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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르 브르통의 산문집 '걷기예찬'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물론 각자에게는 저마다의 기벽이 있는 법, 어떤 사람은 많은 초콜릿판을 지니지 않고는 길을 떠나지 못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런 것 보다는 프루스트 전집이 필수라고 생각하고 제 3의 인물은 저녁에 해가 저물어 잠자리를 구할 때 적어도 이미지 관리는 해야 하므로 정장 양복은 꼭 넣어가지고 떠나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다비드 르 브르통의 산문집 '걷기예찬'
▲ 걷기예찬 다비드 르 브르통의 산문집 '걷기예찬'
ⓒ 배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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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다보면, 진실로 여행자들마다 반드시 가지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얼마나 각양 각색인지를 알게 된다. 여행 책자 없이 그저 여기 저기 헤매다 보면 오히려 그것이  많은 것들을 발견하게하고 더 많은 재미를 준다고  믿는 나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최소한 두 세권의 그 지역 관련 책자들을 따로 따로 분철해서 마치 부적처럼 어딜가든 꼭 몸에 지니고 다니는 이들도 있다. 죽어도 카메라는 옆에 끼고 있어야 하는 친구들도 있고 그 머나먼 외국에서도 반드시 핸드폰을 챙기는 이들도 있기 마련이다. 여자들이라면 수영복이나 예쁜 원피스 하나쯤은 반드시 챙겨가는 경우도 흔한 편이다. 그리고 이러한 각자의 차이들이 여행을 넘어서 그들의 일상과 상당부분 닮아있다는 사실 또한 흥미로운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여행을 통해 그러한 일상과 여행의 분리를 경험해 보고 싶어했던 것 중 하나가 '커피 마시지 않기" 였다. 서울에서 나는 하루라도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날이 없었다. 때로는 속이 쓰리고 잠이 오지 않게 되더라도 커피는 내 책상 앞에 언제나 존재하는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러다 보니 일상에서, 더구나 일을 한다거나 공부를 해야하는 경우라면 커피와 이별을 한다는 건 더더욱 말처럼 쉬운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적어도 여행 도중 만이라도 커피라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일부러 배낭에도 넣지 않았다. 그러나 여행이 지속되고 육체가 피곤해 질수록, 또한 먼 장거리 기차 여행이거나 날씨를 예측할 수 없는 스위스 같은 곳에서 5, 6월에 갑자기 겨울의 추위를 만나게 되는 날에는 어김 없이 나의 발은 카페로 향했다. 

그리고 그렇게 마시게 되는 커피 한잔은 물리적인 차 한잔의 의미를 넘어서 외로운 여행객의 가슴까지 달래주기에 충분할 만큼 달콤하고 따뜻했다. 

스위스의 모 지방에 들렀다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무작정 눈에 보이는 작은 카페에 들어가 주문했던 한잔의 커피.  시골마을의 동네 카페여서일까 찻잔도 탁자도 도시의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 커피 한잔을  마시고서야 덜덜 떨렸던 나의 몸은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 스위스의 작은 마을에서의 커피 한잔 스위스의 모 지방에 들렀다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무작정 눈에 보이는 작은 카페에 들어가 주문했던 한잔의 커피. 시골마을의 동네 카페여서일까 찻잔도 탁자도 도시의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 커피 한잔을 마시고서야 덜덜 떨렸던 나의 몸은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 배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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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행객들에게 커피의, 그리고 그 커피를 파는 카페의 매력이 단지 거기에서 그칠 수는 없다. 프랑스를 사랑하는 여행객들의 대다수가 파리의 노천카페를 잊지 못하듯이, 혹은 비엔나의 모 카페에서 실제로 촬영을 했다던 영화 ' 비포 선 라이즈' 의 한 장면에서처럼 커피는 마음을 만나고 그것을 위로하며 그래서 함꼐 마시던 이와  마시던 곳까지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비엔나에는 이 영화의 촬영지였던 유명한 카페가 있다.
▲ 영화 '비 포 선 라이즈'의 한 장면 실제로 비엔나에는 이 영화의 촬영지였던 유명한 카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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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난 나의 여행속에 축적된 수많은 이미지들 속에는 바로 이런 커피와 함께 했던 기억들이 애초의 다짐을 무색하게 너무나 많은 무게로 자리잡게 되었다. 외로우면 외로울수록, 지치면 지칠수록 커피와 그것을 마실 수 있는 카페는 오히려 나와 더욱 가까워졌다.

붉은 색이 잘 어울리던 독일 함부르크의 한 카페에서의 연인
▲ 독일 함부르크의 붉은 색의 한 카페 붉은 색이 잘 어울리던 독일 함부르크의 한 카페에서의 연인
ⓒ 배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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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다비드 르 브르통이 언급했던 저마다의 기벽이 내게는 '커피'가 된 셈이었다. 커피가 함께 했기에 나의 여행은 좀 더 행복할 수 있었다고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걷다가 지치거나 다른 기차와의 환승을 기다리는 도중 주위의 노천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을 주문하고 거리의 풍경을 바라보거나, 혹은 아침 숙소를 나와  take out 커피 한잔을 손에 쥐고 길 위에 설 때면 명확히 지칭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울컥 울컥 마음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듯했다.

그것은 마치 음악이 사람의 감정을 더욱 고조시켜 꼭 꼭 닫아두었던 마음의 빗장을 여는 것과  비숫한 느낌이었다. 좀 더 편안해져도, 여유를 가져도 될 것 같은 느낌. 힌모금의 커피에서 향과 맛으로 오감이 불러일으켜지고 그것으로 주위를 보다 깊게 바라볼 수 있게 온몸이 깨워지는 듯 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개인적인 느낌만은 아닌 것 같다. 수많은 여행 책자들이 여행 한 곳 중 예쁘고 추억에 남는 카페 사진 한 장쯤은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아서, 여행 하다 맛난 이들끼리 그곳 어느 카페 커피는 꼭 한번 맛보라는 추천을 가끔 누군가에게 해주는 걸로 보아서,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여행객들에게 커피나 그것을 마셨던 카페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마음속에 남는 것을 보면 모두들 커피 한잔에 마음이 울리는 그 어딘가를 경험해보곤 하는 것 같다.

독일 북부의 한 카페
▲ 여행 중 한 카페에서 쉬고 있는 한 중년의 여인 독일 북부의 한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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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언젠가 당신이 그 길 위에 설 때, 커피향이 주는 깊고 짙은 향과 함께 한다면 '길 위의 수많은 만남'들이  더욱 깊어지지 않을까?

나 역시 한잔의 커피가 다시금 그리워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작년 유럽여행을 홀로 다녀오면서 겪은 일들을 이어쓰기 하고 있는 것들 중 한 글입니다.



태그:#여행 ,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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