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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8일(일), 마석모란공원 위령탑 앞에서 故문송면 21주기를 맞아 '2009 산재사망노동자 합동추모제'가 열렸다. 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을 함께 했던 선배, 문송면 유가족, 노동자 건강권 운동 뒤를 잇는 후배, 노동조합, 원진산업재해피해자협회, 삼성반도체 직업병 사망자 유가족, 보건의료인, 대구가톨릭대 산업보건학과 학생 등 1백여명이 모여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를 추모하고 희생을 줄이기 위한 앞으로의 활동을 다짐하는 자리를 가졌다.

 

28일 행사를 사진으로 정리했다.

 

 

장마전선이 올라와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와 달리 빗줄기는 없는 28일 일요일 오전이었다. 해는 뜨지 않았지만 여름 특유의 후텁지근한 날씨는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게 했다.

 

오전 9시 40분.

 

진보신당 구리시위원회와 산재노협에서 벌써 도착해 천막을 치고 엠프를 설치하고 있었다. 뒤이어 원진산업재해자협회(원산협)에서 전시할 사진과 전시대를 갖고 왔다. 전시대를 펼치고 적절한 위치에 사진을 전시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사람들이 도착하고 반가운 얼굴을 보면 수인사를 나누며 안부를 묻는다. 故문송면 기일인 7월 2일을 즈음해 열리는 산재사망노동자 합동추모제는 이렇게 과거와 현재가 만난다. 그리고 미래를 결의한다.

 

 

2009년 추모제는 관습처럼 하지말고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고 했다. 회의 중 몇 가지 썩 괜찮은 아이디어가 나왔다. 행동으로 옮긴 것은 추모제에 온 분들이『기록』을 남길 수 있도록『글판』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글이 많이 쓰여질까 걱정도 살짝 된다. 다행히 권유가 아니라 스스로 펜을 잡고 글을 남기는 분이 있다.

 

『선배님 이야기』도 마련했다. 노동자 건강권 운동을 열었고, 참 열심히 싸우셨고, 그래서 많은 유산을 남겨주신 선배가 후배에게 그리고 활동가들에게 하고싶은 이야기를 전하는 꼭지다.

 

행동으로 옮기지 못 한 것은 '작은 공연'.

 

추모노래와 추모시 말고,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들이 함께 하면서 후배로서 보여줄 '그 무엇인가'를 준비해보자는 도원결의(?)가 있었다. 결과는 무산되었다. 일단 모일 시간이 없기도 했고, 노래를 할까, 추모제에 맞는 율동을 보여드릴까, 우리의 고민이 무엇인지 들려드릴까? 고민하다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내년에는 꼭 무엇인가 해보고 싶다.

 

 

흩어졌던 사람들이 추모제 자리인 위령탑 앞으로 모였다. 개회가 선언되고 참가 조직, 선배들이 소개되었다. 이어진 추모사. 첫 순서는 원진산업재해자협회 한장길 위원장. 사실 원산협은 해마다 추모제에 많은 도움을 준다. 1백여명의 식사를 책임지고, 올 해는 국화도 준비하셨다. 그런데, 막상 원산협 분들은 준비된 도시락이 모자라 한 자리에서 식사를 같이 못 하셨다. 해마다 1백여분이면 다들 먹고 남았는데, 올해는 모자랐다. 죄송한 마음 한편으로 작년보다 많이 왔구나 한다.

 

한창길 위원장께서는 21년 전에도 자본의 이윤 때문에 열 다섯 소년이 사망했는데 지금도 별다르지 않다며 자본의 탐욕 때문에 희생당하는 노동자 넋을 위로하셨다.

 

 

민주노총 배강욱 부위원장께서 뒤를 이었다. 아침에 14살 아들을 보고 문송면을 생각했다는 배강욱 위원장은 "새삼 죽지 않고 다치치 않고 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이어 최근 힘겨운 싸움 중인 쌍용자동차에서 구조조정 스트레스로 사망한 노동자 이야기를 하며 "산재노동자 없는 세상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주영수 공동대표가 추모사를 했다. 주영수 대표는 "매년 참가하면서도 몸둘 바를 모르겠다."며 "제일 큰 역할을 해야 할 우리(산업의학전문의)가 제대로 역할을 했는지" 스스로 뒤를 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주영수 대표는 "문송면의 고통은 지금도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노동자에게 여전하다"며 전문가로서 더 열심히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유족 소개에 故문송면 유족과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故황유미 유족 황상기 씨, 故황민웅 유족 정애정 씨가 자리했다.

 

문송면 유족과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유족 모두 일터에서 노동자가 행복한 삶을 사는 세상을 위해 단결해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9년 추모제 또 하나의 새로운 시도. 추모공연을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 양삼봉 사무국장과 박준 현장노래일꾼이 듀엣으로 하였다. 박준 동지 반주에 맞춰 양삼봉 국장이 '끝내 살리라'를 독창으로 노래하고 뒤이어 '힘들지요'를 함께 불렀다.

 

늘 노래일꾼에게 맡겨오던 추모공연이었는데, 산재노동자가 함께 공연을 하니 왠지 더 의미가 더해지는 것 같다.

 

 

뒤이은 추모시는 정애정 씨가 낭독했다. 추모시 역시 정애정 씨가 썼다. 『님』이란 제목의 추모시였다. 님은 정애정 씨의 남편이면서 동시에 이 땅에서 제대로 산재 인정도 못 받고 돌아가신 모든 산재노동자다.

