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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촛불집회가 있기 전에도 나는 많은 집회에 참가해보았다.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철거민, 여성 등 집회에 참가하는 것은 나의 또 다른 생활이었다.

이렇게 집회 참가가 생활이 된 것은 사회당 당원이 된 것과 대학생사람연대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처음 선배들의 권유에 의해 따라간 집회 문화는 매우 엄숙했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부산역 광장에 모여서 팔뚝질을 하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다소 과격한 구호와 노래에 맞춰 거리를 행진하기도 했다.

부산대 앞에서 장애학생 문제와 관련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 투박한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부산대 앞에서 장애학생 문제와 관련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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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나도 팔뚝질을 하며 민중가요를 부르고, 구호와 노래를 선창하는 학생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후배들에게 과격한 선배, 무서운 선배라고 찍히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대표로 활동했던 동아리 또한 진지한 분위기의 토론과 정형화 된 캠페인, 글이 많은 선전물을 만들어 학내에서 사회문제에 대해 알려나갔다. 그리고 동아리 회원들의 의견은 어떤 경우라도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2008 촛불 집회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2008년 5월 광우병 쇠고기를 반대하는 집회가 처음 부산 서면에서 열렸다. 나는 평소와 같이 글이 많은 흑백 선전물과 과격한 구호가 적힌 피켓(이명박을 물러가라!)을 들고 거리로 나갔다. 그리고 같이 간 대학생사람연대 회원들과 함께 다소 과격한(?)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을 했다.

하지만 내가 하는 행동이 촌스러울 정도로 집회 참가자들의 행동은 자유로웠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다른 집회와 달리 집회의 발언자가 정해져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학생, 고등학생, 아저씨, 아줌마, 할아버지 등 계층과 나이, 직책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발언을 할 수 있었다. 평소 나가는 집회에서는 단체 대표자가 무대에 올라와서 매번 식상한 발언만 했는데 여기서는 모든 발언이 신선했다. 정형화된 틀에 따라 맞춰진 발언이 아니라 각자 삶에서 우러나오는 발언이라 시민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주옥같았다.

두 번째로 시민들이 가지고 온 피켓은 알록달록했다. 글자만 쓰려 있는 심심한 피켓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가 없었다. 대신 촛불 소녀, 이명박 풍자 그림, 미친소 모양을 익살 스럽게 표현한 피켓 등 지금까지 내가 볼 수 없었던 피켓을 한자리에서 볼 수가 있었다.

작년 촛불 집회 때 동아리 회원이 만든 피켓 'USB 보다 못한 2MB 재협상좀 해!'
▲ 피켓에 USB 그림이? 작년 촛불 집회 때 동아리 회원이 만든 피켓 'USB 보다 못한 2MB 재협상좀 해!'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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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민들이 집회가 끝이 나도 집에 가질 않았다. 사회·학생 운동 단체 사람들만 집회 일정 마치면 바쁘게 흩어졌다. 하지만 시민들은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기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촛불을 지켰다. 사회를 바꾼다며 선동하는 사회운동가들은 밤늦은 시간에 잘 보이지 않고, 시민들이 촛불을 끝까지 지키는 모습이 아이러니했다.

동물 잠옷을 입고 처음 만난 S씨

촛불집회를 통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 중 작년 집회에서 만나 지금까지 동아리 활동을 같이하고 있는 S와의 첫 만남이 생각난다.

촛불 집회를 막고 있는 전경과 함께 동물 옷을 입은 S씨가 사진을 찍고 있다.
▲ 전경아저씨와 한컷 촛불 집회를 막고 있는 전경과 함께 동물 옷을 입은 S씨가 사진을 찍고 있다.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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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와의 인연은 부산 집회 때 내가 발언할 때였다. 발언을 할 때 나는 동아대 학생이라는 것을 이야기 했는데 그것을 들었던지 나에게 찾아와서 인문대 학생 아닌지 물어봤다.

S="혹시 동아대 인문대 학생 아니세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나="반가워요. 아마 작년 겨울에 많이 보셨을 텐데..."
S="아 작년 학생회 선거 나오셨죠? 그 상위 누드 사진 포스터? 기억납니다."
나="처음 인사드리는 건데 부끄럽네요."

2007년 겨울 인문대 학생회 선거에 출마를 했었는데 S도 인문대 학생이라 나를 알아봐주었다. 아무튼 S와의 만남이 특별했던 이유는 동물 잠옷을 입고 집회에 참가하여 마이크를 들고 집회 참가자들에게 인터뷰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촛불 집회를 인터넷으로 생중계 하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진보신당 당원이었던 S는 부산지역 핑크TV 리포터로 활동을 했었다. 

진보신당 핑크 티비에서 활동했던 S씨
▲ 진보신당 핑크 티비 진보신당 핑크 티비에서 활동했던 S씨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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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참가하는데 동물 잠옷을 입고 참가한다는 것은 나에게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다. 사회 문제를 이야기 하는 공간 속에 귀여운 이미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의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 하고 경찰 탄압에 맞서기 바쁜 집회 분위기 속에 참가자들에게 인터뷰를 하는 여유는 어디서 나오는 건지 궁금했다.

나의 활동 방식을 자유롭게 한 촛불 집회

2008년 촛불 집회에 참가하면서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활동의 형식이 매우 딱딱하다는 것을 느꼈다. 일반 대중들과 거리감을 두고 활동하는 것을 멋으로 여겼고,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하나로 통일하려는 외골수적 기질이 강했다.

하지만 작년 촛불 집회를 통해서 나의 활동 형식이 다양하고 자유로워졌다. 내가 활동하는 인문학 동아리는 더 이상 한 가지 의견만 존재하는 곳이 아니게 되었다. 이전에는 모든 회원이 책을 읽어도 나 혼자 이야기 하고 회원들을 설득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그래서 토론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다른 회원들의 의견을 들으려는 태도를 취하니 토론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열심히 토론을 하고 있는 동아리 회원들의 모습
 열심히 토론을 하고 있는 동아리 회원들의 모습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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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가 생각하는 의견이 공존을 하는 동아리 분위기가 되자 동아리 대표 뿐만 아니라 각 회원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동아리에 제안하기 시작했다. 즉 촛불 집회를 통해 배웠던 능동적인 시민의 모습이 우리 동아리에서도 이루어 진 것이다. 그리고 사회 문제에 대해서 학우들에게 캠페인을 할 때도 우리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학생들을 만나 의견을 들어보는 활동을 하고 있다.

광주 5.18을 맞아 학생들이 광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직접 만나 애기를 나누고 피켓에 생각을 적고 있다.
▲ 참여하는 캠페인 광주 5.18을 맞아 학생들이 광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직접 만나 애기를 나누고 피켓에 생각을 적고 있다.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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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촛불집회를 통해 나는 나의 삶의 방식을 성찰하고 변화하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그 당시 우리가 외쳤던 구호가 하나도 실현되지 않아 씁쓸한 생각이 든다. 조금 더 힘을 내서 작년만큼은 아니더라도 다시 촛불을 높이 들고 우리의 목소리를 힘차게 외쳤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촛불이 내 인생에 미친 영향' 응모글



태그:#촛불집회, #촛불,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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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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