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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 있는 한국금융사박물관
 광화문에 있는 한국금융사박물관
ⓒ 한국금융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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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5만원권이 나온다. 다음달 23일부터 시중에 유통된다고 하니, 한국 지폐 역사의 새로운 한 페이지가 열리는 셈이다. 그래서 문제 하나. 현행 액면 체계에서 가장 많이 바뀐 지폐는 무엇일까.

역시 1만원권이다. 이제까지 모두 6번 바뀌었다. 1천원권은 3번, 5천원권은 5번, 위조지폐 방지기술이 고액권에 우선적으로 적용됐음을 보여준다. 새로 나올 '신사임당 5만원권'도 1만원권이 걸어온 '길'을 따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2일, 광화문 한복판에 있는 한국금융사박물관(아래 '금융박물관')에서 확인한 '정답'이다. 신한은행 광화문 지점 건물, 그곳에 가면 신한금융그룹이 운영하고 있는 금융박물관이 눈에 띈다. 우리나라 화폐 변천사와 금융역사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퀴즈들이 이어진다 … 1897년 은행장 월급은 얼마?

우선 3층에 있는 한국금융사실부터 돌아봤다. 이름 그대로 개항기 이전에 사용되던 각종 고문서와 금융거래에 사용되던 계산도구, 통장, 유가증권 등 흔히 볼 수 없는 자료들이 빼곡했다.

휴대용 벼루함 주판을 처음 봤다. 요즘으로 따지자면 딱 '노트북'이다. 국내 최초의 민족은행인 한성은행(조흥은행 전신) 임직원 봉급명세표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1897년 11월 당시 은행장 월급, 정답은 20원이다. 무슨 퀴즈 프로그램을 푸는 기분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조선시대 한 냥의 가치는 얼마일까? "18세기에는 1냥에 쌀 3말 정도였다"고 한다. "쌀 1말이 2007년 현재 소매가로 약 4만원이 조금 넘고, 조선시대 1말의 부피는 현재의 1/3정도였으니" 4만원이란 계산이 나온다. 최초로 법정이자를 규정한 것은 언제일까? 고려 경종 5년(980년)이다. 그때는 "국가에서 꿔주는 것과 개인간에 꿔주는 이자를 1년에 33%로 정했다"고 한다.

가장 재미있던 '퀴즈'는 '우리나라 최초의 대출 담보'를 묻는 문제였다. 정답은 당나귀다. 대구에서 당나귀를 타고 서울에 올라왔던 대구 상인이 급하게 돈을 빌릴 일이 생기자, 한성은행에 당나귀를 담보로 맡기고 돈을 빌려갔다고 한다.  흥미로운 '입체영상'이었다.

박준영 금융박물관 학예사(34·남)는 "비록 구전으로 전해오는 이야기지만, 은행가에서는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대구상인이 다시 찾아오지 않자, 당나귀를 은행 업무용으로 사용했다는 뒷이야기도 전해진다"고 설명했다.

일제시대, 독재, '서양인 율곡' … 슬픈 남매 이야기까지

1원짜리 '백만개'
 1원짜리 '백만개'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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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는' 역사도 곳곳에 숨어 있었다. 1970년대 영국 은행권 제조회사에 지폐 제작을 맡겼다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5천원권도 구경할 수 있었다. 지폐 안 율곡 선생 얼굴이 영락없이 서양인이다. 화폐 제조 기술이 뒤떨어졌던 한 시대를 상징하는 '돈'이다.

비극적인 근대사를 상징하는 '돈'도 보인다. 1902년 일본제일은행이 발행한 십원권, 일본이 우리나라에 강제로 유통시켰던 돈이다. 헌데 '일개' 은행장이 주인공이다. 박 학예사는 "당시 일본 제일은행장을 모델로 했다가 반발이 일어나자, 나중에는 광화문과 같은 한국 문화재로 바꾸었다"고 설명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1956년 발행된 5백환권에도 담겨 있었다. 다른 지폐들과 달리 중앙에 박혀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 얼굴. 박 학예사는 "자꾸 자기 얼굴이 접히니까 대통령이 지폐를 바꿀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참, 대통령 '해먹기' 좋은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가장 '재미없던' 역사는 따로 있었다. 글씨를 모르는 서민들이 손바닥을 대고 따라 그렸다는 '사인', '수장'을 보고 그냥 지나치려는데, 박 학예사가 팔을 붙잡는다. "한 남매가 자신들을 노비로 파는데 동의한 수장"이라고 한다. "남자는 왼손, 여자는 오른손"이란 설명에 잠깐 가슴이 먹먹해진다. 오빠는 왼손, 여동생은 오른 손, 수장을 그리는 오빠 마음은 어떠했을까.

