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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경제 여파 탓일까. 직장을 그만 두면 무엇을 할까라는 고민을 자주 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 말씀에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라는 말이 있지만, 이 말씀은 미래에 무엇을 하고 살까 하는 걱정과는 다른 뜻이 있는 말처럼 느껴진다.
 

새벽 산책 나서는 길에 자주 지나게 되는 텃밭 가꾸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고개를 가웃거렸다. 이 분들은 어떻게 보면 농부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농부인 사람이 정해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흙을 매만지며 살아가는 농부의 모습에서는 어쩔 수 없는 흙냄새가 나기 마련인데 말이다. 
 
텃밭의 채소를 가꾸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다가가서 물어보니, 이 텃밭 주위(해운대구 중2동 440번지 부근)는 대개 주말 농장이라는 말이었다. 농장이라고 하면 큰 농지만 생각했으나, 한평이라도 빌릴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큰 농지의 주말 농장이 아니라 소박한 직장인들이 주말에 찾아와서 가꿀 수 있다는 아주머니의 친절한 안내에 나도 마음만 먹으면 주말 농장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으로 갑자기 가슴이 설레였다.
 
그러니까 주말 농장 아주머니의 말을 빌리면 이곳에 와서 주말이면 가족 모두 함께 텃밭을 가꾸고 먹을 채소를 수확해 간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서로 서로 옆 밭에서 잘 자란 채소 수확을 비교도 하며 이런 저런 농사 정보도 교류할 수 있다고 자랑이 대단했다.
 

주말 농장이라서 텃밭이 모두 자그맣고 아기자기 했다. 텃밭 곁에는 원두막 비슷한 그늘막도 쳐 놓아서 그늘에서 쉬면서 일을 할 수 있지만, 대부분 새벽에 나와 농장 일을 돌보고 출근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중략)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향수> 중-'정지용'
 

 

세상에나 출근하기도 바쁠 텐데 새벽 일찍 나와 텃밭을 가꾸고 출근하려면 얼마나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일까. 나만 새벽 일찍 나와 산책 하는가 하고 생각하면 나보다 먼저 나와 산책 하는 사람이 있듯이 세상은 이렇게 나보다 더 일찍 깨어 움직이는 사람들 덕분에 열심히 지구가 돌아가는 모양이다.
 
나는 이제 퇴직 하면 무얼 할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답을 하나 얻은 것 같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모두들 고향에 돌아가서 농사나 짓지 하지만, 농사 짓는 일 연습 없이는 불가능 하다. 나도 이제 1평짜리 주말 농장 주인이 되어 미래에는 농사짓는 농부가 되어 볼 생각이다. 흙이란 뿌린 배 보다 많이 돌려 준다. 다른 무슨 일보다 미래의 남은 시간은 흙과 함께 살고 싶다.
 

 


태그:#호박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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