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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이 끝난 다름날인 5월 30일 오전 경찰이 서울광장에서 밤샘 촛불추모 행사를 한 시민들을 강제로 몰아낸 뒤 경찰버스로 차벽을 쌓아 봉쇄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이 끝난 다름날인 5월 30일 오전 경찰이 서울광장에서 밤샘 촛불추모 행사를 한 시민들을 강제로 몰아낸 뒤 경찰버스로 차벽을 쌓아 봉쇄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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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가 열릴까 봐 영화제 개막 이틀 앞두고 광장 사용을 불허하다니, 이런 식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도 되는가. 이보다 더 황당할 수는 없다."

인권영화제 주최 측은 4일 말문이 막힌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정을 알고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올해로 13회째를 맞이한 인권영화제는 5일 저녁 7시부터 청계광장에서 사흘 동안 열릴 예정이었다. 이런 일정은 이미 지난 2월에 결정됐고, 서울시에 장소 사용 비용까지 지불했다. 하지만 서울시설공단은 영화제 개막 2일을 앞두고 장소 사용 불허를 주최 측에 통보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영화 상영작 다수가 정치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영화제가 불법 집회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이는 경찰이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4일까지 무려 12일 동안 서울광장을 봉쇄한 이유와 동일하다. 논란이 커지자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은 4일 저녁 해명자료를 통해 "청계광장은 서울시민들의 문화공간이므로 공단에서는 영화제 주최 측이 다시금 사용신청을 해온다면 사용승인을 할 예정이다"라며 다시 태도를 바꿨다.

인권영화제는 우여곡절 끝에 애초 계획대로 청계광장에서 열리게 됐지만, 이명박 정부 2년차에 접어들어 시민들이 '광장'을 이용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이와 비슷한 일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분향소를 차 벽으로 둘러쌌을 때에도 벌어졌다.

"불법 집회 우려, 영화제 장소 불허"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열린 서울광장에서 밤새 촛불을 밝힌 시민들이 30일 새벽 5시20분경 경찰의 해산작전으로 쫓겨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열린 서울광장에서 밤새 촛불을 밝힌 시민들이 30일 새벽 5시20분경 경찰의 해산작전으로 쫓겨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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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트라우마'가 있는 정부는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시민들의 자발적 조문이 '제2 촛불'이 될까 노심초사했다. 그리고 이번엔 영화를 영화로 보지 않고 '불법 집회의 싹'으로 인식하고 있다. 정부는 마치 '광장공포증' 혹은 '집회·시위 혐오증'에 걸린 듯하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서울광장 12일 동안 철통 봉쇄(5월 23일 ~ 6월 4일. 29일 제외), 인권영화제 청계광장 개최 일방 불허(6월 3일), 등록금 인하 촉구 삭발 기자회견 참가 대학생 전원 연행(4월 10일), 촛불 1주년 기념집회 불허, 경찰 과잉진압 규탄 기자회견 참가자 6명 연행(5월 4일). 그리고 용산참사 희생자 추모 관련 행사는 모두 불법시위 규정···.

이렇게 마침표를 찍기 어려울 만큼 최근 이명박 정부가 헌법이 보장한 집회·시위 및 표현의 자유를 침범한 사례는 많다. 노 전 대통령의 일성을 빌려 한마디로 짧게 정리하면 이렇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겉으로는 법치를 강조하면서도 "막 나가는" 정부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일까. 서울대 교수 124명을 시작으로 대학 교수들이 릴레이 시국선언에 나섰다. 이들은 정부에 "표현과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외치고 있다. 사실 이런 주장은 1980년대라면 모를까, 2009년 현재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호소다. 그만큼 이명박 정부 들어 한국 민주주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이뿐만이 아니다. 안경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3일 직접 성명을 발표하며 "국민의 기본권은 정부의 선심으로 보호되는 것이 아니며 국민의 기본권 보호야말로 국가의 존립 근거이자 기본적 의무"라고 정부를 비판했다.

국제엠네스티 역시 10년 만에 한국의 표현의 자유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지난해 촛불 집회 이후 집회 참가자에 대한 무더기 연행이 계속되고 있고, 기자회견도 불법 집회로 간주해 참가자를 연행하는 것 등이 주요 사례입니다. 지난 1년 동안 한국의 인권상황은 점점 악화됐습니다. 그중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경찰력 사용과 표현과 집회의 자유입니다."

