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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 걸스>겉표지
 <닌자 걸스>겉표지
ⓒ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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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 걸스>의 '그녀'들이 다니는 모란여고에는 심화반이라는 것이 있다. 공부 잘 하는 학생들만 따로 모아서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하는 반이다. 학부모들은 자신의 딸들이 이곳에 들어가기만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 반에 속한 아이들 대부분은 일종의 우월감을 갖고 있다. 이곳에 속하지 못한 아이들을 '조금' 깔보기도 한다.

그 학교의 네 명의 여학생들이 학교 옥상으로 올라간다. 수업이 끝난 시간, 그녀들은 '닌자' 복장을 한 채로 교무실로 전화를 건다.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뛰어내리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학교가 난리가 난 건 당연한 일이다. 경찰까지 출동했다. 도대체 그녀들은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심화반을 폐지하라는 것이다.

그녀들은 왜 심화반을 폐지하라고 요구하는 것일까. 차별대우를 더 이상 참을 수 없기 때문일까? 입시위주의 교육정책을 비판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다. 이 일의 계기는 '고뚱땡'이라고 불리는 은비가 연극 오디션을 보면서 일어난 일이다. 은비는 심화반에 소속된 아이였다. 어린 시절, 귀여운 외모 덕분에 단역배우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고릴라'나 '고뚱땡'이라고 불릴 만큼 뚱뚱해졌다.

부모님은 뚱뚱해진 은비가 의대에 가기를 바란다. 남들 보란 듯이 커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은비는 배우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고 오디션을 본다. 결과는 언제나 낙방이다. 은비의 친구들, 꽃미남을 밝히는 '지형'과 키가 작은 '소울'은 외모가 떨어져서 그런 거 말한다. 은비는 화가 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언제나 실패하는 다이어트를 반복하면서 스트레스만 받을 뿐이다.

그런 은비에게 기가 막힌 소식이 전해진다. 같은 반 내에 '얼짱'으로 통하는 혜지의 삼촌이 영화감독이라는 것이다. 은비는 혜지를 과외 시켜주는 것으로 뭔가 연줄을 만들어보려고 하는데 그 계획은 성공이었다. 연극 무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조연 중에 조연이었지만, 은비에게는 귀중한 기회가 생긴 것이다.

문제는 연극을 하려면 심화반을 빠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학교와 집안 사정을 보건데 심화반을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어찌하는가. 심화반을 폐지하기 위해 몇 가지 방법을 세운다. 용한 점쟁이를 찾아가 부적을 받거나 하는 식이다. 그것이 가능한가? 물론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녀들은 옥상에 올라간 것이다.

<닌자 걸스>는 재밌다. 어느 한순간 막힘없이 술술 읽힌다. 전작 <하이킹 걸즈>에서 나타났듯이 김혜정의 재치어린 입담과 익살스러운 장난들이 자연스럽게 글에 녹아들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에피소드들 하나하나도 소설의 읽는 맛을 더한다. 오디션을 보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 하는 은비나 방송 작가가 되겠다는 지형, 남다른 자신감을 지닌 소울과 얼굴이 예쁜데 공부는 전교에서 꼴찌를 다투고 있는 혜지가 모여서 자신만의 '꿈'을 찾는 과정에서 벌이는 '소동'들은 코믹함과 유쾌함 사이를 넘나들면서 읽는 맛을 쏠쏠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닌자 걸스>가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녀들이 옥상에 오르기 전까지, 거의 매순간 유쾌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옥상에 올라 어른들과 '대치'하면서 누구보다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그 모습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성적으로 평가하는 사회, 꿈을 강요하는 어른에 대한 경건한 반항에서 비롯된다.

그녀들이 '닌자' 복장을 하고 옥상에 올라 외치는 소리는 무엇인가. 연극을 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또한 공부 못한다고 미국으로 보내지 말라는 것도 있다. 열심히 쓴 시나리오 노트 돌려달라는 말도 있다. 그들의 요구는 '고작' 그런 것이었다. 눈물겹지만, 사실이다. 제발 '하고 싶은 것' 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심화반 폐지도 있었지만 말이다.

원하는 협상을 한 뒤에 택시 타고 유유히 사라지려 했던, 참으로 순진했던 '닌자 걸스', 그들은 이제 어찌 될 것인가. '엄청나게' 혼날 테고 자칫하면 정학을 맞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그녀들은 속상해할까. 아닐 것이다. 제 목소리 한번 시원하게 질러봤으니 흡족해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지켜보는 사람들의 코끝을 찡하게 만들며 '청소년'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기도 하니, 이 정도면 대활약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닌자 거북이보다 엉성하고 초라하지만 누구보다 감동 주는 닌자 걸스의 대소동을 다룬 <닌자 걸스>, 청소년은 물론이고 어른들의 마음까지 훔칠 만큼 매력적이다.


닌자걸스

김혜정 지음, 비룡소(2009)


태그:#청소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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