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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비 그친 이듬날은 언제나처럼 하늘이 파랗습니다. 여느 날에는 하늘이 파란 모습을 올려다볼 수 없게 된 오늘날이기 때문에, 이제는 비 그친 이듬날에는 어김없이 골목마실을 하면서 파란빛을 만나려고 합니다. 파란빛을 머금은 햇살과 파란빛을 풍기는 바람을 맞으면서 사뿐사뿐 발걸음을 옮깁니다. 이 파란 느낌이 제 몸을 어루만져 주고 제 마음을 쓰다듬어 주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지난주에는 ㅅ중학교 담벼락하고 맞닿은 답동 골목 안쪽을 거닐었습니다. 어린 나날, 동무들하고 어울려 놀면서 으레 지나다니던 길을 어른이 되어 다시 거니는 느낌은 새삼스럽습니다. 그 어린 때에는 골목길마다 가지런히 놓인 앙증맞은 꽃그릇을 하나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막 천자문을 익힐 때라 골목집마다 대문가에 붙여놓은 문패를 들여다보면서 한자읽기를 해 보았지만, 집집마다 문패가 어떻게 다른가를 눈여겨볼 깜냥은 못 되었습니다. 동무하고 성은 같으나 이름이 다른 어른들 이름을 문패로 하나둘 만나며 낯설면서도 반갑다고 느꼈는데, 그 어릴 때에나 지금 나이먹은 때에나 마찬가지로 떠오르는 모습이며 바라보는 모습은, 골목길 그늘진 자리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걸상과 평상입니다.

홀로 앉아 해바라기 하는 걸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홀로 있는 듯 보여도, 저 옆으로 이웃집 걸상이 있어, 서로 걸상에 앉아 먼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홀로 앉아 해바라기 하는 걸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홀로 있는 듯 보여도, 저 옆으로 이웃집 걸상이 있어, 서로 걸상에 앉아 먼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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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도 아주머니 할머니들은 걸상이나 평상에 앉아서 동무들하고 어울려 있었고, 동무하고 놀고자 찾아간 저 같은 조무래기를 동네 어르신들은 걸상이나 평상에 앉아서 웃음으로 반겨 주었습니다.

이즈음, 동네마실을 하면서 걸상이나 평상에 앉아 골목아이와 노는 어르신을 만나기란 수월하지 않습니다. 서너 살만 되어도 으레 어린이집에 보내곤 하니까요. 그러나, 예전 같지는 않다 하여도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올 무렵이면 엄마랑 할머니랑 또는 할아버지랑 평상에서 어울리거나 장판을 깐 골목 어귀에서 어울리는 모습을 드문드문 만납니다. 한식구가 도란도란 어우러진 모습을 아기를 안고 지나가며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고 인사를 나누기도 합니다. 우리 아기가 무럭무럭 자라나 저 아이들처럼 골목길을 뛰놀 나이가 되면, 아이는 이웃 동무를 사귀면서 이웃사람과 나란히 평상이나 장판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나누지 않으랴 싶습니다.

어릴 적에는 걸상 옆에 가득히 놓여 있던 꽃그릇을 왜 알아채지 못했을까요. 그때에는 어쩔 수 없이 못 보았을까요.
 어릴 적에는 걸상 옆에 가득히 놓여 있던 꽃그릇을 왜 알아채지 못했을까요. 그때에는 어쩔 수 없이 못 보았을까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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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하루 비가 퍼붓던 날씨가 엊저녁부터 차츰 개더니, 아침이 되니 말끔합니다. 집 둘레 조그마한 나무숲에서는 동네 새가 지저귀고, 집집마다 밀린 빨래 내다 너느라 바쁩니다. 우리 집도 어제 못한 기저귀 빨래를 새벽부터 신나게 해서 햇볕에 말리려고 내다 넙니다. 칭얼대는 아기를 안고 다락방에 올라가 우리 집 담벼락과 맞붙어 자라는 복숭아나무를 한동안 내려다보고 있은 다음, 아침밥을 안칩니다. 어젯밤에 불려 놓은 누런쌀에 감자를 세 조각으로 잘라 넣고, 다시마와 말린버섯을 넣고는 불을 아주 작게 올립니다. 삼사십 분 뒤에는 뚝배기로 짓는 아침밥이 구수하게 다 될 테지요. 냄비로 짓는 밥도 맛있고 뚝배기로 짓는 밥도 맛있습니다. 더디더디 불리는 쌀과 콩이요, 더디더디 끓이는 밥입니다.

