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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그 모습 그대로다. 거의 변하지 않아 더 감격스럽다."

 

5월 31일, 여수시 남면 금오도를 40년 만에 다시 찾은 서울대 인류학과 한상복(74) 교수의 소감이다. 한 교수가 처음 금오도에 들렀던 때는 1969년 2월 21일. 34살 때 박사논문으로 <한국 어촌의 사회경제적 조직과 변화 - 3개 도서(가거도·금오도·구룡포) 비교 연구>를 준비할 때였다.

 

한상복 교수가 40년이 지난 지금, 금오도에 왔던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한 건 메모 덕분이었다. 과거부터 촘촘히 기록했던 노트에는 당시 실상이 적혀 있었다. 그걸 보고 한 교수가 배 안에서 일행에게 금오도에 대해 소개했다.

 

"1969년 2월 20일. 밤 10시 30분 출발하는 여수행 기차를 타기 위해 서울역에 도착했다. 그러나 기차는 출발 시간을 1시간 30분이나 넘긴 후 움직였다. 기차가 여수에 도착한 시간은 그로부터 10시간이 지난 아침 10시 20분에 도착했다."

 

이 꼼꼼한 기록은 그의 시계추를 과거로 돌이키기에 충분했다.

 

1969년 80원이던 배삯, 지금은 7900원

 

 

"여수에서 점심 후 오후 1시 50분에 금오도 행 배를 탔다. 여객선은 자봉도, 화태도, 월호도 등을 거쳐 오후 5시 금오도 함구미에 도착했다. 배 삯은 80원이었다."

 

1969년 80원이던 여객선 운임은 현재 7900원. 40년간 많이도 올랐다. 노트에는 당시 어촌계장과 이장 이름, 바다 양식장 공유 현황, 수산물 매매기록 등 생활상이 낱낱이 기록돼 있었다. 한상복 교수의 설명을 듣던 후학들은 노 교수의 노트를 살펴보며 한 마디씩 했다.

 

"옛날 이런 기록은 기록문화의 진수다."

"대단한 기록이라, 오히려 귀엽다."

 

이에 대해 한 교수는 "후배 연구자들이 귀엽게 봐줘 고맙다"라고 웃으며 짧게 응수했다.

 

"이제껏 어디 계시다가 이제야 왔소!"

 

 

드디어 배가 여수시 금오도 함구미 마을에 도착했다. 그가 한 촌로에게 당시 이장이던 서길동씨를 찾았다. 서 이장은 없었다. 대신 기록에 남아 있던 나상갑(73)씨를 찾았다.

 

"그럼 나상갑씨는 있어요?"

"내가 나상갑이요."

 

이야기를 나눈 촌로가 바로 나상갑씨였다. 둘은 손을 잡고 얼굴을 확인했다. 한상복 교수는 40년 전, 나상갑씨 집에서 10일간 머물렀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그들의 해후는 묘한 감동을 주고 있었다.

 

일행이 손을 맞잡고 나상갑씨 집으로 향하는 그들 뒤를 따랐다. 집은 지붕과 마당만 바뀐 채였다. 집안에서 나상갑씨 부인이 "집도 문댕이 같은디 사람들을 요리 많이 델꼬 왔소"라며 퉁명스레 맞았다. 자초지종을 듣던  부인이 한 마디 던졌다.

 

"그라믄 이제껏 어디 계시다가 이제야 왔소. 빨리 좀 오지."

"바빠서 올 틈이 없었다. 미안하다."

 

일행들이 걸쭉한 웃음을 쏟아냈다. 세월은 젊었던 그들을 할아버지로 탈바꿈시켰다. 한 교수는 "인생을 바삐 살 필요가 없었는데 너무 바삐 살았다"며 회한에 젖어 있었다.

 

가장 인간적인 정이 그리운 세상

 

 

궁금증이 일었다. 40년 만의 해후라지만 이산가족이 아닌 바에야 그렇게 감격할만한 이유가 없었다. 한상복 교수에게 왜 감격스러운지 물었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아직 인정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반갑게 맞아주는 마음이 전해져왔다."

 

한 교수는 인류학자가 될 운명이었을까? 그는 "옛날 찾았던 곳을 다시 찾아 새롭게 연구해야겠다."는 말도 남겼다. 어찌됐건 가장 인간적인 정이 그립기만 한 세상이다.

 

한편, 한상복 교수는 지난 30일, 한국문화인류학회가 2012세계박람회 개최도시 여수에서 연 인류의 다양한 삶을 살펴보는 '국제학술대회'에서 '나의 해양인류학 회고와 전망'에 대해 발표했다.

덧붙이는 글 | 다음과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태그:#남면 금오도, #한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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