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봉하마을로 내려간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9년 봄 검찰수사를 받으면서 "정치하지 마라"는 제목의 글을 '사람사는세상' 홈페이지에 썼다. 그것은 이렇게 시작된다.

 

"정치, 하지 마라. 이 말은 제가 요즈음 사람들을 만나면 자주 하는 말입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담으로 하는 말입니다. 얻을 수 있는 것에 비하여 잃어야 하는 것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봉하마을의 전직 대통령은  그 글에서 정치하는 일이 고생에 비해 보람이 없다고 했다.

 

"열심히 싸우고, 허물고, 쌓아 올리면서 긴 세월을 달려왔지만, 그 흔적은 희미하고, 또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실패의 기록뿐, 우리가 추구하던 목표는 그냥 저 멀리 있을 뿐입니다."

 

그는 정치를 하게 되면 이런저런 수렁에 빠지기 쉽고, 그것을 회피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고 했다.

 

"문제는 정치인이 가는 길에는, 미처 생각하지 않았던, 그리고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난관과 부담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거짓말의 수렁, 정치자금의 수렁, 사생활 검증의 수렁, 이전투구의 수렁, 이런 수렁들을 지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어린 아들에게 정치인이 되어보라 했습니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그는 정말 정치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 아무도 정치를 안 하면 그럼 누가 그 일을 해야 할까? 그런데 그 글을 꼼꼼히 읽어보니 결론은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정치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정치하지 마라"는 역설적으로 제대로 정치하자는 것이었다.

 

"저는 정치인을 위한 변명으로 이 글을 씁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정치인을 위하여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 정치가 좀 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정치가 달라지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먼저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정치인의 처지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도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이 이야기를 합니다. 주인이 알아주지 않는 머슴들은 결코 훌륭한 일꾼이 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2009년 봄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어쨌든 그렇게 "정치하지 마라"는 글을 남겼지만, "바보 노무현, 그의 죽음 때문에 처음으로 정치를 해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내가 만난 한 연구단체의 지식인은 "조용히 연구만 하려고 했는데 지방자치단체장이든 국회의원이든 정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요즘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지식인은 "처음으로 꼭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심지어 나마저도 정치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무엇에 복수하고 싶다는 것일까? 전직 대통령마저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한국사회, 그것을 제대로 바꿔보고 싶다는 것일 게다. 

 

누리꾼 이지윤씨도 그런 경우다. 그는 "나의 어린 아들에게 정치인이 되어보라고" 권했다고 했다. 그는 '인물연구 노무현' 시리즈를 읽고 나서 이렇게 적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노무현 대통령의 가짜 팬이었나 봅니다. 그분의 심중을 어찌 제대로 아는 것이 이리도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시고 난 다음에야 이렇게 하나씩 알게 되는 그분의 모습이 너무 아리도록 안타깝기만 합니다. … 민주주의 … 과연 무엇인지…. 나의 어린 아들에게 정치인이 되어보라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닮은 정의로운, 사람다운 정치인이 되기를 권했습니다."

 

그런데 이 어머니 누리꾼뿐만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직후부터 49재를 앞두고 있는 지금까지 그동안 내가 만나 온 많은 사람들은, 꼭 정치 지망생이 아니더라도 "노무현 때문에…"라는 말을 많이 했다.

 

"노무현 때문에 다시 정치를 공부하게 됐다."

"노무현 때문에 다음 선거에서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작심했다."

"그동안 바보처럼 살았는데, 바보 노무현 때문에 더 이상 바보처럼 못 살겠다."

 

이런 흐름이 간단치 않은 것은 그 다짐들이 모아져 여기저기서 '노무현 공부'를, 노무현이 공부한 '진보의 미래'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 학습을 다시 시작하며"

 

그럼 어떻게 노무현을 공부해야 할까? 나는 2년 전 했던 그와의 인터뷰 녹취록을 다시 읽고 또 읽어보았다. 최근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봉하마을에서 쓴 글들을 모두 읽어보았다. 주로 '사람 사는 세상' 홈페이지에 올린 글인데, A4용지로 123페이지에 달했다. 그것들을 뒤지다 보니 '이거다' 싶은 것이 있었다.