조선시대, 어떤 남매가 자신들을 노비로 파는데 동의한 '수장'
 조선시대, 어떤 남매가 자신들을 노비로 파는데 동의한 '수장'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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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떠오른 1원짜리 백 만개 … 잊지 말아야 할 '정답'

4층 화폐전시실에서 봤던 1원짜리 백 만개가 그래서 다시 떠올랐다. 만 원 짜리 백 장, 이제 나올 5만원짜리 20장과 같은 가치의 돈, 똑같은 백 만원인데 그 '차이'가 엄청났다.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이었다. 보관이 쉬우며 이동이 편리한 방향으로 발전한 화폐 변천사를 실감하고 넘어갔었다.

헌데 갑자기 두려움이 치민다. 앞으로 돈의 액면 가치는 어디까지 올라갈 것인가. 걱정이다. 그만큼 사람의 가치도 대접받는 세상이 되야 할 텐데. "잘 살자는 우리 소원 저축으로 이뤄보자"는 저축 장려 표어는 이미 구닥다리가 되고 말았다. '펀드든, 뉴타운이든, 닥치는 대로' 세상이다. 이런 시대다 보니, '조선시대 수장을 찍은 남매 이야기'가 그저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3층 금융사실 초입에는 "우리나라 초기 금융의 모습은 국가에서 백성들을 돕는 정책에서 시작되었다"고, 4층 화폐전시실에는 "화폐는 물품이나 금융거래에 사용하는 교환의 수단"이라고 적혀 있다. 광화문 한복판에 있는 '한국금융사박물관', 그곳에는 재미와 역사 그리고 '상식'이 숨쉬고 있다.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으로 인기 높아
근대 화폐 변천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박준영 학예사
 근대 화폐 변천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박준영 학예사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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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금융그룹이 사회공헌사업 일환으로 운영하고 있는 한국금융사박물관은 1997년 국내 최초의 금융사 전문박물관으로 설립됐다. 당초 이름은 조흥금융박물관이었으나, 2006년에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이 통합하면서 명칭이 변경됐다. 신한금융그룹은 6개월간의 리모델링 과정을 거쳐 2007년 재개관했다.

현재 약 7천여점의 금융 관련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 중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은행인 한성은행의 1897년 은행규칙을 비롯하여 개성 상인들이 썼던 장부나 조선시대 할리목록(조선시대 사채를 놓을 때 사용되던 금리표) 등 사료 가치가 높은 유물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이와 더불어 신한금융그룹은 금융박물관을 재개관하면서 금융사 및 관련 유물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모형, 영상물, 체험 등을 곁들였으며 박물관 교육에 대한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일반인들의 국내 금융 역사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고, 자라나는 새로운 세대에게 금융경제교육의 장을 마련한다"는 운영 목적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 금융박물관은 자신의 얼굴이 들어간 지폐 사진을 찍어보는 '화폐 속에 얼굴 넣기', 조선시대 화폐인 상평통보 등 문양을 관람객들이 직접 찍어볼 수 있는 '화폐 문양 찍기', 박물관 관람내용을 퀴즈로 풀어보는 '도전 금융박사'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박물관을 방문하는 어린이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현장체험학습지를 제작하여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현재 유치원교사용, 초등학생용, 중·고등학생용 등 3가지 종류가 있으며, 홈페이지(www.shinhanmuseum.co.kr)를 통해 누구나 다운로드받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박준영 금융박물관 학예사는 "평일에는 어린이 단체 관람객이, 주말이나 방학에는 어른들이 자녀들과 함께 박물관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유익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라면서 "최근에는 교육 프로그램을 굉장히 많이 운영하고 있고, 앞으로 더욱 강화할 계획일 만큼, 더욱 많은 분들이 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태그:#역사, #한국금융사박물관, #박물관, #신한, #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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