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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한국 날씨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만서두, 여기 호주는 그야말로 청명한 가을 날씨 올 씁니다. 가을 하늘은 한국만 푸른 게 아닙죠. 호주 하늘에는 한창 무르익은 늦가을이 피었어요.

날씨 좋고, 바람 안 불고, 그런 휴일에 배 끌고 바다에 나가지 않으면 바보이겠지라? 그래서 이틀 연이어 배 타고 바다로 나갔어라. 이른 아침인데도 벌써 부지런한 보티(boatie: '조그마한 배를 가지고 낚시 다니는 아마추어 배꾼'이라는 애칭)들이 군데군데 진을 치고 있습디다.

햇살이 바닷물에 반사되설랑 더욱 아련하게 느껴지지라?
▲ 아침 바다의 부지런한 보티들 햇살이 바닷물에 반사되설랑 더욱 아련하게 느껴지지라?
ⓒ 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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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 바늘에 미끼를 달아서 던져놓고는, 가지고 간 보온병을 열었습니다. 커피향이 좋군요.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 뱃전에 비스듬히 기대었다오. 매 한 마리가 창공을 가르고 있구만요. 이런 풍경은 한국에서 이제 보기 힘들겠지요?

호주 사람들은 흔히 'sea eagle'이라고 부릅니다만, 정확히는 이글, 즉 독수리 종류는 아니지요. 매와 비슷하기는 한데, 정확히는 '카이트' 라는 조류라고 합디다.  한국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서 여기서는 "매" 라고 표현했어요.
▲ 호주의 가을 하늘에 떠 있는 매 한 마리 호주 사람들은 흔히 'sea eagle'이라고 부릅니다만, 정확히는 이글, 즉 독수리 종류는 아니지요. 매와 비슷하기는 한데, 정확히는 '카이트' 라는 조류라고 합디다. 한국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서 여기서는 "매" 라고 표현했어요.
ⓒ 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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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꽈당탕'

느긋하게 커피 맛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낚시대가 뱃전을 치면서 바닷속으로 빠지려고 하지 않겠어요? 어마 뜨거라. 총잡이도 손이 빨라야 하지만, 야생 생활하려면 순발력이 좋아야 합죠. 물로 빨려 들어가는 낚시대를 번개 같이 낚아 채었습니다. 묵직한 느낌이 손에 전해 옵디다. 보통 크기의 고기가 아닌 게 분명해 보엿습니다. 이 놈이 하도 세게 물 속으로 곤두박칠쳐설랑, 낚시대가 막 휘어집디다. 줄은 팽팽하여 거의 끊어질 지경에 이르렀지요. 뭘까? 뭐가 잡혔기에 이렇게 세게 당기나?

보트 가까이 오는 걸 보니 홍어였어요. 한 손으로 낚시대를 꽉 움켜쥐고, 다른 손으로는 더듬 더듬 뜰채를 잡아설랑, 물 속으로 살살 집어 넣었다오. 그러고는 드디어 홍어를 뱃전으로 건져 올렸습죠, 야호!

줄이 끊어질까봐, 뜰채로 떠올렸수다.
▲ 내 낚시에 잡힌 홍어 줄이 끊어질까봐, 뜰채로 떠올렸수다.
ⓒ 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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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를 건져 올리기는 했지만, 약간 걱정이 됩디다. 무슨 걱정인고 하니.

여러분들, 혹시 호주의 '악어 사냥꾼' 스티브 어윈 (Steve Erwin) 이라고 아십니까? 모르시는 분은 별로 없을 겁니다. 그리고, 그 악어 사냥꾼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들어서 알고 계실 겁니다. 바로 홍어의 독침 한 방에 저 세상으로 간 것이지요. 그 스티브 어윈 생각이 불현듯 떠올라 걱정에 사로잡힌 것이라오.

악어 사냥꾼 그 친구, 엄청 힘 좋고 날쌨습니다. 한국에서는 옛부터 힘좋고 날랜 사람을 '호랑이 때려 잡는 장사'라고 하지만, 호랑이가 없는 이 호주에서는 악어 사냥꾼들이 바로 그 '호랑이 때려 잡는 장사'라는 의미입니다. 그런 친구가 수중 촬영으로 홍어 다큐멘터리 찍다가, 홍어 독침 한 방에 저 세상으로 간 것입니다. 지금부터 내가 그 무시무시한 홍어 독침을 보여드리겠나이다.

