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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 보이는 것이 야마(山)이고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호코(?)입니다.
 왼쪽에 보이는 것이 야마(山)이고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호코(?)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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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7월이 되면 일본 교토에서는 기온 축제가 시작됩니다. 기온 축제는 보통 일본사람들이 기온 마츠리라고 하지만 마츠리의 한국식 표현인 축제라고 통일해서 사용하고자 합니다. 이 축제는 진행 위원회가 있어 축제를 준비, 진행, 정리합니다. 이러한 일 가운데는 공개적으로 하는 일, 관계자들만 모여서 조용히 하는 일, 전통 관례에 따라서 종교적으로 치루는 일, 경찰이나 소방서등 공적 기관의 협조를 요청하는 일, 홍보하는 일,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일을 맡기는 일 등 수없이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이 글에서 소개하는 일은 생략하고 기온 축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일반에 공개되는 내용 가운데 우리 한반도와 관련된 것을 중심으로 몇 가지만 소개하고자 합니다.

기온 축제가 처음 시작된 것은 서기 869년 이라고 합니다. 당시 헤이안(平安) 시대는 교토가 수도였던 때입니다. 교토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 역병이 돌아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확인하니 고즈덴노(牛頭天王)가 죽은 뒤 그의 노여움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전야제가 열리는 동안 호코(?)를 연등으로 장식하고 주변에서는 관련 상품을 팔고 있다.
 전야제가 열리는 동안 호코(?)를 연등으로 장식하고 주변에서는 관련 상품을 팔고 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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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노여움을 풀어드리기 위해서 그를 모시고 있는 기온사(祗園社, 현재 야사카진자)에서 제사를 올리고, 역병 잡귀를 퇴치할 목적으로 당시 일본이 66개 지방으로 나뉘어있어 그 수만큼 호코(창 모, 鉾)를 만들어 역신을 봉쇄하는 의식을 거행하였다고 합니다. 그뒤 중단된 적도 있고, 처음 만들었던 호코의 모양이 바뀌기도 하여 현재의 모습을 띠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야마보코(山鉾)라고 하여 모두 32 기가 있는데 이 가운데 호코는 여덟 기가 있고, 야마는 24 기가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각기 교토 시내 각 마을에서 7월 10일에서 14일 사이에 조립되어 일반에 공개됩니다. 각 마을에는 이들 야마보코를 보관하는 곳이 있어서 이곳에서 분해와 만드는 일을 같이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야마보코를 만드는 곳이 야마보코가 축제 진행을 위해 출발하는 곳이자 종착지이기도 합니다. 

호코 앞에는 신의 대역으로 뽑힌 어린이(稚?)가 앉고, 양 옆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가 앉는다.
 호코 앞에는 신의 대역으로 뽑힌 어린이(稚?)가 앉고, 양 옆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가 앉는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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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각 야마보코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7월 17일 오전 순서에 맞춰 정해진 시간에 시조도리(四条通), 가와라마치도리(河原町通), 오이케도리(御池通), 신마치도리(新町通)를 돌아 각 출발 지점으로 돌아가는 긴 여정에 들어갑니다. 각 야마보코는 크기와 모양이 각각 다르지만 호코는 무게가 7~ 9 톤이며 높이가 26 미터 정도입니다. 그리고 야마는 각기 동일하지는 않지만 무게가 1 톤 정도이고, 높이는 15 미터 이내입니다.

이들 야마보코는 신을 태운 가마나 신의 상징물을 태운 수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시가지를 이동하는 것은 한국의 지신밟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신밟기는 토지신을 위무할 목적으로 신의 몸에 해당하는 신체를 사람들이 어깨에 메거나 들고 마을을 한 바퀴 도는 행동입니다. 지신을 해마다 정월 초에 밟아 주어야 그 해 풍년에 든다고 하여 지금도 전라도 지역에서는 매년 정월 초나 정월 보름에 줄다리기를 하고 그 줄을 사람들이 들고 마을을 한 바퀴 도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교토 가라스마도리(烏丸通) 4 차선을 매운 사람들, 어는 축제나 사람 구경이 반을 넘는다.
 교토 가라스마도리(烏丸通) 4 차선을 매운 사람들, 어는 축제나 사람 구경이 반을 넘는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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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보코가 이동할 때에는 앞뒤에 이 가마나 수레를 끌거나 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수레에 차축이 고정되어 있어 앞으로만 나가기 때문에 90 도 회전할 때에는 대나무를 쪼개어 땅바닥에 깔고 수레바퀴를 밀어서 이동시킵니다.
  
