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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입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주최로 열린 현병철 차기 인권위원장 내정 철회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공개적인 국가인권위원장 후보 선정위원회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입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주최로 열린 현병철 차기 인권위원장 내정 철회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공개적인 국가인권위원장 후보 선정위원회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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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이하 국가인권위) 위원장 임명이 무슨 첩보전인가? 군사작전인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하는 지금, 국가인권위에서는 새 위원장 취임식을 준비 중이란다. 인권활동가들은 취임식을 막기 위해 모여들고 있다고 한다.

도둑질 하다 들켜서 그렇게 마음이 급한가? 새 인권위원장에 현병철 한양사이버대학장을 임명한다는 보도가 나온 건 불과 이틀 전인 16일 일이다. 인권단체, 법학자모임, 여러 정당 관계자 등이 한 목소리로 반대했다. 인권현장 경험이 아주 없는 듣도 보도 못한 인사의 국가인권위 위원장 내정은 안 된다고 했다.

현 위원장도 16일 아침에서야 청와대 비서관한테 전화를 받았다 한다. 인사 검증을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국가인권위 인사에 관한 것인지도 몰랐단다. 그리고 어제(17일), 현 위원장은 취임식을 강행하려 했지만 인권단체들의 항의에 밀려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취임식을 월요일로 연기한다"는 말을 남긴 채 국가인권위 건물을 빠져나갔다고 한다.

여기에 무슨 검증절차와 의견수렴이란 게 있는가? 이 대통령이 그렇게 좋아하는 공사도 이런 식으로 하면 정말 부실공사 아닌가? 어제 삽 들고 오늘 기공식 하는 셈이다.

'유일한' 감시탑 하나도 '부실공사'하려는 이 정권

현병철 한양사이버대학교 학장
 현병철 한양사이버대학교 학장
ⓒ 한양사이버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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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과 국세청장에 대한 부적격인사로 시끄러웠던 게 불과 한주 전 일이다. 제대로 일 할 사람 검증하는 걸 지켜보는 게 아니라 한도 없이 터져 나오는 비리와 호화판 생활과 거짓부렁에 유린당하면서 시민들의 인권은 이미 짓밟혔다. 인사권자가 인권보장이란 목적을 위해 복무할 인물을 찾는 게 아니라 인사권을 무슨 백지수표인 양 여기고 제 맘대로 아무나 써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무슨 인권의 고려가 있을 수 있겠는가. 검찰이나 감사원 같은 권력기관의 장에 어떤 인물이 오르내렸는지를 지켜봤기에 직원이 200명도 안 되는 작은 기구인 국가인권위 자리는 오히려 더 중요해졌다. 고층건물처럼 즐비하게 늘어선 권력기관들 사이에 인권침해 방지를 위한 유일한 감시탑 하나 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가인권위 위원장과 위원 인선에는 인사청문회 같은 절차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 국가인권위 설립 단계부터 줄기차게 요구된 사안이지만 여태껏 실현되지 못했다. 이런 허점때문에 정치적 입지를 노리는 인사, 인권침해 전력을 가진 인사가 버젓이 인권위원을 차지한 일도 있었다. 철저한 검증절차를 마련해서 같은 일을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지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의 인권위원장 임명은 오히려 퇴행의 역습이다.

그나마 예전에는 후보군에 오른 인물들이 하마평에 오르고 언론 등을 통해 뜯어볼 기회나마 있었다. 이명박 정권은 아예 그런 기회조차 봉쇄했다. 이 정권은 처음부터 국제인권기준이 명하는 바나 국내인권시민사회가 바라는 바와는 달리 국가인권위 개조공사를 진행해왔다. 정권 인수위 시절엔 국가인권위의 강제이주를 명했다. 독립기구가 아닌 대통령 밑으로 이사하라고 했다. 그게 여론에 밀려 여의치 않자 국가인권위의 일손을 무더기로 잘라냈다. 200여명에 불과한 인권위 직원의 21%를 감원했다.

얼마 전 안경환 전 위원장은 "정권은 짧고 인권은 영원하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쫓겨나다시피 했다. 그리고 이 정권이 신임 위원장으로 들이민 것이 인권현장 경험이 아주 없는 법학교수다. 지금까지 이 정권이 해온 일을 볼 때 정권의 인권침해에 대해 각 세우지 말고 군소리 없이 조직 관리나 할 인물을 찾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현 위원장은 '인권'을 위해 '구체적'으로 뭘 했나

현병철 교수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취임을 반대하는 인권단체 회원들이 17일 오후 취임식이 예정된 국가인권위원회 10층 입구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현병철 교수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취임을 반대하는 인권단체 회원들이 17일 오후 취임식이 예정된 국가인권위원회 10층 입구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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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위원장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법학교수라는 것 밖에 없다. 그런데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그는 인선과정의 문제점과 자신의 인권에 대한 무지를 유감없이 드러내줬다. 

먼저 인선과정을 살펴보자. "청와대에서는 '수락하겠느냐'고만 물었다"한다. 현 위원장은 "인권위 또는 인권현장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한다. 달리 말하면 인사권자는 "이 자리 할래?"라고만 물은 것이고 위원장은 "뭔지 모르지만 할게"라고 답한 것이다.

멀리 볼 것 없이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자"(5조) 중에서 위원(장)을 임명할 것을 정하고 있다. 이런 '속사포식' '묻지마식' 인선과정에 과연 이런 자격에 대한 검증이 있었을까.