무시무시하게 생겼지라?
▲ 홍어의 독침 무시무시하게 생겼지라?
ⓒ 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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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침이 꼭 단도 같이 생겼지요? 그 우람한 인간, 악어 사냥꾼이 이 단도 한 방에 죽은 것이지요. 잘 기억해 두시면, 생명 보전하시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혹시 압니까? 어물전에서 홍어를 샀는데, 이 놈이 갑자기, "마지막 발악이다. 나의 필살 일격기를 보여주마!" 그러면서 독침으로 찌르면, 홍어 맛 보기도 전에 저 세상으로 가시는 수가 있지 않겠수? 나 또한 그 홍어의 필살기가 걱정됩디다. 그래서 선수를 쳤습니다. 독침과 꼬리를 잘라버린 것이지요.

홍어의 꼬리 아래에 숨겨진 독침이 보이지라? 홍어가 살이 있을 때에는 꼬리를 극히 조심해야 하지요. 독침에 찔리는 것은 아주 일순간입니다. 나도 겁이 나설랑, 사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꼬리를 펜치로 잡았습죠.
▲ 홍어의 독침을 잘라내다 홍어의 꼬리 아래에 숨겨진 독침이 보이지라? 홍어가 살이 있을 때에는 꼬리를 극히 조심해야 하지요. 독침에 찔리는 것은 아주 일순간입니다. 나도 겁이 나설랑, 사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꼬리를 펜치로 잡았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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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와 가오리를 열심히 구별하는 분들도 계십디다만, 여기서는 통칭으로 홍어라고 하였습죠.
▲ 그 날 잡은 여러 마리의 홍어 홍어와 가오리를 열심히 구별하는 분들도 계십디다만, 여기서는 통칭으로 홍어라고 하였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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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 꼬리를 펜치로 잡고는 칼로 독침을 짤라 버렸수다. 독침 옆에 놓인 기구들은 내가 그 독침을 제거 하느라고 쓴 도구들이라오, 인간이란 그런 것 같수다. 저런 칼이나 펜치가 없이 맨손으로 싸우면, 홍어에 '쨉도 안 되는' 나약한 동물이 아닐까요? 도구를 사용했으니, 공평하지 않는 싸움이랄 수도 있고.

그 후로 홍어가 계속 잡혔어요. 벌써 여러 마리 잡긴 잡았는데, 어떻게 해 먹남? 저번에도 홍어가 잡힌 적이 있는데, 그때 회로 먹어 보았더니 비릿한 게 별 맛 없더이다. 이번에는 좀 다르게 요리를 해볼까나?

"웬 고기 썩는 냄새가 이렇게 심해?"

그러다가, 홍탁 생각이 났지요. 25년도 훨씬 지난 오래 전의 일입니다. 목포 친구가 사준 홍탁 먹고는 입 천장 덴 적이 있구만요. 그 맛도 아주 특이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한국 인터넷을 뒤져 보았습니다. 홍어를 삭히려면, 그냥 이삼일 말리면 된다고 하더이다. 홍탁 만드려면 뭔가 아주 특별한 숙성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의외이더군요. 그냥 말리는 것이야, 누구나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작업 아니겠어라?

홍어를 쑥떡 3분지 1로 잘라서는, 머리 내장 꼬랑지 등이 붙어 있는 가운데 것은 버리고, 양 날개만 채반에 담았지요. 그러고는 처마 밑에 걸어 놓았습니다. 그랬는데….

"이게 무슨 썩는 냄새야?"

애들이 이층에서 득달같이 내려 와서는 나를 째려 보는 것이 아니겠어요?

"아빠는 낚시 갔다 왔으면 깨끗이 씻어야지, 웬 고기 썩는 냄새가 이렇게 심해?"

처마 밑에 홍어를 걸어 놓았더니, 냄새가 위로 올라가면서 애들 방으로 들어갔나 봅네다.  아이들은 집안에다가 향수 뿌리고 난리법석이 났습니다. 홍어 말리던 아빠를 아예 '범죄자' 취급을 하더라구요.