 

정애정 씨 스스로 겪었던 대자본 삼성과의 싸움, 어린 자식을 두고 세상을 떠나야 했던 남편과의 헤어짐이 고스란히 아픔으로 전해진다.

 

추모시 『님』

 

마음이 저리도록 아픔니다

마지막 떠나던 날에

지그시 감은 님의 눈에는

한 방물의 눈물이 맺혔습니다

 

그 한 방울의 눈물은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미안해!

울 보석들을 사랑해!

많이 고맙고 사랑해!

그리고 못 다한 한 마디

나 억울해 미칠 것 같아!

 

내 고막이 터지도록

고래고래 소릴 지르고 있었습니다.

 

삼성에 희망을 걸고

내 꿈을 키우 대가치곤

너무 무섭다고

인정받기 위해

무리한 잔업도

위험한 작업환경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난 그렇게 죽어라 일한

죄밖에 없다고… 

님은 그렇게 억울한 마음을 

한 방울의 눈물에 담고 있었습니다

 

항암치료에 민둥머리가 되어도 

참 멋있는 31세의 님이었습니다

 

비록 육신의 님은 떠났어도 

님의 정신은 나를 통해 

썩어빠진 정부의 관리들에게 

기름진 창자만 살찌우는 기업가들에게 

노동자의 무성움을 보여 줄 것입니다

 

아빠라는 단어보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먼저 알아야 했던 어린 자식들에게 

끝까지 멋진 님으로 남을 수 있도록 

겁을 상실한 이 엄마가 

대한민국에 물을 것입니다!

 

 

새롭게 마련한 『선배가 후배에게』첫 선배로 문송면 투쟁 모든 과정을 함께 한 김은혜 선배를 모셨다.

 

김은혜 선배는 "처음 문송면을 만났을 때가 30대였는데, 이제 내년이면 육십"이라면서 세월의 무게로 이야기를 시작하며 문송면과의 만남과 죽음까지를 간략하게 전했다. 김은혜 선배는 "이 나라 노동자들이 어떻게 취급받는 지 보여준 것이 문송면"이었다며 "참혹한 일터에서일하는 노동자의 아픔이 그들의 아픔이 아니라 우리의 아픔, 고통이어야 한다."며 다시금 결의를 다지는 이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한정된 시간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으셨다.

 

언젠가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알아야 할 이야기, 문송면 투쟁과 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이 대한민국 노동안전보건 역사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해야겠다.

 

 

문송면 유가족 분향에 이어 1988년 문송면 투쟁, 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에 함께 했던 선배 세 분이 분향을 함께 했다. 앞에서부터 양길승 녹색병원장, 원진직업병관리재단 박석운 상임이사, 김은혜 이사. 

 

분향과 헌화를 마치고 묘지 순례를 했다. 첫 순서는 故문송면 묘. 작년 20주년을 맞이해 세운 추모비와 기념식수로 심은 단풍나무 모두 잘 있다. 추모비와 기념식수 모두 노동자 건강권 운동 선후배와 활동가들의 십시일반으로 마련되었다. 추모비 글은 시인 송경동 씨가 글씨는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정상래 노안국장이 힘을 보탰다.

 

 

 

올해부터 시작한 『글판』은 해마다 마련할 예정이다. 그것이 쌓이면 또 하나의 좋은 기록이 될 것이다.

 

"송면이가 있었기에 오늘 제가 있었습니다."

"노동으로 고통받이 않고 더 이상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내년에는 좀 더 많은 동지들의 추모제 참석 부탁드려요."

"노동자의 건강한 삶은 우리의 권리입니다."

"돌아가신 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힘써 노력합시다."

 

묘지 순례를 마치고 점심을 먹고 정리하고… 이제 가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또 쓰레기가 문제였다. 작년까지 묘지 관리실의 협조를 얻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올 해는 무조건 주최자가 치워야 한단다. 쓰레기를 가져가야 한단다. 참… 곤란하다. 이것도 바뀐 정권 탓일까? 너무 건너 뛰었나??

 

암튼, 내년에는 단단히 대비해야겠다. 땀에 옷이 적고 반주 삼아 마신 막걸리 한 잔이 얼굴을 후끈 덥힌다. 2005년. 그저 행사의 하나였던 문송면 추모제가 해가 갈수록 의미를 더한다. 더하는 의미만큼, 관례적인 추모제가 되지 않도록 하자는 다짐도 단단해진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일과건강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특별한 감사 인사 *

추모제 준비를 함께 한 노동건강연대 이서치경 국장, 산재노협 박영일 대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훈구 집행위원장에게 특별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더불어 대구가톨릭대에서 실습왔다 참가한 친구들에게도 썩 괜찮은 자리였으면 좋겠습니다. 신선한 인물들로 기억되는 젊은보건의료인공간「다리」친구들은 내년에도 보면 좋겠고요. 강릉에서부터 택시 몰고 오신 황상기 어르신, 수원에서 오신 정애정 씨도 고맙습니다. 해마다 잊지 않고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 모두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아! 쓰레기 문제까지 해결해주신 진보신당 구리시위원회 분들, 정말정말 고맙습니다. 정말 큰 짐 해결해주셨어요.


태그:#문송면, #산재사망노동자 합동추모제, #노동자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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