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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부터 방학이 시작되었다. 네 번째 대학교 방학을 맞이하지만 아직도 방학 때 무엇을 할까 고민을 많이 한다. 학기 중에 게을리 했던 인문/사회과학 학습, 지루한 일상에 신선한 무엇이 없을까, 이번 여름 빈민현장활동은 용산참사를 주제로 할까, 요가를 해볼까 등 긴 방학이지만 언제나 몇 가지를 선택해야만 했다. 방학마다 잘못 선택을 해서 후회를 하기도 했는데 이번 방학은 그러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학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을 하는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인문학을 학습하는 동아리에 함께 활동하고 있는 후배들 또한 방학 때 하고 싶은 것은 너무 많은데 선택을 하지 못하는 중이라고 했다.

"너는 방학 때 뭐 할꺼고?"
"알바도 하고 싶고, 영어 공부도 빡세게 하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고, 선배들이랑 사회 참여 활동도 하고 싶어요."
"이야 너무 하고 싶은 거 많네? 다 하겠나?"
"그러게요. 저도 그래서 고민이에요. 무엇을 선택해야 방학을 후회 없이 보낼지..."
"그래도 공부한다고 집안에만 있는 것보다 나가서 활동하는 것을 우선으로 해라."
"그렇게 하기에는 토익이 급한데..."
"토익 공부하기는 이번 여름 방학이 너무 아깝지 않나? 그래도 첫 여름 방학인데..."
"그렇긴 하지만..."

토익 스터디 그룹에 참여하고 싶은 분?

후배랑 방학 계획에 대해 이런 저런 애기를 나누다가 집에 와서 어김없이 컴퓨터를 켜 동아리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홈페이지에 접속을 했는데 '스터디 그룹!'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혹여나 1학년 애들끼리 인문학 공부를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기대에 제일 먼저 그 글을 클릭했다. 하지만 나의 기대와 달리 그 그룹은 토익 스터디 그룹이었다.

'뉨들앙~ 제가 영어 스터디를 계획하고 있어요. 물론 토익을 할꺼고 5명 모집을 하려고 합니다. 현재 3명의 회원 (이XX 안XX 김XX)이 있습니다. 자세한 커리큘럼은 5명이 모여서 계획할 생각입니다. 많은 관심 좀 부탁드려요.'

토익 교재
 토익 교재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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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동아리 내부에 공개적으로 토익 그룹 모집 광고가 뜨자 동아리 대표가 가장 먼저 댓글을 달았다.

대표 김XX-"개인적으로 '토익' 공부를 하기보단 '어학' 공부를 하길 바랍니다. 토익은 공부 라고 하기는 힘들잖아요."
이XX(글쓴이)-"토익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시네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선 필요합니다. 하는 김에 나와 같이 토익을 필요해 하는 분들이 있다면 같이 하고 싶은 것 그 뿐입니다."

대표와 글을 올린 새내기가 토론을 하는 것을 보고 나 또한 좋은 주제라는 생각에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필자-"스무살이라면 잘 놀고, 여러 가지 활동할 나이에 토익 공부를 한다고 하니 안타까워 보입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자신에 대한 비전을 발견할 시절에 골방에서 세상과 타협하는 토익 공부나 해야 한다는 게 슬퍼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왜 토익 공부를 하는지에 대한 명백한 이유를 이야기해보면 재밌겠네요."

공부는 습(習 익힐 습) 하는 것이 아니라 학(學 배울 학) 하는 것

대표와 글을 올린 후배와 나의 토론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고학년 회원들의 댓글이 홍수 같이 달렸다.

황XX-"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토익을 하면 안 되겠지만, 친구들이 진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거기에 토익점수가 필요하다면 공부를 해야 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이렇게 본다면 무조건 토익은 세상과 타협하는 공부라고 나누어서 보기는 좀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언제나 세상에서 제시하는 실용적인 학습을 꼭 해야 하지 않나요? 그것을 나쁘다고는 할 수는 없죠."

필자-"여기서 공부라는 것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야 할 것 같아요. 우리는 공부가 '습(習 익힐 습)'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즉 어떤 목적을 위해 기술을 익히는 것을 공부라고 잘 못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공부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공부는 '학(學 배울 학)'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신을 성찰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사람의 인격을 배우는 것이 공부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한 고민을 나누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해서 탐구하는 것이 진정한 공부입니다. 그렇다면 토익은 '학'이 아니라 '습'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저는 요즘 친구들이 토익을 학습하는 것이 '습'만을 위한 학습이 되어가는 것을 비판하고자 합니다. 즉 '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이 세상에 대해 공부하여 자신의 미래를 가꾸어가기 위해 '습'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 '습'만이 전부인 양 여겨지는 사회 풍토에 대해서 말입니다."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이 책을 보고 공부에 대해 학 과 습 을 나누어 알게 되었다. 공부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에게 추천!!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이 책을 보고 공부에 대해 학 과 습 을 나누어 알게 되었다. 공부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에게 추천!!
ⓒ 그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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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XX-"세상과 타협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요? 점수화된 개인, 조건화 된 개인이 세상에 던져져서 그에 따라 평가받고 월급 받고 살겠지요. '습'으로서의 공부를 하면 참 쉽습니다. 효율적이죠. 합리적입니다. 열심히 시험 쳐서 합격하고 입사하고 월급 받으면 됩니다. 현실적이죠. 하지만 그렇게 자신이 평가되길 원하는지 되묻고 싶네요. 자기가 하려고 하는 공부가 무엇인지 다시금 성찰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네요. 좋은 논쟁거리입니다. 공부는 평생학습입니다."

