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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첫 민선 교육감인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추진한 주요 정책들이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지난 23일 경기도교육위원회는 임시회 본회의를 열어 김상곤 교육감의 핵심공약인 초등학교 무상급식과 학생인권조례 제정, 혁신학교 추진과 관련한 예산을 삭감하는 추가경정 예산안 수정안을 최종 의결했다. 이날 삭감된 예산은 모두 114여억 원으로 김상곤 교육감의 추진사업에 필요한 예산이 대부분이어서 타격이 클 전망이다.

지난 4월 '반(反) MB교육정책', 'MB교육정책 심판'의 기치를 내걸고 당선된 김상곤 교육감이 강조했던 것은 공교육 강화였다. 그는 당선 소감에서 "왜곡된 교육정책을 바로잡고 공교육 중심의 경기도 교육을 만들겠다"고 했었다. 이러한 진보 성향 교육감의 당선으로 현 정권이 추진하려던 자율형 사립고, 특목고 확대 등의 고교 다양화 및 일제고사 시행과 같은 정책들이 경기도 내에서는 불가능해진 게 아니냐는 전망도 있었다.

이번 추가경정 예산안 수정안에서 예산이 삭감된 김상곤 교육감의 핵심공약 세 가지는 ▲ 초등학교 무상급식 확대 ▲ 학생인권조례 제정 ▲ 혁신학교 추진이다. 이 세 가지는 김상곤 교육감의 교육 철학인 공교육 강화와 교육의 공익성 확보와 관련된 정책들이다. 42만 경기도민이 그에게 표를 던진 이유 역시 그의 정책을 지지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42만 경기도민이 찬성한 정책을 단 7명의 교육위원들이 뒤엎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예산 삭감안은 찬성 7, 반대 2, 기권 2로 통과됐다.)

42만 경기도민이 찬성한 정책, 단 7명의 교육위원들이 뒤엎다?

SBS <시티홀>에서 그리는 정치와 현실 정치 모습이 상당히 유사하다
 SBS <시티홀>에서 그리는 정치와 현실 정치 모습이 상당히 유사하다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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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랬던가,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한다고.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로서 현실이야말로 시청자의 공감을 자아내는 드라마의 기본 전제라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주 방영된 SBS 수목드라마 <시티홀>(밤 9시 55분 방송)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지난주에 방영된 내용이 불과 일주일 후에 마치 누가 베끼기라도 한 듯 고스란히 현실에서 이뤄졌으니, 이건 현실 반영이 아니라 현실 예견 수준이다.

<시티홀>의 주인공 신미래(김선아 분)는 시청의 10급 공무원 출신으로 전임 시장의 비리로 인해 진행된 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드라마의 배경인 인주시는 지역토호당인 승리당이 득세하고 있는 곳으로, 모든 일은 승리당의 뜻대로 처리된다. 신미래의 전임 시장 역시 승리당 소속이었으며, 시의회 역시 승리당이 장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덜컥 시장에 당선된 무소속 시장, 그것도 돈 없고 '빽' 없는 10급 공무원 출신의 여시장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었다.

신미래는 '정치(政治)란 정성껏 국민의 삶을 치유하는 것'이라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 그녀에게 모든 일의 최우선은 단연 민생일 수밖에 없다. 그녀는 '어떻게 하면 시민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리고 시장인 자신을 비롯한 시청은 어떻게 그들을 도울 수 있을까?'만을 염두에 두고 각종 정책과 사업을 추진한다. 소속된 정당도 없고 추진사업에서 이해관계로 얽힌 사람도 없으니 그녀에겐 거칠 게 없다.

<시티홀> 신미래 시장과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닮았다

<시티홀>의 인주시장 신미래(김선아 분)
 <시티홀>의 인주시장 신미래(김선아 분)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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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녀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승리당 소속 사람들이다. 승리당 시의원들은 그녀가 자신들의 입당 제안을 뿌리치고, 자신들과 전임 시장이 강력하게 추진했던 이권사업인 시청 청사 이전 사업을 백지화하는 것을 보며 그녀에 대한 적개심을 키웠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그녀가 계획하는 민생 사업 예산안을 모두 의회에서 부결시켜 버린다. 수적 우세를 앞세운 패거리 정치의 힘으로 말이다.