오늘도 아기와 씨름하듯 아침을 먹고 나서, 더딘 걸음으로 골목을 두루 에돌면서 도서관으로 일하러 가야겠습니다. 벌써부터 아침햇살이 눈부시다고 느낍니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쬘 때에는 집에서 쉬고, 햇볕이 잠잠해질 무렵이면, 한 분 두 분 골목길로 나옵니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쬘 때에는 집에서 쉬고, 햇볕이 잠잠해질 무렵이면, 한 분 두 분 골목길로 나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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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골목걸상 둘레로 방울토마토가 알알이 익어 갑니다.
 낡은 골목걸상 둘레로 방울토마토가 알알이 익어 갑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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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나누는 평상은, 으레 노란 장판으로 깔아놓곤 합니다.
 여러 사람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나누는 평상은, 으레 노란 장판으로 깔아놓곤 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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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상 몇 나란히 놓인 자리에 앉아서 꽃을 보고 풀을 보고 햇볕을 쬐며 하루하루를 돌아봅니다.
 걸상 몇 나란히 놓인 자리에 앉아서 꽃을 보고 풀을 보고 햇볕을 쬐며 하루하루를 돌아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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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골목 안쪽에 놓인 걸상을 보면서, 이 걸상은 나이를 얼마나 먹었고, 이 골목집에 깃든 분들은 얼마나 긴 나날을 이곳에서 보냈을까를 어림해 봅니다.
 고즈넉한 골목 안쪽에 놓인 걸상을 보면서, 이 걸상은 나이를 얼마나 먹었고, 이 골목집에 깃든 분들은 얼마나 긴 나날을 이곳에서 보냈을까를 어림해 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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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에서는 낮잠을 즐길 수 있습니다. 누가 보든 말든, 동네 골목이니까요.
 평상에서는 낮잠을 즐길 수 있습니다. 누가 보든 말든, 동네 골목이니까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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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재개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골목집도 사라지고 골목길 걸상과 평상도 자취를 감춥니다. 이제 이 원두막도 머잖아 밀려나 없어질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 재개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골목집도 사라지고 골목길 걸상과 평상도 자취를 감춥니다. 이제 이 원두막도 머잖아 밀려나 없어질 수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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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저녁나절, 골목 한켠에 장판을 깔고 더위를 식히며 어울리는 식구들이 있습니다.
 깊어가는 저녁나절, 골목 한켠에 장판을 깔고 더위를 식히며 어울리는 식구들이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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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에 깔린 장판과 평상 둘레로, 골목동네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뛰놀기도 합니다.
 골목길에 깔린 장판과 평상 둘레로, 골목동네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뛰놀기도 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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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평상은 동네사람이 오붓하게 어우러지는 만남터입니다.
 골목길 평상은 동네사람이 오붓하게 어우러지는 만남터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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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안쪽까지 아파트가 파고들어와 걸상이며 평상이며 설 자리를 잃고 있으나, 꿋꿋하게 제자리를 지키는 걸상과 평상을, 골목마실을 하면서 만납니다.
 골목 안쪽까지 아파트가 파고들어와 걸상이며 평상이며 설 자리를 잃고 있으나, 꿋꿋하게 제자리를 지키는 걸상과 평상을, 골목마실을 하면서 만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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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걸상과 꽃그릇이 나란히 어울립니다.
 긴 걸상과 꽃그릇이 나란히 어울립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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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걸상이 소담스레 어울립니다.
 꽃과 걸상이 소담스레 어울립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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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집과 걸상이 앙증맞게 어울립니다.
 골목집과 걸상이 앙증맞게 어울립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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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평상 위에 큰 다라가 거꾸로 얹힙니다.
 비오는 날, 평상 위에 큰 다라가 거꾸로 얹힙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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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와 잇닿아 있는 골목집에서는, 아파트와 골목집을 가로막는 울타리 가에 꽃그릇을 놓고 걸상을 놓으며, 빨래를 내다 넙니다.
 아파트와 잇닿아 있는 골목집에서는, 아파트와 골목집을 가로막는 울타리 가에 꽃그릇을 놓고 걸상을 놓으며, 빨래를 내다 넙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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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나무골 골목집 앞 걸상 옆에는 이 집 개 두 마리가 바깥에서 길손을 하염없이 구경합니다.
 밤나무골 골목집 앞 걸상 옆에는 이 집 개 두 마리가 바깥에서 길손을 하염없이 구경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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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태그:#골목길, #골목마실, #골목여행, #인천골목길,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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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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