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밖이 훤하다. 동이 터온다. 작업복을 찾아 입느라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아내도 잠이 깬 모양이다.

"당신, 다섯 신데, 밭에 나가려고?"
"그럼. 요즘은 밭작물이 하루가 다르게 크니까 궁금해!"
"뭐가 그리 만날 궁금할까? 어제도 늦게까지 일하고선!"
"나가면 할 일은 또 있지! 김도 매고, 물도 주고, 순도 치고…."
"당신, 들어오다 쌈이나 좀?"
"쌈 뜯는 것은 당신이 알아서!"

공연히 말을 꺼냈다며 아내가 어서 나가라며 등을 떼민다.

하지가 21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새벽 다섯 시가 조금 지났는데도 사방이 밝았다. 마당 잔디밭에 나와 가볍게 체조를 하는데 상쾌하다.

시골 아침, 맑은 공기가 신선하다. 어디 공기뿐이랴! 밭에 나오면 반기는 게 많다. 뒷산에서 새소리가 들려온다. "뻐꾹 뻐꾹!" 뻐꾸기 소리가 뚜렷하다. 휘파람새도 청아한 목소리로 아침을 가른다. 목이 쉰 듯한 장끼가 울부짖는다. 어디서 들리는지 산비둘기도 "구구!" 목청을 다듬는다.

부지런하면 소복은 찾아온다(?)

만물상이 차려진 유월의 우리 집 텃밭이다. 자라는 속도가 붙었다.
 만물상이 차려진 유월의 우리 집 텃밭이다. 자라는 속도가 붙었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6월 중순을 넘기면서 밭작물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자라는 데 탄력을 받았을까? 요즘은 밭을 한바퀴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옆집 할머니도 뒷짐을 지고 밭을 둘러보신다. 할머니는 매일 아침 뵙는다. 연세가 높으신 데도 참 건강하시다.

"어! 할머니, 일찍 나오셨네요?"
"고라니 녀석들 다녀가셨나 해서 나와 봤지."
"며칠 전에 저희 밭 고구마순을 잘라먹고, 강낭콩잎도 냠냠했던데요."
"우린 고춧잎까지 입맛을 다셔 걱정이라니까!"
"근데 저희 고추밭은 멀쩡한데요."
"그래? 워낙 부지런하게 가꾸니까 녀석들도 봐주는 모양이네!"
"할머니는!"

할머니께서 건네는 우스갯소리가 재미있다. 고라니 녀석들이 누구 것은 봐주고 안 봐 주고가 있겠는가! 할머니는 틈만 나면 밭에서 사는 나를 보고 참 부지런하다며 늘 칭찬이시다.

나는 틈만 나면 호미를 들고 밭에서 살다시피 한다. 밭이 말끔하면 마음도 개운하다. 밭에 땅콩, 고구마, 팥, 강낭콩 등이 보인다.
 나는 틈만 나면 호미를 들고 밭에서 살다시피 한다. 밭이 말끔하면 마음도 개운하다. 밭에 땅콩, 고구마, 팥, 강낭콩 등이 보인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옛말에 부지런하면 소복은 타고 났다는데, 이 집이 그런 것 같애!"
"말씀이 듣기 좋네요. 그럼 대복은 누구한테 오는데요?"
"큰 부자? 그야 하늘이 내리지! 운이 따라야하는 한다는 소리야!"
"그럼, 우리는 소복도 감지덕지네요."

할머니가 들려주신 말씀이 그럴 듯하다. 정성을 다해 부지런히 가꾸면 작물은 잘 자랄 것이고, 거기다 하늘이 도와주면 풍년이 된다는 이치일 게다.

작물도 사람 마음을 알고 자랄까?

세상을 사는데 있어 부지런히 노력하면 작은 복은 찾아올까? 대복이야 하늘의 뜻이라는데, 소복이면 어떤가! 할머니와 나눈 덕담으로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

틈틈이 시간을 내 부지런을 떨어서일까? 내가 보기에도 우리 밭이 말끔하고, 싱그럽다. 따가운 햇볕과 때맞춰 내린 비로 작물이 자라는 게 튼실하다.

우리 주력작물인 고추밭. 고추는 공을 들여야 많이 거둘 수 있다.
 우리 주력작물인 고추밭. 고추는 공을 들여야 많이 거둘 수 있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우리 집 고구밭이다. 속노랑고구마를 많이 심었다. 고구마는 병해충에도 잘 견뎌 재배하기가 쉽다.
 우리 집 고구밭이다. 속노랑고구마를 많이 심었다. 고구마는 병해충에도 잘 견뎌 재배하기가 쉽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우리가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고추밭이다. 고추모를 심은 지 두 달 가까이 지났다. 키가 훌쩍 자라 말장을 박고 줄로 붙잡아 주었다. 곁가지를 잘라주고, 적당히 웃거름을 주었더니 키가 커졌다. 한창 고추꽃이 피기 시작한다. 꽃이 진 자리에는 풋고추가 달렸다. 장마를 견디고 병충해 없이 잘 자라주면 정말 좋겠다.