 

2008년 3월 11일 '확신범'이라는 필명을 쓴 누리꾼이 '노무현 학습을 다시 시작하며'라는 글을 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글을 추천하면서 "저보다 더 노무현을 잘 이해하고 있는 글"이라고 했다.  '확신범'이 쓴 그 글을 요약해본다.

 

"노무현은 액면 그대로이다. 소통이 정말 쉽다.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저 말 뒤에 다른 저의가 있을 거야 하는 기대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어려운 사람이라고 느끼는 점은 어떻게 하면 저 사람처럼 살 수 있지? 라고 느낄 때이다. 노무현은 말도 쉽지만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을 삶으로 보여준다. 노무현은 행동으로 이해하면 무지무지 쉬워진다. (그러나 행동을 따라 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노무현은 의미한다. 행동하자 그리고 목표는 저기다, 라고 손가락질한다.

 

노무현이 정답을, 방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물어보라, 그러면 대답할 것이다. 그건 아직 모르겠어요. 그래도 저리로 가야 해요. 이게 문제다. 결정적인 순간에 노무현은 자기가 할 수 있다고 하지 않고, 사람들이, 시간이, 역사가 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 몫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힘들다. 단순히 팬으로 환호만 했으면 편하겠는데... 노무현 학습을 통해서 행동까지 해야 한다. 정답과 방법까지 함께 고민해주어야 한다. 그와 소통하는 것은 쉽다. 다만 그처럼 행동하는 것이 많이 어렵다는 거다. 노무현 학습을 다시 시작하면서... 고생길이 뻔한 나와 우리들의 삶에 위로와 축복을 ~~~그래 안다, 이 길이 희망이고 행복임을 ~~~"

 

노무현 공부를 하다 보면 노무현과 마주칠 수도

 

그러니까 노무현 공부는 쉽지 않다. 단순히 팬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행동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확신범'은 그래도 그 길이 희망이고 행복이라고 했다. 이 글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이런 답글을 달았다.

 

"노무현입니다. 저보다 저를 잘 그린 글입니다. 나중에 회고록에 담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만, 이런 말은 해두고 싶군요. 저도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저도 부족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납득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속았다고 생각하기가 쉽지요. 그리고 실망하고, 다음에는 세상을 불신하게 되지요. 부족한 그대로 동지가 되면 좋겠습니다."

 

거기에 답이 있었다. 노무현 공부를 하다 보면 부족한 사람 노무현과 마주칠 수도 있겠다. 노무현 이어달리기를 하다 보면, 함께 길을 가는 사람들끼리 서로 부족한 면들을 발견하고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한목소리로 "민주주의 위기"를 외친 사람들도 바보 노무현이 가르쳐준 대로, 부족한 그대로 동지가 되면 좋겠다.

 

"단행본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로 이어갑니다"

[맺는말] 연재 <인물연구 노무현>을 일단락하며

<오마이뉴스>를 통한 '인물연구 노무현' 연재는 여기에서 일단 쉬겠습니다. 대신 단행본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연재된 것을 보완·재구성하고 '조중동과의 싸움 1,2', '이라크 파병', '한미FTA', '예비정치인에게', '작은비석 특강', '진보의 미래' 등 새로운 꼭지들을 대폭 추가해서 단행본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를 만들었습니다.

 

이 책의 지은이(저작권자)는 노무현(인터뷰)/오연호(글)입니다. 이 책의 수익금 중 일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사업과 관련한 뜻있는 사업에 쓰일 예정입니다. 아마도 6일(월)부터는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연재된 글을 바탕으로 한 권의 책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를 내놓기로 결심한 것은 '인물연구 노무현'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성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한 기사를 107만 명이 읽었는가 하면, "눈물로 잘 읽었다, 너무 의미 있는 글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다시 만나게 됐다"는 댓글이 숱하게 달렸습니다. 그들 중에는 "꼭 책으로 내달라", "노무현 공부의 교과서로 삼겠다"는 바람을 전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노무현의 재발견, 노무현 이어달리기는 한순간의 눈물로 이뤄질 수 없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기간에 눈물 뿌렸던 이들이 노무현 이어달리기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이 책이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금까지 함께 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다음에 새로운 내용을 가지고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태그:#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5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OhmyNews 대표기자 & 대표이사. 2000년 2월22일 오마이뉴스 창간. 1988년 1월 월간 <말>에서 기자활동 시작. 사단법인 꿈틀리 이사장.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