그렇다고, 홍어 말리기를 포기할 수는 없어설랑, 집 주위를 둘러 보았지요. 마땅한 곳이 없습디다. 우리 집이 450평이나 되는데도 마땅한 곳이 없다니! 집 가까이 놓으면, 우리 집안으로 냄새가 배어 들어오고, 집에서 떨어져 담장 근처에 놓자니, 이웃이 불평할 것이 뻔한 노릇이었습니다. 전에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오. 

테드라고 이웃에 사는 70대 노인인데, 하루는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들깁디다.

"헤이 코리안, 저기에 걸려 있는 것이 도대체 무어니? 제발 좀 치워주라. 냄새 때문에 정말 도저히 못 살겠다." 

그때 그것은 홍어가 아니고 그냥 물고기였어요. 말린 고기가 좀 먹고 싶어 바구니에 넣어 담장에 걸어 놓았더랬지요. 테드는 무던한 호주 할아버지입니다. 그리고 이웃에 대하여 불평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사람이라오. 내가 청국장 끓여 먹었을 때에도 불평하지 않던 사람인데, 물고기 썩는 냄새가 얼마나 참기 힘들었으면, 우리집을 방문하여 부탁까지 하겠는교? 더군다나, 이번에는 그냥 물고기가 아니라, 홍어, 그 냄새로 유명한 홍어를 말리는 일이니 한국 아파트라면 어떠하오리까? 고기 말려 먹어도 이웃이 아무 말 안 합디까?

몇 번이나 쓰레기통에 버릴까 하다가...

홍어를 말려 먹고 싶은데, 말릴 곳이 마땅치 않아서리, 고민고민하다가 하늘을 쳐다 보았습니다. 그러고는 무릎을 쳤지요. 바로 저기다!

지붕 위였습니다. 지붕이 높으니, 고양이가 물어갈 염려도 없고, 우리집 지붕이니 이웃과도 좀 떨어져 있어서 괜찮을 듯싶습니다. 그렇지만, 독수리가 채 가면 우짜노? 바람에 날려가면 우짜노?

그래서 이렇게 했지요. 채반에다 홍어를 담은 다음, 보자기를 씌웠다오. 그러고는 커다란 벽돌 몇 장을 올려 놓았지요. 지붕에서 바구니가 미끄러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벽돌로 받침도 하구.

이걸 하기 위해서 사다리 타고 지붕 오르락거린 것이 몇 번인지 헤아릴 수 없습니다. 대충 말랐다 싶으면 뒤집어야 하기 때문에 다시 지붕에 올라가야 했습니다.

"아이고, 이 고생을 왜 하누? 삭힌 홍어 먹으면 불로장생한다 카드나? 아니면, 변강쇠 된다 카드나?"

별별 생각에 몇 번이나 홍어를 쓰레기통에 버릴까 했었다오.

며칠 후.

홍어를 만져 보니 꼬득꼬득 말랐습디다. 냄새도 쿵쿵하니 썩은 냄새가 납디다. 그걸 가지고, 조림찌개를 했지요. 무 넣고, 파 넣고, 고춧가루 풀고, 마늘 넣고 등등

끓이는데, 어찌 그리 썩은 냄새가 많이 나는지 속이 울렁거립디다. 안 되겠습니다. 찌개 끓이던 냄비와 휴대용 버너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지요. 바깥에서 찌개가 끓자 말자, 얼른 먹어 치울 생각입니다. 이웃이 냄새 난다고 불평하러 오면, "그거? 이미 다 먹고 치워버렸다." 이렇게 당당히 말하기 위해서는 빨리 먹어 치워서 증거를 없애 버려야 하는 것이지요.

한 숟갈을 떠서 먹어 보았습니다. 훅! 코 끝을 확 쏘는 그 냄새, 그 삭힌 홍어 특유의 맛이 확 느껴집디다. 와아!

나는 당장 집안으로 달려 들어가서 그동안 아껴서 '짱 박아' 두었던 소주 한 병 꺼냈어라.  그러고는 홍어 한 점, 소주 한 잔 그렇게 홍어찜 요리를 즐겼어라. 말린 홍어가 홍탁의 그런 효과를 가져올 줄이야! 그 옛날에 목포에서 먹던 그 홍탁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목포의 눈물'도 한 곡 뽑았지요. 삭힌 홍어 냄새와 함께, 한국에서 어울리던 옛 친구들 얼굴이 어른거립디다.

덧붙이는 글 | '냄새 나는 글' 응모입니다.



태그:#홍어, #냄새, #독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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