고구마줄기가 힘차게 뻗기 시작했다. 강화특산물인 속노랑고구마는 아내의 관심종목이다. 고구마는 한 번 심어놓으면 크게 손보지 않아도 잘 자란다. 고구마줄기가 고랑을 뒤덮을 날도 머지않았다. 고구마순은 따서 나물로도 먹는다. 밑이 실한 고구마는 친지들과 나눠먹을 생각에 벌써부터 가을이 기대된다.

참외, 수박도 자라는 속도가 빨라졌다. 참외, 수박은 내나 잘 자라다 병해 때문에 번번이 실패를 했다. 그래도 우리 애들이 좋아하는 것이라 올해도 넉넉히 심었다. 정성을 기울여 가꿔야겠다. 한 달 남짓 기다리면 입이 심심하지 않을 것 같다.

아내는 주전부리거리로 옥수수를 최고로 친다. 밭 가장자리에 시차를 두어 많이도 심었다. 먼저 씨를 뿌린 것은 키가 가슴까지 자랐다. 그리고 토마토, 가지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고 있다.

옥수수, 토란, 참외, 수박, 감자도 심었다.
 옥수수, 토란, 참외, 수박, 감자도 심었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아내는 "옥수수는 언제 달려? 토마토와 참외, 수박은 언제 익지?" 성급하게 군다. 곁순을 보이는 데로 따주는 정성이 기특하다.

강낭콩은 콩깍지를 키우고 있다. 땅콩도 실하게 몸집을 불리며 노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토란도 밑동이 토실토실해졌다. 토란은 씨를 넣은 지 한 달 보름은 되어서야 싹이 텄다. 기다리다 지칠 무렵 고개를 쳐든 새싹이 무척 반가웠다. 추석 때 토란으로 탕을 끓이고, 줄기는 말려 나물과 육개장을 끓이는데 요긴하게 사용될 것이다.

작물도 정성을 다해 돌보면 가꾸는 사람의 맘을 알고 쑥쑥 자라는 모양이다. 그게 자연의 이치이고 순리인지도 모른다.

"나도 그건 인정해!"

아내가 소쿠리를 들고 밭으로 나왔다. 오늘따라 호들갑이 심하다.

수확을 앞둔 완두콩밭과 주렁주렁 열매가 달린 토마토밭.
 수확을 앞둔 완두콩밭과 주렁주렁 열매가 달린 토마토밭.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더덕밭 앞에 오이를 심었다.
 더덕밭 앞에 오이를 심었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여보, 감자 캘 때 되지 않았나? 작년엔 장마 전에 캔 것 같았는데…. 어느새 풋고추도 주렁주렁 달렸네! 오이도 딸 게 있고, 완두콩도 거둬야겠어! 그리고 며칠 전 씨를 넣은 팥이 고개를 쳐들고 자라는 폼이 예쁘네!"

그만 좀 떠들라 해도 아내 입가에 웃음이 가득하다. 아침햇살을 받아 싱싱함을 뽐내고 자라는 작물들이 참 보기 좋은 모양이다.

아내가 풋고추 몇 개를 사냥한다. 완두콩도 한 움큼 딴다. 그리고 토실토실하게 자란 오이도 대여섯 개 거둔다.

야채를 뜯는 아내. 아내는 쌈을 무척 좋아한다.
 야채를 뜯는 아내. 아내는 쌈을 무척 좋아한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이젠 야채밭으로 이동한다. 야채밭에는 상추, 쑥갓, 치커리, 고수 등이 심어졌다. 아내 손놀림이 무척 빠르다.

"여보, 당신은 더덕순도 좀 따! 쌈과 함께 먹으면 맛있잖아요."

금방 거둔 야채가 풍성하다. 완두콩을 넣은 밥이 참 맛있다. 입이 미어져라 쌈을 먹은 아내의 표정이 흐뭇해 보인다.

할머니 말씀이 생각나서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소복은 누구한테 오고, 대복은 누가 타고 나는지 알아?"
"글쎄, 그런데 모르면 몰라도 당신은 소복은 타고 났을 걸!"
"옆집 할머니와 똑 같은 소리를 하네!"
"당신, 부지런한 것은 알아주잖아요! 나도 그건 인정해!"


태그:#텃밭, #유월의 텃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