신미래가 추진하려 했던 사업은 '농번기 급식도우미 지원'과 '농기계 무료 임대 지원'이었다. 일손이 부족한 농번기에 학생들의 급식 도우미를 시청에서 지원해주고, 가격이 비싼 농기계를 시청에서 사들여 농가에 무상으로 임대하는 사업으로, 농촌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필요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승리당은 신미래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이런 민생 사업을 부결시켜 버렸다.

어떤가. 이 정도면 요즘 말로 '싱크로율'이 100%에 달하는 완벽한 현실 예견이 아닌가. 민생을 생각하는 신미래 시장과 학생을 생각하는 김상곤 교육감. 자신들의 뜻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당면한 민생 사업을 외면한 승리당 시의원들과 이념이 다르다고 해서 교육의 공공성까지 외면한 경기도교육위원회 의원들. 어쩌면 이렇게 똑같을 수 있는지, 그저 <시티홀> 김은숙 작가의 혜안이 놀라울 따름이다.

무상급식·공교육 강화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까

초등학교 무상급식 확대 추가경정 예산 171억원은 절반인 85억 5000만원으로 삭감됐다. 이로써 올해 2학기에 농·어촌 및 군 단위 지역, 전교생 300명 이하 도시지역 학교에 무상급식을 지원하고 2010년까지 그 범위를 경기도 내 모든 학교로 확대하겠다던 김상곤 교육감의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됐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관련 예산 역시 5970만원 가운데 절반 가까이인 2970만 원이 삭감됐다.

무엇보다 김상곤 교육감이 공교육 개혁의 모델로 삼고 있는 혁신학교 추진 관련 예산은 28억 2000만원 전액이 삭감되고 말았다. 혁신학교란 교장공모제와 초빙강사제, 행정인력 고용 확대 등을 통해 관료주의로 경직된 학교 운영에 자율성을 부과하고, 잡무에 시달리는 교사들에게 수업준비에 충실할 수 있게 해주며, 무엇보다 학급당 인원수를 25명, 학년당 학급수를 6개 이하로 제한하여 과밀화를 해소하고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대안이다.

물론 이를 반대하는 교육위원들에게도 할 말은 있다. 이들이 김상곤 교육감의 추진사업 예산 삭감에 찬성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무상급식, 혁신학교 추진보다 시급한 사안이 많다는 것이고, 둘째는 부유한 학생들에게까지 무상급식을 제공하기에는 예산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성향과 이념 때문에 김상곤 교육감의 정책에 반대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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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이 부족하다고 했다. 삭감된 무상급식 확대 예산은 85억원으로 3656억원에 이르는 전체 예산의 3%에도 못 미치는 액수이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경기도교육위원회는 지난 스승의 날에 교사들의 점심값으로 총 27억원의 지출을 책정했다고 한다. 스승의 날 교사들의 점심값으로 27억원을 지출하는 교육위원들이 어째서 농·어촌지역 및 저소득층 밀집지역에 사는 15만여 학생들의 무상급식 지원에 대해서는 그리도 인색한 걸까?

무상급식, 혁신학교 추진보다 시급한 사안이 많다고 했다. 무상급식은 학생 복지와 관련된 사안이고 혁신학교는 공교육 발전을 위해 필요한 계획이다. 나날이 팽창하는 사교육 시장의 득세 속에서 공교육을 살리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일보다 시급한 사안이란 대체 무엇일까? 공교육 확립, 학생 개개인의 인권 및 복지 향상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다. 이를 외면한 채 교육위원들은 정치적 성향과 이념에 따라 행동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도 교육위원님들, 아주 비겁하고 졸렬해요!

신미래 시장의 추진 사업 예산안이 시의회에서 부결되었을 때, 시의회 의장은 반대표를 던진 승리당 의원들에게 이렇게 일갈했다.

"당신들은 대체 왜 시의원이 된 겁니까? 눈 없어요? 귀 없어요? 어떻게 이런 민생 시정에 반대표를 던질 수가 있는 겁니까? 승리당 의원들은 등원할 때 양심은 당사에다 놓고 나오십니까? 얼마나 대단한 당이기에, 시민의 복지를 놓고 저울질을 하시는 겁니까? 지금 소신이라고 하셨소? 이런 시정에 반대표를 던지는 건 소신이 아니라 쪽수로 변화와 개혁을 뒤엎는 간판 정치, 패거리 정치일 뿐이오! 아주 비겁하고 졸렬해요!"

이 말을, 김상곤 교육감의 추가경정 예산안 삭감 수정안에 찬성표를 던진 경기도교육위원회 위원들에게도 그대로 들려주고 싶다.


태그:#김상곤, #시티홀, #신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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