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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공개 당일 서울역의 모습
▲ 서울역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음' 현장공개 당일 서울역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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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9월 30일, 대한민국 철도 역사에 기록될 날이었다. 바로 경성역(현 서울역)의 개통이다. 1922년 6월 1일부터 무려 3년간 공사끝에 만들어진 경성역, 현재는 서울역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1925년 개통 때부터 현재까지 서울역은 대한민국의 발이었다. 민족대이동이 시작되는 명절, 온 시선이 서울역으로 쏠렸다. 또 서울시민들에게 여행의 '설렘'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랬던 서울역이 2004년 KTX 개통 후로 새단장을 했다. 복합상업시설 등이 들어선 민자역사로 재탄생됐다.

그 후, 대한민국의 '발'이 돼줬던 구 서울역사, 2009년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아직도 옛날의 흔적이 남아있을까?

문화공간 리모델링 전, 현장 공개 시작해

구 서울역사는 다음 달 중순부터, 본격적인 개보수를 시작한다. 건축물을 최대한 훼손시키지 않고 우리나라의 대표 문화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 전에 시민들에게 구 서울역사에 대한 이해와 추억을 되살리기 위한 행사가 열렸다. 문화체육관광부 디자인공간문화과 주최로 23일부터 28일까지 진행하는 구 서울역사 시민개방 행사다.

오전 10시부터 6시까지 기간내에 관람이 가능한 이곳.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의 가이드 설명은 23일 오후 4시에 열렸다. 오후 4시에 열린 가이드안내는 10여 명의 시민들이 참석했다.

구 서울역사 가이드 안내에 모인 시민들, 가장 오른쪽이 경기대 안창모 교수다.
▲ 구 서울역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구 서울역사 가이드 안내에 모인 시민들, 가장 오른쪽이 경기대 안창모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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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모 교수는 가이드 전, 서울역사의 연혁에 대해서 소개했다. 구 서울역사가 남만주철도주식회사에서 주체가 돼 쓰카모토 야스시라는 사람이 건축을 담당했다고 말했다. 시공사는 시미즈건설이 맡았다고 한다. 거의 일제의 영향을 받은 셈이다.

드넓은 중앙홀, 숨겨졌던 귀빈실... 역사의 흔적이 숨겨진 구 서울역사

구 서울역사 중앙홀 내부, 일제강점기에 르네상스 건축양식을 지칭한 부흥식 건물형태다.
▲ 서울역에 숨겨진 '태극무늬' 구 서울역사 중앙홀 내부, 일제강점기에 르네상스 건축양식을 지칭한 부흥식 건물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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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서울역사에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중앙홀이다. 마치 유럽의 그리스 신전에 온 듯한 느낌이다. 현재 구 서울역사 중앙홀은 오랫동안 방치돼 먼지들이 많이 쌓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균열이 생기지 않아 말끔했다.

안 교수는 드넓은 중앙홀에 대해 숨겨진 의미를 강조했다. 바로 이 건물 자체가 일제강점기에 르네상스 건축양식을 지칭하는 '부흥식' 표현이기 때문이다.

"부흥식 표현은 서양의 역사주의 건축 양식의 표현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중앙홀 양 옆 상부의 돔이 일정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거의 르네상스 시대의 전체적인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양식에 대해 "1920년대 일제강점기에 지어져 다른 르네상스 건축양식보다 일부 이탈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중앙홀을 보면, 겉에서만 봐오던 구 서울역사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듯하다. 이 부흥식 건물 양식은 서울에서 한국은행 본사건물과 구 서울역사 두 군데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날 행사에 참석한 관객들
▲ 저렇게 됐구나 이 날 행사에 참석한 관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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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서울역사 중앙홀 좌측으로 들어가면, 다양한 형태의 대합실도 볼 수 있다. 현재 대합실은 기능마비로 방치된 상태다. 그러나 예전의 고풍스런 느낌은 현재도 잘 유지가 됐다. 다만 전기시설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한 상태였다.

대합실 외에 구 서울역사만의 특이한 점이 있다. 바로 귀빈실. 귀빈실은 구 서울역사 운영당시 대통령이 사용할 정도로 큰 인기였다. 당시 푹신한 바닥 메트로 아늑한 느낌을 줬던 귀빈실은 현재도 바닥시트가 그대로 깔린 채 유지되고 있다.

안 교수는 귀빈실 내 난로의 비밀에 대해 설명했다.

"구 서울역사 내부 난로는 2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귀빈실 난로, 하나는 2층 교양실 난로입니다. 귀빈실 난로는 실제로도 작동이 됐습니다. 그러나 2층 난로는 폼을 위한 가짜 난로였습니다"

구 서울역 귀빈실 내 설치된 난로, 운영당시 실제로 작동이 됐다
▲ 실제로도 작동이 됐던 난로 구 서울역 귀빈실 내 설치된 난로, 운영당시 실제로 작동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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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역사 개통 전 교양실, 사무공간 등 다양

구 서울역사에 그대로 남겨진 '교양실' 표기
▲ 교양실 표기, '정감있네?' 구 서울역사에 그대로 남겨진 '교양실'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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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의 이모저모를 살핀 후, 안 교수는 대합실 외 다른 모습을 공개했다. 서울역 민자역사 개통전 사용됐던 교양실의 모습이다. 현재 기능을 중지한 교양실,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낡은 '교양실' 이정표가 눈에 띈다.

이 교양실의 비밀은 무엇일까? 바로 가짜 난로의 설치지점이다. 교양실의 내부는 아늑했다. 그대로 보존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했다.

구 서울역사 2층 '교양실' 내부, 마치 서양의 궁전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 여기서 춤추고 싶은 느낌? 구 서울역사 2층 '교양실' 내부, 마치 서양의 궁전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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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설치된 가짜 난로, 그러나 이 난로에도 비밀이 숨겨졌다. 1925년 당시에 '표현주의'가 유행했기 때문이다. 안 교수는 "가짜 난로의 장식을 보면 뭔가 흐느끼는 듯한 장식이 있다. 이 것은 표현주의의 유행으로서 냉철함을 표현하기 보다 감정적인 표현을 즐기는 듯한 인상을 준다고 설명했다.

가짜 난로 오른쪽을 보면, 흐느끼는 듯한 장식이 있다. 이것이 표현주의의 대표적인 '감정적인 표현' 부분
▲ 표현주의 양식의 산증인! '가짜 난로' 가짜 난로 오른쪽을 보면, 흐느끼는 듯한 장식이 있다. 이것이 표현주의의 대표적인 '감정적인 표현'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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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안 교수는 10여 명의 시민들에게 구 서울역의 사무공간 등을 공개했다. 이렇게 가이드가 구 서울역사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은 한 시간. 한 시간 동안 구 서울역사의 숨겨진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구 서울역사를 관람하기에 제약이 따랐다. 현장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다 보니, 일반관람자의 이해가 떨어질 염려가 보였다. 그리고 아직까지 균열이 된 모습이 곳곳에 남아 안전사고 우려가 있음을 나타냈다. 그리고 별다른 주의도 없고 안내요원도 부족했다.

첫 날인 현장공개, 28일까지 구 서울역사의 숨겨진 모습을 보는 시민들은 얼마나 될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SBS U포터,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서울역, #옛 서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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