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부엉이 바위아래 누군가가 꽃다발을 놓아 두었다.

7월 9일 천둥번개와 함께 장대비가 내렸습니다. 10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잿날인데 걱정이 앞섭니다. 49재에 참여하기 위해 봉하를 다녀오기로 마음먹었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밤이 되자 차츰 비가 그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출발을 하기위해 잠을 청해봅니다. 그렇지만 쉽사리 잠이 들지 않습니다.

 

살아생전에 찾아가 뵙지 못하고 돌아가신 뒤에야 찾아간다는 것이 시린 가슴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꼬박 밤을 새우고 새벽 4시에 집을 나섭니다. 다섯 시간을 달려 김해 봉하에 도착했습니다.

 

입구에는 그동안 그분을 향한 마음을 담은 국민들의 가슴 저린 글들이 적힌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걸려  눈시울을 적시게 합니다. 마을입구에서부터 더위와 싸우며 안장식이 이루어지는 장소까지 걸어가는 사람들의 행렬이 도로를 가득 메웠습니다.

 

 봉하마을회관 입구에 차려져 있는 분향소에서 조문객이 헌화를 하고 있다.

마을회관 앞에 도착하자 환한 미소를 머금고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을 한 고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의 커다란 사진이 보입니다. 그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표정 없이 한동안 그분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따가운 햇볕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신문지를 접어 모자를 만들어 쓴 사람들이 안장식이 시작하기를 기다립니다. 그분의 살아생전에 행적들을 담은 영상물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보입니다. 그분을 보내기가 안타까워 하나하나 정성들여 쓴 노란 띠의 추모 글이 부엉이바위 앞 도로에서 잔잔한 바람에 나부낍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절절한 마음이 담긴 추모글을 적은 노란띠 너머로 부엉이 바위가 보인다.

 

 경사가 진 나무 그늘 사이로 안장식에 참가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안장식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묵념이 시작되자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

 

 안장식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며 한 시민이 상념에 잠기어 걸어가고 있다.

 

식장근처 작은 동산 소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는 곳에는 가족들과 함께 온 사람들도 있고 동네에서 대형 버스를 빌려 왔다는 사람들이 경사진 언덕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다소 불편해 보이지만 그분을 향한 마음만큼은 하나가 되어 식이 진행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12시가 되자 안장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전북 익산에서 오셨다는 소사호(77여) 어르신은 서민들을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셨던 그분이 돌아가시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며 몇 번이나 이곳에 오고 싶었지만 여건이 허락하질 않아 오지 못했는데 49재를 맞이해서 마을에서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을 모집하기에 제일 먼저 신청해서 오게 되었다며

 

"좋은 사람이 갔시유. 이런 일이 다시는 없겠쥬? 부자가 잘사는 나라보다 없이 사는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태평성대를 이룰턴디..."

 

익산시 용현리에서 오셨다는 오이선(69 여)씨는

"농촌에서는 죽도록 고생을 혀도 빚을 지며 사는 사람들이 많고 고생한 보람이 없어 농촌사람들이 잘살아야 혀유.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시골에 내려오셔서도 농민들이 잘 살아야한다며 농촌을 위해 연구도 많이 하고 노력을 많이 했다는 소식을 많이 들었는디 이렇게 일찍 가시게 되어 어쩐대유. 대통령님 생각만 하믄 눈물이 저절로 나와부러요. 참말로 아깝제."

 

 고등학교 동기동창이라는 박정명(62)씨  흙으로 돌아가는 친구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위해 왔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등학교 동기동창이라는 박정명(62)씨도 먼발치에서 친구를 보내기위해 찾아왔습니다. 돌아가시기 불과 두어 달 전에도 만나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나누곤 했는데... 친구를 잃은 큰 슬픔에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었다며 거제도에서 20년 동안 조그마한 펜션사업을 하고 있다는 박씨에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나무와 꽃, 풀 자연이 주는 모든 것들을 무척 좋아하셨어요. 임기를 마치고 고향으로 내려오신 뒤 사저 근처 마을에 나무와 꽃을 심어 정원을 만들고 마을을 아름답게 가꾸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관광명소로 만들고 싶다고 하셨지요.

 

그래서 지난 3월 10일 여사님과 함께 제가 운영하는 펜션을 방문하시고 20여 년 동안 정성스럽게 가꾸어온 나무와 집 주위의 조경을 보시고 돌아가신 뒤 3월 29일 이곳 사저로 초대를 받아 담소를 나누며 마을 가꾸는데 필요한 조언을 부탁 하셨어요.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곳 아래쪽을 바라보면 이제 갓 자란 탱자나무 싹이 올라온 게 보이지요. 그것도 함께 구상을 했던 겁니다. 다양한꽃과, 야생화, 철쭉도 심자고 하셨는데...

 

농촌 사람들에게 소득이 될 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하며 고민을 많이 하셨어요. 도시와 농촌과의 교류에도 중점을 두고 생산되는 모든 농산물을 직거래를 통해 서로 친분을 쌓아 함께 참여하며 하나가 되기를 바라셨지요. "

 

"고교시절 대통령님은 어떠셨나요?"

"고등학교 때에도 참 적극적이며 리더십이 강해 모든 일에 열정적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한 번은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는데 곱사춤을 추면서 친구들에게 웃음을 주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솔직담백하고 꾸밈이 없으며 서민적인 정서가 우리들이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만든 사람이었는데...  친구가 떠난 이곳이 민주화운동의 성지가 될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민주화의 꽃이 활짝 피어나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이명박에게는 국민은 없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안장식이 진행되는 도중 묵념을 하는 한 시민은 숨을 죽여 오열을 하며 고개를  떨어뜨립니다. 땀과 눈물이 뒤범벅이 되어 그분이 마지막 흙으로 돌아가시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그분은 가셨지만 그분이 우리에게 남기신 민주화의 불길은 활활 타오를 것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자연과 사람이 하나 되는 세상을 오늘도 나는 꿈꾼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