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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를 닮은 그림

이영미 작가, 그녀의 그림을 보면 이분의 나이가 몇일까 의문이 들곤 합니다.

그녀의 그림 속에는 여전히 소녀가 있습니다.

그녀가 만들어낸 빨간 하트는 순수를 믿는 미지의 기다림 같습니다. 그녀의 붓에 의해 깊어진 푸른 하늘은 장미꽃 애인을 자신의 별에 두고 온 어린왕자를 생각나게 합니다. 그림에 감수성이 철철 넘치는 이영미는 놀랍게도 올해 지천명에 다다른 나이입니다.

자신의 작품앞에 선 이영미작가
 자신의 작품앞에 선 이영미작가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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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로부터 전화로 초대를 받았습니다. 작업실을 털어낸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의미에 대해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녀의 넓지 않은 그 작업실에 털어낼 무엇이 있었던가, 싶었습니다. 그 의미를 그녀가 초대한 날, 작업실을 방문하고서야 알았습니다.

그녀는 그동안 헤이리 더스텝의 작가동에 작업실을 두고 있었습니다. 올해 헤이리에 3층짜리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7월이면 그 집이 완성되어서 지금의 작업실을 떠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영미, 털어내다'는 그동안 알고 지낸 지인들을 청해서 이 공간에 이별의식을 하는 '이영미 오픈스튜디오'였던 것입니다.

'이영미, 털어내다' 오픈스튜디오를 위한 작업실앞 데크에서의 오프닝파티
 '이영미, 털어내다' 오픈스튜디오를 위한 작업실앞 데크에서의 오프닝파티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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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작가는 복층이지만 그리 넓지 않은 그 공간에서의 시간을 행복해했습니다. 이태동안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커피를 마시고 때로는 멍하니 허공을 보는 시간을 가지곤 했습니다. 저도 간혹 그곳을 지나칠 때면 고개를 들이밀고 안부를 확인하곤 했지요. 함께 커피를 나눈 것도 여러 차례입니다. 그를 때면 그녀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생각에 대해, 꿈에 대해 말하곤 했습니다. 그녀의 말 속에는 소녀가 있었고, 그녀의 작품들도 아직 순수를 잃지 않은 그 소녀가 자신을 담아낸 동화 같았습니다.

작업실에서의 이영미작가
 작업실에서의 이영미작가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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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때 '동화 읽는 어른들'의 모임에 끼웃거린 적이 있었습니다. 제게 동화는 화학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은 엄마의 소박한 밥상같이 여겨졌었습니다. 화학조미료로 강한 맛을 낸 식당의 상차림 같은 어른들의 글에 질린 나머지 그 소박한 밥상이 그리웠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미 저의 혀는 그 강한 화학조미료에 길들여있는 터라 동화는 물에 물 탄 듯 밍밍하기만 했습니다. 그 밋밋한 동화의 건강함을 받아들이기 위한 체질 개선의 기간을 견디지 못한 것입니다.

이영미 작가의 작품은 바로 제가 원했었지만 그 심심함을 참지 못한 동화를 닮았습니다. 저는 그녀의 작업실을 오가면서 대하는 그녀의 작품을 통해 화학조미료와 이별하는 연습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새로운 도전을 즐깁니다. 작년에는 도예작업에 흥미를 붙이고 여러점을 구워냈습니다.
 그녀는 새로운 도전을 즐깁니다. 작년에는 도예작업에 흥미를 붙이고 여러점을 구워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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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미안해' 만두

저는 이영미 작가를 대할 때 마다 '엄마 미안해' 만두를 잊을 수 없습니다.

'만두 한 그릇 잡수고 가세요.'

작년 어느 날 안상규 화백과 저를 작업실 2층으로 청했습니다.

엄마가 빚은 만두국을 끓이고 녹두 빈대떡을 데워내는 그녀는 어느때보다 신나해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엄마가 빚은 만두국을 끓이고 녹두 빈대떡을 데워내는 그녀는 어느때보다 신나해하는 표정이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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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당도할 때를 맞추어 끓인 주먹만 한 손만두국 두 그릇과 녹두 빈대떡 한 접시, 그리고 막걸리 한 병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도 맛나서 저는 한 그릇을 비우고도 만두 3개를 더 먹었습니다. 숟가락을 놓고서야 웬 만두냐고 물었습니다.

