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침 기도시간에 어르신들을 교회로 모셔오기 위해 2층 어르신들의 숙소로 가 출입문을 열자마자 고약한 냄새가 코를 들 수가 없다.
▲ 예배드리는 어르신들 아침 기도시간에 어르신들을 교회로 모셔오기 위해 2층 어르신들의 숙소로 가 출입문을 열자마자 고약한 냄새가 코를 들 수가 없다.
ⓒ 김학현

관련사진보기


냄새는 좋은 냄새도 있고, 나쁜 냄새도 있다. 하지만 같은 냄새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내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 냄새는 참 좋은 냄새였다. 그러나 좀 자란 후 할아버지, 할머니, 즉 어르신들에게서 나는 냄새는 좀 안 맡았으면 하는 냄새다.

노인요양원이 내 일터요, 노인 요양원 어르신들이 내 교구의 성도들이니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냄새와의 전쟁이 내 일상이 돼 버렸다. 예전에 할아버지에게서 맡았던 그리움의 냄새라고 아무리 내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도 소용이 없다. '이걸 어찌하오리까?' 냄새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법이라도 있으면 누구 알려주면 좋겠다.

할아버지 냄새에 향수가 묻다

내겐 아련히 떠오르는 기억 속의 냄새가 있다. 할아버지 냄새. 밖에서 뛰어놀다 가운데아버지(아버지는 3형제 중 막내고 가운데아버지께서 할아버지를 모시고 사셨음) 댁을 거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늘 들르던 할아버지의 툇마루, 할아버지는 거의 모든 날 그 툇마루에 앉아 곰방대에 담배를 피워 물고 계셨다.

"학현아! 이 눔아, 놀러갔다 오는구나. 이리 오련?"
"할아부지~"

그러곤 할아버지 품으로 뛰어들면 긴 수염이 할아버지와 나 사이를 방해한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수염을 쓰다듬어 할아버지와 나 사이에서 뽑아 옆으로 내려두곤 나를 꼭 껴안고 긴 곰방대의 타다 남은 담뱃재를 툇마루 끝에 대고 탁탁 터신다. 할아버지 턱밑으로 들어가 안겼을 때 할아버지 입에서 나던 담배냄새, 그게 그리 좋았다.

꼭 담배냄새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입 냄새와 어르신 특유의 냄새, 그리고 담배냄새가 합쳐진 냄새다. 난 그걸 '할아버지 냄새'라고 불렀다. 할아버지 품에 안겨 맡던 그 냄새, 결코 나쁜 기억이 아니다. 오히려 어린 내가 늘 그리워했던 냄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리 상쾌한 냄새가 아닌 게 분명한데 말이다.

"학현아, 잠깐 있어 봐."

품에 안았던 날 내려놓으며 일어나 사랑방으로 들어가셔서 가지고 나온 먹을거리들, 사과, 대추, 밤, 호두를 비롯한 과실류로부터, 떡, 꿀, 과자, 사탕 등의 먹을 것들이 진진하게 나왔다. 할아버지는 단지 벽장을 뒤적이기만 하시는데 꽤 넉넉하게 사셨던 가운데아버지 댁이어서 그런지 할아버지는 늘 먹을거리가 끊이지 않았다.

내가 어렸을 때는 먹을거리 얻어먹는 재미에 아랫마을로 놀러갔다 올 때는 항상 할아버지의 툇마루에 들렀다. 혹시나 할아버지가 툇마루에 안 계실 때는 여간 서운한 게 아니다. 그때 '할아버지 냄새'는 곧 '어르신 냄새'였고, 간식냄새였다. 당시 대부분의 아버지, 할아버지들에게서는 그런 냄새가 났다. 그러다 보니 할아버지가 아닌 다른 할아버지들에게서 나던 같은 냄새도 그리 좋았다.

날마다 냄새와 전쟁을 하다

그런데 나이 먹고 보니 그 냄새가 그리 역할 수가 없다. 눈만 뜨면 어르신 냄새와 어울려 사는 일상, 그들에게서 나는 특유의 '어르신 냄새'가 단맛이면 얼마나 좋을까. 단맛쯤은 아니어도 구수한 맛쯤이면 그래도 좋겠다. 이건 아예 구릿한 냄새이고 보면 날마다 냄새 전쟁에 기가 팍팍 가라앉는다.

