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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성들의 울음 그치지 않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내는 날 울음바다 되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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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일)는 오후부터 때 아닌 지축을 흔들 정도로 강한 천둥과 땅을 가를 듯한 날벼락이 쳤다. 이와 함께 거센 돌풍이 불더니 급기야 폭우가 쏟아졌다. 그렇게 시작한 비는 밤새 천둥과 번개를 불렀으며 몇 번이고 누전 차단기를 떨어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비는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백성들에겐 매우 고약한 하늘이라고 할 수 있는 날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활짝 웃고, 백성은 펑펑 울고

대한민국 백성들, 10일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고약한 날씨보다도 강한 날벼락을 맞았다. 그 일로 백성들은 상실의 시대를 맞고 있고, 이명박 정부를 바라보는 민심 또한 열흘 전보다 훨씬 흉흉해졌다.

삼우제까지 지냈건만 봉하마을과 대한문 앞에 설치한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찾는 백성들 또한 빗줄기가 아무리 강해도 줄어들고 있지 않다. 그 뿐인가. 김해 봉하마을은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겐 꼭 한번 찾아가고 싶은 마을이 되었다.  '바보 노무현'이 만들어낸 힘이다.

지금 백성들은 정신적 멘토를 잃은 슬픔에 '멍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그의 동영상을 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는 사람도 있다. 장례가 끝나도 일터로 돌아갈 줄 모르는 이들은 분향소 주변을 서성거리거나 선술집을 찾아 술잔만 비운다.  

날벼락 같이 다가온 노무현의 죽음 앞에서 백성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여 백성들은 그의 유언에 담긴 글처럼 '글을 쓸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을 정도가 되어 정신적인 방황을 하고 있다. 패닉 현상이 따로 없다.

백성들의 가슴이 이처럼 휑하지만 노무현의 죽음 이후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명박 대통령의 얼굴 표정은 전에 없이 환하고 밝아 보인다. 활짝 웃는 모습은 마치 모든 근심을 털어버린 듯 천진난만하기까지 하다. 백성들이 보고 느끼기엔 그렇다.

대통령의 얼굴이 환하고 행복해 보이는 것을 문제 삼고자 싶은 생각은 없다. 백성으로서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더욱이 그것이 보여주기 위한 쇼나 가식이 아니고 진정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일이겠다.

그런데 문제는 백성이다. 대통령의 웃음이 환하면 환할수록 백성들의 얼굴은 찌푸려지거나 눈물을 흘리고, 대통령의 걸음이 살랑살랑 가벼울 때 백성들의 걸음은 무겁다는 점이다. 대체 한 나라에 살면서 이런 극적인 일은 왜 벌어지는 걸까.

그 이유는 아무래도 '바보 노무현'의 죽음이 원인이 아닌가 싶다. 그의 죽음과 동시에 확인된 민주주의 죽음 혹은 실종 앞에서 이 나라 백성들은 오열했다. 그리고 결코 묻어두고 넘어갈 수 없는 '진실' 하나를 발견했다. 그 진실은 노 전 대통령이 끝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과연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노제를 치르기 위해 시청 앞 광장에 도착한 노 전대통령. 꽃가루가 뿌려지고 있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노제를 치르기 위해 시청 앞 광장에 도착한 노 전대통령. 꽃가루가 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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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의 분노 풀어줄 이는 누구?
▲ 분노. 백성들의 분노 풀어줄 이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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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죽음 뒤에 가려진 진실은 '정치보복의 의한 타살'

노무현의 죽음 후 <한겨레>에서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되듯 백성 중 60% 정도가 노무현의 죽음은 현 정부의 정치보복에 의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은 서거는 단순한 자살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타살이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검찰은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우린 정당한 수사를 했다'고 선수를 쳤다. 검찰이 과연 그들의 주장대로 정당한 수사를 했는지는 백성이 먼저 알고 있으니 달리 할말도 없다.

경찰 조직도 기민하게 움직였다. 경찰은 국민장이 끝나기 무섭게 서울광장을 봉쇄했고 백성들이 설치한 시민 분향소를 군홧발로 짓이겨 버렸다. 경찰 간부의 지시에 의해 일어난 그 일을 두고 서울경찰청장은 '작전 지역을 벗어난 의경들의 실수'라고 했다.

그런 해괴한 변명은 1987년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두고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고 발표한 군부독재 하에 존재하던 경찰과 다르지 않았다. 그것만 아니다. 경찰은 분향소를 찾는 백성들을 '불온한 사람들'로 규정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에나 가능한 일이 2009년에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백성들은 또 한번 망연자실할 뿐이다.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시기, 제주에 간 이명박 대통령은 활짝 웃었다. 전직 대통령이 서거를 했는데도 장례식에 참석해야 하는지를 고심했던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 그들은 노 전 대통령이 죽음을 맞았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어떤 생각을 했을까.

백성들은 이 대통령이 '그 어떤 생각'을 하면서 설핏 미소를 띄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심도 한다. 또한 백성들은 그리하여 이 대통령이 이젠 활짝 웃을 수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나름의 결론도 내린다.

"노 전 대통령이 환경이다, 오리농법이다 하며 태양으로 남아있는데, 그걸 지켜봐줄 대통령이 어디 있겠어? 당연히 밟는 거지. 그런 역사가 한 두 번이야?"