"친정아버지가 오랫동안 앓고 계십니다. 중환자실에서 보내시는 아버지가 딱하기도 하지만 단지 하루 30분간의 면회만 허락되는 그 시간을 기다리며 하루 종일 침울한 마음으로 계시는 엄마가 더 애처로웠습니다. 저는 엄마의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고 싶었습니다. 묘안을 찾다가 제가 어렸을 때 특별식으로 식구들의 상에 올렸던 엄마의 특별한 만두가 생각났습니다. 저는 엄마가 저희를 황홀하게 해주셨던 그 개성식 손만두 만드는 일에 몰두할 수 있다면 아버지 면회시간만을 기다리는 그 하릴없는 상황에서 어머니를 구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만두를 빚게 하고 저는 그것을 주위 분들에게 팔아 어머니에게 돈을 되돌려드리기로 한 것입니다. 엄마가 자신의 솜씨를 뽐낼 수 있고 스스로의 용돈도 마련할 수 있으니 새로운 신명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여겼습니다. 처음 빚은 만두 100개는 주변 사람들에게 강매(强賣)했고, 며칠 뒤부터는 제게 강매(强買) 당했던 사람들이 그 맛에 반해 이제 스스로 주문을 합니다.

사실 엄마는 평생 외로운 삶을 견디어 온 분입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20살에 한국으로 오셔서 아버지와 결혼하셨는데 아버지는 두 번째 결혼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전처 자식을 거두며 스스로도 저희 삼남매를 더 얻었습니다. 어눌한 한국말로 땅과 물이 모두 검은 철암 탄광촌의 거친 삶을 인내해야했습니다. 한국에서의 위축된 생활들로 인해 공무원이시던 아버지의 박봉에 힘을 보태는 일은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자식들이 학교등록금을 내지 못해도 그냥 철암의 하늘만 응시했고, 쌀이 떨어지면 솥에 물만을 끓이는 대책 없는 엄마였습니다. 저는 어린마음에 제가 동네아이들과의 싸움에서 지면 아이들을 혼낼 줄도 알고, 돈이 떨어지면 동네의 선술집에서 일이라도 거들며 식량을 사올 수 있는 강한 엄마를 부러워했습니다. 엄마가 스스로 돈을 벌어보는 경험을 이 만두 빚는 일로 칠십 중반에 해보게 된 것입니다.

엄마가 건강한 식재료만을 골라 손으로 만든 이 만두를 저의 못난 딸의 마음을 담아 '엄마 미안해'표 만두로 명명했습니다. 그리고 제 작업실 문에 그 사연을 적어 만두장사 시작을 알렸습니다.

그녀의 작업실 문에 붙여진 '엄마 미안해! 만두'에 대한 공지
 그녀의 작업실 문에 붙여진 '엄마 미안해! 만두'에 대한 공지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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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가 1000개 팔리던 날. 어머니를 도우러 친정집엘 갔습니다. 엄마는 녹두를 타서 거피를 하고 계셨습니다. 엄마는 자신이 잘하는 녹두 빈대떡도 만들어 팔고 싶었던 것입니다. 녹두를 가공하는 일이 얼마나 수고로운 과정을 거쳐야하는지를 그때 목도했습니다. 동생을 시켜 막걸리 한 병을 사오게 해서 엄마의 그 녹두 빈대떡을 바로 부쳐 우리 자매는 엄마의 시름 탈출을 축하했습니다.

저는 엄마가 만두와 독두 빈대떡을 만드는 일을 신명나하시는 동안 그 판매책과 배달꾼을 자처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두 분 선생님께 그 엄마의 손만두와 빈대떡 그리고 이 막걸리 한 병을 직접 대접 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영미 작가의 긴 얘기를 듣고 하얀 함박꽃을 닮은 이영미 어머님의 만두와 그 딸의 효심이 함박꽃보다 아름답다 생각되었습니다. 제가 허겁지겁 배 속으로 감춘 그 만두에는 이렇듯 깊은 이영미 작가의 효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함박꽃을 닮은 '엄마 미안해!'만두
 함박꽃을 닮은 '엄마 미안해!'만두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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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특별한 만두 대접에 대한 은혜를 이 날 갚을 수 있었습니다.

모티프원의 청소 탓으로 그녀의 오픈 스튜디오의 초청시간보다도 10분 늦게 도착한 그때까지 모든 사람들이 제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를 보자 이영미 작가는 제가 이 오픈스튜디오의 문을 열어주어야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즉석에서 제게 인사말을 청했던 것입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제가 평소에 접해온 이영미 화백과 그녀의 작품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영미, 털어내다' 오픈스튜디오를 위한 오프닝에서 개막인사말의 요청을 수락함으로 일전에 만두를 얻어먹은 빚을 털어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영미, 털어내다' 오픈스튜디오를 위한 오프닝에서 개막인사말의 요청을 수락함으로 일전에 만두를 얻어먹은 빚을 털어낼 수 있었습니다.
ⓒ 아트앤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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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화백은 그동안 정들었던 이 공간으로부터 정을 털어내고, 저는 이영미 화백의 만두대접에 대한 빚을 털어낼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공간에서 더욱 빛을 낼 그녀의 행보를 주목합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이영미, #모티프원, #헤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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