기온축제는 야사카진자(八坂神社)가 중심이 되어 진행합니다. 이 야사카진자는 앞에서 말한 고즈덴노(牛頭天王)를 중심 신으로 모시고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일본서기에 의하면 야사카진자는 헤안교(平安京)라는 이름으로 일본 역사에 등장한 때가 서기 794 년인데 이보다 훨씬 이전인 656 년 교토의 동부 현재 야사카진자 부근에 고구려 사신 이리시(伊利之) 혹은 이리사(意利佐)와 그의 일족 야사카노미야츠코(八坂造)가 사원을 짓고 생활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日本書記』 사이메이 텐노(齊明天皇) 2 년의 기록과, 서기 815 년 나온 신선성씨록(新選姓氏録)의 기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이리사는 맥족 출신 고구려인입니다. 이 야사카 진자의 원래 이름은 정액사(定額寺), 관경사(觀慶寺), 감신원(感神院), 지원사(祇園社) 등등으로 전해지는데 이 가운데 지원사(祇園社)의 천신당(天神堂)이 야사카진자의 전신이라고 합니다. 이 천신당은 하늘신을 모신 곳으로 고구려 계통의 무속신앙의 일부입니다.

그런데 기온축제가 시작되는 이유를 말하면서 등장하는 이가 고즈덴노(牛頭天王) 즉 스사노오노미코토(素戔鳴尊)입니다. 스사노오노미코토(素戔鳴尊)는 일본 건국신화에 나오는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天照大神)라는 여신의 남동생입니다. 이 두 신이 일본 신화에서 최고신입니다. 스사노오노미코토(素戔鳴尊)에 대한 기사는 일본서기(神代 上 제 8 단)의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스사노오노미코토(素戔鳴尊)는 그이 아들 이카케루를 거느리고 다카마가하라(高天原)에서 지상으로 내려왔습니다. 그곳은 신라국의 소시모리였다. 스사노오노미코토(素戔鳴尊)는 소시머리에서 동해 바다를 건너 왜나라 이즈모국(出雲國)으로 왔습니다. 이즈모국에서 스사노오노미코토(素戔鳴尊)는 머리가 8 개 달린 큰뱀(야마타노오로치, 八岐大蛇)을 가라사비(韓鋤)로 물리쳤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소시머리(曾尸茂梨), 소시모리는 소의 머리 즉 우두산(牛頭山), 우수산(牛首山)과 같은 말이다. 현재 한반도의 지명 가운데 우두산(牛頭山)은 여러 곳에 남아있다. 한국말의 이 소시머리, 우두산의 우두는 우두천왕 고즈덴노(牛頭天王)의 우두(牛頭)입니다.

야사카진자를 비롯한 현재의 교토 지역은 처음 고구려 계통의 양잠 기술을 가진 하타씨(秦氏)의 땅이었으며, 하타씨의 협조를 얻어 헤이안의 도읍지로 교토가 정해졌습니다. 그후 신라계 고즈덴노가 등장하여 하타씨 등 고구려 계통과도 공존했는지, 신라계가 교토 지역을 장악했는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시마네켄(島根?) 이와미가구라(石見神?) 가운데 뱀을 퇴치하는 모습.
 시마네켄(島根?) 이와미가구라(石見神?) 가운데 뱀을 퇴치하는 모습.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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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 축제가 열리기 하루 전날인 16일 밤에는 전야제가 교토 여러 곳에서 열립니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야사카진자에서 열리는 시마네켄(島根県)에서 온 이와미가구라(石見神楽)를 들 수 있다. 시마네켄은 이즈모다이샤(出雲大社)가 있는 곳으로 스사노오노미코토(素戔鳴尊)가 동해바다를 건너 처음 도착한 곳입니다. 이 가구라는 신라에서 동해 바다를 건너온 스사노오노미코토(素戔鳴尊)가 머리가 8 개 달린 큰뱀(야마타노오로치, 八岐大蛇)을 가라사비(韓鋤)로 물리쳤다는 내용을 연기합니다.   