황XX-"지금 일학년 친구들이 토익을 하는데 있어서 그것을 하자 말자라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왜 토익을 공부하고자 하는가? 에 대한 물음과 해답이 있어야지만 평가가 가능할 것 같아요. 공부를 하는 것 즉 '학'을 하기 위함이 옳은 것을 알지만 1학년 친구들이 '습'을 하는 이유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토익 세미나 모임을 만들겠다는 글 하나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많은 이야기 속에서 우리들이 내린 결론은 1학년 후배들 스스로 왜 토익이 필요한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영어가 재밌어서 토익공부 해요!"

글을 올린 후배 녀석은 처음에는 선배들의 댓글에 당혹스러워 했다. 왜 방학 때 열심히 하겠다는 걸 선배들이 막느냐며 섭섭한 눈치였다. 하지만 토론이 무르익자 토익 하나로 이렇게 많은 애기를 이끌어 내고 토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하고 재밌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들의 결론에 대해 수긍하며 자신이 왜 토익을 공부하는지에 대해 클럽에 글을 써보겠다고 했다.

이xx(09학번) -"으음... 토익을 왜 하느냐? 다른 사람들이 그저 순수하게 외국어가 재밌어서 하는 맥락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전 영어가 재미있고요. 토익은 영어를 공부하는 전체 중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전 정말 영어 좋아해서 토익 공부 하는 거에요. 영어 공부는 저에게는 '습' 이 아닌데..."

김xx(09학번)- "취업하기 위해서 자격증, 토익, 학점, 출신학교 등과 같은 스펙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구매자에게 어떤 효용 가치를 줄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인 거 같아요.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으로 어떤 결과를 생산해 낸 경험이 있는지 그로 인해 무엇을 배웠고 또 회사에 입사한 후엔 어떤 인재로서의 자질을 보여줄 수 있는지 확인시켜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건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참여 활동, 봉사활동, 운동, 예술 등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토익 학습을 하는 것은 최소한의 자격은 갖추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에요."

"애들아, 토익 스터디 말고 다른 취미 모임 어때?"

이번 토익 논쟁을 통해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젋고 혈기 왕성한 스무살 나이에 우리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두고 많은 일에 도전해보자. 골방에 앉아 친구들과 '습' 만을 위한 공부를 하는 것은 자신의 미래를 더욱 막막하게 할 뿐이야. 대신 친구들과 함께 몸을 건강하게 하기 위한 등산, 요가, 산책 등 운동 하는 모임을 만드는 건 어떨까? 바쁘게 살아서 나라는 존재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었다면 여행 모임을 만들어 다른 세상을 보는 건 어떨까?

아니면 악기 연주, 그림을 그리는 모임을 만들어 서로의 예술 능력에 대해 공유 해보는 건 어떨까? 아님 용기가 난다면 8월에 나와 함께 전국의 사회 약자들이 힘겹게 싸우고 있는 투쟁사업장에 찾아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 함께 연대해보는 건 어떨까? 지금 너희들은 이 사회에서 아주 작은 존재지만, 분명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배워 자신을 성찰하고 세상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될거야. 그래서 애들아 토익 스터디 말고 내가 말한 취미 모임을 한번 조직해보렴."

2008년 11월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한 필자. 노동자 문제에 대해 학내에서 관심있는 친구와 모임을 꾸려 활동을 하던 중 서울노동자대회 집회에 참가했다.
 2008년 11월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한 필자. 노동자 문제에 대해 학내에서 관심있는 친구와 모임을 꾸려 활동을 하던 중 서울노동자대회 집회에 참가했다.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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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8만원 세대에게 인문학이 희망이라는 비전을 보여주기 위해 친구들과 모여 강연을 기획했다.
▲ '88만원세대를 위한 희망의 인문학' 강연회 2008년 88만원 세대에게 인문학이 희망이라는 비전을 보여주기 위해 친구들과 모여 강연을 기획했다.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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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뷰와 필자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토익, #공부, #쿵푸,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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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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