대학교수, 인권단체, 그리고 국제엠네스티가 흔히 말하는 '좌빨'이거나 정부에 괜한 악감정을 갖고 있어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객관적 수치와 자료, 그리고 정부의 최근 행태를 보면 이들의 반응이 지나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난달 23일부터 경찰버스로 봉쇄되어 있던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4일 새벽 경찰버스가 철수했다. 경찰버스가 봉쇄를 풀고 떠난 뒤 서울광장 주변에 배치된 수십명의 경찰들이 도로 건너편 시민분향소를 바라보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난달 23일부터 경찰버스로 봉쇄되어 있던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4일 새벽 경찰버스가 철수했다. 경찰버스가 봉쇄를 풀고 떠난 뒤 서울광장 주변에 배치된 수십명의 경찰들이 도로 건너편 시민분향소를 바라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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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번 집회 신고에 단 한 번 허락, 1% 민주주의"

'민주주의 수호, 공안탄압 저지를 위한 시민사회단체 네트워크'가 4일 국가인권위에서 밝힌 '이명박 집권 이후 집시법 적용실태와 문제점'을 보자.

경찰청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8년 1월부터 12월까지 서울에서 집회 신청자에게 집회 금지통고는 총 149회 내려졌다. 하지만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불과 4개월 만에 집회불허 통고는 무려 164회에 이른다.

또한 이런 '집회불허 과잉 현상'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진보연대 등 14개 정당·사회단체가 진행한 '서울시내 주요 장소 100군데 집회신고 내기 운동'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이들 정당과 단체는 지난 5월초부터 서울역, 명동 입구, 청계광장, 대학로 등 서울 시내 주요 장소 100곳에 집회 신고를 내봤다.

그 결과 집회가 허가된 건 단 1차례, 민주노총이 5월 25일부터 31일까지 낮 시간에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진행하겠다는 집회뿐이었다. 100번 신고해 단 한 번 허락됐으니, 현재 서울에서 집회 성공 가능성은 단 1%인 셈이다.

이는 경찰청이 지난 4월 1일 일선 경찰서에 하달한 <2009년 집회시위 관리지침>과 무관하지 않다.

이 관리지침에는 "불법폭력이 우려될 경우, 집회 신고단체 및 초반부터 강도 높게 대응"하고 "차벽에 의존하던 기존 대응방식에서 과감히 탈피, 현장 검거 위주로 대응하라"고 나와 있다.

지난 4월 30일 용산참사 규탄집회 및 촛불 1주년 행사기간 3일 동안 241명 연행, 5월 14일 화물연대 박종태씨 사망 관련 집회에서 486명 연행, 5월 30일 범국민대회 72명 연행 등은 우발적으로 벌어진 게 아니다.

"기자회견 하려면 48시간 연행 각오... 정부, 그렇게 자신 없나"

이 때문에 박진 인권단체연석회의 활동가는 "최근 야외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구호라도 외치려면 경찰서에 연행돼 48시간을 보낼 각오를 해야 한다"는 씁쓸한 활동가의 현실을 언급하며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계속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진 활동가는 "2009년의 집회시위 상황이 더욱 암울한 것은 촛불광장을 경험한 후, 광장 민주주의에 대한 두려움 또는 혐오감을 가진 정부 태도 때문"이라며 "이는 결국 선거에 의해 합법적으로 뽑힌 이명박 정부는 국민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고 경찰들을 동원한 공권력의 폭력에 의해서만 보호 받을 수 있는 권력"이라고 비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박주민 변호사는 정부의 집회 불허와 통제에 맞서 "국민 기본권 침해에 대해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헌법소원 등을 제기할 방침이다"고 밝혔다.

시민사회단체 등은 오는 10일 다시 서울광장에서 대규모 행사를 열 계획을 천명했다. 이를 사전에 막겠다는 듯 강희락 경찰청장은 4일 "집회를 여는 시위 주최 측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성격인가에 따라 (선별적으로)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 역시 "앞으로 사회 평안을 불안케 하는 폭력ㆍ불법시위에 대해 무관용으로 대처하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광장을 둘러싼 국가와 시민들의 대결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일 방송된 MBC <PD수첩> '봉쇄된 광장, 연행되는 인권'은 이런 클로징 멘트를 남기고 끝났다.

"민주주의는 시민을 골목으로 몰아넣는 것이 아니라 광장으로 나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 광장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힐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봉쇄된 광장은 우리 사회 민주주의 위기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고 말았습니다."


태그:#서울광장, #집회시위,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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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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