아침 기도시간에 어르신들을 교회로 모셔오기 위해 2층 어르신들의 숙소로 가 출입문을 열자마자 고약한 냄새가 코를 들 수가 없다. 요양보호사 한 분이 연신 풀풀대며 바닥청소를 하느라 분주하다.

"이건 무슨 냄새래요?"
"아 글쎄, 000 할머니가 똥을 싸 벽이며 바닥이며 문질러 놔서 잘 닦아지지도 않네요. 그냥 침대 위에서만 그랬어도 괜찮을 터인데 온 동네를 다 돌아다니며 그랬으니. 냄새가 진동하네요. 다른 일 하다가 와 보니 이 난장판이네요."

이건 우리 요양원의 일상다반사다. 정신이 있으신 분들은 그래도 똥오줌 못 가릴 때 미안해하기라도 한다지만, 오늘의 경우는 치매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니 누구를 탓하랴.

노인요양원마다 냄새에 대한 대처방법이 다르다. 환기를 시키고 방향제를 뿌리는 요양원도 있다. 하지만 우리 요양원은 방향제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요양보호사들의 일거리가 더 많다. 잘 닦고 환기를 잘 시킨다고는 하지만 늘 냄새에 노출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난 항상 요양보호사들이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어르신들의 똥을 치우고, 기저귀를 갈아 채우고, 또 여기저기 묻은 똥칠을 지워내는 걸 보면, 보통사람들이 아니란 생각을 한다. 난 그냥 곁에서 그런 모습만 봐도 욕지기가 솟으니 말이다. 때론 속으로 나를 질책한다.

냄새를 견디는 것에도 개인차가 있다


"목사란 작자가, 가장 사랑이 많아야 할 목사가, 냄새 하나 못 참고 욕지기를 하면 어쩐단 말인가? 넌 아직 예수님 닮으려면 어림없다."


맞다. 난 어림없다. 예수님은커녕, 노인요양보호사 한 명이라도 닮아야 하는데. 그러나 이런 자책이 무슨 소용이랴? 냄새 앞에만 서면 한없이 오그라드는데. 냄새하고 사랑하고는, 냄새하고 사명하고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가 보다. 비위가 약하면서 사랑의 사명을, 그것도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을 해야 하니 항상 딜레마다.

하긴 나보다 더한 사람도 있다. 그는 다름 아닌 내 아내다. 그래도 목사의 아내쯤 되면 그런 냄새는 넉넉히 이겨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내는 나보다 한술 더 뜬다. 어르신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나면, 항상 교회의 문들을 활짝 열어 제켜 환기를 시키는 사람은 아내다. 추운데 왜 문을 열어놓느냐고 물으면 항상 대답이 같다.

"냄새 나잖아요. 어르신들 냄새가 교회에 배었어요."

정말 아내는 냄새에 민감하다. 주변 공장에서 바람을 타고 오는 냄새에 화장실을 찾은 적도 있다. 그 공장의 냄새는 간장 달이는 냄새 같은데 아내는 그 냄새를 못 참는다. 그러니 어르신들에게서 나는 역한 냄새를 힘들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쯤해서 따끔한 충고 한마디 하고 싶다. 냄새에 민감한 사람은 노인요양보호사가 되지 않는 게 좋다. 아무리 어르신들을 사랑해도, 기능을 잘 익혀도, 의욕이 충만해도, 직업정신이 투철해도, 냄새에 민감하면 요양보호사 일을 감당하기 힘들다. 그저 어르신 공경이라는 사명감으로만은 안 된다.

내가 냄새 때문에 겪은 경험의 압권은 며칠 전에 있었다. 휠체어에 태우기 위해 한 어르신을 안았다가 일어났다. 어르신이 속이 안 좋아 토악질을 해 놓은 걸 미처 못 보고 그를 안았다가 죽는 줄 알았다. 그 최악의 냄새 앞에 그만 나도 화장실로 달려가고 말았다. 이후는 상상하라.

"왜 그래요? 목사님!"
"예, 속이 안 좋아서요."

요양보호사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고 쏜살같이 방문을 박차고 나와 신선한 공기를 마셨다. 그날 하루 종일 속이 울렁거려 혼났다. 그날 이후 어르신을 안을 때는 주변부터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어르신 냄새, 한번 맡아 보실라우?"

덧붙이는 글 | *'냄새나는 글' 응모글입니다.
*글쓴이는 노인요양시설 '사랑의마을'에서 어르신들의 신앙을 지도하는 목사입니다.



태그:#냄새, #요양원, #어르신, #노인, #요양보호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