분향소에서 만난 어르신이 그렇게 말했다. 권력을 가진 자로서 노 전 대통령이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 기분 나쁜 일인 것이라는 거다. 지난 우리의 역사를 보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삶과 죽음은 하나이지요.
▲ 누구에겐 참으로 거북한 말. 삶과 죽음은 하나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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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 미안해요. 사랑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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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소를 찾은 국민이 고작 500만 명? "그 정도야..."

이렇게 노 전대통령의 죽음을 두고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진실과 백성들이 생각하고 있는 진실이 다르다. 그러나 진실이 가려지는 것은 굳이 양심선언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짧은 현대사를 보더라도 백성은 알고 있는데, 권력자만 모른척 고개 돌린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백성이 '살인마'라고 했지만 대통령이 된 역사도 있었고, 보통사람이며 설래발을 쳤지만 전혀 보통 사람이 아닌 대통령도 있었다. 분단을 극복해보자며 평양에 간 두 명의 대통령도 있지만, 그것을 친북이라며 몰아붙인 철없는 전직 대통령도 있었다.

잘 살게 해주겠다고, 등록금 반으로 줄여주겠다고, 일자리 수십만 개 만들겠다고, 장미빛 공약을 한 사람도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이 된 후 백성들의 삶은 곤궁해졌고, 급기야 갈 곳 없는 용산 백성 다섯을 불태워 죽였다. 그럼에도 그 누구도 그들의 죽음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지금까지 장례식조차 치르지 못하는 걸 보면 적어도 그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백성은 아닌 듯 싶다.

그 뿐이던가. 등록금 반으로 줄여 주겠다는 약속을 지켜달라고 요구하는 대학생들이 줄줄이 경찰차에 태워졌다. 약속을 지키라고 말하는 것도 죄가 되는 나라. 이런 나라에서 살아 남으려면 모두 입을 닫아야만 한다.

이러한 과정을 겪고 있는 백성들에게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죽음과 동시에 서민대통령이라는 꼬리표가 달려있는 '바보 노무현'은 백성들에게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다. 백성들은 뙤약볕도 아랑곳 하지 않고 몇 시간을 달려 그를 만나러 봉하마을로 또는 대한문 앞으로 갔다.

그렇게 분향에 참여한 인원이 500만 명. 건국이래 최대 추모 인파라는 수식어가 뉴스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는 '고작 500만 명?'하고 코웃음을 치고 있다. 그러니 이명박 대통령에겐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사과하라는 말도 고작 500만 명 뿐인 것이다.

작년 촛불 정국도 버텨낸 이명박 대통령. 그때의 촛불도 넉넉하게 잡아야 500만 명 정도(경찰 추산 93만 명).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이미 한 번 넘은 산의 숫자 500만 명. 그러니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이번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인원은 그리 놀랄 숫자도, 굳이 소통에 신경쓸 숫자도 아닌 것이다.

다시 태어나면 대통령 하지 마세요!
▲ 잘가세요... 다시 태어나면 대통령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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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내 마음 속 대통령입니다.
▲ 당신을 잊지 않을게요. 당신은 내 마음 속 대통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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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으려면 입 닫거나 민주주의 외쳐야 해

이제 백성은 어찌할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이 그 정도 백성은 상대도 하지 않겠다는데. 500만 명의 백성 중 몇이 불길에 타 죽고 몇이 스스로 목을 매거나 바위에서 몸을 날려도 눈 하나 깜짝할 일도 아닌 숫자에 포함되는 백성들은 이제 어찌할 것인가.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아무리 무시해도 목에 가시 같은 숫자 500만 명. 하지만 500만 명만 문제인가. 앞으로 500만 명을 넘어 더 많은 백성들이 '목에 박힌 가시'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것을 이명박 대통령은 알까.

이젠 목장갑을 끼고 전경과 대치하는 여고생도, 민주주의 후퇴를 걱정하며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는 시국 선언을 하는 대학 교수들도, 하물며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대통령의 책임있는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이들도 500만 명에 포함시켜야 하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추산하는 '목의 가시'를 늘 500만 명으로 두기만 할 수는 없지 않던가.

아니다. 더 많은 백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해도 500만 명으로 두는 것이 이명박 대통령으로는 행복한 일이고 이문 남는 장사일 수도 있다. 나중에 어떤 일이 일어나던 말건, 백성들이 눈물 흘리며 민주주의 장례를 치르건 말건, 활짝 웃을 수 있으며 권력을 지금처럼 유지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500만 명에 포함되는 대한민국 백성들. 백성 취급도 받지 못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두 가지. 입을 굳게 닫거나 더욱 강력한 대오를 갖춰 '민주주의'를 외치는 것 밖에는 없는 듯 하다.

이젠 들을 수 없는 신경민 앵커의 클로징멘트. 그가 있었다면 현 상황을 이렇게 정리하지 않았을까.

"오늘 제주에 간 이명박 대통령이 모처럼 활짝 웃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기쁜 일이나 함께 웃어주지 못해 미안한 하루입니다. 전직 대통령을 보낸 후 대통령은 웃고, 국민은 울고 있는 나라에서 국민과 대통령의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 확인하는 것도 힘든 요즘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대한민국 국민은 또 한번 현장실습 교재로 민주주의를 '열공'했습니다."

우리가 완성하겠습니다.
▲ 민주주의는 우리가 완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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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노무현, #이명박, #검찰,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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