉사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한다. 세브란스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주축이 된 이 단체는 의사 30명, 한의사 5명, 물리치료사 20명, 간호사 20명, 자원봉사학생 120명 등으로 구성된 의료봉사 드림팀이다.

'평화사랑나눔의료봉사단' 이희일(35·가정의학과 전문의) 5기 운영위원장은 "지난 5년간 자비를 털어 무료투약을 하고 휴일을 반납하면서 봉사한 회원들이 자랑스럽다"면서 "의사에게 생명 살리는 일처럼 보람 있는 일은 없는데, 그러한 일에 의술이 사용된 것이 오히려 감사하다"면서 봉사활동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감기 혹은 맹장염 그리고 파상풍 등은 중병이 아니다. 의료혜택만 받았다면 완치가 가능한 작은 질병에도 외국인노동자들은 신음하다 죽어갔다. 외노의원이 설립되지 않았다면 죽음의 행렬은 이어졌을 것이다. 선한 의료진의 수고와 후원자-기관들의 도움으로 '가리봉의 기적'은 계속되고 있다.

사단법인 '지구촌사랑나눔'에서 운영하고 있는 '안식의집'에는 각종 질병 및 사고로 숨진 70여 구의 유해들이 보관되어 있다.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이 없었다면 안식의집에는 유해들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을 것이다.
 사단법인 '지구촌사랑나눔'에서 운영하고 있는 '안식의집'에는 각종 질병 및 사고로 숨진 70여 구의 유해들이 보관되어 있다.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이 없었다면 안식의집에는 유해들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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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기적, #무료진료, #외국인노동자, #지구촌사랑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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