현 위원장은 인권현장은 모르지만 자신이 인권에 대해 안다고 강변하려 했다. "법학자니까 인권에 대해서 모른다면 우스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인권이 인권 운동가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법학을 30년 동안 공부하면서, 인권을 도외시하고 공부할 수는 없었다, 현장에 있었느냐, 있지 않았느냐는 얘기할 수 있겠지만…"이라고 했다.

나를 비롯해 현 위원장이 인권운동가라 부를 것이라 예상되는 사람들은 인권이 우리의 전유물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인권은 역사적으로나 지금이나 핍박당하고 있는 이들의 것이지, 소위 운동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인권운동가로서 우리가 하는 일은 작은 연대요, 대변에 불과하다는 걸 늘 부끄럽게 여긴다. 또 인권 존중 의무는 누구에게나 있는 의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인권의 소중함을 느끼고 그 소중함을 실현하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묻는 '경험'은 이런 '일반'적인 경험이 아니고 현 위원장이 '구체적'으로 인권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다. 참고하시라고 나와 동료활동가들이 대체 무슨 일을 하며 사는지를 얘기할까 한다.

인권운동에 필요한 건 '지식'과 '옹호'가 아니다

정부에서 이런 저런 정책과 입법취지를 발표하면 우리는 그것에 대한 소위 인권영향평가를 한다. 반대해야 할 일에는 공청회다 집회다 기자회견이다 해서 뛰어다니고, 만들어야 할 일에는 법안 마련부터 시작해서 인권교육과 캠페인, 국회로비 등의 일을 한다. 철거민,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과 관련한 급박한 인권침해 사건이 벌어지면 현장에 달려가 진상조사 활동을 한다. 이런 과정에서 현행법에 따라 벌금도 꿰차고 경찰 수배자도 된다. 어느 날엔 정부 청사 밖에서 데모하다가 어느 날엔 민간전문위원으로 청사에 들어가 공무원들과 구체적인 사업을 논의하기도 한다.

공무원, 군인, 사회복지종사자 등 인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들에게 인권교육을 하고 인권이론연구도 한다. 아동권리협약, 장애인권리협약 등 국제인권조약과 관련해 유엔에 대표를 파견하고 한국정부의 국제인권활동을 감시한다. 버마의 난민아동을 지원하거나 팔레스타인 고립장벽 건설 반대 등 국제연대활동도 한다.

아, 그리고 틈틈이 생계활동도 해야 한다. 내가 92년부터 인권활동을 시작했는데 2006년까지 활동비라고 받은 것은 월 35만원이었다. 그 후부터는 그나마 무급으로 활동하고 있다. 나머지 생계비는 주말마다 식당 설거지 아르바이트로 채워야 생활이 가능하다. 나만 아니라 다른 활동가들도 대개 50~70만원 정도의 활동비로 버티거나 아르바이트를 겸하며 인권활동을 해나간다.

나와 동료들은 이런 활동을 하는 동안 현 위원장의 얼굴 한 번 못 봤고 또는 학자로서 인권을 옹호하는 글 한편 쓴 것을 못 봤다. 그래서 묻는 것이다. 현 위원장의 인권활동은 무엇이었나? '일반적'인 인권지식 내지 인권옹호 자세 말고 '구체적'으로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정한 자격요건에 준하는 경험을 내놓길 바란다. 

현 위원장은 또 인터뷰에서 "인권위원장은 반드시 현장에 있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우리의 답은 "그렇다"이다. 당신은 '무엇이 인권 전문성이냐'고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꼽고 싶은 능력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정권과 권력기관들의 인권침해 앞에서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저항의지야말로 인권을 다루는 기관의 장이 가져야 할 기본 덕목이다.

인권은 의도적으로 무권리자 편들어야

현병철 교수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취임을 반대하는 인권단체 회원들이 17일 오후 인권위원장실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현병철 교수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취임을 반대하는 인권단체 회원들이 17일 오후 인권위원장실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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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리를 아는 사람은 많다. 법리를 따져 매일 법원에서 재판이 열린다. 그런데 왜 인권이 필요하겠는가? 법원 말고 왜 국가인권위가 따로 필요하겠는가? 법리를 안다고 해서 인권보장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이 '법학자니까 인권을 안다'는 말에 동조할 수 없다.

당신의 인권감수성에도 동조할 수 없다. 당신은 "여성, 노약자, 장애인 등 약자보호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인권은 보편적으로 누구나 갖는 권리이기 때문에 한쪽에 치우칠 수 없다고 본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권은 치우쳐야 한다. 무권리자의 편으로 치우쳐야 한다.

세상에는 많은 권리가 있고 권리 간에 경합이 벌어진다. 인권을 외치는 사람들은 그 속에서 자기 목소리, 자기 몫을 외칠 수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인권은 무권리자의 편을 의도적으로 들어야 한다. 그게 인권 감수성이다. 당신의 "치우칠 수 없다"는 대답이 우리에게는 "난 조용히 조직 관리를 하는 사람이오, 난 인권현장은 모르지만 법리에 따라 인권을 논할 수 있소, 난 임명권자의 뜻에 걸맞은 사람이오"라는 고백으로 들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국가인권위 위원장이란 인권침해를 예방하고 인권의 보장과 실현을 위해 권력기관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주업으로 하는 자리다. 인권보장을 위한 감시자를 둬야 할 자리에 부적격 인사를 날치기 임명하고, 준비 안 된 위원장은 냉큼 달려들었다. 우리는 인권의 이름으로 '둘 다 아니올시다'를 외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류은숙 기자는 인권연구소 '창'의 활동가입니다.



태그:#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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