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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고등학교 교복은 단순한 학교 구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 광명시내를 돌아다니는 고등학생들 이곳에서 고등학교 교복은 단순한 학교 구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 서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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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복이 학생의 모든 걸 말해주는 곳, 경기 광명시

A고에 다니는 한 고등학생이 있다. 그리 성적이 높지 않은 학교에 다니지만, 평소 성실하고 꾸준한 학습태도로 공부해 학업성취도도 높다. 학생은 수학 과목을 더 열심히 공부하고 싶어 과외를 알아봤고, 주로 인근 B고등학교 학생들로 이루어진 그룹 과외 한 곳을 추천받아 문의해 봤다.

그런데 돌아온 과외 선생님의 답변은, 과외 선생님과 학부모 앞에서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부를 더 해보고 싶은 욕심은 있었지만, 학생과 학부모는 결국 과외 신청을 포기했다. 비록 B고등학교가 성적이 훨씬 높은 건 사실이지만 학부모까지 나서서 학생을 테스트한다는 것에 마음이 상했고, 그것은 결국 A고에 다니는 학생과 함께 공부하고 싶지 않다는 우회적 거절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도 있다. A고에 다니는 학생이 오랜만에 야간자율학습을 빼먹고 친구와 함께 할인마트에 물건을 사러 갔다. 물건을 고르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물었다.

"학생들 어느 학교 다녀?"
"A고에 다녀요."
"시험 끝났어?"
"예."
"맞아, A고는 시험 끝나면 공부 안 하지."     

이른바 고교 비평준화 지역인 광명시 학생들이 실제로 겪은 일들이다. 성적에 따라 학교를 나누다 보니 성적이 낮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일상생활에서 이런 상처를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실제로 면전에서 '꼴통', '똥통 학교에 다니는 애들'과 같은 말을 듣고 모욕감을 느낀 때도 더러 있다고 한다.

현대판 교육신분제, 그리고 학생과 학부모의 고통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는 한 개인이 소속돼 있는 집단이나 계급이 그 사람의 모든 걸 결정해 버렸다고 우리는 배워왔다. 그러나 그것이 꼭 과거만은 아닌 것 같다. 특히 배움의 과정에 있는 학생들이 성적에 따라 학교가 구분되고, 그 구분이 학생 개인의 모든 걸 말해주는 상황에서 우리는 현대판 교육 신분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고교 비평준화 지역인 광명시의 학생과 학부모들이 느끼는 입시 부담과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크다. 학부모들은 자녀가 중학생 아니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 때부터 나중에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어떤 교복을 입게 될 것인지를 걱정한다. 학생의 교복이 모든 걸 말해주는 지역 정서상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고등학교 입시에 대비하기 위해 중학생들이 일찍부터 학원에 다닌다. 이는 곧바로 가계에서 사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용을 증가시키고 있다.

참고로 이러한 현상은 광명시뿐만 아니라 대부분 비평준화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국민대 김현진 교수팀의 논문 '고교 평준화 제도와 사교육비 지출의 관계분석'에 따르면 가계에서 사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비평준화 지역이 더 높은 것으로 분석되었고, 이는 특히 중학교 2, 3학년 때에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이런 부담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찌감치 인근 평준화 지역으로 이사하는 가정도 많다.  

주민들의 높은 평준화 요구와 운동, 전임 교육감들의 묵묵부답

광명시 학부모와 시민단체들은 고교평준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 광명시 고교 평준화 축제 광명시 학부모와 시민단체들은 고교평준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 서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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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교평준화에 대한 광명시 주민의 희망과 요구는 대단히 높다. 이미 2006년 여의도리서치에서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민의 71%가 평준화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와 학부모들의 평준화 요구 운동도 줄기차게 이어졌다.

지난 2003년 학부모와 여러 단체가 모여 결성한 고교평준화를 위한 시민 연대 모임은 그동안 평준화를 위한 강연회와 축제 등을 열어 지역 의견을 공론화했고, 각종 집회를 통해 고교평준화 실시 주장을 알렸다.

그리고 이러한 요구를 집약해 고교평준화 타당성 조사를 실시하라는 구체적 요구안을 경기도 교육청에 제출했다. 그러나 전임 교육감들은 약속을 어기거나 교육적 소신을 들어 묵살해왔다. 지역 주민들의 교육적 요구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고교 평준화에 대한 오래된 오해 또는 거짓말

전임 교육감과 교육 관료들의 고교평준화에 대한 미온적 태도, 또는 반대 논리는 학력 효율성 문제였다. 고교 평준화 정책을 둘러싼 가장 오래된 비판은 학업성취도를 떨어뜨려 학력을 하향평준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평준화 지역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떨어진다는 객관적 연구결과는 없다. 2005년에 교육개발원에서 발표해 이제까지 평준화 정책과 관련한 가장 객관적이고 심도 있는 연구결과로 알려진 '고교평준화 적합성 연구Ⅱ'는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연구 결과 비평준화 지역보다 평준화 지역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와 학력 향상도가 높게 나왔다.

연구에 참여한 한 연구자는 "이제 적어도 학력과 관련해서 평준화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끝났다"라고 말했다. 당시 교육부도 이와 같은 연구결과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평준화 정책의 우수성을 선전한 바 있다.

최근 공개된 지역별 수능 성적은 평준화 지역의 성적이 학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며  학력차이는 정책 문제이기 이전에 학생의 사회·경제적 배경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도 학력을 가지고 평준화를 계속해서 비판하는 것은 오해이거나 의도된 거짓말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첫 주민 직선제 교육감 취임, 구체적인 평준화 확대 정책 꾸준히 밀고나가야

많은 광명시민이 기대를 갖고 경기도 교육청을 지켜보고 있다.
▲ 교육감 취임식 축하하는 광명시 고교평준화 시민모임 많은 광명시민이 기대를 갖고 경기도 교육청을 지켜보고 있다.
ⓒ 서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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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8일 실시된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평준화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운 김상곤 후보가 교육감으로 당선되어 고교평준화에 새로운 길이 열렸다. 광명 지역 주민은 그에게 경기도에서 가장 많은 표를 몰아주어 다시금 높은 평준화 요구를 보여주었다. 김 교육감도 고교입시 평준화를 요구하는 시민사회 의견을 수렴하여 평준화 확대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이미 밝힌 바 있고, 경기도 교육청은 '고교 평준화 확대 추진안'을 발표했다.

고교 평준화에 대한 주민 요구와 적합성이 그 어느 지역보다 높은 곳이 광명지역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광명지역은 고등학교 간 학생들의 통학 거리가 멀지 않고,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학생비율이 적정해 합리적인 배정방안을 만드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고교 평준화의 타당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학생이 입고 입는 교복이 그 학생의 모든 걸 말해주고 고등학교 입시 부담으로 일찍부터 학생들이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리는, 아직도 비평준화 지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교육 신분제라는 굴레에서 고통 받는 학생과 학부모의 고통을 경기도 교육청과 교육 관료들은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며,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김 교육감은 취임사에서 "아이들이 입시경쟁과 학교 서열화로부터 벗어나서 보편적인 교육혜택을 받고 기초학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평준화 확대 방안을 밝혔다. 이는 주민들의 교육 요구를 수렴하려는 초대 주민 직선제 교육감의 올바른 자세라 본다. 경기도 교육청은 진정한 교육자치 구현과 공교육 강화를 위해 평준화 확대 정책을 꾸준히 밀고 나가기 바란다. 많은 주민들이 기대하며 경기도교육청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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