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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무작정 걸어 다니며 사진 찍기.

전에는 답답한 카메라 렌즈 속으로 세상을 보는 것보다 눈으로 즐기기 좋아했고, 기억하고 싶은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기 보다 가슴 속에 남기는 걸 좋아했다. 밥을 먹어도, 여행을 가도 블로그에 올릴 사진을 찍느라 분주한 친구들에게 "그깟 사진이 뭐 길래 소중한 순간을 놓치느냐"고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

그런 내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두 달 치 월급이 훨씬 넘는 카메라를 장만했다. 막상 사기는 했지만 난감했다. 그동안 핸드폰 카메라 밖에 몰랐으니 카메라의 수많은 기능들과 어려운 용어들을 알 턱이 없었다. 사용설명서를 훑어보고, 서점에 쭈그려 앉아 'DSLR입문용' 서적을 읽었다.

아무리 봐도 모르는 말이 더 많아 무작정 거리로 나왔다. 무엇을 찍어야 하는지, 구도는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무턱대고 카메라를 들이댔다. 열장, 스무 장 늘어나면서 '찍은'게 아닌, '건진' 사진 한 두 장에 기뻤다.    

렌즈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다

활짝 핀 꽃들 사이에 이미 시들어버린 여린 꽃이 애처롭다
▲ 이미 시든 꽃 활짝 핀 꽃들 사이에 이미 시들어버린 여린 꽃이 애처롭다
ⓒ 김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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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열어 보니 햇살 가득 머금은 푸른 잎이 눈부시다
▲ 푸른 잎, 햇살 가득 머금다 창문을 열어 보니 햇살 가득 머금은 푸른 잎이 눈부시다
ⓒ 김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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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돌아다니는 날들이 계속 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집 앞에 버려진 녹 슨 자전거를 보았다. 늘 지나던 길가에 핀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이 반가웠고, 이미 시들어 버린 여린 꽃도 렌즈 속 세상에서는 애처로웠다. 햇살 가득 머금은 푸른 잎들이 빛났다.

부쩍 늘어난 아빠의 흰머리가 가슴 저리다
▲ 우리아빠 부쩍 늘어난 아빠의 흰머리가 가슴 저리다
ⓒ 김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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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옆에 있어 더욱 무관심 했던 이들의 작은 표정, 몸짓에 관심을 가졌다. 저녁밥 짓는 엄마의 뒷모습을 처음 보았고, 뉴스 보다 잠든 아빠의 부쩍 늘어난 흰머리가 가슴 저렸다. 잠든 강아지의 숨소리조차 사랑스러워 사진 속에 담지 못함이 아쉬웠다. 

늦은 밤, 골목길의 외로운 가로등 불빛
▲ 가로등 불빛 늦은 밤, 골목길의 외로운 가로등 불빛
ⓒ 김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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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거리를 청소하시는 아저씨
▲ 환경미화원 이른 아침,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거리를 청소하시는 아저씨
ⓒ 김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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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햇빛 내리쬐는 환한 낮보다 이제 막 밝아오는 새벽녘이 좋았고, 가로등 불빛이 외로운 한밤중도 좋았다. 구름으로 밝은 빛 살짝 가린 흐린 날이면 더 좋았다. 그럴 때면, 남들보다 먼저 일어나 밤새 어질러진 거리를 청소하는 아저씨의 고독을 볼 수 있었고, 퇴근하고 돌아오는 아버지의 지친 일상을 만났다. 비오는 날, 마을버스에서 내리는 여고생을 우산을 들고 반기는 어머니의 미소에 지난 날 추억 속에 잠기기도 했다.

TV에 나오는 조각 같은 연예인도, 거리의 스타일 좋은 남자들도 카메라 안에 담기는 부담스러웠다. 엄마 아빠 손잡고 나들이 가는 아이의 해맑은 미소가 더 예뻤고, 공원 벤치에 앉아 담뱃불 붙이는 할아버지의 깊게 파인 주름에 시선이 머물렀다. 리어카 끌며 빈 박스를 줍는 할머니의 무거운 어깨가 가슴을 울렸다.   

늦은 시간, 작은 전등으로 불을 밝히며 오지않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 우리 동네 식당 늦은 시간, 작은 전등으로 불을 밝히며 오지않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 김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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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솟은 빌딩이나 아파트도, 번쩍이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도 작은 카메라 렌즈 안에 담기에 너무 컸다. 밤늦도록 일하는 이들의 허기를 달래주는 24시간 해장국집의 소박함이 적당했다. 다 기울어져가는 낡은 집들이 모여 있는 동네가, 소박한 전등불로 빛나는 작은 슈퍼마켓이 안성맞춤이었다.

나와, 당신의 두 눈이 더 낮은 곳을 향하기를

카메라 렌즈 안에서는 작을수록, 여릴수록, 초라할수록 빛이 났다. 너무 흔해서 지나쳤던 소중한 것들이 담겨졌다. 이 모든 것들은 두 눈으로 얼마든지 볼 수 있었던 소소한 일상이었다. 내 시선이 카메라가 없이도 낮은 곳으로, 작은 것으로, 초라한 것으로 향하는 날, 그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쇳덩이를 내려놓을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여유가 된다면 카메라 하나 더 구입해 크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 대통령님께 선물하고 싶다. 그래서 하늘을 찌를 것만 같은 높은 빌딩만이 건물이 아님을 알고, '잿빛 녹색'이 아닌 '진짜 녹색'을 렌즈 속에 담아보기를. 재개발로 피멍든 한 가정의 문드러진 가슴이 보이고, 광장에서 울고 있는 여고생의 흐느낌을 들을 수 있기를.


태그:#카메라, #DSL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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