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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은 가장 강한 종은 힘이 세거나 몸집이 큰 종이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는 종이라고 했습니다. 시대가 변화를 요구하고 있고, 우리 군도 변화해야 합니다. 변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는 군대는 시간이 흘러갈수록 그리고 미래가 현실로 다가올수록 결국 시대에 뒤떨어진 군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달 26일 '국방개혁기본계획 조정안'(아래 조정안)을 발표하면서 이상희 국방부 장관은 찰스 다윈의 말을 인용하며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당시 작성되었던 '국방개혁 2020'을 대폭 수정해 이번에 발표된 조정안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국방개혁 2020'(아래 개혁안)은 이 장관이 합참의장으로 재직할 때 직접 관여했고 스스로가 "퍼펙트한 계획"이라고 평가했던 개혁안으로, 3군 균형발전과 전력의 합동성, 국방의 문민화, 부대 개편과 병력 감축 등을 통해 핵심 내용으로 담고 있었다.

 

이를 위한 재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개혁안은 '전시 작전권' 전환 등 안보환경의 변화와 미래전 양상에 대비하기 위해 자주국방의 큰 틀 속에서 '작지만 강한 군대'로 거듭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이번 조정안은 '병력과 재래식 무기' 구조를 '기술과 첨단무기' 구조로, '육군 중심'의 군 구조를 '해ㆍ공군 강화'로 바꾸려던 기존 국방개혁 2020에서 한 걸음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외교안보 전문지 'D&D 포커스'의 김종대 편집장은 이번 조정안이 "북한의 재래식 위협을 과장한 '육군 패권주의의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국방부는 지상전력 강화의 이유로 '지난 2년 사이에 북한군의 병력이 100만 명에서 102만 명으로, 특수부대는 12만 명에서 18만 명 규모로 대폭 증강되어 재래식 전쟁의 위협이 크게 커졌다'는 '국방백서 2008'의 판단을 들고 있다. 하지만 국방부의 이런 위협 평가에 대한 미국 측의 판단은 사뭇 다르다.

 

지난 3월 10일 미 상원 청문회에 출석한 '마이클 메이플스' 국방정보국(DIA) 국장은 "북한군은 장비부실과 훈련부족으로 한국에 대한 대규모 군사작전이 불가능하다"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대량살상 무기와 미사일 능력 개발에 전력하고 있다"는 증언을 한바 있다.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 역시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북한의 특수전 병력은 8만 명"이라며 한국 국방부 판단과는 다른 평가를 했다.

 

재래식 지상전에 편중된 군단과 사단 작전 능력 증강에 초점

 

또 조정안은 2020년까지 현재 68만여 명의 병력을 50만 명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원안에서 후퇴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참여정부가 수립했던 국방개혁안은 군의 몸집을 줄이는 대신 현대전에 걸맞은 기동성과 정밀타격 능력을 갖춘 육·해·공 첨단전력을 육성하는데 있었다. 

 

하지만 조정안에서는 애초 목표로 했던 병력 감축 규모가 줄었고, 구조개편의 핵심인 육군의 1·3군사령부를 통합한 '지상작전사령부'(지작사)의 설립 시기도 원안보다 3년 늦은 2015년으로 연기되었다. 지작사 창설은 합참으로의 지휘체계 일원화와 더불어 육군 지휘구조의 단순화를 통해 비대한 군살을 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또 조정안은 지상군 47개 사단을 24개로 감축하려던 애초 계획에서 평시 동원사단 4개와 1개 여단 증가로 평시 28개 사단으로 늘어났다. 여기에 전시에는 10개 사단을 추가로 창설하기로 하는 등 지상군 부대의 감축 계획이 원안보다 후퇴했다. 국방부는 북한 지상군 103만 명의 전력을 감안하고, 북한군이 후방 침투를 겨냥한 특수작전부대와 경보병 전력으로 재편되고 있어 더 이상의 병력 감축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해군과 공군의 전력 증강사업이 줄줄이 순연된데 비해 육군의 사업은 원안보다 삭감된 부분도 있지만 새로 착수되는 사업도 적지 않아 대조를 이루고 있다. 차기 자주포 사업이나 차기 다연장 로켓시스템 도입 사업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조정안이 표면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핵과 미사일 등 북한의 '비대칭 위협'에 대비한 전력 증강보다는 재래식 지상전에 편중된 군단과 사단 작전 능력 증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조정안은 또 2012년 4월로 예정된 전시작전권 환수 이후 한국군이 보유해야할 전략정찰능력과 지휘통제능력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는 "값비싼 정보 전력과 해상 및 공중 전력에 대해서는 계속 미국에 의존하겠다"는 사고에 다름 아니라고 김종대 편집장은 지적했다.

 

김 편집장은 "군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징후경보 수집능력'과 신경과 혈관 역할을 하는 '지휘통제' 시스템의 확보 없이 자주국방은 불가능하다"고 부연 설명했다. 독자적 정보수집 능력과 지휘통제 능력의 부족은 한국군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으로 김 편집장은 "이 때문에 전작권 전환을 미뤄야 한다는 군 내부의 의견도 있지만, 이것은 전형적인 순환논리"라고 지적했다. 즉 '스스로 능력을 갖출 생각도 않고, 능력이 되지 않으니 마냥 미루자'라는  말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또 조정안이 '문민통제'라는 측면에서 보면 '개혁이 아닌 개악'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군대에 대한 문민통제는 군사력에 대한 민주주의적 통제를 뜻하는 것으로 모든 민주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대원칙이다.

 

"국방부 문민화를 사실상 포기... 이상희 장관의 역주행 의사"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오혜란 평화군축팀장은 조정안이 "과거 군부독재 아래서 군사정책이 국가정책과 정부정책에 우위를 점했던 상황과 육군 절대 우위의 불균형 상태를 바로잡기 위해 추진된 국방부 문민화를 사실상 포기했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국방부는 2009년까지 국방부 주요 보직의 71%를 문민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오 팀장은 "국방개혁의 추동력은 국방부의 문민화에서 나오는데, 이상희 장관은 이미 문민화된 직위에 다시 현역 군인을 배치하겠다는 역주행 의사까지 드러내더니 조정안에서는 아예 문민화를 제외해 버렸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이번에 발표된 조정안이 미래 한국군의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각 군의 밥그릇 챙기기'에 매몰되었다는 지적은 국방부가 뼈아프게 새겨야할 부분이다. 김종대 편집장은 "적어도 15년 뒤를 예측하고 국가 대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최적의 국방력을 도출하는 것이 국방정책인데  현 정부의 국방계획에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태그:#국방개혁기본계획, #이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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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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