7월 1일 깃뿌이리(吉符入)라고 하여 야마보코의 진행 순서를 제비뽑는 것으로 시작한 기온축제는 17일 최정절을 맞이하고 이어서 여러 신앙 의례를 거행하고, 7월 31일 소민쇼우라이(蘇民將來) 의례를 끝으로 축제가 막을 내립니다.

7 월 17 일 오후 6 시 야사카진자 입구에 야사카진자에서 모시는 세 신을 태운 가마를 가지고 나와 미코시토쿄(神輿渡御) 의식을 거행한다.
 7 월 17 일 오후 6 시 야사카진자 입구에 야사카진자에서 모시는 세 신을 태운 가마를 가지고 나와 미코시토쿄(神輿渡御) 의식을 거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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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민쇼우라이(蘇民將來) 의식은 야사카진자의 주신인 스사노오노미코토(素戔鳴尊)가 남해(南海)를 여행할 때, 하루 밤 묵을 곳을 청하자 소민쇼우라이(蘇民將來)가 조로 밥을 해서 친절하게 대접해 주었다고 합니다. 스사노오노미코토는 소민쇼우라이(蘇民將來)의 진심을 알고 기쁘게 받아들여 역병이 유행할 때 「소민쇼우라이노시손나리(蘇民將來子孫也)」라고 쓰인 부적을 지닌 사람은 역병을 면하게 해준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러 일이 있은 후 기온축제 때 사람들은 「소민쇼우라이노시손나리(蘇民將來子孫也)」라고 쓴 부적을 몸에 지니고 참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7 월 31 일에는 소민쇼우라이(蘇民將來)를 위해 의식을 거행하고 야사카진자 내에 둥근띠문(茅之輪守)이라고 하여 띠로 둥근 원형태의 문을 만들어 사람들이 이곳을 통과하면 여름을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소민쇼우라이노시손나리(蘇民將來子孫也)」라고 쓴 부적과 조떡을 신사에서 사서 먹으면 역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소민쇼우라이(蘇民將來) 이야기는 삼유국사 헌강왕 조에 실린 처용 이야기와 역병을 물리치는 주술적 심성이 비슷합니다. 즉 처용이 밤늦게 집에 들어가 보자 부인이 다른 남자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처용이 두 다리는 내 아내 다리인데 나머지 두 다리는 누구 것이냐고 노래를 부르며 물러서자, 그 나머지 두 다리의 주인공이 나타나 잘못을 뉘우치고 자신이 역병을 관장하는 역신인데 앞으로 다시는 이곳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 당신의 얼굴만 보아도 그 집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하여 사람들이 처용의 얼굴 모습을 부적으로 문지방에 부쳐 역병을 방지했다고 합니다.

신을 태운 가마의 봉황 장식 위에 벼를 올려 놓았다. 아마도 벼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긴 것이 아닌가 한다.
 신을 태운 가마의 봉황 장식 위에 벼를 올려 놓았다. 아마도 벼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긴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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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축제가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거의 모두가 한반도와 관련된 신이나 신앙 습속이 나옵니다. 처음 축제의 이유에서 나온 신라신, 그리고 야사카 진자가 역사적으로 지녀온 고구려 신, 그리고 처용 모티브와 비슷한 내용으로 역병을 물리치고자 하는 주술적 심성 등이 그렇습니다.  

매년 교토를 찾는 국내외 관광객이 2 천만 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기온축제 기간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교토를 방문한다고 합니다. 이들은 단순히 관광만을 목적으로 교토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고 기온축제가 가진 원래의 의미 즉 역병 예방의 주술적 의도가 숨어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박현국 기자는 일본 류코쿠(Ryukoku, 龍谷)대학 국제문화학부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태그:#기온축제, #야사카진자, #교토, #야마보코, #고즈덴노(牛頭天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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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2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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